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 절망의 시대에 다시 쓰는 우석훈의 희망의 육아 경제학
우석훈 지음 / 다산4.0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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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두 형제를 직접 키우는 우석훈의 이야기이다. 여느 아빠들과 달리 사내 둘 육아의 복판에서 겪어낸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그렇듯 글의 진정성 면에서는 훌륭하다. 우석훈은 현실에 대한 직관력이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경제학자인 것 같다. 그렇지만, 황금돼지띠 출생아를 대여섯살로 표현함(무려 5~6년의 과거 표현)과 동시에 최근 즉, 태양의 후예 류시진의 대사와 희대의 명언 '돈도 실력이야' 등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시차가 너무 혼돈스러워서 혼났다. 편집자를 탓하기에 앞서, 일말의 책임은 저자에게도 있다.

을,를 이,가 같은 조사를 잘못 쓴 오타가 더러더러 보여서 표기를 했다가, 317쪽에 두 문단이 중복되는 것을 보고, 뭔가 되게 급하게 만든 책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 책 내 현실과 딱 맞닿아 있는 내용이므로, (유모차, 기저귀, 분유 등과는 빠이빠이 했지만) 한번 잡고 이틀만에 끝냈다. (최근 2년 동안 그렇게 읽어낸 책이 있었나?)

 

대박대박 공감하는 다음 구절 옮겨 온다!

 

380~381쪽

 

"세 살배기 둘째가 아프면 아침부터 병원에 데려간다. 그럴 때 병원은 늘 붐볐다. 미세먼지가 아주 심한 날, 혹은 연휴가 끝나거나 주말이 지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부모의 품에 안겨 온 어린 아이들로 장사진을 치게 된다. 갑자기 아픈 거라 예약할 겨를이 없는데, 다들 비슷한 상황이다. 아픈 아이들이 평상시의 서너배는 많아진다.

큰 병원의 넓은 대기실에 아이들과 부모들이 꽉 차 있으면, 순간적으로 숨이 턱 하고 막힌다.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 역시 자연의 일부이다. 이걸 이렇게 어린 시절에 아파하면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한다. 미세먼지는 개인어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고, 돈을 쓴대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집집마다 공기청정기를 놓으면 문제가 풀릴까? 일상을 모두 통제할 수 있는 방법도 없을 뿐더러, 공기청정기를 너무 강하게 돌리면 전기를 너무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비율만큼 석탄 화력발전소가 더 돌아간다. 석탄을 줄이면, 원자력 발전소가 늘어난다. 태양광을 늘리면 되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

각자 개인이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작은 노력을 하면서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노력해도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더 나빠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환경 문제 중 상당수는 돈이 있으면 해결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다. 수질 오염 같은 것은 다른 장소로 이사를 가는 등 개인적인 해법은 있을 수 있다. 대기 오염도 비슷하다. 하지만 미세먼지 같은 경우엔 국내에서 지역에 따른 편차가 거의 없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풀릴 문제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주 오랫동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조금씩 풀리는 문제는 그 구조상 아주 많은세월을 필요로 한다. 바로 성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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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4-0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훈씨 책은 쉽게 잘 읽혀서 좋아요.
생각해 보니 그 분의 전공인 경제학에 대해선 읽은 책이 없군요 ㅠㅠ
미세먼지 때문에 이틀간 창문도 못 여는 아침에... 미세먼지 대책을 생각해 보네요.
잘 지내시죠~~~~ ㅎㅎㅎ

icaru 2017-04-07 11:1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 니임~~!!! 잘 지내시나요? ㅋ 저도 가끔 알라딘 서재에 들어오지만, 그래도 단발머리 님 서재는 가보는데,, 여전히 유머러스하고 발랄하며 샤브하신 열혈 독서가님!! ㅋㅋ 저도 이분 책은 88만원 세대와 불황 10년 그리고 이 책인데,,, 아.. 이 책은 좀 책 내기전 검토는 덜 된 것으로... ㅋ
 
