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는 평등하다 - 과학은 왜 여성을 배척했는가?
론다 쉬빈저 지음, 조성숙 옮김 / 서해문집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80쪽
캐번디시는 데카르트나 헨리 모어와 달리 인간이 가장 위대한 피조물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인간은 이런 논쟁을 만든 당사자이므로 이 문제를 판단할 자격이 없다. 다른 피조물들은 이 논쟁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므로 인간이 '편파적'으로 구는 것뿐이다. 그리고 '초보적인 피조물(즉, 인간이 아닌 존재들)'도 인간만큼 훌륭하고 현명하다. 동시에 캐번디시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벌만큼 똑똑해서 벌집을 지을 수 있는가?" 이런 생물들이 인간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듯이, 인간들도 자화자찬하고는 있지만 다른 생물에게 별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생물들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쓸모도 없고 오히려 일을 망치기만 하는 존재다.

230쪽
여성이 신의 모습대로 창조된 존재가 맞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빈정거리듯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수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달려 있다."


371~372쪽
이제 페미니즘은 "차이의 딜레마"라는 문제, 다시 말해 "차이를 무시하건 강조하건 또 다른차이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문제에 봉착했따.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성은 지금까지 차별 받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젠더 차이를 계속해서 분석해야 한다. 게다가 성차별은 과학계의 여성 배척뿐 아니라 지적 활동을 하면서 발생하는 특정한 문제, 가치, 주장, 경험 등에서도 뚜렷하게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차이를 강조하면(이런 차이가 타고난 것이라고 보든 역사적인 것이라고 보든) 성적 분화를 영구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남녀 차이를 강조할수록 계급, 인종, 성적 성향, 종교, 지역 등 인간의 다양성이 무시될 수 있다. (....) 유럽 문화는 젠더에 대한 과학을 생매장함으로써 과거사의 일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이러한 역사를 되살려야 한다. 그리고 힘과 특권이 더 이상 특정한 성에게 편향되지 않도록 과학과 사회 모두가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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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명숙의 선택 - 이프 여성경험총서 2
김신명숙 지음 / 이프(if)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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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p.40 ~41

가부장제 사회에서 '일하는 엄마'는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엄마는 집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집 안에서 아이를 돌보고 가사를 담당하며 모든 육체적, 감정적 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 규정을 어겼으니 집과 직장 모두에서 갖가지 '처벌'이 따르는 것이지요.

(...)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버리고 대신 아이를 믿으세요. 아이는 모성 상업주의가 조장하듯 엄마가 어떻게하느냐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춤추는 텅 비고 무력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p.53

데일 스펜더는 <남자가 만든 언어>라는 책에서 남자가 의미를 만들고 지배하기 때문에 남자의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수 없는 여자는 언어로부터 소외되거나 침묵하거나 둘 중 하나로 되고 만다고 설파했습니다. 일례로 '모성'이라는 단어의 경우 남자들이 긍정적인 의미만 부여했기 때문에 모성의 고통스런 경험은 언어로 표현되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인식조차 어렵게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여자'라고 말할 때 생물학적 사실 외에도 '약하고 열등하다'는 가치판단이 담겨 있는 것, '순결'이란 단어가 여성의 순결만 의미하는 것도 남자들이 의미를 만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p.63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힘이 없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힘이 생기는 것이죠. 진실을 직면하는 일이야말로 당신을 자유롭게 합니다.”

p.143~144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의식과 지위가 급변하고 있는 요즘 완벽한 미인의 이미지들은 융단폭격을 하듯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그럴수록 더 이익을 얻게 됩니다. 미인의 기준이 비현실적으로 변할수록, 다시 말해 기형에 가까운 소수를 제외한 모든 여성들을 미인이 못 된다고 규정할수록 외모를 가꾸는 산업의 시장 규모는 커집니다. 또 대다수 여성들이 미인이 되기 위해 건강을 해치고, 에너지와 재능을 충만한 삶의 창조가 아니라 외모 가꾸기에 낭비함으로써 여성 파워는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지요.

p.150

재미있는 건 성형수술이나 외모관리기술들이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기도 하지만 육체적 아름다움을 '가공 가능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오히려 미녀와 추녀 간의 경계를 해체하고 조롱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기술들이 극도로 발달해 돈만 있으면 누구나 미인의 기준에 가까운 육체를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외모지상주의는 오히려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획일적 미가 아니라 다양한 개성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게 미래 예측가들의 전망이지요.


