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가운데 청목정선세계문학 2
루이제 린저 지음, 김진현 옮김 / 청목(청목사) / 198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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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때는 나의 주변에서 때아닌 독일 바람이 불고 있었다. 비운의 그러나 격정적인 삶을 굵고도 짧게 살다간 전혜린과 <생의 한가운데>의 저자인 루이저 린저에 대한 이야기들 모두 독일이라는 나라와 관련이 있었던 것이기에.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는 고1 신임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읽게 되었다. 당시 클럽활동 부서로 들어갔던 도서반에서 담당 선생님이었던 그 분이 어느날 조용히 청목 출판사에서 나온 <생의 한가운데>를 건네주시며, 다음 시간까지 읽고 발표를 해 보라고 하셨던 것이다. 나는 그 때 이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은 전무후무했고, 그저 선생님이 권해 주신 책이라는 데 무척 각별한 느낌만이 들었었다.

선생님께서 이 책을 통해 내가 무언가를 느끼고 얻어보길 바라셨을 텐데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더더욱 한자한자 주의를 집중하며 첫 장을 훑어나간 기억이 난다. 일곱살 때부터 생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주인공 니나 부쉬만, 그리고 니나를 헌신적으로 짝사랑하는 슈타인 박사, 이렇게 다분히 이상적인 주인공들과 이 글의 화자이기도 한, 니나의 언니가 나온다.

니나의 첫번째 남편은 음악가였고, 두번째 남편은 극작가로 나온다. 그리고 중간중간 우편으로 배달된 니나의 일기를 언니인 안나가 (남의 일기를 읽는 행위는 좋지 않은 것이지만(?), 이야기 설정상으로는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던 동생 니나를 이해하기 위해) 읽어보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실제로 루이제 린저 자신이 첫번째 남편은 국립 극장 지휘자였고(사별하게 된다.) 두번째 만난 남편은 극작가이다. 이 밖에도 히틀러 정권 하의 격동기에 고난과 시련을 싸우면서 자기 신념을 모색하며 살아가는 이지적면서도 매력적인 여성 주인공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소설이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임을 확신할 수 있다.

소녀 시절부터 부단히 생에 회의하고, 생의 의의를 추구하며 고집스러우리 만큼 방황하기를 그치지 않는 니나. 이런 니나의 생의 궤적을 훑고 있으면, 독자인 나 또한 부단하게 차오르는 생에 대한 의지로 긴장하게 된다.

이 책을 권해 주시던 선생님의 깊은 뜻은, 나로하여금 니나처럼 파란만장하진 못하겠지만, 앞으로 나이가 들어서도 생의 감각을 늦추지 않으며 살아가라는 긴 안목의 일침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내가 나를 표현하는 일마저 권태로워질 만큼 축축 늘어지는 나자신을 대할 적마다 십년 전에 읽던 빛바랜 이 책을 그냥 조용히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내리곤 한다. 팽팽한 삶의 감각을 다시 느껴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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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
김미진 지음 / 민음사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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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이라는 소설을 찾아 읽게된 계기는 그랬던 것 같다. 1997경에 잠시 모 일간지에 일주일마다 한 주간의 미술 전시회 소식을 전하던 고정 칼럼니스트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김미진이다. 칼럼 옆에는 항상 단아하고 지적인 외모의 이 여자가 밝게 미소짓고 있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미술계에 종사하고, 일찍부터 도미를 해 대학시절부터 유학 생활을 한 예쁘장한 외모의 그렇고 그런 사람인가보다 했지만, 그의 칼럼을 지켜보면서 그가 기존의 미술계라는 질서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저널리스트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 시기보다 3년 앞서 벌써 그가 장편 소설 하나를 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미술가가 그리는 소설이란 어떤 방식일까하는 호기심 반으로 읽게 된 것이 바로 표지도 세련된 <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이다.

