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빈센트 반 고흐 지음, 박은영 옮김 / 예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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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석판화 작업

 

 인쇄소에 들렀다가 우체부를 만난 참에 자네 편지를 건네받았네. 자네의 제안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네. 조만간 그 문제에 대해 서로 의논해 보도록 하세.
 요즘 네 번째 석판화를 작업중이네. 자네가 아직 보지 못한 작품 석 점을 이 편지와 동봉하겠네. 그 가운데 둘, 곧 「삽질하는 사람」과 「카페의 술꾼」은 데생 작업을 하는 편이 더 나을 성싶기도 하네. 석판화 작업을 하려고 거기 필요한 잉크를 썼는데, 종이 위에 인쇄를 잘못 하는 바람에 데생이 생명력을 잃어버렸네. 어쨌든 돌 위에 직접 작업하는 기존 방식과 종위 위에 데생을 옮기는 새 방식을 접목하려고 나름대로 시도 중이네.
 자네 「원 아웃Worn out」 데생 시리즈 기억하나? 최근에 서로 다른 두 모델을 대상으로 세 차례나 그것을 다시 작업했네. 하지만 아직 더 작업해야 할 것 같네.
 내 다섯 번째 석판화 작업의 모델을 발견했네. 늙은 노동자인데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손에 머리를 푹 박은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이라네.
 내가 왜 석판화 작업에 관한 모든 것을 미주알고주알 자네에게 이야기하는지 아나? 거기에 큰 희망을 품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이네. 마찬가지로 그 작업을 서두르는 이유는 그것이 내게는 특별한 중요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만약 좋은 돌 몇 개를 손에 넣어 작업하게 된다면―그 중 한두 개의 작업은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심지어 영국에까지 작품을 보내볼 생각이네. 말장난이나 하면서 무위도식하기보다는 작품을 만들고 석판화 교정판을 보내는 편이 기회를 얻을 확률 면에서도 분명 더 이로울 걸세. 데생을 보내는 일은 아무래도 좀 꺼림칙하지. 분실될 수도 있으니까. 새 기법은 돌을 보내지 않고도 꽤 멀리 있는 석판화 인쇄소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한다네. 그날로 새로운 종류의 잉크와 분필을 구했네.
 지금 내 주소는 센트베그 136번지일세. 동봉하는 석판화 교정판에 대한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네. 고칠 여지가 있다면 미흡한 점들은 기꺼이 고치겠네. 하여간 새로운 「원 아웃」 시리즈가 자네 마음에 들리라 믿네. 내일 당장 돌 위에 작업을 시작하고 싶군.
 편지지가 다 채워진 것 같군. 시종 내 작업 이야기만 늘어놓은 꼴이 됐지만 자네 건강이 이만저만 염려스러운 게 아니네. 몸이 썩 안 좋다고 했잖은가. 올여름 나도 독감에 걸려 고열에 시달렸지. 자네는 그러지 않았음 좋겠군. 어쨌든 하루 빨리 낫기를 진심으로 기원함세. 악수를 청하며.

  날짜 미상


수상 소식

 