 p.274 

엄마가 되기 두렵다고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지금 우리는 가부장제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요. 집안에 고립된 채 무력감과 우울에 시달리는 어머니, 직장에서는 남에게 맡긴 아이 때문에 늘 불안하고 집에 와서는 쌓인 일 때문에 쉴 틈도 없는 어머니, 학교에 공짜 노동력으로 불려다니거나 입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혈안이 된 어머니, 아이들이 성장한 후 '빈 둥지 증후군'을 앟는 어머니.... 한국 사회의 모성 제도 안에서 정말로 행복한 어머니들은 얼마나 될까요? ....

현재의 모성 제도를 비판적으로 살피면서 왜 아이를 낳고 싶은지 혹은 낳고 싶지 않은지,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어이며 어떻게 낳아 어떤 가치관과 철학으로 키울 것인지, ...

'젊은 엄마'보다 중요한 것은 '준비된 엄마' 랍니다.  


p.298

물론 압니다. 모든 남자들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요. 세상은 모순적이기도 해서 어느 구석에서는 남자가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 사회의 가부장제가 지금처럼 굳건하게 작동하는 한 당신이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선량한 당신 역시 성차별주의의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남자인 당신 역시 페미니즘과 성차별주의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은 갖고 있어야 할 이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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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기획 / 이가서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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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동차 노동자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이거나 내 주변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

역시, 이 책은 소설이 아닌 것이다. 가족의 삶의  양태를 분석해 이거다 하고 보여 주는 것, 역시 사회학에서나 가능한 일...  

p.60

대공장 생산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온 데는 가부장적 온정주의도 작용했다. 임금 인상의 내용과 동기의 중심에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생계부양자', '가장'으로서의 남성의 지위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즉, 남성 한 사람의 벌이로 가족 모두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가족임금' 모델은 남성을 '가족 부양자'로 위치 지우면서 가정과 직장에서 행해지는 여성의 다양한 노동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p.98~99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결혼이란 누구나 언젠가는 거쳐야 할 필수적인 과정으로 여겨진다. 특히 여성들은 모두 결혼해서 아내이자 어머니가 될 것으로 기대되며,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비주류나 아웃사이더로 여겨진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성들은 흔히 '주인 없는 여자, '뭔가 문제가 있는 여자', '일부일처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여자'로 받아들여지고, 사회에서 결혼은 개인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제도와 맞물려 체계화되어 있는 준강제적인 제도라 할 수 있다.

p.149

'진보'를 표방하는 노동운동의 가부장성은 여러 면에서 계속 지적되어 왔는데, 앞의 두 사례는 노동운동의 가부장성이 운동 노선이나 내용, 단체 활동 차원에서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 운동의 구성원인 개인들도 가부장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자본의 착취에 대항한 노동운동을 하는 남성들 역시, 여성이 가정에서 만들어가는 '스위트 홈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여 가정에서 또 다른 권위를 행사하고 있다.




p.165

사람들이 하는 노동은 그의 의식세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루 종일 단순 반복적인 일에 몰두하다 보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자기중심적이고 단순한 사고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p.317~318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가족 안에서만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을 찾으려 할수록 오히려 남성 권위와 권력이 강화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정 내에서 남성가장의 권력이 커지고 성별분업이 강화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가정의 남성권력은 사회 전체의 권력 구조와 연결되어 여성에 대한 가정 차별을 강화시키는 이데올로기를 낳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형적인 핵가족 자체가 그 가족 안에 포함된 여성 스스로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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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라는 낙인 - 조주은의 여성, 노동,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 민연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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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시게마츠 기요시의 자전적인 성장 소설 ‘안녕, 기요시코’라는 책에는 말을 심하게 더듬는 탓에 이지메의 대상이 되어버린 소년이 주인공이었다. 소설의 주요 포인트는 마음 속의 친구 '기요시코'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좀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성장하는 이야기이지만, 내가 시선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은 왜 주인공 소년이 말을 더듬게 되었는가였다. 소년은 세살 때까지 직장일 때문에 바쁘신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와 살았던 것. 이것이 말을 더듬게 된 이유라고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소년이 기억하는 세 살 무렵의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잠에서 깼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굉장한 공포를 느꼈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장면이 충분히 암시가 되었다. 