과로 사회 이매진 시시각각 2
김영선 지음 / 이매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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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씨의 추천사를 요약하며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보도록 하자. “인간답게 살려고 일을 하는데, 도대체 왜 일을 할수록 더 비인간화되는가?” 여기서 돌파구를 찾는 데 중요한 실마리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 시간은 일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역사적 변천을 거친다. 산업혁명 이전만 해도 유럽의 많은 노동자들은 1주에 3~4일밖에 일하지 않았다. 먹고사는 데 지장인 없는 정도만 일하고 인생을 즐겼다. 게다가 “전통 사회에서 해진 뒤 밤 시간은 그야말로 자야 하는 시간이었다. ‘원칙적으로’ 야간 노동은 금지돼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노동 시간이 늘었다가, 전세계적인 노동 시간 단축 운동으로 노동 시간이 조금 줄기도 했다. 그렇지만 80년대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한편에서는 장시간 노동이 부활하고 다른 편에서는 대량 실업이 창출된다.

 

둘째, 노동에 관한 가치관의 변화도 매우 중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자아 실현형, 프랑스는 보람 중시형, 일본은 관계 지향형, 한국은 생계 수단형이다. 이런 차이의 인식도 중요하지만, 공통점은 바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긴밀한 유대가 낱낱이 깨진 뒤, 또한 인간적인 삶의 관계들을 수호하려는 온갖 사회 운동들이 패배한 뒤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이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만 해도 노동은 노예들이 하는 천한 것이었다. 15~16세기 종교개혁 때 칼뱅주의는 노동을 ‘신성화’했다. 그러나 노동을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농촌에서, 공유지에서, 땅에서 쫒겨난 사람들은 공장 노동의 엄격한 규율에 길들여지기 싫어 방랑하거나 걸인이 됐다. 국가는 이런 사람들을 폭력으로 길들여 갔다. 나중에는 교육과 복지를 통해 순치했다. 그 사이에 노동 운동은 패배하거나 타협했다. 자본, 곧 기업과 국가의 거대한 폭력과 제도에 순치된 노동자들은 내면의 트라우마를 안고 두려움에 떨며 일한다. 이제 노동은 유일한 삶의 원리인 것처럼 내면화하고 말았다. 자신만의 멋진 삶, 인간다운 삶이 필시 존재할 텐데, 이제 사람들은 그런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단지 노동 안에서, 그리고 그 연장에 불과한 소비 안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한다.

요컨대 우리의 노동관, 곧 일과 삶, 노동과 인생을 더는 동일시하지 않고 어느 정도 적정한 거리를 두는가, 그리고 내용적으로 삶이 일에 파묻히는 게 아니라 일을 삶 속으로 얼마나 적절히 통합할 수 있는가에 따라 ‘과로 사회’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셋째, 부자 되기 열풍, 달리 말하면 가난의 두려움을 정면으로 돌파할 필요가 있다. 인생은 결코 부자 되기가 목적이 아니다. 인생에 목적이 있다면 단연 행복이다. 그러나 더불어 행복이다.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일과 쉼이 분리돼 있지 않는 것. 그 속에서 부자 되기를 목표로 하는 삶은 마치 노예 제도 아래 ‘마름’으로 상승하기를 꿈꾸는 것하고 같다. 이 중독들의 뒷면에 도사리는 것은 생존의 두려움, 탈락의 두려움, 배제의 두려움, 가난의 두려움이다.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삶은 풍요가 아니라 가난 속에서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더는 아파트와 자동차를 사고, 아이들 학원이나 과외를 강제하며, 온갖 보험 상품을 사느라 갈수록 더 많이 일해야 하는 강박증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런 삶은 ‘풍요 속의 빈곤’일 뿐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역설적으로 ‘가난 속의 충만함’을 누릴 수 있다.

우리의 인생간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따라 ‘과로 사회’가 더 심화할 것인지 아니면 점차 종말을 맞을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46~47쪽 

혹실드는 가족 친화적인 회사를 참여 관찰하면서 발견한 독특한 역설 중 하나로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을 선호할 만한 대안으로 여기는 못브을 든다. 이를테면 여성들은 지긋지긋한 설거지(2교대)나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는 아이들의 칭얼거림(3교대)으로 가즉한 집을 떠나 산뜻한 분위기의 일터로 향한다. 불평등한 가사 분담 때문에 가정은 더는 세상의 험한 풍파를 막아줄 천국이 아니다. 가정은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인식 때문에 여성들은 일터로 도망친다. 집을 떠나 있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 연장근무를 신청하거나 회사에서 제공하는 가족 친화 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기도 한다. 직장 여성에게 가정은 ‘휴식’의 장소라기보다는 2교대, 3교대 노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62~63쪽 

