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동생네 텃밭에 모여 남자들은 모종을 심고, 여자들은 쑥을 뜯었다. 향기가 짙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모두들 조금씩 들떠서 힘을 썼다. 하늘은 맑고 높았다. 들려온 소식 또한 기뻤다. 이모 할머니가 되었다. 오랫만에 아기 소식이다. 

또한 아주 무서운 소식도 들었다. 죽으려 한 사돈조카 소식이다. 아직까지 안 좋은 소식은 마음에 머물러 았다. 머리는 멍하고 마음은 아프다. 

오는 길은 내내 비가 내렸다. 눈 앞에서 사라진 봄날을 보았다. 

나의 이유, 외부의 시선, 너와의 관계에 따라 수많은 변수가 생겨나지만 그 넓은 폭과 깊이는 오롯히 내가 감당하고 조율해야 할 힘으로 좌우된다. 먼저 자신을 수용할 수 있는 자기가 필요하다. 어떻게, 무엇으로, 그래도 남아있는 자는 밥을 먹어야 했다. 

각 모종마다 이름을 지으면서 심었는데, 사람들을 기호로 부르는 이도 있다(3구역, 1구역-김혜진). 돈이 들지 않는 마음인데도 어렵게 잘 못쓰는 이도 있다(펀펀 페스티벌-장류진). 오해와 진실의 사이에서 어디로든 오가지 못하고 끝없는 간극에서 할 말을 못하는 이도 있다(오늘의 일기예보-한정현).  이리저리 어떻게든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 건데, 오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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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0 소설 보다
김혜진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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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어떤 것들을 네가 똑같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상하면서도 반가웠다. (중략) 어떤 식으로든 마음이라고 할 만한 게 한번 생겨나면 좀처럼 없애기 힘들다는 것을 나는 모르지 않는 나이였다. (25쪽)

네가 그 이야기를 내내 내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건 나에 대한 배려였을까. 왜 그런 배려를 했을까. 왜 그런 배려가 필요하다고 느꼈을까. 생각은 빠르게 번졌고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씁쓸함이 감돌았고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다가 차츰 불쾌감으로 번졌다. (33쪽)

한 사람의 모순적인 면면 혹은 이중적인 모습들이 드러나는 순간은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의 문제만으로는 해명하기 힘들다는 생각도 합니다. 시기와 상황, 처지와 형편에 따라 사람은 얼마든지 이전과 다른 선택과 판단을 내릴 수 있고, 그에 따른 결과나 책임의 양상도 달라질 테고요. 또 그걸 보는 사람들의 입장도 각자의 사정에 따라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43쪽)

그리고 사회생활이라는 게 늘 합당한 근거나 논리적인 이해관계에 의거해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며 능력이나 역량의 객관적 판단 같은 건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가 되었다. (82쪽)

왜 나는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을, 저 애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게 된 거지? 어째서?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의 차이일 뿐인데, 마음은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왜 내 마음은 대체 이것밖에 안 되는 거야. (85쪽)

나는 가끔 나를 불쌍하게 만드는 건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들의 시선이라는 생각을 한다. (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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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에서 발간한 '소설보다'에 나오는 수십번의, 아니 수백번의 선을 긋다 보면 멋진 선을 긋지 않을까.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하지 않고, 아님 과거의 경험에서 실패와 아쉬움을 기억했다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작년의 봄과 여름은 어디로 갔지. 벌써 올해의 봄도 지나가고 있다. 성큼하고 지나는 봄날에 집어 든 책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음을 알게 된다. 봄비까지 내리는 날, 난 너무도 단단한 마음이구나, 이러이러한 글자가 들어와 스르르 그냥 가버리는구나. 마음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이어 붙이지도 못하는 문장들을 여전히 붙잡고 있구나. 조금은 틀린 선이 발견될라치면 그건 이미 연습의 결과로 생긴 선으로 인식할 뿐. 그리고 수만가지의 이유를 들어 방어하고 있는 마음이 먼저 와 있다. 모든 일에는 온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무언가와 함께 할 때야 가능하다. 코로나, 선거, 돈이 많다고, 많이 배웠다고, 선진국이라고, 등등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어떤 특별한 순간에서야 제 모습이 빛나기도 하고 드러난다. 가끔씩의 외출에서 마스크 착용한 수많은 사람들을 스치면서 서로가 놀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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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19 소설 보다
우다영.이민진.정영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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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말 알 수 없는 일투성이죠.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일은 누군가가 계속 죽고 누군가가 계속 태어나는 일이에요. 그것이 태초부터 반복되어온 섭리라는 거죠. (25쪽)

비극적인 사건들이 인생의 행복한 순간들과 뒤섞여 서로의 결과와 원인이 되기를 반복하는 이상한 삶은 특별할 것 없는 현실이 아닐까요. (46-47쪽)

되돌릴 수 없는 일을 되돌리고, 건너갈 수 없는 저편으로 건너가는 상상. 그것이 지난 선택을 바꾸진 못해도 다음에 다가올 선택에 길과 빛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49쪽)

"풍경에는 실제 장소에 대한 바꿀 수 없는 묘사가 있다. 그러한 모습들이 명시적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또한 암시적으로 보이는 풍경이 있다. 그 암시적인 풍경에 대한 감각이 본질적인 것이다."
(67쪽)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말하고자 한 것과 말해진 것 사이의 괴리는 언제나 곤혹스러웠다. (79쪽)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그동안 보아 온 그들의 견딜 수 없는 점들이 나에게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서 아버지의 성급함과 무신경함, 어머니의 불안과 자기 연민을 발견할 때면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곤 했다. (122쪽)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들이었던 게 아니라 마침 구원이 필요했던 두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124쪽)

더 좋은 선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이미 그어놓은 선을 지우고 덧대고 문지르는 것 외에도, 종이는 조금 더 들지 몰라도 수없이 다시 그어보는 방법이 있겠죠. 혹시 아나요? 백오십번째에 기가 막힌 선이 나올는지요. 그럼 그 과정을 지켜보지 못한 누군가는 말하겠지요. "어떻게 이런 선을 한 번에 그었어?"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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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19 소설 보다
김수온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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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어디에나 길이나 있다. 길이 있기에 입구와 출구가 있으며 막다른 길 또한 있다. 모든 길이 지도에 빠짐없이 표기되어 있으므로 언제 어디서든 길을 찾을 수 있다. 길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물건이나 아이를 찾을 수도 있다. 그래서 뭐가 됐든지 감추거나 숨길 수 없다. 단 한 번도 길을 헤매지 않고 모두 집에 도착한다. (11쪽)

불현듯 그녀는 자신이 지끔끗 누구에게도 떼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일찍 철이 든 척했지만 그녀의 삶은 그저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음을. (78쪽)

시간이 흘러 체념의 삶으로 다시 회귀한다 하더라도, 한순간이나마 무언가를 욕망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은 욕망을 모르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법이니까요. (87쪽)

저는 ‘읽다‘라는 행위가 참 독특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을 두드려 자신의 감각을 일깨우는, 우리가 가진 오감과는 명백히 다르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묘한 행위입니다.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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