스티븐 비덜프의 아들 키우는 부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서도 남자 아이들이 산만하고 폭력적이기 쉬운 이유 중 하나는... 저학년 시절에 자기의 모델이 될 만한 -적어도 같은 성인 게 좋고- 어른이 없기 때문이라는 요지로 읽히는 부분이 있다.


‘내 자식은 달라요’라는 생각은 고사하고, 남들 하는 것만큼도 못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내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한참 그런 생각에 시달리고 있을  때 칼럼집이고, ‘기혼’, ‘어머니’의 정체성을 지닌 여성주의자의 입장에 입각해서 일상들을 성찰한 글들을 읽다. 이와 같은 책은 사실, 내가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에 직결되는 문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잘 읽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에 마음은 복잡하다.


나야 사회 운동-모든 사회 운동이 피해나 차별의 당사자가 직접 나서면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는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어 시작되기도 한다. -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저자가 말하는 여타의 이야기들은 항상 나의 생활에서 불거져 나오는 것이니깐.


이러니 저러니해도 내가 본 이 책의 결정적으로 빛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156~157

 

억압과 차별에 맞서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사람들의 연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은 파편화되고 쪼개져서 서로에 대한 반목을 지속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들은 다른 여성을 부정해야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모순된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통 크게 단결하지 못하는, 쩨쩨하기 짝이 없는 여성들의 ‘속성’ 때문인가?


여성들을 이분화하고 여성끼리 서로를 적으로 돌리게 하는 이면에는 지배 권력의 가부장성이 숨어 있다. 성녀/창녀, 선녀/악녀라는 이분법 뒤에는 여성과 남성의 성욕을 다르게 규정하는 성 이중 규범과 성 산업이 숨어 있다. 전업주부와 취업주부 간 갈등에는 노동 시장 내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방과 후) 보육 시설의 취약성 들이 감춰져 있다.


“여성의 ‘적’은 여성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저자는 여성의 적은 계급 사회의 불공정한 자원 배분이고, 성 차별주의적 의식과 제도이며, 거기서 이익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는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p.46~47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여성이 '감정적'이고 남성은 '이성적'이기 때문에 사랑과 관련한 남녀의 표현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녀 차이는 식민지화된 여성들로부터 다양한 서비스를 얻으려는 남성 중심 권력의 산물일 뿐이다. 남녀가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식에까지 성별 분업이 나타난 것은 남성과 여성의 일상 활동이 점차 분리되고 기질이 양극화되는 산업화와 근대화 이후이다. (...) 근대 이후에 '과학(자연과학, 생물학 따위)'이라는 이름으로 강조된 성차는 남녀 간 불평등한 성 역할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p.51


2005년에도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육통계 연감을 발간하면서 '초등교 여교사 비율 사상 첫 70% 넘었다'라는 기사가 나가자 각계각층의 쓴소리가 줄을 이었다. 내용은 주로 "여성 교사가 대부분인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성 역할과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기 힘들다"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 제기는 남녀라는 두 성이 어느 집단이나 고르게 분포해야 한다는 관념 아래서 보면 언뜻 정당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우려들을 한 차원 더 나아가 헤아려보면, 남성과 여성에게는 각각에 걸맞은 역할과 정체성이 있다는 성 차별적인 전제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p.76~77


한국 사회에서 이혼율이 높은 것은 건강가정기본법의 전제처럼 '경솔할 정도로 이혼을 너무 쉽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두 남녀가 서로에 대한 욕망과 기대를 인지하지 못한 채 '결혼을 너무 쉽게' 하는 데 원인이 있다.


p.118~119

혹시 당신은 신성해야 할 어머니가 속물 근성을 보인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어머니!”라고 외치며 영원한 향수의 대상으로만 그녀를 고착화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착취의 메커니즘에 눈감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찾는 어머니는 없다. 어머니를 찾지 마라. 어머니는 일하러 갔다. 어머니는 여행 갔다. 어머니는 친구들과 술 마시러 갔다.

