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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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 노동의 배신을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항상 의문인 것은 인류의 전망이 정말로 개선되었는가, 같은 것이었는데, 역시나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 유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나 그렇지, 대다수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처한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부박하고 위태롭다. 이다. 빈곤을 개인의 결점이나 마음의 기능장애로 보는 생각을 버리자. 우리가 전반적으로 얼마나 취약한지, 빈곤을 향해 굴러 떨어지는 게 얼마나 쉬운지 ...

긍정의 배신 또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는 책이다.

사람들이란 믿고 싶은 사실만 믿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려 한다. 나도 그렇다. 책을 읽어도 가급적이면 내가 듣고 보고 싶어 하는 주장이나 사실이 많이 등장하는 부분에 과하게 밑줄을 긋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나한테 좋았던 것이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거나 하는 측면으로 나를 자극했다기 보다는. 이래서 사람들은 전작주의를 하고, 읽어서 좋았던 저자의 다른 책들을 찾아 읽는 모양이다.

 

감사하는 마음, 만족감, 자신감 등 긍정적인 감정이 마치 생활속의 운동이나 비타민과 마찬가지로 건강한 생활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긍정적인 감정의 어두운 이면을 알고, 지양하자는 이야기로 읽을 소지가 있는데, 정작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기업이나 종교의 일각에서 주장하는 긍정 마인드의 이면을 보자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 대학에 들어갔다고 생각해 보자. 요즘에는 대학에서도 행복과 긍정적 사고에 관한 강좌가 유행하지만, 대학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긍정적 사고가 아니라 '비판적' 사고이다.  비판적 사고란 본질적으로 회의를 품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또 가장 성공할 학생은 잠깐 교수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날카로운 질문을 제기하는 학생이다. 대학원생이라면 전공이 문학이든 공학이든 권위 있는 인물에 도전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동료들의 생각과 배치되더라도 밀고 나가 자신의 새로운 관점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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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06-13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긍정의 과잉 시대이기는 하죠. 그러다보니 다 내 탓이구요. 취업이 막막한 20대가 너무 가련한 요즘입니다...

icaru 2015-06-16 10:12   좋아요 0 | URL
얼마전에 앙코르특집으로 해주는 뭘 봤어요,, 렉쳐다큐멘타리인가 뭔가 하는 거라던데,,,마침 그 회차에는 장진감독이 진행하고 있었거든요. 명견만리,라나 제목이.
저 정말 그 프로 충격이었어요. 인구쇼크 인구병에 관한 거였어요..ㅎㅎㅎ
영국의 모리서치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이대로가다간, 머잖아 대한민국이 사라진다고.
취업이 막막한 20대,, 아효... 우리아이들도 참 어려운 세상을 살게 되겠죠...

책읽는나무 2015-06-18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긍정! 부정!
사람들은 긍정적인 삶이 행복한 삶이라곤 하지만 그리 믿고 살다간 정말 책 제목처럼 발등이 찍히는 순간들이 오겠다 싶은 생각을 저도 어제 했었더랬죠.
어젯밤 누군가 올린 소식란에 일본은 망한 나라라는 글을 읽고 저도 충격을 받았더랬죠.방사능 오염이 심각하겠단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서서히 병들고 있는 정확한 근거를 제기하는데 음~~ 소름이 쫘악~~ㅜㅜ 그리고 저겐 환경오염탓으로 미래를 아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친구랑 얘길 나누면 정말 세상 살맛이 뚝!! 떨어질때가 있거든요.근데 요즘은 그친구말이 맞다~ 싶으면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정치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참 걱정스러워져요.ㅜ
고나마 고리원자력 1호기가 수명연장 폐쇄를 한다고 해서 정말 한시름 놓았습니다.그친구가 열심히 환경운동해준 탓에요.^^(그래도 그곳엔 9대나 더 있다고해서 뜨압~ㅜ)