런던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니 진심으로 축하하네. 자네에게 상을 안긴 유화 「실 잣는 여인」에 대해 최근까지 되풀이했던 내 말에 스스로 흐뭇해지는군. “「실 잣는 여인」의 색 배합은 내가 본 자네의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안정되고 훌륭하다”고 내가 말하지 않던가.
 어두운 계열의 색깔로 작품을 시작해 최대한 그 상태를 유지하는 기법은 독창적이네. 「실 잣는 여인」을 작업할 때 자네가 쓴 기법이지. 지난 금요일에 내가 또 한 번 말했지. “이 작품은 놀라운 미덕을 가지고 있다”고.
 자네의 방문은 내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네. 이곳에 오면 올수록 자네는 자연에 더 많은 호감을 갖게 될 걸세.
 자네가 떠난 뒤 「물레방아」를 작업했네. 기억할지 모르겠네만, 역 근처 작은 카페에서 자네에게 조언을 부탁한 바로 그 주제일세.
 모델이 된 물레방아는 우리가 함께 보러 갔던 두 개의 다른 물레방아와 거의 비슷하다네. 다른 점이라면 빨간 지붕 두 개를 인데다 포플러나무에 둘러싸여 있다는 정도랄까. 가을엔 더 멋있을 걸세.
 동생 테오가 성신강림 대축일에 이곳에 올 걸세. 잠시 파리를 벗어나볼 요량으로 축제 기간에만 머무를 예정이라더군. 자네의 수상 소식을 들으면 그도 무척 기뻐할 걸세.
 안녕히. 곧 장문의 편지를 보내겠네. 신의를 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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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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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숙한 곳에 있던 것들은 꺼내본다. 내가 썼던 것인데도 낯설고 간지럽다 싶기는 한데, 그 당시의 내 말투와 내 생각이니까 참아줘야지 뭐....

 

영원한 이방인   2004. 9. 20.       19 : 20

 

나는 막연히 그런 생각 많이 했다. 외국에 나가서 살면 좋겠다고. 그런데 나는 최근 두 가지 일을 계기로, 그 막연한 생각에 작은 마침표 하나를 찍었다. 하나는 이 책 때문이고, 하나는 친구의 경우 때문이다. 먼저, 친구 이야기를 하자면, 그 아이는 6년 전에 가족 모두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 그 친구는 현재 한국을 무척 그리워하고,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서는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여건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실현 안 될 가망성이 99%에 가깝다.) 이민 가서 처음에는 한국에서 하던 공부를 살려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직종의 일(베이비시터, 썸머스쿨 한국어 교사 등)을 거쳤고, 현재 네일 아트 일을 하고 있다. 사실 뉴욕에 사는 한국인 여자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아무리 고국에서 수련한 학문의 정도가 깊고 얕고 간에,) 네일 아트 일을 한다는 게 친구의 말이다.(그리 고되지 않으면서도 적지 않은 수입을 가져다 준다고.) 그 아이가 전하는 뉴욕 생활은 한국의 케이블 채널 속 섹스 앤 시티에서 보는 네 여성의 삶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곳은 소수 이민족끼리의 갈등도 많고, 주류 백인들의 소수 민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 뿐만 아니라 보이는 차별도 심하다고. 특히 9.11 이후에. 게다가 문제는 언어이다. 성인이 다 되어 영어를 완전 마스터하는 것은 어려운 일. 이민자로서 주류에서 자신의 자장을 넓히며, 살기 위해서 한 살 때부터 미국에서 살아야 하고, 이 책 속의 헨리 박이 그런 것처럼, 한국적인 일체의 것을 자신에게 체화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친구는 말한다.

하지만, 한 살 때부터 그 곳에서 철저히 미국 사람으로 산다고 해서 그가 주류 미국 시민으로 사는 것도 아니다. 헨리의 어린아들 밋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주류에 끼지 못하는 이민자들이 국외자로서 갖게 되는 관찰 능력이 있다. 그 관찰 능력이 거대하게 민감해진(그러니까...이렇게 소설의 주인공이자 나래이션으로 설정될 수 있었겠지...) 이민 1.5세대 헨리 박이 주인공이다. 그와 백인 아내 릴리아 사이에서의 아들 밋에 대해 그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엄마를 닮아 흰 피부에 가까웠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한다.


“ 나는 우리 아들이 고국의 언어를 결코 배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생각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애가 자신의 세계에 대하여 하나의 감각만을 가지고 성장하는 것이 내 희망이기도 했다. 하나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삶. 그래야만 아이의 반은 노란색인 넓적한 얼굴로는 얻을 수 없는 권위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러다가 아이가 일곱 살때 백인 아이들과 놀다가 사고로 죽게 된다. 유색 인종에 대한 어릴 적부터의 고질적인 놀림과 치열한 기득권 싸움의 단면을 헨리 아들의 사고가 보여 준다.


