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오가는 길에 토니오 크뢰거를 읽었다... 이도 저도 아닌, 속인도 예술가도, 북쪽과 남쪽, 아버지와 어머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토니오는 경계에 서있다. 그렇게 사랑했던 한스한젠과 잉게보르크는 토니오의 마음을 모른다. 그들은 토니오가 함께 나누고 싶었던 세계와는 다른 곳에 있다.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성공을 했지만 여전히 고향에서도, 사랑했던 사람들에게서도 배척을 당한다. 유리문 가까이서 그들을 드려다 볼 뿐이다. 영원한 관찰자, 그의 기분을 알 것 같다. 사람들과 환경에서 빙빙 돌기만 하는 토니오는 다른 이들보다 더 이성적이고 생각이 깊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볼 수 없는 부분까지 깨닫고 인식하고 있었기에 그들보다 한 발 더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수에게서 소수는 잊혀지고 한번씩 비웃음을 선사하는 이상한 부류로 분류될 수 밖에 없다... 토니오는 그래도 그들을 위해 좀 나은 일을 하고자 다짐하고, 결국엔 그들을 위해 뭔가를 이뤄야 한다고 고백한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나또한 상황에 뛰어 들기 보다는 방관하고 회피하다가 종국엔 발을 담그기 때문이다...자격연수를 받았다. 몇백명이 모였다. 자격이라는 부분을 의심하게 만드는 많은 사람들, 목적도 없는 발걸음을 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자격에 혹시나 하는 욕심을 부렸다. 훗날 어찌되지 않을까, 어찌되는 건 뭔가가 특별해 진다는 전제다. 글쎄... 그러나 괜찮은 사람들을 봤다는 것, 그들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괜찮다는 자부심으로, 멋진 원로들을 보고 위안삼았다... 기차안에서 토니오의 복잡함이 괴롭혔다... 토니오에게 관심이 없다면 괴롭지도 않겠지... 사물과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깊이 드려다 보는 동시에 힘이 든다...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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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오 크뢰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5
토마스 만 지음, 강두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2월
구판절판


너는 지금 내가 있는 데로 나와야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없어졌다는 것을 눈치 채고 내 기분이 어떻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비록 불쌍하다고 생각했더라도 좋으니 몰래 쫓아나와서 네 손을 어깨에 얹고 "자, 우리들 있는 데로 가시죠. 그리고 즐겁게 노세요. 저는 당신이 좋아요"라고 말해야 마땅하지 않느냐. 그는 등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어리석은 긴장 속에 혹시 그 여자가 오지 않을까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그 여자가 올 리는 없었다. 그런 일은 이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32쪽

저는 마음속에 있는 정리되고 형성될 것을 원하는, 아직 탄생되지 않은 그림자와 같은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거기에 얽힌 그림자와 인간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들은 모두 제가 붙잡았다 놓아줄 것을 암시하고 제게 손짓하고 있습니다. 비극적인 또는 희극적인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합친 모든 그림자의 모습입니다 - 그리고 저는 이런 그림자들에게 애정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정말로 깊고 가장 은밀한 짝사랑은 금발머리, 푸른 눈을 가진, 맑고 씩씩한, 행복스럽고 사랑스러운 평범한 사람들에게 바쳐지고 있습니다. -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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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은 아주 작은 에피소드들이 불러 일으키는 기억들, 추억들을 맛본 시간이었다. 냄새, 감촉, 시선, 소리에 기억들이 묻어 있다. 음식, 장면, 행동, 경치, 음악, 장소, 물건, 날씨에도 추억이 들어 있다. 그러한 기억과 추억은 그리움을 불러 온다. 불쑥하고 올라오는 그.립.다...보.고.싶.다가 반복하여 목에 걸리고 마음을 울린다. 커피한잔 들고 뚜벅뚜벅 햇살 속을 걸어 보기도 했다... 익숙할 때도 되어야지...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소소한 기억들이 살아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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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우유 - 그리움으로 찾아낸 50가지 음식의 기억
김주현 지음 / 앨리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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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탕 같은 날들 속에 반짝반짝 노랗게 빛나는 바나나 우유 같은 존재들.
무릎베개를 베고 있으면 귓밥을 파주던 아빠 냄새, 짧고 아련한 풋사랑, 푸른 바람 냄새 나는 여행, 잘 개킨 속옷, 후루룩 차진 면발.....
그런 작고 작은 것들.
그런 작고 작은 것들을 기억한다.
열탕 같은 날의 바나나 우유 같은 것들.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
그깟 작은 것들이야말로 오늘을 지탱해주는 힘이니까.-7쪽