그리고 맨마지막 구절 있잖습니까?
비판적 사고.....좀 와닿네요?
아들 요즘 사춘기가 와서 늘 비판적으로 말을 삐딱하게 말하는데 버릇없다고 혼내고 성격으로 굳어버릴까 걱정스러웠는데 비판적 사고라고 애써 긍정을 찾으면 되는 거지요?ㅋ

icaru 2015-06-19 11:07   좋아요 0 | URL
이 책의 서두에서 흡입력을 느꼈던 이유는 저자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치료차원의 긍정 마인드를 설파하는 것에 비판을 갖게 된 것이죠잉~

나아가서,,, 기업의 경영진들이나 종교적 지도자들이 설파하는 긍정 메시지를 경계하라는 맥락으로 읽혔어요~ 적어도 저자 본인은 방심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와~~ 책나무님 정말 훌륭한 친구 두셨어요~ ..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사는 분.. 흔치가 않아요,,

우리 성민군~ 하하하 비판적인 날을 세울 줄 아는,,,? 가끔 저희 집 형제들을 보며 뜨악할 때가 있거든요... 제 모습을 보게 되어서요.......ㅋㅋㅋ
혹시 성민군도~ 부모님께서 사물의 이면을 보는 사유를 시나브로 닮아가고 있는건지도요 ㅎㅎ ;; 버릇없게 보이는 점은 부모님에게 대할 때 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ㅎ

2015-06-18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9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5-06-26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되세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개정판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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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6 14:45



 

 

이 책을 읽기를 권하는 사람의 항목 중에 “왠지 모르게 위기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막연하고, 분명히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그게 나다. 

경제 성장, 민주주의 , 평화, 지속가능한 문명, 환경오염, 미국의 패권주의 등등...... 지난 수십년간 고도 경제 성장을 경험해온 사회들에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절박한 관심하가 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이 문제들은 저자가 처음 다룬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제기되어 온 논쟁들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논의들을 어느 책보다도  비교적 잘 지적하고 있고, 대안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끔 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의 핵심은 경제 성장에 대한 검토되지 않은 맹목적 신앙에서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부의 분배 방식은 이것이었다. 기술의 발달로 풍부해진 파이를 재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파이 그 자체가 커지면 작은 조각도 그 나름대로 커질 테니 모두 만족할 수 있게 끔 될 것이라는 경쟁 성장 논리이다. 이 논리를 통해 경제적 수치로 환산될 수 있는 물질적인 측면은 제외한 인간적으로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다른 경로들은 없어져 버렸고, 갈수록 빈부의 차이는 극심해져 가며, 민중들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방법들은 점차로 약화되어 간다. 그 뿐인가. 자연환경은? 지금의 인간 사회의 소비 행태와 사회 구조는 필연적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자원을 낭비하고, 수많은 쓰레기를 폐기하는 등의 생태계 파괴를 일삼고 있다. 이것이 상식적인 사회의 모습은 분명 아닐 터. 그러나 경제정치 세계론이 패권을 잡고, 그것이 상식이 된 사회에 살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벌써 비극인거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두 가지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방법을 배워 왔다고. 하나는 ‘일 중독’이고 하나는 ‘소비 중독’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대의 사회는 경쟁 사회이다. 경쟁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은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암묵 속에 존재하는 두려움이다. 열심히 쉬지 않고 일하지 않으면 가난뱅이가 될지 모른다, 집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는 공포. 병에라도 걸리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 병원비를 지불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공포. 결국에는 어떻든 일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개인적인 선택 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런 공포가 있다는 것은 사회의 안전구조가 약하기 때문이다. 경쟁사회란 기본적로 그런 구조이다. 즐겁기 때문에 일을 한다 혹은 계속 한다기보다는 공포가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는 사회이다.


저자는 파이의 크기를 늘려 가난한 나라와 국민들에게 돌아갈 몫도 키우자는 눈감고 아웅하는 말에 현혹되지 말고, 경제성장을 부정하는 '대항발전'을 하자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사회 속에서 경제라는 요소를 줄여 나가도 사람들은 최소한의 것만으로도 별 탈없이 살 수 있다고. 산업혁명 이후 줄곧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 왔으면서도 여전히 과로와 스트레스로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그는 서비스와 상품 구입 대신 자신이 스스로 창출할 수 있는 미의식과 감성을 기르라고 한다.