그러면서 헨리 박은 생각한다.

“백인처럼 생활을 하면서 백인이 될 수 없는 나는 누구인가.”


헨리 박에게 정체성의 의문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이다.   


이 소설에서 뉴욕에 사는 소수민족 집단인 한인들의 독특한 삶, 즉 비시민권자들의 삶을 희석시키는 것은 아내 릴리아가 맡기도 한다. 그녀의 직업은 이민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 교사이다. 그녀는 언어(영어)를 웃음거리로 삼는 창백한 백인 여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한다.

 

이 책은 작게는 한국인으로 건너간 미국 이민자의 정체성 찾기를 실감나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는 소설이며, 넓게는 이 나라 안에서 살건 밖에서 살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살건 간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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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7-10-12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능하면 제가 힘을 행사하기 쉬운 곳에서 살고 싶기 때문에 이민은 어렵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글구 책..., 영어나 다른 언어로 수준있는? 어휘를 읽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들까 싶어서 ㅎㅎ

icaru 2017-10-12 22:39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마녀고양이님!!! 느무느무 반가워욤!!!!
저 또한 정이 고픈 사람이라선지 이땅이 살기에는 제일인 듯해요! 교민사회는 더 좁을거라 ...
글구 책... ㅎㅎㅎ 그러게요~ 한국에서 들 해외배송 받아야 하려나 싶고!! ㅎㅎㅎㅎ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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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보고 듣는 이야기였지만, 울컥 하게 된다. 이런 감정과 경험들은 실제 당사자가 되어 겪어보지 않고서는 온전히 알겠다 느꼈다 라고 말하기 어려운 종류이다.

십대는 그들대로 공부하느라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청년층은 어떻게든 살려고 아등바등하는데 사회의 진입 돌파구를 뚫는 일이 힘들고, 중년은 중년대로, 노년은 노년대로 ....

 

소설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사회 제도 개선을 고하고 있는 훌륭한 실태 보고서이기도 하다.

 

여담인데,,, 김지영이 상담했던 의사의 아내는 수학영재였고, 학창 시절 자신(의사인)보다 더 뛰어난 동기였으나 아이들 키우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불거지며 전업으로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의 아내는 뜻대로 되는 것은 수학문제 푸는 것밖에 없다며 열심히 초등 수학문제집을 푼다는데, 자신은 아내가 언젠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사유와 고민은 거기서 끝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내의 꿈은 남편이 절대 챙겨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심조차 없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돌파해 나가야 한다. 눈물을 머금고...)그 좋은 재능을 썩히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처음 읽기에는 뜨악했지만, 그게 어떤 사람한테는 즐거운 취미인 성인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패배자인양 여길 것만도 아닌 듯 했다.

    

요즘에는 내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에 대해 양가 감정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게 된다. 이 책에서도 그렇다. 육아를 하기 전에 가졌던 타이틀과 일들을 육아를 도맡아하게 되면서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면, 일터라는 사회적 제도권 안에서의 위치 상실이면서 동시에 인생에 있어서 참의미를 알게 하는 힘들지만 창조적(?)이며 생산성(?) 있는 일(아이들을 키우는 일)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서운함은 냉장고 위나 욕실 선반 위, 두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계속 무심하게 버려두게 되는 먼지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두 사람 사이에 쌓여 갔다.”

참 절묘한 표현이다~ 우아! 정말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아이들의 유아시기를 보내는 부부는 아직 한 커플도 못 봤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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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7-09-18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어쩜~~^^
지난번 한강작가의 책도 그랬지만,이 책도 이제 딱 읽으려고 가방속에 넣고 미용실에 딱 앉았지 뭐에요!!
근데 음악소리가 넘 커서 집중되지 않을 듯해 그냥 가방에 그대로 있어요ㅜㅜ
북플하다가 님의 글을 읽으니 반갑군요^^

김지영씨의 책은 그렇군요!!!!
읽어 보면 생각이 또 많아질 듯 합니다.
요즘 인생 뭐지??
그런 생각이 들곤 해서 가을 타나?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죠!!!!^^

