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푸어 -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 가사 휴식 균형 잡기
브리짓 슐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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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중요한 일을 하고, 정말 재미있게 사는게 꿈이다. 그리고 집중력 있게 사는 것, 나의 인생에서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눈을 뜨는 것. (매사 초조해지자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초연해지자는 것. 뭔가를 이룩하기 위해 안달내지 말자는 것) 풍부하고 복잡하지만, 난관을 헤쳐나가면서 에너지를 얻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며 사는 것.

 

415쪽

그들은 좋은 습관이 몸에 잘 베어 있고, 정리도 잘 되어 있으며, 일과 가정 생활을 함께 해 나가는 요령을 알고 있다.

 

시간을 들여서 다음과 같은 일을 한다.

 

1)호기심을 가진다.

2)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낸다.

3)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일정표 맨 앞에 배치한다.

그들은 시간의 경계를 확실히 해서 방해받지 않고 일하는 시간, 편안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혼자 재충전을 할 시간(반드시 긴 시간이 아니어도 된다. 예전에는 다연하게 여겼던 사소한 일들, 가령 미용실에 가는 일을 하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그것을 충분히 즐기면 된다)을 확보한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신경 쓰지 않아요. 지나치다 싶은 만큼 둔감하죠." 헤이크-멀린이 나에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타고난 성격 때문에 뭘 못한다는 말도 믿지 않습니다. 모든 건 학습이고 마음가짐이에요. 그건 습득해야 하는 기술이에요. 연습을 해야 하고, 시간도 필요하죠."

 

자기 효능감을 길러주는 네 가지 방법

 

* '완숙 경험'을 하라. 한 가지 일을 잘 해내면 자신감이 생겨서 다른 일들도 잘 하게 된다.

*역할 모델과 멘토를 찾아라.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려주는 긍정과 격려의 말을 귀담아들어라. 그 말을 믿어라.

*마음을 다스려라! 머릿속의 생각들이 우리의 경험을 좌우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면 로맨스코미디 영화 <문스트럭>에서 셰어가 한 말처럼 '빠져나와'라.

 

명문 베를린음악아카데미에서 바이올린 전공자들을 연구한 결과, 어떤 분야든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의식적인 연습이 필요하다는 유명한 이론을 내놓았다. 무엇이든 간에 성공을 거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양이 전부는 아닌듯하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학생들은 연습을 많이 했을 뿐만 아니라, 효율적으로 연습했다. 아침에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에 제일 좋은 시간, 그들이 집중적으로 연습한 시간은 한번에 90분을 넘지 않았고, 하루 4시간 연습한 경우는 드물었다고. 실력이 상급인 학생이 휴식을 더 많이 취했다.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사람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강도높게 일하고, 회복도 더 확실하게 한다.

 

'바쁨의 최면, 무의미함의 최면, 불안의 최면. "그럴 때 우리는 실제 우리 자신의 모습보다 훨씬 좁은 세계에 살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팽팽해진 근육들의 집합에 불과한 존재가 돼, 패턴을 반복하면서 빠른 속도로 돌아다니기만 합니다. 해 지는 풍경을 즐기거나, 음악에 심취하거나, 아이의 눈 속에서 반짝임을 발견하거나, 우리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 못한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나머지 삶을 높치고, 사랑을 놓치고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가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쫒기는 삶의 공간을 완화할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빈틈을 만드는 거죠."