이것은 딴소리 같지만, 나는 배우 임현식이 좋다. 경직되지 않은 털털한 아저씨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달까. 나는 인물 비평가도 아니고 뭣도 아니니 그럴싸한 표현으로 그가 왜 좋은지를 말할 재간이 없지만, 요는 이거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서 보이는 넉넉함이 있는 것 같다. 교외에 있는 집에서 자기 소유의 텃밭과 농장을 아내와 함께 일구는 모습을 모 아침 토크쇼에서 보았다. 악기가 몹시 배우고 싶어서 바이얼린을 배웠다고. 


실천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데에 있다. 세상이 앞으로 점점 경제의 교환 가치 이외의 본래적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감성과 미의식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가 부활한다면, 시장 경제가 우리들의 생활에서 갖는 지배력은 많이 약화될 것이다. 그리고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고 있다는 믿음에서 희망이 솟아나며, 전정으로 일에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밑줄 그은 문장


"언어는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수단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경험이라든가 마음이라든가 역사라든가 미의식이라든가 사고방식이라든가 세계관이 들어 있다. 그것은 의미의 창고이자, 감각의 창고이고, 기억의 창고이기도 한 것이다. 어떤 한 언어는 인류 문화와 문명의 일부이자 인간의 한 가지 가능성이 거기에 실현되어 있다. 두 세대라는 짧은 시간에 5000개 이상의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아마도 역사상 예가 없는 문화적 재난일 것이다."


"오늘날 산업 노동자의 생활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부자유스러운 노예의 삶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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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노엄 촘스키 지음,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어, 강주헌 옮김, 레미 말랭그레 그림, / 시대의창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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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7 15:06


 

 

바츨라프 하벨이 제 7회 서울 평화상에 수상되었다고 한다. 서울(?)의 평화(?)를 주는데 저 외국인이 상당히 일조를 했나? 허울좋은 세계화!!! 구호 속에 묻혀 과연 '서울 평화상'의 의미는 무언지.......!!

나는 그 사람을 잘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한번 주말에 하는 퀴즈 프로(검색 문제로 저 상과 저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를 보고, 서울평화상 수상자라는 하벨이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본적이 있다.

찾아보니...하벨은 공공연하게 김정일을 “세계 최악의 독재자”라면서 “그는 핵과 미사일 등으로 세계를 협박해 받아 낸 식량을 군대 등 자신의 충성 세력에 나눠줄 뿐 주민들은 굶어죽어도 상관하지 않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는 내용의 기사들(하벨과 부시는 토시 하나 안 틀리고 같은 말을 이구동성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을 접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벨이 왜 미국이 가장 높이 받드는 ‘유럽의 양심’으로의 상징적 존재인가 라는 점이다. 하벨은 공산주의 치하에서 체코의 민주주의 체제로 바꾼 사람으로, 미국이 대놓고 칭찬하기에 딱 좋은 지식인 계층이다. 그런데 당시 하벨과는 반대 급부(미국의 입장에서)의 엘살바도르 지식인 6명이 소리 소문없이 미국이 훈련시킨 코만도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것은 거의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고.


이 쯤에서 드는 생각은 언론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하는 것이다.


촘스키는 1966년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지식인의 책무’에서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미국이 자신을 향해 어떤 비난과 질시를 하든 개의치 않고 미국의 ‘외교정책- 언론-지식인’의 유착 관계에 주목하여 그 본질을 폭로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촘스키는 말한다. 통찰력 있는 지식인이라면 대중을 그저 무기력한 구경꾼으로 만드는 이런 흐름을 충분히 꿰뚫어 보았을 것이나, 대부분의 지식인은 입을 다문 채 대중을 국가에 종속시키려는 이런 음모에 가담한다. 왜? 그것이 이들의 밥줄이기 때문이다.


촘스키는 현재의 경제 체제는 엄청난 권력을 지닌 개인 기업들이 서로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강력한 국가 권력에 의존하면서 위험과 비용을 분산시키는 체제라고 말한다. 대중의 각성과 경계 이외에 현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은 없는 것이다.


아니 그렇다면,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 그리고 나는 일순 무정부주의자처럼 지배구조와 계급구조는 어떤 형태를 띠더라도 의혹의 대상으로 삼아 그 정당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같은 일개 개인이 무슨 힘으로, 어떻게. 알고는 있지만 어찌해 보지 못하는 방관자로..... 남게 된다.