어느 정도는 글쓴이의 생활 주변을 소설 속에 반영하고 있기라도 하는 듯, 이 이야기는 미술학도들의 사랑과 열정과 예술의 문제를 간결한 문체로 이야기한다. 간결하다는 것이 지나쳐 약간은 작가가 우리말 구사 능력이 딸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1부의 쌍과 지니, 2부의 글라스와 지후, 3부의 윤과 쿠키, 4부의 지니와 류가 서로 사랑하고 헤어지고 갈등하는 내용을 통해 작가는 사람들의 관계 맺기 방식에 있어서, 상대방의 정작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짧은 단문의 생동감 있는 문체로 그려낸다. 이러한 문체의 특징에 대해서는 이 소설의 끝에 붙어 있는 평론가의 표현이 백미이다. (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은 이 평론가가 이 소설을 평하며 붙이 해설에 딱 들어맞는 속담이 아닐까 싶다.) 평론가 조성기는 이 소설의 관계 맺기 방식을 존 바스의 소설<성산 악극단> 제1장 ‘피아노를 조율하면서’를 인용하며 김미진의 이 글의 경향을 설명한다.

“배는 정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조류에 따라 강 안을 오르락내리락하게 되며 관객은 양쪽 둑을 따라 앉아 있다. 그들은 배가 지나갈 때 그 연극의 한 장면이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고, 또 다른 장면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조류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중략) 인생도 그런 것이라고 내가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우리의 친구들은 흘러 지나가고 우리는 그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들이 흘러 지나가면 우리는 뜬 소문을 듣거나 아니면 그들의 행방도 모른다. 친구들은 다시 밀려 오고 우리는 서로의 우정을 새로이 하거나 혹은 서로가 남남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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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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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나라의 최근 소설가들의 작품 중에서 배수아와 은희경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이들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꼬박 챙겨서 읽는 편이었다. 어떤 사람도 지적을 한 것 같지만, <나는 이제 네가 지겨워>의 유경은 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주인공과 닮아 있다. 얽매이는 걸 싫어하고, 척 하는 걸 혐오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속된 말로, '이런 성격의 주인공을 설정해 놓고, 이야기를 꾸려가며 독자들에게 잘 먹히더라' 라는 소설가들 사이에서의 룰이라도 있는 것인가 잠시 의심도 해봤다. 이 두 사람의 작품을 읽는 행위는 곧,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삶을 슬쩍 곁눈질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 다들 이렇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 이들의 소설을 읽고 나면 드는 생각이다. '사랑은 뜻대로 되어 주지 않으며, 속물 근성이 다분히 느껴지지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미워할 수만은 없는 동년배 친구들이 있으며, 가족들이 때때로 부담스럽게 여겨지도 하는 점' 같은 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배수아의 소설을 읽나 보다. 그의 건조하고 냉정한 문체에서 다소나마 위로를 얻기 위해...나는 이 책을 사서... 친구 선후배 여러 사람에게 돌려 읽어 보도록 권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책은 어느 누군가의 손에 있을 텐데 그게 누구인지 기억도 없다. 소장의 가치가 있는 책은 못되니까, 내소유에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럼 이 소설이 너무 좋아서, 사람들에게 돌려 읽어보라 했었나? 그런 건 아니다.

이 책이 외형은 정말 누구의 말마따나 다분히 상업적인 냄새를 풍기는 디자인에, 엄청나게 늘린 자간과 행간으로 종이 분량만 잔뜩 차지하는 소설 나부랭이일지언정, 이 소설이 나를 위로했으니,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다른 누군가의 위안거리가 되어 주리란 것..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견고한 정장에 작은 글씨의 엄선된 내용의 서적읽기를 강요 받아왔던 독자라면 이 책은 그 헐겁고도 간결함에 특히, 구미가 당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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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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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이 책은 1969년작 페터 빅셀의 단편집 <아이들의 이야기>를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다. '동화'의 좁은 의미의 정의는 동심의 세계를 그린 이야기란 뜻이라면, 이 이야기는 넓은 의미의 정의 쯤 될 것이다. 천천히 읽어도 단편 7개를 모두 읽어내는데 2시간도 안 걸린다. 하지만 이 책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초등학교 다닐 적에 같은 반이었던 한 남자애를 생각했다. 우리반 모든 아이들이 그 친구를 은근히 따돌리기 일수였다. 심지어는 선생님도 가끔 그 친구를 아이들 앞에서 무안을 주었다. 놀라운 건 그런 정체모를 핍박에도 불구하고 항상 같은 태도로 선생님께 질문을 하고, 친구들에게 엉뚱한 행동을 보이곤 하는 그 아이 모습이었다. 그 당시에는 나도 다른 친구들이 그렇게 대하듯 그 친구를 무시했던 것 같다. 사실은 잔손재주가 많은 아이였고, 말재간도 좋았고, 노래도 잘 불렀는데...

