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 되니, 함민복시인의 '가을'이 생각난다.  '당신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쓸쓸함이 몰려든다. 거기다가 남자의 자격에 나온 실버합창단의 '그대있는곳까지'를 들으니 더더욱 쓸쓸하다. 또한 햇살의 기운까지 줄여들어 선듯선듯... 여름엔 이리저리 기웃대며 넘어지고, 아직도 눈빛엔 불안이 있고, 목소리엔 불만이 있다. 또한 지천명이 코앞인데도 여전히 많이 잡으려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책을 많이 잡았다. 그야말로 쓸쓸함이 넘치지도 지나치지도 오버하지 않도록 책읽는 일만 남아있다... 아무것도 안하고 책만 읽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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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독서처방 - 매혹적인 독서가 마녀의 아주 특별한 冊 처방전
김이경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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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백 통이 넘는 이메일에 답장을 쓰고, 일주일에 3,4개국을 넘나들며 회의와 연설을 하고, 일곱 시간을 걸어 무보수 왕진을 가는 데 천재적인 능력과 무모한 열정 중 어느 것이 더 필요한지 자문해봅니다. 사람이 그릇된 현실과 타협할 때 그게 용기가 모자란 탓인지,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따져도 봅니다. 아무래도 천재냐 아니냐가 결정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41-42쪽

설렘으로 시작한 관계가 피로만을 부르는 의무로 변하는 것은, 그 관계에 담아 키우던 미래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하품을 부를 때 우리는 상대를 탓합니다. 게으르고 무능한 당신 때문에, 젊음도 매력도 사라진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무미건조해졌다고 원망하지요. 그러나 하진과 체호프는 그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설렘이 권태로 변한 것은 '당신' 때문이 아니라 미래를 잃은 '나' 때문이라고, 그러니 나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86-87쪽

오직 사실에 입각하여 공정하게 판단하는 것, 그리하여 남을 견딜 수 없는 곳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것, 그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고 거듭 새깁니다.-159쪽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묻고 그 승산에 따라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으냐 아니냐를 묻고 제 마음을 좇아 도전하는 것이지요.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174쪽

번역은 다른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해석하는 과정이며 타자를 수용하고 자기화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번역은 단순한 옮김질이 아니라 '만남과 수용', '갈등과 창조'가 교차하는 현장입니다. 다른 언어를 내 언어로 사용하자는 사고에는 이런 만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오로지 편의성만을 추구하는 기계주의가 있을 뿐입니다. -204쪽

스티에성의 수필 [띠탄공원]은 이처럼 지극한 슬픔의 끝에서 터져 나온 아름다운 절창을 보여줍니다. 조금 길지만 그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봄은 와병의 시절이다.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은 봄의 잔인함과 갈망을 쉽게 깨닫지 못할 것이다. 여름, 연인들은 마땅히 이 계절에 실연해야 한다. 아니라면 사랑에게 미안할 것이다. 가을은 타향에서 화분을 하나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시절이다. 오래 떠나 있던 집으로 그 꽃을 가져가 창문을 활짝 열어 햇빛이 집 안 가득하도록 한 다음, 하나하나 추억을 더듬어가며 곰팡이 슨 물건들을 천천히 정리하는 것이다. 겨울은 화로와 책과 더불어 한 차례 또 한 차례 굳고 굳은 결심을 되풀이하며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는 것이다. -280-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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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긴 연휴를 보냈다. 오랫만에 온 가족이 모였다. 명절, 한때는 쓸쓸함으로, 마당을 서성거렸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또한 대둔산을 다녀오다. 무서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가을이 보인다... 장정일의 책만 읽었다. 책은 나의 삶이다.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나의 삶을 알 수 있고, 또한 달라진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감각과 인지, 신체활동이 작용해야하고, 책을 읽는다는 자체가 건강하다는 의미다. 그러러면 괜찮은 책을 골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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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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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에 실린 많은 독후감이 그렇듯이 독서를 파고들면 들수록 도통하는 게 아니라, 현실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 길은 책 속으로 난 길이 아니라, 책의 가장자리와 현실의 가장자리 사이로 난 길이다. -11쪽

자본가가 자진해서 얻을 수 있는 손해 중에 가장 고귀한 손해는, 사용 가능한 유휴(잉여)노동력을 빌미로 노동자의 임금을 깎지 않는 것이다.-31쪽

잘 '아는' 것과 잘 '느끼는' 것 사이에는 분명 간극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그림을 보는 데 있어 전자의 능력만 내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개인의 '느끼'는 능력을 홀대하고 학문적으로 인준 받는 '아는'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든다.-73쪽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당사자를 비난하고 복수의 칼을 가는 데 집착하지만, 거기에 머물기보다는 당사자를 "배신에 이르도록 자초한 우리 자신의 행동과 선택"을 되돌아 보고 "각자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생각하는 게 훨씬 성숙하고 생산적이다. -151쪽

나이가 들어서도 인형을 끼고 다니거나, 군복을 입고 가스총을 차고 다니는 사람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거다.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참 많은데도, 우리는 그걸 낯설게 생각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군복을 입고 가스총을 찬 예비역에 대해서는 모두들 우습게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핸드폰이나 륙색에 인형을 매달고 다니는 남녀 대학생과 직장인에 대해서는 낯설게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모두 고등학생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냉소하는 J.스콧 버거슨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출간했던 '발칙한 한국학'(이끌리오, 2002)에서 "나는 20대의 다 큰 여자들이 가방과 휴대폰에 토끼 인형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게 참 이상하다"는 구절을 보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 외부가 그걸 발견해 주기 전까지, 그 이상한 풍경은, 한 번도 내게 포착되지 않았던 것이다.-182쪽

한 사회나 국가가 지역을 뛰어넘어 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기술적'군사적'경제적 면에서 세계의 최첨단에 서 있어야만 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우수한 인적 자본이며,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인종, 종교, 배경을 따지지 않는 관용이 필요하다. -290쪽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최상의 자기 배려야 말로 타자에 대한 배려와 공공선으로 이어질테니, 대통령은 '정직'과 '국익' 사이에서 하등 갈등할 필요가 없다.-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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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깊숙이 들어오는 햇살이 아직도 따갑다. 어젠 음악회 갔다... 드뷔시와 라벨, 어렵다. 인상파, 지극히 프랑스적인 음악, 익숙한 게 하나도 없다... 그래도 즐거웠다. 오는 사람들의 면면은 화색이 돌고 세련과 우아함이 넘치고 교양이 우러난다. 나또한 그러한 거 같다. 괜히 우쭐해진다. 짜투리시간, 큰 홀에 앉아 개념어총서를 폈다. 음악회에 오는 이들에 대해 개념정리를 해 본다. 내가 파악하는 방식대로, 나의 지성대로 음악회에 오는 이들은 ~~~하다. 그런데 아닐수도 있다. 어떤 개념을 봤을 때, 두께를 생략한 채 인상으로 해석을 하면 안된다란 말이 마음에 남는다.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정확하게 풀어서 쓰고 해석하여 전달하는지, 글쓰는 이들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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