최저 임금은 평균 임금의 30퍼센트 수준으로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임금 수준이 되려면 최저 임금을 평균 임금의 50~60퍼센트 수준에는 맞춰야 한다. OECD는 최저 임금 산정 기준으로 평균 임금의 50퍼센트를, 유럽연합은 60퍼센트를 권고하고 있다.


66쪽

성과급은 소득을 극대화하려는 개별 노동자의 이해와 공장을 끊임없이 가동하려는 기업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다. 성과급은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돈을 가져다주는 수단인 한편, 기업에서는 유연성을 높이는 효과적인 장치다. 특히 기업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신규 채용을 최소화하고 차라리 기존 노동력의 장시간 노동을 적극 활용하려 한다. 성과급을 더 주더라도 세 사람이 할 일을 장시간 일하는 두 명에게 할당하는 게 값싸기 때문이다. 성과급을 매개로 계속되고 있는 장기간 노동 관행은 본질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수단이자 일자리를 수탈하는 방식이다.


66~67쪽

경쟁과 성과에 관해 오랫동안 분석한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알피콘은 인센티브는 동기 부여의 수단으로 작용하기보다는 개개인의 이익을 앞세우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게 동료 관계를 해치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비판한다. 또한 인센티브가 실적에 연계되면서 사람들이 평가 기준에 부합하는 ‘안전하고 만만한’ 일만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져 결과적으로 조직 내 상상력을 갉아먹는다고 본다. 새로운 시도나 혁신을 회피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집단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이야기다. 성과 시스템이 가져오는 또다른 문제는 평가 기준이 정해지고 프로세스가 진행되면 그때부터 지배 가치가 관철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101~102쪽

쇼어는 생활 기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가사의 수준과 범위 또한 계속 증가했다고 이야기한다. 먼저 근대적 산물인 집안 청소의 규범이 세밀해졌다. (...) 요즘에는 깨끗함을 위해 과학적인 방식이 동원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까지 제거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건강에 관한 기준 또한 높아졌다. (...)

집안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아이를 ‘세심하게’ 돌보며, ‘품위 있게’ 살고 ‘바른’ 먹거리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가정 전체 차원에서는 오히려 가사 시간이 증가했다. 이런 이유에서 쇼어는 노동 절약형 가전제품이 가정 전체에 미친 효과는 아주 작다고 봤다.


123쪽 

24시간 사회를 가처분 시간이 증대된 자유롭고 멋진 신세계라는 모습으로 그리는 것은 지극히 일면적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밤의 시공간은 서부 개척 시대의 변경처럼 이윤 창출의 공급처로 빠르게 탈바꿈했다. 자본의 흐름이 시간적으로 더욱 유연해진 것이다. 24시간 사회는 상품 소비로 침윤된 소비 사회의 확장판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또한 밤의 경제로 내달릴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사막의 모래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건강한 노동, 균형 잡힌 삶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부재한 탓에 노동자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잡기가 더욱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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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08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달의 리뷰 당선작 추천.^^.

icaru 2016-11-08 08:44   좋아요 1 | URL
아이고~ 황송합니다!! ㅎㅎ;;
책을 요약한 것이라, 책을 추천한다는 게 엄밀하게 맞는 표현일듯합니다! ㅎ