넘 바쁘신가요?
종종 또는 자주 봬어요^^

icaru 2017-09-18 15:25   좋아요 0 | URL
오호호호! 책나무님 타이밍이 어쩜 이리 딱딱 맞아요~~!! 우리 항상 책 언저리에서 책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게죠? ㅎ,,ㅎ
저는 이 책을 3주전인가 8월 말이었나 에스비에스 스페셜로 다뤄 줄 때 관심이 동해서 보고, 이제야 몇 자를 적었어요! ㅋ
우리들이야기잖아요 물론 80년대생은 아니쥐만 ㅋㅋㅋ

저는 요즘 그다지 균형을 잡고 살고 있지 않다보니,,, 아이들은, 음 그러니까 엄마 가출하고 할머니할아버지 어쩌다 가끔 아빠와 이모의 돌봄으로 살아가는 모습이고,,, 어쩌다 집에서 얼굴 보는 아이아빠와는 이 문제로 다툼 아닌 다툼을 ㅠㅠ

12월 초가 되면 다 끝날거고, 그때쯤이면 서재이웃님께도 이웃다운 이웃으로 거듭날 거예요~~ 그때까지 가을도 조금만 타시고~ 저의 책수다 동무로 다시 만나욤 ㅋㅋㅋㅋ


북극곰 2017-11-30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0년대 생이 아닌데 너무 똑같아서 소~~름. ㅋ ㅋ(아니 울어야 하나. ㅠ.ㅠ) 새록새록 제 국민학교 때까지 생각나면서 엄청 감정이입이 됐습니다. 억울하게 선생님한테 당해서 울었던 기억까지도. 하지만 그 선생님은 절대 사과도 안하셨죠. 이러면서 막 내 안에 있던 어떤 것들이 들고 일어나 분노하게 만들었어요. 이 책이. ㅎㅎ

icaru 2017-12-04 16:0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북극곰 님이 이 책을 리뷰로 쓰신 글 막 보고 싶다요~~ 쓰셨으려나~ 놀러가봐야겠어여!!
어제 인쇄 감리 갔다와서, 지금 서류나 그밖에 것들 대기중이라,, 여유가 생겨 알라딘에 들어왔답니다. 북극곰 님의 댓글이 저를 맞이하여 주다니 대영광~

북극곰 2017-12-11 11:34   좋아요 0 | URL
흐흐흐... 이렇게 부산을 떨어놓고 달랑 100자평. 저도 지난 주에 가제본 검토 끝내고 간만에 알라딘에 들어와서 이웃님들 글들 읽어보고 있었어요.ㅋ 내년에는 좀더 서재에 자주 출입하는 걸로. ㅎㅎㅎ
 
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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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리쿠의 신작이라고 해서 팬의 예의상 구입했는데, 웬걸, 일본에서는 서점대상과 나오키상을 최초로 동시에 수상했다고.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조성진이 중학생 때 참가해서 우승을 했던 하마마쓰 국제 콩쿨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실제 조성진 리사이틀 때는 온다 리쿠가 잡지에 기고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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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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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근은 그것이었다.

 

큰아이가 집에 있는 책들 중에서 철지난 어린이과학동아를 자주 들춰본다. --우리는 2월에 이사를 했는데, 그때 아이아빠가 이번 기회에( 이사)  애들 책들 좀 정리하자고, 잡지를 콕 찝은 것은 아니지만 에둘러 포함시켰던 것. 그러나 험하게 봐서 표지가 너덜한 것들만 버리고 절반 이상을 들고 왔다. ---  그래서 나는 아이아빠에게 저것 보라고, 버리라고 했던 책들인데 아이가 잘 보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씀인즉, 당연히 잡지는 잘 본다. 지난 것도 본다. 처음에 구독 받았을 때는 만화만 보지만, 두번 세번 다시 읽을 때는 기사도 본다. 라고. 그게 문제가 아니고, 백과사전류를 가리키며 저것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정보를 찾고, 지식을 암기하는 산업화 시대는 지났는데, 나보고 트랜드를 못 읽는다고 한다. 남편은 나의 책 소유 방식이 이제는 진절머리가 나나보다.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또 '흥, 알게 뭐야! '하고 같이 퉁을 놓거나 흘릴 수가 없으니 원!