 

 

저자는 34살에 여동생이 암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 몇 달을 보냈다고 한다. 1분 1초가 얼마나 소중했을지... 동생이 그 무시무시한 길을 꼭 가야만 하는 거라면 적어도 혼자 여행하지는 않도록 자신이 동반자가 되어 주려 했던 경험이 이런 책을 쓰는데 계기의 하나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록에서 발췌

 

- 뇌를 훈련시켜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방법은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일도 훌륭히 해내면서  사랑하는 가족을 잘 돌보고 영혼을 충전할 시간도 내는 남자와 여자들을 많이 만나보라. 당신이 관리자라면 '미세한 긍정의 힘'을 기억하라.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따뜻한 관심을 표시하고, 관대하게 행동하고, 남들에게 소개를 해주고, 공정하면서도 구체적인 피드백을 적시에 해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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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11-3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췌부분의 글이 참 많이 와 닿는군요
그리고 첫머리의 글부분도요.^^

icaru 2015-12-01 16:41   좋아요 0 | URL
역시 책 나무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ㅎ
 
올 어바웃 러브
벨 훅스 지음, 이영기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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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8년전  icaru ㅣ 2006-05-11 ㅣ에 알라딘에 리뷰 썼던 책이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제목의 책.  

  이 책으로 읽고 리뷰 썼었다.  다음과 같이... 이 책이 지금은 절판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 때 쓴 리뷰가 상품으로 찾으면 뜨질 않아서, 이렇게 내가 따로 불러와 본다.내 서재에서 내가 찾으면 나오지만, 책 제목 넣고, 상품으로는 검색이 안 되는 책 리뷰. 이런 책이 많을 듯 하다. 알라딘은 허술한 데가 참 많다. 스스로 시정할밖에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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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어야 할 책 중에 하나지만,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책이다. 책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을 때는 이 책에 대해 이런 반응이기 십상이다. “또 사랑이야?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뻔한 게 아닐까?” 

물론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진부할 정도로 넘쳐나는데, 이 책의 리뷰를 쓰는 이유는 이 책만큼은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서이지만, 좀 지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싶다.

저자는 사랑이 지침을 따른다고 완성되는 전략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사랑이란 철저한 자기 반성 위에 싹튼 자기애의 확산이며, 사랑의 본질은 ‘윤리’에 있으며.  자기애에서 피어나 자신과 타인의 정신적인 성장을 돕는 의지라고.

인기 있는 자기 계발서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보면, '남성은 자기 굴 속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다'면서, 남자가 혼자 있고 싶을 때 방해하는 여자가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레이는 변화가 필요한 것은 여성의 행동이라고 믿는다.  이런 언급의 상당수가 성차별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든다.

흔히 선천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존재의 습관들을 남성 지배를 유지하고 지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만들 뿐이지 않을는지.

저자의 지적 중에 ‘낭만적인 사랑’은 환각제에 불과하다는 말 또한 인상적이다.“소설가 토니 모리슨은 그녀의 첫 번째 책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에서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생각이야말로 '인간의 사상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생각'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그것이 파괴적인 것은 우리가 아무런 의지나 선택할 능력이 없어도 사랑하게 된다고 믿는 망상 때문이다. 수많은 낭만적인 사랑이야기 탓에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이런 환상은 우리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방해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환상을 지탱하기 위해 사랑을 로맨스로 대체한다. 로맨스가 프로젝트로 그려질 때, 또는 대중 매체, 특히 영화가 우리에게 그렇게 믿도록 하려 할 때, 기획을 하고 계획을 짜는 사람은 여성이다.

이 책은 그 환각에 속아 몇 차례 사랑의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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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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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도가니’를 읽으면서 이 책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떠올리게 되었다. 두 책 모두 공통의 카르텔은 전자의 경우는 검찰, 고위공무원, 위시한 정치계 인사로 대표되는 상류 기득 권력층들에게 고함이라면, 후자는 사회 속 남성 권력층들에게 고함이다. 폐단은 정작 읽혀야 할 그들은 읽으려 들지 않고, 우리 같은 사람들(사회적 약자? ㅎ)만 들입다 읽는다는 점이긴 했다.  공지영은 책 한 권으로(정확한 표현은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책 속의 ‘자애학원’이 재조명되게 하였고, 남들이 돌아보려 하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약자를 돕는 사람들 이야기 또한 세상에 알려지게 하였다. 사람들의 관심 하나,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 그리고 책 한 권이 바꿔가고 있는 이 사회가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봐야지 않을까? 