책읽는나무 2016-11-08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심오합니다^^

icaru 2016-11-08 08:45   좋아요 0 | URL
앙... 요즘 야근에 특근에 피곤죽이 되어 살고 있는터라 ㅠㅠ,,)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10
로버트 스키델스키 &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박종현 감수 / 부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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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는 스키델스키 부자가 함께 썼다. 아버지인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세계 최고의 케인스 전문가이고, 아들인 에드워드 스키델스키는 미학과 도덕철학을 전공한 철학자이다. 아버지와 아들도 인상적이지만, 경제학자와 철학자의 콜라보라는 점. 옛날에는 경제학이 ‘도덕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철학과 긴민하게 연결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경제학이 철학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면서 도덕과학이 ‘선택의 과학’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돈에 대한 사랑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극단주의가 뿌리내리게 된 시발점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동서고금의 여러 사례를 들어, 오늘날처럼 돈이 우선순위를 찾아하는 것은 인류 역사 전체에서 예외적인 것임을 증명한다. 돈에 대한 본능을 도덕과 교양으로 제어하는 게 근대 이전의 사회적 규범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또한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이 더 뚱뚱해지기 위한 게 아니듯 돈벌이 자체는 인간의 진정한 목적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 행복 경제학은 경제 성장이 언제나 소망스럽지만은 않으며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걸 입증한다. 또한 행복한 삶이란 일련의 즐거운 심리적 상태나 욕망이 단순히 충족된 삶이 아니라 인간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선 또는 ‘좋음’들이 구현되는 삶이다. 이들은 행복 경제학의 한계가 고대의 철학자들이 추구했던 ‘좋은 삶’이라는 비전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믿었다. 행복이란 단순한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건강한 태도이자 입장이라는 것. 이와 관련하여 ‘여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외적인 강제 없이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일에 몰입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소외되지 않는 노동’과 유사하며, 삶의 자유로운 표출이자 삶의 향유이고,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이다. 좋은 삶을 위한 사회적 차원의 노력은 ‘기본재’에 있다고 주장한다. 기본재에는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가 속하는데, 저자들은 이러한 기본적 권리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로 주당 노동 시간의 제한, 법정 휴일의 확대, 기본 소득, 누진소비세, 광고 줄이기, 세계화의 속도 조절을 제안한다.

그동안의 유토피아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한데, 하나는 고통과 불의가 없고 일하지 않아도 풍요가 넘치는 시인과 예술가들의 찬란하면서도 순진한 유토피아. 다른 하나는 모든 이들이 고된 노동과 소박한 생활 그리고 엄격한 규칙에 따라 공민으로서의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철학자들의 정의롭고도 엄숙한 유토피아가 있다. 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전자는 도덕적 규율의 제어가 없는 한 욕구가 무한히 커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간과했으며, 후자에는 공공선의 명분 아래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각자가 ‘자기만의 방’이나 ‘점포 뒷방’과 같은 사적인 공간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펼쳐 가면서도 동시에 이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상대방의 좋음을 자신의 것으로 포용하며 우애를 나누는 자유인들의 연합체가 구현된다.    


74~75쪽 

자본주의의 경쟁적 논리는 회사들로 하여금 욕구를 조작함으로써 새 시장을 만들어 내도록 몰아붙인다. 광고가 끝없는 욕구를 창출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며, ‘더 많이’ 소비하지 않는다면 삶은 너절하고 이류에 불과할 것이라고 우리 귀에 속삭인다. 제네럴모터스 연구소의 전임 소장이 근사하게 표현했듯이 광고는 “불만족의 체계적 창조”이다.


160쪽 

사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에 몰두하는 세계에서 좋은 삶이란 기껏해야 괴짜와 열성분자들이나 하는 일인 중요치 않은 관심사를 충족시키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러한 것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경쟁의 압력을 ‘감당하지’ 못하는건 아닌가 하는 불안에 시달리기 쉽다. 혹은 자신들의 이상이라는 것이 그저 실패를 은폐하는 가면은 아닌지에 대한 의혹도 떨치지 못한다.


274쪽

여가가 왜 기본재인가? 그 이유는 명백하다. 여가 없는 삶, 모든 것을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만 행하는 삶은 정말 공허하다. 그것은 무언가를 준비하면서 보낸 삶일 뿐 실제로 삶 그 자체를 위해 영위된 적이 한번도 없는 삶이다. 여가는 높은 수준의 사유와 문화의 원천이다.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야만 우리는 세계를 참되게 바라볼 수 있고 삶의 고유한 특성과 윤곽을 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 그리스 어에서 여가라는 말인 스콜레는 이와 관련된 의미를 암시한다. 피퍼는 다음과 같이 썼다.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장미꽃 봉오리나 놀고 있는 아이, 신성한 신비에 맡기고 고요히 있으면 우리는 꿈도 없는 깊은 잠을 자고 난 것처럼 잘 쉬고 다시 기운을 차리게 된다.” “세계를 조화롭게 묶어 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가끔씩 인간의 영혼에 찾아오는 때는 이처럼 고요하고 감수성 넘치는 순간이다.” 여가가 없다면 진정한 문명도 없고 그저 라보데르가 말한 것 같은 기계적 문명만 남는다. ‘목표 대상’이니 ‘산출물’이니 하는 기계적인 논의가 횡행하는 현대의 대학교는 이러한 불길한 유령의 화신이다.