그런데 지금 와 생각을 해 보니, 같은 반 친구들이 그 친구를 암암리에 따돌렸던 행위는, 그 친구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를 전복시키려는 듯한 스스럼 없는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일종의 방어 작용을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식이라는 걸 신념으로 알고, 기존의 체계 질서에서 벗어나는 혼란스러움을 싫어하며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 모습이 그러하듯 말이다.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절망적인 실어증에 빠지거나',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인하러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거나' 하진 않았겠지. 쳇바퀴처럼 나날이 똑같이 꽉 짜여진, 정말 전형적인 일상을 사는 현대인의 모습을 한 나에게 어릴 적 그대로의 모습을 한 그 친구가 짠~하고 나타나 '너는 여전히 그렇게 재미없게 살고 있니' 라고 말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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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산 1
가오싱젠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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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읽기에 쉽지 않은 책이다. '나'로 시작하던 서술이 어느덧 행위 주체가 그녀로 옮겨지고, 또, 당신('나'의 분신이며, 상상 속의 '나'이기도 하다.)으로 이동한다. 중반쯤을 읽다가, '나'로 시작하는 1인칭 시점과 당신으로 시작하는 2인칭 시점이 교차로 반복되어 장을 꾸려가고 있음을 정말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게다가 분량도 만만치 않다. 삼백 페이지 남짓되는 책이 두 권에 이른다.

나는 이 책이 여행기 소설이라고 소개를 받았다. 다시 말해, 이 책이 2000년도 노벨 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골라 읽게 된 것이 아니라, 특별히 멋진 중국 여행기 소설을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이 갖는 문학적이거나 정치적인 위상에 대해서는 메스컴과 미디어들과 학계 충분히 할말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더이상 덧붙일 지식이 없다.

다 읽고난 이 소설의 실체는 문학 종합 선물 상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중국 원시림으로의 여행을 꿈꾸게 하는 여행기로서, 문학을 사랑하고 그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들려 주는 문학 이론서로서, 중국 지역 특히 서남부 지역의 풍물 및 설화 민요 소개집으로서, 보편적 남녀의 애정 행각 행각을 다룬, 연애 소설로서, 각각의 장르가 한 소설에서 제 목소리들을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폐암 선고를 받았던 어떤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 그러나 폐암이 진단이 오진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곧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많은 이승에서의 삶이 남아있다는 것에서 깨달은 바가 있어, 이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남은 앞으로의 새로운 삶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그리고 여행의 목적지는 영산 곧 '영혼의 산'이다.

이야기는 주로 영산을 찾아가는 노정의 길에서 엮어진다. 어린 시절의 회상을 넘나들고, 여행길에 만난 소수 민족들과, 원시 종교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 부분의 장에서 보여진 책 제목이기도 한 '영산'의 모습이다. '모든 것이 하얀 얼음의 세계 같은 상태, 즉 완전한 고독'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세계 말이다.조정권의 '산정 묘지'가 라는 시가 연상되었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 얼음처럼 빛나고, /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를/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던 그 시구 말이다.

최근 나는 부쩍 이 갑갑한 직장 생활을 하루속히 접고 싶단 생각을 한다. 다 접고 여행을
떠났으면 하는 간절함. 언제나 그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기만 한 꿈이다. 어쩜 이 여행기 소설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으려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에게 이렇게 얘기를 했다. '여행이 낯선 곳에 자아를 열어 두는 행위라면, 삶 그 자체야 말로 여행이다.'라고. 사소한 일상이라도 여행지에서의 낯선 떨림처럼 대하라는 큰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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