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껴가며 읽었다. 시간도 잠도 여러가지를 아껴가며 읽었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를 나도 읽었다. 재미있어서 눈비비며 늦게까지 읽었다.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격조가 있고 따뜻하면서 맑고 진하다. 적어도 양심있는 인간이라면 이러이러하게 살아야 한다고 책갈피마다 우러난다. 자연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은 곧 사람을 대하는 마음과 동일하리라. 그런데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진정 누구를 위한 일인지, 이 와중에서도 제대로 볼 생각이 없고, 일예로 지하수는 자꾸만 충전된다라는 '회의적 환경주의자'도 있다. '거짓말 중에 가장 고약한 거짓말'이라는 따끔한 일침은 멋졌다... 단풍을 즐기러 들로 갔다. 늦가을 강가를 걸으며 '우리 이정도는 살아야되지 않겠어. 블라블라블라... 이제 골프정도는 쳐야지'하는 말이 책속의 모교수가 '고대 경영대 정도 나왔으면 벤츠나 아우디 정도는 타줘야지'라는 말과 오버랩된다. 지천명을 앞둔 우리들은 아직까지 사회의 시선과 타인의 요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점점 더 그렇다. 수명이 길어져서 그렇단다. 요즘의 지천명은 70살이 맞지 않을까. 어찌 하늘의 뜻을 알리요. 모든 사람이 함께 하는 보편적 기준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때, 물리적인 시간을 말하는 것은 분명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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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 :
나이 오십을 달리 이르는 말. 하늘의 명령(천명)을 안다는 뜻으로, 《논어》위정(爲政)편에 나오는 말이다.
주체성이 확립되는 불혹(不惑)의 나이 마흔을 지나 오십이 되면, 모든 사람이 함께 하는 보편적 기준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때라는 뜻이다. 여기서 보편적 기준이라 함은 <나>라는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개념을 떠나서 모든 사람이 널리 공유하는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원리를 이른다. 공자는 이러한 보편적 기준을 천명 즉 하늘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오십유오이지우학(吾十有五而志于學) 삼십이립(三十而立)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 칠십이종심(七十而從心) 소욕불유구(所欲不踰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