275쪽

여가의 경제적 조건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고역의 감소이다. 고역이란 돈을 받고 행하는 노동만이 아니라 출퇴근과 가사노동 등 필수적인 활동을 모두 포함하는 범주로서, 열성적인 작가나 장인의 노동처럼 그 자체를 위해 행하는 유급 노동은 일차적으로 배제된다. 우리의 일상에서 고역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함으로써 잠자고 쉴 시간밖에 없게 된다면 여가는 불가능하다. (...) 교환 가능한 산출물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구조화된 경제는 자발적인 형태의 여가보다는 기성품이 된 여가를 만들어 내는 쪽으로 기울 것이다.


343쪽

부국의 자본가들은 제조업과 일부 서비스업을 훨씬 값싼 노동력이 있는 빈국들로 옮겨 가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값싼 재화와 서비스는 다시 부국들로 수출되고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 자유무역이 시행되려면 부국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저임금의 경쟁자가 있는 상황에서 완전고용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부국의 임금이 유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설사 부국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가 항상 새 일자리를 얻게 된다 하더라도 새 일자리가 과거의 것만큼 좋은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중국과 인도로 일자리를 옮긴 것은 무역의 이익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서구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을 하락 또는 정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뮤얼슨이 한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야채를 월마트에서 20퍼센트 더 싼 값으로 살 수 있다고 해도 이러한 제품이 중국에서 생산됨으로서 유발된 임금 손실을 보상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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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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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8~9 이 글에 등장하는 청년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듣는 그 이야기. 네가 원한 일이잖아. 네가 원해서 하는 일이기에 비록 배는 좀 고프더라도 당당해야 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럴수록 더 창의적이 되고 열정을 바쳐야 한다. 비록 지금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인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지시켜야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일화를 예로 들면, 자신이 나태해지면 ‘병원의 응급실을 구경해서라도’ 자신을 자극해야 한다. 그것이 배부른 돼지이기를 거부하고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로 작정한 예술가들이 걸어야 하는 운명이다. 그러나 이 책은 고발한다. 배고픈 돼지이기를 거부한 소크라테스들이 맞닥뜨리니 현실이 ‘배고픈 돼지의 삶’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신자유주의가 유토피아라고 아름답게 약속한 그 미학적인 세상은 배고픈 돼지들이 울부짖는 지옥이었다. 도토리가 아니라 고기반찬을 달라고 노래했던 달빛 요정처럼, 악덕 기업주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진보 정당과 시민 단체의 현실처럼, 밤새 야근을 하고 코피를 쏟더라도 탓해야 하는 것은 노동 구조가 아니라 약해 빠진 자신의 ‘간’인 것처럼. (...) 배부른 돼지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배고프더라도 소크라테스로 살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착각했지만 현실은 그냥 배고픈 돼지였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교훈을 얻는다. 여전히 문제의 핵심은 노동 구조이다.

83 “이거 실화예요. 회사 분위기 안 좋고, 펀딩 안 되고, 뭐 그런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가방 하나 맨 애가 문을 열더니 사무실에 들어왔어요.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영화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돈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외치더라고요. 근데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거든요. 사람들은 그런 일에 감동받지 않아요. 그 애를 쳐다보는 스태프들의 심경은, ‘저런 녀석들 때문에 내가 돈도 못 받고......;’ 였죠. 영화판에 애들은 자꾸 들어와요. 정작 끝까지 가는 사람은 잘 없는데, 계속 유입이 돼요.”