세상에서 제일가는 한 끼란 사실 진귀한 재료나 요리사의 솜씨로 이뤄지는 게 아니란 걸. 언제나 사람들이 최고의 한 끼를 꼽을 때면 추억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돼 있다는 걸 말이다. -37쪽

누군가의 어께에 힘을 실어주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저 노란 달걀말이와 비엔나소시지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나를 생각해주는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거.-40쪽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지. 언제나 그렇지만 말이야. 세월이 흘러서 뒤를 돌아보면. 아, 그때, 그 시각, 그 1초가 생각나. 그때 그 말을 할 걸. 그때 시원하게 화를 낼걸. 그때 웃어줄걸......-111쪽

실수투성이 '풋'의 시간들. 서툴고 설익은 풋내 나는 시간들을 지나다 보면 가슴에도 푸른 멍드는 날이 많다. 그런 날은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그런 부드러움으로 가득한 무언가가 필요하다.-118쪽

몇 살 때이던가. 사랑이 지나가던 때, 사랑이 변하던 때, 그날.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든가, 날 사랑하긴 한 거니? 날 사랑했던 적은 있긴 한 거니? 우리가 사랑하긴 했을까? 등등의 참 민망하고 오글거리는 말들을 쏟아낸 때가 있었다. 스스로 이런 말은 정말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진부하고 상투적인 이별의 문장들을 쏟아내던 때, 그러면서 심장이 불에 덴 것처럼 통증을 느끼던 시간들. 독감처럼 밤이면 통증은 더 심해져서 숨도 못 쉴 것 같다는 노랫말 가사가 아, 이렇게 사실적인 언어였구나 하는 것을 통감하던 시간들. -141쪽

달이 사라진다면 그렇지 않아도 해저 100미터 즈음에 파묻어 둔 그리움 같은 건 수면에 떠오를 일 없을 거다. 그렇지 않아도 고갈되고 있는 지구의 낭만 같은 건 반쪽도 남지 않을 거다. 그렇지 않아도 마른 모래만 날리는 사람의 마음에 풀 한 포기도 나지 않을 거다. -160쪽

러스킨이라는 화가의 말처럼 늘 멀리 여행하고 싶어하는 열망은 사실 이곳에서 기쁨을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아주 작은 데서 기쁨을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지금, 여기를 못 견뎌하지는 않겠지.-240쪽

아쉬워서 그리운 것들, 혹여 한번 다시 찾을 날이 있겠거니, 그렇게 그리워하며 사진 한 장 품고 사는 거. 심장에 그런 아쉽고 그리운 순간들을 사진 한 장처럼 품고 사는 거, 그게 꼭 바보 같기만 한 일은 아닌 듯하다.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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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작가를 다시 알게 되었다. '세상을 보는 미숙한 눈(p315)'을 가진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순진함까지. 그러다보니 삶에서 좌충우돌 할 수 밖에... 그러나 충분히 극복했다. 이유는 성품이 순진하고 맑기 때문이다. 거기다 아마 돌직구를 날리지 않았을까. 정직하기까지 하니... 물론 이해받지 못하는 생뚱하고 눈치없음으로 본인도 힘들고 상처입었겠지만, 주변인들 또한 힘이 들고 상처입을 수도 있었겠다란 순전히 나의 생각이다... '관념적'과 '현실적' 사이를 오가며 쓴 글들, 사람들은 자신과 맞지 않으면 큰소리를 낸다. 그녀의 생각들, 가령 사랑, 사형에 관한 부분, 운동권, 페미니즘 등등을 그냥 읽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설령 나와 다를지라도 그건 그녀의 생각이다. 어찌 되었든 그녀의 글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건, 그만큼 동조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찬반을 떠나서 그녀의 글을 읽을 동안에는 뭔가 생각은 할 거 아닌가. 읽을 게 없는 시대에 뭔가를 읽을거리가 주어졌다는 건만 해도 괜찮은 건 아닐까... 공지영의 학창 시절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한 말을 옮기며, "그는 참으로 발랄하고, 진취적이고, 거기다 예쁘기까지 하고, 더군다나 무척이나 똑똑하기까지 하고, 더더군다나 '건방'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는 누구라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여대생이었다.(p389)"

 

추석이다... 그저 쉬고 있다... 편하다... 괜찮다...     

 

이적의 노래, '다행이다'가 생각난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 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 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라는 거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나눠 먹을 밥을 지을 수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저린 손을 잡아줄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 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 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라는 거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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