때때로 국민은 세상사를 완벽하게 꿰뚫어보고 있지만, 혁명 세력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앞장서서 기존 질서를 뒤바꾸려 한다면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노동 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신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치면, 나의 동료들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나는 절대 그 열매를 즐길 수 없다. 오히려 나는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행동하고 싶다면 주변의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한다.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자유롭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촘스키는 이런 곤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조직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노동 조합을 조직화된다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수월하게 넘길 수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민주화의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정치 발전의 결과를 이뤄낸 것들로 생각하기 쉬운 여성 권리 신장이라던지, 인권 개선과 같은 법안들 하나하나는 사실 정치적 공백을 메우려는 의원의 노력으로 이뤄낸 결실이 결코 아닌 것이다. 일개 개인들이 피흘린 희생의 결과물이고 인권을 보호하려는 여론들의 거센 압력을 통해 통과된 것이다. 사회에 영합하지 않는 반체제 인사들의 투쟁물들인 것이다.


대중을 얌전한 방관자로 만드는 정책에 편승하지 말아야겠다. ‘대중은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데 전념할 것이고,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비재와 같은 피상적인 것에 열중하게 될 것이다. 모든 단계의 정책 결정에서 ‘참여자’가 아니라 구경꾼에 머물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 따위 여지없이 깨 주어야 한다.  


“대중이 저항하고 싸워서 때때로 승리를 거둘 때에야 진정한 변화가 있을 뿐이다.”


밑줄 그은 문장


“정치 투쟁은 거짓말을 폭로하고, 그에 관련된 주역들과 꼭두각시들을 구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관련된 문제를 합리적으로 제기하면서 그 문제를 현실적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도 정치 투쟁의 한 부분이다.


“세계화는 결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점을 지향해서 정치적으로 고안된 현상입니다.”


“군부가 이처럼 특별 대우를 받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가 자유로워질수록 지배 계급이 공포심을 조장하고 선전에 열을 올리기 때문이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산다. 범죄자를 두려워하고, 마약 밀매자를 무서워한다. 심지어 흑인과 외국인까지 무서워한다. 미국의 테러에 대한 두려움을 유럽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


“코소보 사태의 경우 인공 청소를 종식시키기 위해  그랬을까...미국과 유럽은 발칸 반도의 국가들이 제 3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일치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값싼 노동력을제공하는 국가여아 한다는 뜻이다. 보스니아를 원조하면서 외국인의 투자를 개방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 것이 그 증거이다. 요컨대 발칸 반도의 국가들은 유럽의 멕시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조만간 세르비아의 산업기지와 광산이 다국적 기업의 소유가 될 것이다. 경제 정책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금융기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독립을 쟁취한 후에도 수십 년 동안 실질적으로 식민 지배를 받았던 세계의 다른 지역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구 소비에트 연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토 군이 주도한 전쟁은 미국이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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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국을 만든 미국사 - 역사 속 미국의 정체성 읽기
김봉중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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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채널의 비정상회담을 가끔 보는데, 각국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회담자가 등장한다. 미국 대표 타일러는  놀라운 한국어 실력에 사자성어도 웬만한 한국사람보다 더 적재적소 활용해 사용하는 듯. 차분하고 논리적인 것이 대담자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을 겸비했다. 확실히 이들이 자국의 대표성을 띤다고도 할 수는 없겠지, 미국인들 모두가 이렇게 똑똑하고 예의바르고 범생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건 딴소리, 타일러는 몰몬교도들이 제일 많은 버몬트 주 출신이라고 한다.

 

오늘의 미국을 만든 미국사, 제목 그대로 미국이 왜 별다른가를 보여 주는 책이다. 이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역사적 이슈를 중심으로 설명을 끌어간다. 18세기 유럽 각국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아메리카 땅에 이주를 하기 시작하고, 점차 경제적인 이유에 의해 미국의 북동부에 정착한다. 정착할 땅을 찾아 점차 서쪽으로 이동을 한다. 유럽은 기존의 영토에서 자국의 땅을 유지하기 위한 전쟁에 골몰하였지만 미국은 그런 영역 지키기 싸움 대신 광활한 개방지를 찾아 끊임없이 이주하고 또 정착한다. 이 점에서 변경 혹은, 국경 지대라는 의미에 프런티어 정신을 지은이는 설명한다.