22~23쪽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랑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크기, 깊이를 깨닫는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포함해 모든 대화는 최음제이며, 인생에서 깨달음만한 오르가슴은 없다. 상처는 그 쾌락과 배움에 대해 지불하는 당연한 대가이다. 사랑보다 더 진한 배움을 주는 것이 삶에 또 있을까. 사랑 받는 사람은 배우지 않기 때문에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유래-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내부의 힘이다. 사랑하는 것은 자기 확신, 자기 희열이며, 사랑을 갖고자 하는 권력 의지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 이후에 겪는 고통은 사랑할 때 행복의 일부인 것이다.  

35쪽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 알려는 노력. 세상에 대한 애정과 고뇌를 유보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이것이 바로 폭력이다.

120쪽
결국 사람들은 또 무엇이 더 결정적이냐고 결론 내고 싶어한다. 마치 민족 모순이나 계급 모순처럼 '큰' 문제를 우선시하는 사람은 구조적 파시즘을 강조하고, 소수자들은 일상적 파시즘에 더 무게를 두는 것처럼 논의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일상적 파시즘도 구조적 파시즘도 극복하기 어렵다. 구조적 파시즘은 일상적 파시즘을 전제로 작동하는데, 두 가지 파시즘이 어떻게 구별될 수 있단 말인가?

140쪽
한국 남성에게 성폭력당하면 '개인적인 일'이고, 일본 남성에게 당하면 '민족의 아픔'인가? 성폭력은 가해 남성이 누구인지에 따라 그 성격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 의한 폭력이라는 사실이 더 본질적인 문제이다. 그러므로 여성을 '순결한' 피해 여성과 '타락한' 성판매 여성으로 구분하는 것은 남성 사회에서 여성의 가치를 정하는 방식이다. 남성의 입장에서 성매매와 성폭력은, '자발'과 '강제'라는 '반대' 현상이지만, 여성의 시각에서는 구별될 수 없는 연속선이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이 현실이 바로 성폭력과 성매매의 원인이다. 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여성을 남성의 성 권력의 희생자와 '자발적으로 남성의 욕구에 부응한' 여성으로 나누는 것은 누구의 논리인가? 성폭력 피해 여성이나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모두, 결국은, 남성을 위한 제도의 '희생자'들이다.

177~179쪽
그러나 인간이 원하는 것은 개인의 고유한 의지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며, 몸은 단순히 그 몸을 '소유한' 개인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 여성의 자기결정은 여성의 정신에 의해 투명하게 구성되거나, 약자인 여성의 결정이기에 그 자체로 올바른 것이 아니다. 성적 자기 결정론은, 개인의 자기 몸에 대한 결정 내용이 사회 혹은 상대방과의 상호 작용과 사회적 맥락 안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추상적, 현실 초월적인 논리이다.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바로 나다. 성적 자기 결정권을 주창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성폭력이 사적인 피해라는 자유주의 이론 비판에서 출발했지만, 몸을 주체의 소유물, 주체의 재산으로 간주하는 근대 자유주의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
같음의 기준이 남성의 경험에 근거한 것일 때, 여성은 남성과 같음을 주장해도 차별받고 다름을 주장해도 차별받는다. 이것이 소위 '차이와 평등의 딜레마'이다. 예를 들어, 여성이 남성과의 차이를 주장하면 남성 사회는 그것을 차별의 근거로 삼고, 같음을 주장하면 사회적 조건의 다름은 무시한 채 남성의 기준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평등'은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회적 강자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지, 평등이라고 볼 수 없다.