물론 조금 더 넓은 데로 이사를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결심한 바가 있어 과거의 것들을 정리하고 왔다. 내가 고이고이 모아두었던 10년도 더 지난 문학계간지들, 첫직장에서 만들었던 문제집, 그것을 만들기 위해 참고했던 자료들 파지 모으는 업자분에게 열 박스도 더 넘게 넘기고 왔다. 정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판단이 안 되는 것은 이사가서 정리하자며 싸가지고 왔는데, 남편 눈에는 띄지 않게 할 요량으로 옛책들은 주방쪽 다용도실 수납장에다가 무쇠압력밥솥 같은 거랑 같이 차곡차곡 넣어두었다.(북쪽 서랍장 안에서 빛도 못 쪼이는 불쌍한 것들) 그걸 또 지적해 주신다. 낡은 사고방식이다, 의미없다, 라는 말잔치를 벌이면서....   

 

그래서 나는 최근에 산 책들은 회사에 두고 있다. 집에 잘 안 가져간다.(회사 그만두면 어디에 두어야 할까?ㅠ) 이 책도 재작년에 한참 알라딘 화제의 책으로 나왔을 때 사서 읽은 책인데, 리뷰는 못 썼고, 아무데나 펼쳐도 한 눈에 마음에 드는 구절이 등장하는 신기한 책이라고만 어디다 써놓은 거 같다.

 

일테면 지금 내가 펼쳐 놓은 부분은 "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

 

그리고 또 펼쳐놓으니 나오는 부분은

"그해 여름에 그는 강의를 맡지 않았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병을 앓았다. 그는 원인이 불분명한 엄청난 고열에 시달렸다. 겨우 일주일이었지만, 기운이 쭉 빠져서 수척해졌을 뿐만 아니라 후유증으로 청각마저 일부 잃어버렸다. 여름 내내 그는 너무나 쇠약해져서 겨우 몇 발짝만 걸어도 녹초가 되었다. 그래서 집 뒤편의 작고 사방이 막힌 일광욕실에서 소파 겸용 침대에 눕거나 지하실에서 직접 가져온 낡은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슬레이트로 된 천장이나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끔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가서 요깃거리를 가져오곤 했다. "

 

나는 스토너의 상황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사는 모습은 달라도 그럼에도 나는 스토너다.”

 

조용하고 절망적인 생에 관한 소박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뜰 때면 생각한다.

"오늘 회사에 나가 잘 해낼(뭐 중뿔난 것을 하는 것도 아닌데...) 수 있을까, 온힘을 끌어모아도 의지가 부족하구나." 라고. 

"아침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산뜻하게 눈이 떠지는 삶을 나는 죽을 때까지 살 수 없는 것일까?" 한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절망의 순간에도 나 자신이 이 (직업, 엄마와 아내라는 타이틀) 세계를 싫어하지 않고 있으며, 아무리 시름이 깊다 해도 이 삶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스토너의 말년은 자네는 늙어봤나? 나는 젊어봤네. 까지는 아니어도 젊은 동료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 기억 밑에 고생과 굶주림과 인내와 고통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번듯한 생활에 대한 꿈이 깨어지면서 함꼐 망가져서 서서히 절망을 향해 스러져가는 것이 보였다. 

 

언제 읽어도 그냥 한줄한줄이 지금의 삶과 대입되는데,,,, 왜왜 남편님은 다 읽은 책은 치우라고 하는 것일까? 남편님은 이런 경지를 몰라...저런저런...  

 

 


199쪽 : 12째줄 그저 한밤중에 붉을 밝히고->불을 밝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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