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더 많이 배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나, 무얼하기 위해서지 목적이 뭔지를 종종 잃을 때가 있다.
습관이 반복되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과거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뜻하며 현재를 온전히 살기 위해 과거의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24쪽
분노와 분개 때문에 손톱을 물어뜯는다는 사실을 이해한 뒤 '나는 내 분노를 풀어낼 수 있다.''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낸다.''나는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등을 확신하라. 기억할 것은 원하는 행동을 이미 이뤄진 것처럼 긍정적으로 확신하고 현재형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77쪽
가족 간에 진실이 부족하고, 부모가 뜻하는 것과 다르게 말하는 것을 볼 때, 아이들은 듣는 것과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 사이의 불일치를 받아들인다. 부정직과 혼란 속에서 아이들은 화를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분노를 표현하거나 공격하는 대신 아이들은 자신의 무기를 깨물게 된다.-116쪽
한쪽의 의지가 덧없이 꺾여버릴 때마다 당사자는 끊임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수치심은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상황에 끊임없이 노출된다면 우리는 자기 존중이라는 건강한 감각을 발달시킬 수 없다. 수치심을 느낄 때, 우리는 감정을 통제하려고만 하는 자신을 가장 부끄러워한다.-122쪽
건강한 경계는 어린 시절 건강, 안정, 안전,신뢰를 경험했을 때 획득된다. 이는 우리가 '싫어요, 제발 그만해요.''충분히 먹었어요.''이 관계는 파괴적이기 때문에 끝내야겠어요.' 등의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경계가 손상됐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경계도 존중할 수 없다. 단단한 경계를 세우거나 전혀 경계가 없는 사이를 오가며, 우리가 누구인지 안심하기 위해서 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을 우리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쓸 것이다.-178쪽
자기기만과 잘못된 낙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감정적 거울을 통해 자신을 오랫동안 들여다봐야 한다. 왜 일의 해결이 늦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당신의 답변 옆에 그에 대한 반박을 적어보라. 스스로에게 정직하라.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과정의 일부다.-235쪽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은 거의 모든 이들이 습득하지 못한 경계의 문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수할 희망이 없는 일들을 점점 더 많이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이 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보다 쉬워 보인다. 이 또한 낮은 자존심에서 비롯된 문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거나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고 싶어한다. 우리는 '아니'라고 말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게 함을써 우리는 모든 일을 완수할 수 없게 되면서 스스로 커다란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시작을 거부하고, 종종 소극적이면서 공격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압박한 사람에게 앙갚음한다.-243쪽
지금의 가족제도는 기본적으로 과잉보호를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 그것이 학교에까지 연장될 경우, 새로운 주체의 형성에는 치명적 결함이 될 수 있다. 즉, 학생들이 몇겹의 보호막에 둘러싸여 '내적 동력을 갈고닦을'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안학교가 진정 대안이 되려면 가족의 지평을 넘어서는 공동체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22쪽
인간은, 아니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뭔가를 배운다. 살아 있음 자체가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뭔가를 끊임없이 학습하는 과정 아닌가.-37쪽
공부란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더 간단히 말하면,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ㅐ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야 비로소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40쪽
10대와 6.70대가 함께, 지속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이 대체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를. 어떤 스포츠, 어떤 취미활동도 불가능하다. 고로, 단연코 공부밖에는 길이 없다!-47쪽
즉, 독서는 단지 지적 능력의 보완이나 정보 습득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시각의 군림, 감각의 폭주를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입구가 된 것이다. -106쪽
얼 쇼리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빈민운동이란 빈민들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탐색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을 마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다시 말해, 그들이 철학적으로 무장하게 된다면, 그들은 더이상 충동에 몸을 내맡기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당당하게 정치적이고 공적인 실천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121쪽
고전의 스승들은 우리로 하여금 공부에 대한 좁은 울타리를 박차고 나오도록 종용한다. 그들의 보여주는 공부의 길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책을 통해 존재와 세계의 심연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리고 존재와 세계의 모든 것을 책으로 변환하는 것. 물론 이 두 개의 경로는 궁극적으로 서로 통한다. -146쪽
요컨대 공부란 특정한 시공간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의 변이를 통해 세상의 질서와 배치를 바꾸는 것. 거기가 바로 공부가 혁명과 조우하는 지점이다.-195쪽
거울을 보고 머리카락을 좀 잘랐다. 긴 생머리, 언제까지 이렇게 다닐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갈라진 끝부분을 조금만 잘라낸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보니 쏠쏠한 재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