250쪽
의무는, 수행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수는 있어도, 이행했다고 해서 보상받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군 가산제 제도는 여성과 장애인 등 처음부터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 사람들에게 그 면제된 의미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격이다. 면제의 기분을 문제삼아 여성과 장애인의 징병을 주장할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면제된 의무를 안 했다고 해서 개인의 권리와 생존권(취업권)을 박탈하거나 감수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 여성은 병역의 의무가 면제된 것이 아니라 배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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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 ROUTLEDGE Critical THINKERS(LP) 9
노엘 맥아피 지음, 이부순 옮김 / 앨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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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중에서 

크리스테바는 임신과 출산으로 집약되는 모성적 경험뿐만 아니라 남녀의 성적 차이 또한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녀에게 여성성은 여성의 자유를 가로막고 수동성과 의존성을 부과하는 악덕이 아니라 반대로 여성 자신이 신체, 여성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미덕으로 재해석된다. 또한 여성성은 모성과 더불어 남성성이 결여하고 있는 사랑의 윤리를 담보함으로써 억압과 배제의 상징적 질서를 혁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간주된다.   

크리스테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관류하는 가장 중요한 이론적 강점은 그녀가 '경계인'의 사유를 보여 준다는 데 있다. 그녀의 사유 체계에는 그 자신이 불가리아 출신의 프랑스 지식인으로서, 달리 말해 불가리아의 추방자이자 프랑스의 이방인으로서 겪은 실존적 경험이 녹아 있다.   

 121쪽
우울증 환자는 어떤 대상에 대한 관심을 결여하기 때문에 상징적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 즉 말하거나 쓰는 것에 대한 추동력을 결여한다. 그들에게 말은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 멜랑콜리 환자는 상징적 의미화 실천을 거부하기 때문에, 상징계가 제공하는 자아 통일성이 없는 채로 견뎌낸다. (...) 기호들의 영역은 주체에게 비록 허구적이긴 해도 '나'가 되었다는 감각을 제공한다.  

137~138쪽
우리 중 어느 누가 자신의 주체성을 지탱하는 데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크리스테바의 작업은 그렇지 않다고 암시한다.
우리 가운데 가장 건전한 사람들조차 확고한 정체성이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음을 안다.' 우리가 모두 과정/시도 중에 있는 주체인 한, 문학적 창조는 죽음을 향한 욕망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으로서, 삶을 강화하는 모험적 시도이다.
 

202쪽 
달리 말해, 스펙타글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경제의 도구이며, 그들의 욕망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다. 욕망은 상품이 욕망을 충족시킬 것으로 의미되는 것과 같은 정도로 확실하게 생산된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인위적으로 생산되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우리ㅡ이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소비한다.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꿈꾸어지는 한, 그 꿈은 필수적인 것이 된다. 스펙타클은 궁극적으로는 단지 잠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한 감금된 현대 사회의 악몽이다. 스펙타클은 잠의 수호자이다.'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욕망은 궁극적으로 망각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소비하고,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진정한 열망을 가질 필요가 없다. (...)
크리스테바는 드보르에 공감하며 이렇게 기술한다.
'우리는 이미지들에 압도당하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를 흥분시키고 우리를 대체한다. 우리는 꿈을꾸고 있다. 환각적인 황홀함은 즐거움과 현실 사이, 진실과 거짓 사이의 경계가 부재하는 데서 비롯된다. 스펙타클은 꿈과 같은 삶이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원한다.'
 

211쪽
'행복은 오직 반항의 대가로만 존재한다. 우리 중 그누구도 장애, 금지, 권위 또는 법률과 맞서지 않고서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그것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준재로 인식할 수 있게 한다. 행복의 개인적 경험을 동반하여 나타나는 반항은 쾌락 원칙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더욱이 사회적 차원에서 정상화 질서는 전혀 완전하지 않다. 그것은 젊은 실업자와 할렘가의 빈자들, 노숙자와 실직자, 그리고 많은 타자들사이의 외국인 등과 같은 소외 계층을 지원하지 못한다. 소외 계층이 반항의 문화를 갖지 않고, 즐거움의 요구를 결코 만족시켜 주지 않는 이데올로기와 쇼와 오락 등에 안주해야 할 때, 그들은 폭도가 된다."
 