미국을 이해하는 두 번째 코드 민주주의이다. 이들의 민주주의는 연방주의이다. 즉, 주권 중심이 아니라 귀족이나 봉건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한 단체가 권리를 독점하지 않는 형태인 지방 분권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가 성립 이유는 아메리카의 지형적 특수성이 크다. 유럽으로부터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었기에 간섭을 덜 받았으며, 유럽 국가들 사이의 분쟁 또한 먼 발치에서 지켜보며 초연할 수 있었다. 그리고 13개의 주마다 각기 개별적인 생활을 했고, 자기네 영역 안에서 하나의 정부를 유지해 왔지만, 각 주는 서로 비슷한 이해 관계를 갖고 공통적인 언어를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수준의 문명 단계를 밟고 있었다.

세 번째 코드는 지역 정서다. 비교적 성공적인 민주주의를 토대로 둔 잘나가는 미국이었지만, 지역 정서상으로 남과 북이 크게 달랐다. 북쪽은 상공업 위주의 경제 정책을, 남쪽은 대단위 면화 농장 같은 농업 위주의 경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목화 산업은 독특한 남부의 귀족 문화를 가속시키면서 노예 제도가 자리잡도록 하였다. 그러나 북부는 산업화에 따른 경제적 성장과 함께 계몽주의가 한 단계 더 진전하고 있던 중이었다. 물론 남과 북에 있어서 진보의 개념이 달랐다. 북부에서의 진보란 물질적으로 풍요롭기 위해 자연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는 동적인 의미였고, 남부는 안정적인 자연 친화적인 정적인 진보를 원했다. 따라서, 북부의 계몽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남부의 노예 제도는 미국의 건국 이념에도 위배되는것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남과 북은 서로 대치하며 결국에는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네 번째 코드 미국의 다문화주의는 다분히 미국의 현재 모습을 말해 준다. 우리는 일찍이 인종, 민족, 종교가 달라서 국가간에 뼈아픈 아픔과 회한을 경험하는 경우를 무수히 보아 왔다. 인간의 진보가 상당한 수준으로 이루어졌다는 현대만 보아도 히틀러의 인종 말살 정책, 구유고의 연방 현실, 아프리카와 남미의 인종 청소 등이 있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철저한 다인종, 민족, 종교로 시작했던 미국은 역사적 시험대였던 것이다. 그 역사적 시험이 성공이었나, 실패였나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사란 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인디언이나 흑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본명 부정적일테고 백인들간의 갈등에 염두에 둔다면 분명히 긍정적일 것이다.

유럽에서 숱한 박해를 받았던 민족 유태인은 미국에서 가장 득세를 하고 있는 민족이다. 법률, 의학, 과학을 비롯 영화 산업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렇다면 아시아인은? 아직 미국의 주류 정치에서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인 특유의 근면성, 성실성, 보수적 가치관이 미국의 청교도적 전통관과 크게 어긋나지 않으므로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점차로 인정을 받고 있는 추세이다. 히스페닉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결혼 문화만을 보아도 그러한데, 이들의 50%가 백인과 결혼을 한다. 히스페닉계와 백인의 인종 구별은 점차 모호해질 것이다. 결국 문제는 흑인이다. 미국 역사에서 소수 민족들은 어려운 고비를 넘긴 후에 미국 사회에 적응했다.

더불어 흑인들의 정치력 또한 급신장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사회의 밑바닥에 있다. 사회가 아무리 진보를 했다하더라도 검은 피부에 대한 편견은 수그러들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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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지향 -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들 성장 거부 세대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옥 옮김 / 민들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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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센세이셔널한 책이었다.

다분히 이분법적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일본판 김봉곤 훈장을 보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가사일을 돕거나 노동에 참여함으로써 인정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일에 대한 보상이 주는 기쁨을 알고 있어서 결코 니트가 되지 않는 말도 그렇고 말이다.