어머니는 연애하러 갔다. 자신들의 욕망을 거세당하고, 경험을 풀어낼 언어를 찾지 못해 가위눌리며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어머니들을 살려내자.


p.121~122

아동 관련 서적들의 모든 전제, ‘어릴 때 결정된다’류의 이론들과 그것을 자극하는 상품들이 그것이다. 몇 세 때 지능이 완성되고 몇 세 대 인격 형성이 마무리된다는 이론들은 결국 아이와 관련된 모든 문제와 책임을 이 시기에 아이와 함께 보내지 못한 어머니들에게 전가시킨다. 만약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못하거나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한다면, 혹은 지나친 말썽쟁이가 된다면 그에 대한 일차적 원인은 어린 아이 시기에 잘 보살피며 적절한 자극과 애정을 주지 못했다고 간주되는 어머니에게로 돌려지게 되는 것이다.  (...)

이처럼 아동기 신화는 일터와 삶의 공간이 분리되면서 가정에 남게 된 중간 계급 여성들의 이해 관계와 맞물려 있다.


p.136

모순적이지만, 노동운동 진영도 ‘노동’에 대한 개념이 둔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노동운동에 대한 애정과 헌신으로 환원되고, 여전히 자본가와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일터에서의 노역, 공식적인 임금이 지불되는 일만이 노동으로 인정받는다. 임금 인상을 비롯한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할 때 노래패 불러 노래 부르게 하고, 문화패 불러 춤과 공연을 시키며, 강사 불러 좋은 이야기 좀 해달라고 한다. 문화 일꾼들의 각종 공연이나 강사 노동자들의 강연은 노동자를 향한 ‘애정에 입각한 행위’로 한정된다. 이들 단체에 섭외받을 때는 해당 노동의 대가가 얼마인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일할 때 자기 노동력의 대가인 임금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시작하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을까?


p.142

지난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던 <아내가 결혼했다>에는 일처다부를 실천하는 여주인공 인아가 등장한다. 직장에서 전문직으로 일하는 주인공인 인아는 축구경기 관람과 술 마시기라는 보통의 남성들 영역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통장이 10개가 넘을 만큼 돈 관리를 잘하고 집안일과 요리의 달인이다. 오죽하면 정리정돈이 특기일까? 여기에 더해 그녀는 남성을 만족시키는 섹스도 완벽해서 남성들이 자기 곁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그녀가 두 남자와 결혼하여 두 집 살림을 하는 것은, 항간의 평가처럼 "가부장제의 종말을 보는 듯' 혹은 "일부일처제를 흔드는 기발한 상상력"이 전혀 아니라 두 남자에게 완벽하게 가사노동과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21세기판 남성 판타지다.



p.153

나 또한 몇 년 전 주체할 수 없는 상처로 비틀거리며 헤매고 있을 때 불교를 공부하는 여성주의자 동료로부터 다음과 같은 위로를 받은 적은 있다. "주은아, 물론 네가 많은 상처를 받았다는 거 알아. 그런데 사람들마다 반응은 다 다를 수 있어. 그 정도 상처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너만큼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 또 어떤 사람은 무시하고 넘어갈 만큼 덤덤한 사람도 있을 거야. 네 마음에 불이 났다면 일단 그 불을 끄는 데 집중해봐. 누가 불을 냈는지 방화범을 잡으러 다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이미 집은 새까많게 타버렸다는 거지. 일단 네 마음의 불을 끄는 데 집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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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6-1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꼭 보고픈데 아직 못봤습니다. 관련된 책 한번 읽기 시작할때 줄줄이 보려고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 손이 안닿네요.

icaru 2007-06-12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님 이후로 또 마음에 드는 필자를 발견한 기회였답니다~
현대 가족 이야기나 어케 수소문해서 읽어봐야 겠어요.

잉크냄새 2007-06-12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76~77 : 저랑 정반대의 사람들 이야기네요.^^
그나저나 쭈욱 읽어보니 새겨야할 글들이 많네요.

icaru 2007-06-1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잉 과장님..미혼인 이유는 결혼을 아주아주~ 심사숙고해서 하려 하기 때문이시란 거쥬?

humpty 2007-06-15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 가족, 지한테 있는 거 알고 있던감요? 한눈에 안 보이는 거 보니 어디 숨어 있는 거 같긴 한데, 있긴 있지라~

icaru 2007-06-15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쿠나~ 고거참 잘 됐다야!!!! (험프티 책은 곧 내 책이다 라는 위험한 도식 크크크)
근디, 어디 숨어있을꼬?

humpty 2007-07-19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현대가족, 찾았어요!! 어느 가방 안에다가 넣어 놓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었다는...
책도 찾았겠다, 언제 함 전달을 해야겠구만요.ㅎㅎ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마야 스토르히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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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책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 자신이 강한(외강내유?) 여성이라고 생각하거나, 거기에서 오는 관계 특히 남자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경우 - 관계 치유의 실마리를 얻어낼 수 있는 유용한 책이기도 하다.