101 회사는 팀장급 이상이 아니면 자기 회사의 인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만 자기네 사람으로 봅니다. 그 밑으로는 그냥 단순이력으로 생각하죠. 결국 팀장들하고만 대화하고, 그들에게 아랫사람 관리를 시키고, 그 밑으로는 마음에 안 들면 갈아 버립니다. (...)

120 다른 영역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지만, 소위 보수적인 조직들이 나름 ‘규모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어서 내부적으로는 ‘진보 단체’들보다 훨씬 진보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있다.

148 수렵이나 채집을 하며 살던 시기에는, 인간이 초과 작업을 해서 식량을 쌓아 두어 봤자 쓸 곳이 없었기 때문에(시간이 지나면 그냥 썩을 것이다) 무리하게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천성에는 없는 ‘근면함’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이야말로 ‘열정 노동’이 작동하는 완벽한 방식 아니겠는가?

207 저 멀리 이국땅의 시위에 민감하게 반응한 일은 특이한 사건이었다. 그들은 ‘프랑스의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은 한국 학생들과는 달리 사회의식이 투철하다’고 말했다. 어느 매체가 이런 시선을 갖고 한국의 대학생에게 시위에 대해 질문하자 그 학생은 이렇게 답변했다. “나도 학자금 대출이 없었다면 시위할 수 있었다.”

212~213 김대중 정부 때 구속된 김영삼 정부도 많았고, 노무현 정부 때 자살한 노동자 역시 그 이전보다 많았다. 이른바 민주 정부 10년에 대한 평가 논쟁에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도 바로 노동 분야이다.

222 노동 계급의 약화와 자영업자의 범람은 서로가 서로를 원인으로 지지하면서 한국 사회의 보수성을 실천적, 역동적으로 구성해 나가고 있다. (...) 박노자가 지적한 자영업자의 높은 비율 외에도, 부동산 투기가 자산 축적의 중요한 방식이었던 현실, 교육 투자를 통한 학벌 계급의 취득이 자녀를 ‘인간답게’ 부양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던 현실은 우리의 보수성을 유물론의 차원에서 구성해 온 것이 아닌가?


227 자동차 부품 업체인 발레오는 모국인 프랑스와 유럽에서는 자체 윤리 강령에 따라 노동조합과 대화를 하지만 한국에서는 퀵 서비스로 해고 통보를 하고 이에 대해 노동자들이 반발하면 일방적으로 공장을 청산한다. 발레오 한국 노동자들이 프랑스 노동조합과 좌파들의 협력 속에 유럽까지 가서 원정 투쟁을 벌였지만 1년이 넘도록 회사 경영진들은 그들과의 만남을 거부하고 있다. 해외 기업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면 새로운 표준이 생기고 개혁에 도움이 될 거라는 논리는 한미 FTA를 추진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력과 그 측근 그룹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비스나 상품의 품질 수준에서라면 모를까, 그러한 경쟁이 기업의 정치적 성격을 반전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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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올해 초반에도 여지없이 나는 어마무시한 책을 만났다. 지금 읽고 있는 중이라....

 

60쪽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쪽에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고 한다. 20세기의 가장 예언적인 책이고 근대 서양철학의 가장 심오한 행복 담론이라 생각한다고. 개인적으로 힘과 행복의 관계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이 그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꿔줬다고.

헉슬리가 그 책을 쓴 것은 1931년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러시아와 이탈리아에 단단히 자리잡고 독일에서 나치의 기세가 커지고 군국주의 일본이 중국 정복 전쟁을 시작하고 온 세계가 대공황에 사로잡힌 때였다. 하지만 헉슬리는 마치 구정물 속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듯이 .. 전쟁과 기아와 전염병이 없는, 그리고 방해받지 않는 평화와 풍요, 건강이 있는 미래 사회를 그렸다. 그것은 환락에 완전한 자유를 주는 소비주의의 세계이고 최고의 가치는 행복이다. 진보한 생명공학기술과 사회공학을 사용해 모두가 항상 만족하고 반항할 이유가 없도록 한다. 실제로 헉슬리는 폭력과 공포보다 사랑과 쾌락으로 사람들을 더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천재성을 보여준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어보면 그가 끔찍한 악몽 같은 세계를 묘사한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유일하게 남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저렇게 끔찍한 상태에 도달하지 않을 수 있을까?'다. 뭔가 엄청나게 잘못되었었다는 것은 분명한데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멋진 신세계의>의 당황스러운 경험이다. 세상은 평화롭고 번영하며 모두가 항상 대단히 만족한다. 무엇이 잘못일 수 있겠는가?