파랑새 증후군이라 하여, "나는 정말 어떤 인간인가?",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가?"와 같은 자기 찾기 여행 같은 것의 폐해를 말하는 부분도 있다. 이런 질문이 사람을 성장시키지는 못한다 라는 것이다. 만약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로 알고 싶다면 자기를 잘 아는 사람들, 예컨대 부모라던가 친구들을 상대로 긴 인터뷰를 하는 것이 낫다고. (글쎄다,,, 갈 길 가다가 가끔 해보는 나를 찾는 딴짓이, 인생을 건설적으로 만드는 데 큰 도움이 안 될지는 몰라도,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된다.)

 

정말로 이상하게 들리는 말들을 많이 한다고도 생각했다. 일례로, 다음과 같은 것.

리스크 사회에서 생존 경쟁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가 노력에 반드시 보상이 따르지 않는 리스크 사회라는 기본 사실을 거스르고 의연하게 노력하는 사람들. 이라고 하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나이브한 생각이 아니던가. 되려 불평등을 단단히 지지해주는 뼈대 같은 역할을 하지 않던가? 라고 생각하던 나에게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내용인 것이다.

그는 역으로 미래의 전망이 어둡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리스크 사회의 실상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선택적으로 사회의 빈곤층으로 내려가게 된다는 뜻의 말을 한다. 참으로 석연치 않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해법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읽다보니, 이 저자는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이었다.

 

" 조직 안에서 눈에 띄게 이익을 얻는사람이 없는 해법이 오히려 조직을 와해시키지 않는 해법이 될 수 있다."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으로 살아야겠다. 쳇바퀴 같은 일상을 깨고 분노를 되찾았을 때, 희망 그래, 좋다 희망과 더불어 분노의 힘으로 내 생각을 실천하며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그러면서 세상은 조금씩 변해갈 것이다.

 

174쪽~175쪽

 

산다는 것은 이른바 하나의 곡을 일생 동안 연주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살아가면서 행한 갖가지 행동과 말의 진짜 의미는 그 곡을 마지막까지 듣지 않으면 확정할 수 없습니다. 관 뚜껑을 덮은 후에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죽은 후에 비로소 그 사람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모든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육예의 하나로 '음악'을 들었던 이유는 '시간 의식을 갖기', '인간은 시간 속의 존재임을 아는 것'이 지성의 기초라는 것을 그 먼 옛날 성현은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육아 얘기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자식을 기르는 일은 음악을 듣는 경험과 어떤 의미에서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내지르는 소음도 어떤 '문맥' 안에 있으면 비로소 '음악'으로 들리게 되니까. 앞에서 말한 '소음이 신호가 되는' 과정은 이런 맥락입니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지 않으면 멜로디 구조를 알기까지 개개의 음이 무어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내지르는 해독 불가능한 기호도 어떤 문맥 속에 놓이면 단번에 알아듣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요구되는 것과 교향악을 주의 깊게 듣는 청취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같습니다. 어느 음절의 아름다움을 그 소절을 다 듣기 전까지는 알 수 없듯이, 아이가 내는 소음을 신호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한 마디라도 소홀히 넘기지 않도록 끝까지 경의감과 인내심을 갖고 조용히 귀 기울여야 합니다.

 

222쪽

 

진정한 '다문화 공생'이란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복수의 가치관, 복수의 언어, 복수의 미의식이 혼재해 있어, 그것이 느슨하게 통합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문화 공생이 실현된 사회는 아직 어디에도 없지만요.

 

이 책은 니트[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줄임말이다. 보통 15∼34세 사이의 취업인구 가운데 미혼으로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서 가사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킴. -족에 대해 조명하고 있는 내용이 흥미롭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전형적인 계급 사회여서, 하층계급 사람들은 취학 기회나 취업 훈련 기회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어, 사회 계층화에 있어 병폐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직업을 통해 사회적 상승 욕구가 있어도 원천적으로 좌절되는 경우가 빈번한 것. 그러나 일본의 경우 사회적 약자가 자진해서 차별적인 사회 구조를 강화하는데 가담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니트 양산이 가속화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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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2 15: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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