강한 여성의 내면 심리를 탐색하는 데 융의 심리학을 끌어다 사용하고 있다. 특히 “그림자” 개념.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소방관 속에 방화범이 숨어 있다.” 라고. 그림자와 무의식 속에는 한 인간이 성장한 환경에서는 억압되었던 인격의 일부가 들어 있다고. 의식적인 견해가 극단적일수록 상반되는 입장을 대변하는 그림자 역시 극단적이라는 것이다. (나의 “수면 습관”도 이것에 해당이 될라나 모르겠다. 일테면 월요일에 중요한 시험이 있고, 토요일밤부터 일요일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시험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건히 한다치자. 그렇게 자신에게 압박을 주듯 마음을 다잡을수록, 막상 일요일에는 의식적으로 퍼질러 늦잠을 자게 되는 이치 같은 것!)

당연, 인간은 그림자와 부딪치기를 두려워 할 것이다. 그림자는 악하고 불쾌한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그러나 그림자는 원래부터 나쁜 것이 아닐지도. 다만 그 환경에서 나쁘다는 평가를 받았을 뿐.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이다.

이제 강한 여성의 그림자는 어떤 것인지 찾아 본다. 자신의 그림자를 진단하는 규칙은 매우 간단했다. 그것은 이러하다. “당신을 정말 화나게 만드는 사람을 보여달라. 그럼 당신의 그림자를 보여 주겠다. 타인의 눈 속에 있는 티가 내 눈의 들보가 될 경우 그것이 바로 나의 그림자의 투영이다.

“뭐라고요? 테니스 클럽에서 만난 그 한심한 여편네가 나의 일부라고?”

우리는 어떤 유형의 여성을 참을 수 없어하는가?
흔히들, “내숭”, “히스테리”, “잔머리 굴리는 여자”, “자기밖에 모르는 여자”라고 부르는 등 이들을 비하하는 표현은 많다.
이런 여성들은 대부분 귀엽고 몸매가 잘 빠졌다. 또 연약하고 신경이 예민하다.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일을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여성이 우리의 일부라고?
유감스럽게도 그렇단다. 한 사람이 유능할수록 그 내면에 숨어 있는 투시는 허약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얼굴에 서리는 혐오의 표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한숨을 돌려야 한다. 남자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어쩔 수 없이 내면의 투시와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투시를 해방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형제의 동화 “손이 없는 소녀”의 꼼꼼한 분석을 통해 강한 여자의 내면을 해부하고,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를 이해시키기 위한 제반 지식을 섭렵하게 하는 내용이 이 책의 알맹이라고 할 수 있다.
 
강한 여성의 경우 자기의 내면에 자기 파괴의 씨앗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그리고 내면의 적을 파트너로 키워야 한다는 게 요지이다.
다음에서는 남자와의 관계에 적용을 해본다. 

p.193~194 사랑에 빠질 때도 마찬가지여서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 투영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림자를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니무스를 투영한다. 따라서 아니무스의 투영은 사랑에 빠지는 현상을 동반한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이런 투영 과정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을 느끼는 대상은 한 남성이 아니라, 우리 인격의 일부이다. 백마를 탄 왕자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만난 것일 뿐이다. 솔직히 이런 말은 너무나 비낭만적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심층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사랑이 지닌 매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정신분석가들도 거듭하여 사랑에 빠지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쩔쩔맨다. 왜 자신이 바로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알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사랑에 빠져드는 자신을 어쩔 수는 없다. 모든 것을 안다 해서 잘 산다는 보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책은 여성의 마음속에 숨어 잊을 만하면 난데없이 의문부호를 던져대는 그놈의 골치아픈 존재를 ‘심층 심리에 자리한 무의식’이라 명명하고, ‘사랑 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 무의식의 정체와 원인을 밝혀 보는 것이 골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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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5-12-06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심리학적인 내용이군요? 융. 쉐도우. 아니무스. 아니마. 무의식......... 오호!
제가 아주 관심이 많은 분야네요? ^-^ 이 책 읽어보겠습니다!! ㅋㅋ
그나저나 이카루님 저 이벤트 힌트도 올렸는데. 이벤트 왜 참여 안해주세용!! 잉~~

icaru 2005-12-0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장미 님... 속독법을 익히셨댜?
님께 추천해요!! 이벤트...오~ 힌트보고 도전할지 말지 결정해야 겠음...하향지원^^