220쪽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내적인 영역, 비밀스러운 정원, 정신의 삶 등을 살아 있도록 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정치적 반항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개인이 자신의 특수성과 영혼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떤 혁명이든 관료 체제화와 테러로 나아갈 것이다.
최소한 20세기의 많은 '혁명' 들, 그리고 우리 시대의 국가주의자와 소수 민족의 봉기가 주는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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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왜 날씬한 여자를 원하는가 - 다이어트 강박증과 마른 몸매 증후군에 숨겨진 여성 심리노트
캐럴라인 냅 지음, 임옥희 옮김 / 북하우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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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쪽
로잘린드 카워드는 <여성의 욕망>에서 "여성의 몸은 이 사회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간이다"라고 말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런 반응은 평균적인 미국인 모델들의 가늘어지는 실루엣에 명료하게 새겨져 있다.

84~85쪽
여성을 괴롭힐 수도 있는 막강한 사회적, 개인적 질문들(어떻게 이 세계에 존재할 것이고, 얼마만큼의 공간을 차지할 것이며, 자신의 에너지를 어디로 향하게 할 것이고, 자신을 위해 얼마만큼 요구할 것인가 등등)은 재구성되고 최소화되어 개인적인 문제로 작게 분할되어서는 입맛에 맞을 정도가 된다. 즉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점심으로 무엇을 주문할까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분절된다. 당신은 소문자 식욕(프로스팅, 지방의 무게)을 걱정하고 있을 때 대문자 식욕(기쁨, 열정, 육욕, 허기)에 관해 걱정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119쪽
모든 세대는 앞선 세대에 비추어 스스로를 비교하고 평가한다. 허기에 대한 모든 딸들의 경험은 어느 정도  어머니의 허기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될 것이다.


150쪽
길모어는 무엇보다 남성은,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오늘날 여성의 육체에 대해 양가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은 여성의 육체를 보면 강렬하면서도 매우 모순적인 느낌을 느낀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성의 육체는 생명을 잉태하는 능력으로 인해 경외심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똑같은 이유로 공포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한 여성의 육체는 남성들에게 사랑과 필요(어머니의 보살핌, 위안, 영양 공급에 대한 필요), 무기력함, 의존성, 분노 같은 유아기적 감정을 환기시키며, 체념에 대한 갈망, 즉 어머니의 전능함이라는 안전한 항구로 회귀하고 싶은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체념 자체는 남성의 독자성과 통제를 위협하므로 그에 대한 공포감도 불러일으킨다. 
 

184쪽
"우와, 이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재로 존재한단 말이지. 뚱뚱한 사람들이 마른 사람들보다 결코 더 많이 먹지 않고, 어떤 경우 더 적게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 어떤 사람에게 날씬하다고 말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뚱뚱하다는 것이 그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단 말이군."다른 말로 하면 이런 사람들은 뚱뚱한 몸에 건강한 자아와 수치심 없이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208쪽
우리 여성들이 남성 자체에게 세심한 관심을 보인다면, 남성들은 그와는 달리 우리 몸의 각 부위에 세심한 관심을 보인다. 남성들은 암암리에 여성의 미와 젖가슴 크기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측정한다.(...) 일찍부터 (외부세계의 감언이설을) 받아들인 우리의 교육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기검열을 강화하게 된다. 

 
248쪽
거식증에서 떠난 이후에도 그것이 비워놓은 빈자리를 채워주는 문화적 내용물을 그다지 발견할 수 없었다는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이 자연스럽게 비물질적인 것과 연결되면서 위안을 주지는 못했다. 그것이 좀더 심오한 정서적 세계나 좀더 폭넓은 정치적 세계를 지향하도록 해주지도 않았다. 그시절을 돌이켜 볼 때 내가 놓친 것이 었었다면, 지금까지도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폭넓은 대안적 비전이었다. 여성들이 원하는 새로운 물건들이 아니라 여성들이 원하는 것을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하는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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