정말로 놀라운 일은 헉슬리가 1931년 <멋진 신세계>를 썼을 때 독자들은 그가 위험천만한 디스토피아를 묘사하고 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독자는 그것을 유토피아로 착각하기 쉽다. 왜 이것이 잘못되었는지 아는가?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서유럽의 통제관 무스타파 총통과 평생 뉴멕시코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살았음에도 런던에서 셰익스피어나 신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남자인 야만인 존의 대화를 읽어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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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3-10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이북으로 구매했어요~

icaru 2016-03-11 09:13   좋아요 0 | URL
앙 그러시구나~ 이북은 구백몇십쪽 나온다면서요? ㅋ
독서모임 2차 주제책인데, 지가 골랐어요! 멤버의 절반이 이북으로 구입해 보더라고요..ㅋ

책읽는나무 2016-03-10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의 서재에서 이책 봤는데 님도 열독중이시군요?^^

icaru 2016-03-11 09:14   좋아요 1 | URL
앙.. 저도 냉큼 단발머리 님 서재 가서 봐야겠떠요~
책나무님... 저 상자 생겼어요 ㅎㅎ 늦었죠잉? ㅎㅎ

단발머리 2016-03-10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알라딘서재에서 유행이라죠? from. 단발머리

icaru 2016-03-11 09:18   좋아요 0 | URL
참 신기한 것이,,, 전에 누구로부터 책 제목 네 글자만 들었을 때는,,, 고전인 줄 알았거든요. 그것도 많이 어려운 역사물. 그런데 제가 이 책을 구매하고 읽으려는 시점부터,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 읽은 사람, 읽으려 하는 사람들이 막 보이네요! ㅎㅎ

북극곰 2016-03-15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샀아요! 몇 달 전에. 그런데 시작을 못하고 있네요. 회사 일이 마이 힘듭니당. ^^ 이카루 님 잘 지내시죵? 저도 시작해볼까요? 왠지 이카루 님의 독서클럽 땡깁니다. 흐

icaru 2016-03-15 10:24   좋아요 0 | URL
어마나 그런데 어찌 눈치채셨어요. 사모임 독서클럽 두번째 비문학 책이 사피엔스여요!!! 북극곰님은 책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구매하신듯 하네요~!

북극곰 2016-03-15 21:21   좋아요 0 | URL
호모 라피엔스를 산다고 산 게 이 책, 사피언스였다는 웃픈 사연이. =.,=

icaru 2018-05-28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발 하라리 이어서...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40살이 되면 대부분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개인의 회복력과 감성지능‘에 힘쓰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삶은 두 가지 주요 부분으로 나뉜다. ‘학습기‘와 그 뒤를 잇는 ‘노동기‘다. 첫번째 시기에 인간은 안정적인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다. 동시에 개인적인 지식과 일하는 기술도 습득한다. 두번째 시기에는 확립한 정체성과 기술을 통해 세상을 헤쳐나가고 생계를 유지하고 사회에 기여한다. 2040년이 되면 이러한 모델이 쓸모없어질 것이다. 따라서 평생동안 배움을 계속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쇄신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배우고 혁신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60살의 나이에도 말이다.
하지만 변화에는 스트레스가 따른다. 특정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대부분의 사람이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16살 때는 좋건 싫건 삶 전체가 ‘변화‘다. 하지만 40살이 되면 변화를 원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21세기에는 그러한 사치를 누릴 수가 없다. 끝나지 않는 폭풍우와 높은 스트레스를 헤치고 나가려면 극도의 회복력과 균형 잡힌 정서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것이 습득하기 매우 힘들다는 것. 따라서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삶을 원하는지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이다. 기업과 정부가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통제당하고 조종당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괴로움의 깊은 원인은 내 마음의 패턴에 있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마음은 괴로움을 만들어내며 반응한다. 괴로움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인 상태가 아니다.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정신적 반응이다. 명상 수련이 가져다 준 집중력과 명료함이 아니었다면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