책속에 책 2005-12-0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상당히 흥미롭네요..제목도 굉장히 끌리고..^^

icaru 2005-12-06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드리머 님... 옮긴이의 말에 그런 게 있네요~
" 강한 여자라고, 적어도 강해지려고 노력하는 여자라고 자부하는 오늘의 여성이라면 이 책을 읽고 아마 절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하는 탄식으로 하늘 쳐다보게 될 것"이라고. 이 책은 융의 심리학에 대단히 많이 의존하고 있어요... 그게 장점이기도 하고 아쉬운 점이기도 하죠~

blowup 2005-12-0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너무 쌈박하여 부러 관심 밖에 놓은 책인데, 이리 또 끌고 와서 저렇게 멋진 리뷰로 괴롭히시는군요.

icaru 2005-12-0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은 참 이상하죠...!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말이죠. 제목이 주는 이상한 포스 때문에 ...그후로 한참을 목록에서 뒤로 빼곤 했던 책이었거든요... 그러다가...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라는 책이 이 책인 줄로 착각하고 읽었다죠? 낭만적... 사랑...뭐 이런 단어 때문에... 그나저나... 제가 나무 님 좀 좀 제대로 괴롭혔어얄텐데 클클..

진주 2005-12-0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여성들은 대부분 귀엽고 몸매가 잘 빠졌다. 또 연약하고 신경이 예민하다.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일을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여성이 우리의 일부라고? "

컥? 내 이야기?

icaru 2005-12-06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이런...진주 님이 저의 그림자(투시)였단 말인가요!!! ㅋ

잉크냄새 2005-12-06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자 개념!!! 음~ 귀가 솔깃해지는데요.^^

icaru 2005-12-06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오? 그러니깐 음... 잉크냄새 님 젤로 싫타! 하는 남자 스타일이 어떤 건가요? 그걸 알면... 그림자를 알 수 있겠음다~
혹시... 술자리에서 술 한방울도 입에 안 대는 사람...?

플레져 2005-12-06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넘 멋져요! 라고 쓰려했더니...책 제목이랑 같네 ^^:;
사랑전선과 무의식...강한 여자에게 자주 보이는 증상이죠..

히피드림~ 2005-12-06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재밌는 책 같아요.^^ 백마탄 왕자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만난 것 뿐이라는 말이 참 인상적이네요.

비로그인 2005-12-06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성정치학'(아, 잠깐 책제목이 헷갈리네요)을 읽어보면 그런 말이 나와요. 정확하지 않은데..연애할 때, 보통의 여성들은 상대방 남성이 너무 멋져서 자신이 그의 매력에 빠진 줄 안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상대방 남성을 느끼고 포용할만큼 자신의 풍부한 감성이 무르익었기 때문에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구요. 그러니까, 마야 스트로히가 말한 것처럼 내 자신을 만난다는 말과도 어느 정도 맥락이 닿을 수도 있겠어요..

icaru 2005-12-0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 님... ㅎㅎ.. 그래서..제가 리뷰 제목도 책 제목과 똑같이 올렸지 않슴꺼!!
펑크 님... 이미 왕자 님 만나셨죠? 왕자 님 2세도 잉태하시었고!!
혹시 페미니즘의 도전을 말씀하시는 거죠? 음~ 정말 같은 맥락이넹!

2005-12-07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12-07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ㅇㅎㅎ 정말 세심하신 님... 농담반 진담반이었어요~ 만약에 새해가 되도록 생기지 않으면...꼭 말씀드릴께요!!

2005-12-07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5-12-15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저도 이 책 읽었는데.... 저도 겉으로 보기엔 "강한 여자"인디...ㅎㅎ
이 책을 한번 더 읽어봐야 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