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유... 즐겁게 바빴다... 피곤하다... 어느새 졸고 있었다.... 낮잠을 자고 나니 밤이다.
노릇과 버릇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낯선 자아를 '아주 특별한 손님'으로 공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릇이라는 사회적자아persona의 변덕스러운 교체가 아니라 버릇이라는 완악한 몸의 체계를 바꿔 얻는 생활의 새로운 벡터와 그 정향을 통해서 체계의 욕망들을 넘어선 희망을 일굴 수 있을 것이다. -35쪽
인문人文은 인문人紋인데, 말 그대로 '사람의 무늬'를 뜻한다. 그래서 인문학은 인간의 무늬를 살피고 헤아리는 공부인 셈이고, 마찬가지로 인문학의 진리란 인간의 무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42쪽
자신의 존재가 딛고 선 자리를 살피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살피는 일의 극적인 전형이 공부라면,(하이데거나 김우창 등의 말처럼) 공부란 결국 바닥없음 Bodenlosigkeit을 살피고 견디는 버릇이다. -77쪽
변덕은 허영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허영은 결국 자기 자신을 속이는 분열의 일종이므로 그 분열 속에서 변덕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허영의 주체는 그 주체의 허약성을 가리기 위한 전술로서 변덕에 호소할 수밖에 없고, 간혹 그 변덕이 먹히지 않을 경우에는 냉소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허영과 변덕과 냉소는 삼위일체를 이룬다. -90쪽
자신에 대한, 자신을 위한, 그리고 자신을 향한 거짓말이 어느덧 진지해지면서 내면화되면, 그것은 '허영'이 되고 그는 속물이 된다.-98쪽
진실은 인식의 문제이기 이전에 인정의 문제, 혹은 용기의 문제가 된다.-151쪽
내 삶으로부터 영영 사라져버린 대상의 의미를 새삼스레, 애달프게 깨치는 일도 그것대로 중요하지만, 그 상실의 사건을 통해 내 자신이 변화한 것을 체득하는 일은 몹시 어려운 만큼 더 소중한 체험이 된다.-210쪽
자네Pierre Janet의 지적처럼, "외상적 상황이 만족스럽게 청산되려면 행동의 외적 반응 뿐 아니라 내적 반응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결정한 어휘로써 그 사건을 상세히 설명할 수 있고 이 설명이 개인사의 한 장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232쪽
"사랑은 반복되는 나날과 삶으로부터 우리를 일탈시켜주거나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온 마음으로 기다리게 하는 것으로 우리를 구원한다."(장정일, [보트 하우스])-256쪽
상처받은 자들의 사랑은 그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져나가면서 더불어 이루는 호혜의 합작合作이 아니라 그 상처를 덧나게 하고 강박적으로 반복하고 그에 대한 턱없는 비용과 대가를 요구하는 어리석음의 고독인 것이다. -300쪽
사람무늬人紋의 섬세함과 그 무늬들의 이치인 일리一理의 복잡성, 더 나아가 수많은 일리들이 생태이치적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섭동攝動의 미묘함을 글, 말, 생활 그리고 희망 속에서 부지런히 톺아보며 부사 같은 대화, 부사 같은 글쓰기, 부사 같은 걷기를 실천하는 '부사적 지식인'은 부사라는 메타적 틈새를 응용하여 사람무늬가 지닌 총체적 가능성을 조형해나갈 수 있다.-322쪽
자의식이란 건 우리가 그 무게에 짓눌러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해석해야 할 대상이고 만들어나가야 할 대상일 뿐이니, 지금의 우울로 둔갑한 자의식 역시 우리를 지배하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은 제대로 술 한잔 마신 날인 것이다.-27쪽
발작적이기만 한 사랑의 고통에서 헤어나고 하트 에이스보다 더한 고독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을 구석구석 탐색하고 질문을 해대는 방법밖에 없다. 몸과 마음 함께 말이다. -47쪽
모든 대상은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에 따라 좋거나 나쁜 것으로 인식될 뿐이라는 것도 여행덕에 알게 되었다. -58쪽
내가 무언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을 때면 당시에 겪었던 마음의 상처들이 떠오르고, 내가 죄책감을 느낄 때면 당시의 죄책감이 다시 돌아온다. 내가 오늘날 무언가를 그리워하거나 향수를 느낄 때면 당시의 그리움과 향수가 되살아나곤 한다. 우리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곡 쌓여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 생동감있게 다가온다.-66쪽
얼굴과 손과 입과 몸은 사랑을 만나기 전에는 꿈과 같은, 혹은 단순한 잠재적 가능성의 상태일 뿐이다.-116쪽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122쪽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언젠가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라!'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그런 일을 할 기회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129쪽
'가장 중요한 일은 가장 말하기 어려운 법이다!'-171쪽
나는 왜 개츠비를 읽는가? 세상의 모든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행복했던 과거의 어느 시점을 떠올려주기 때문에 개츠비를 읽는다. 초록 불빛은 있어도 그 불빛에 이르는 방법을 알 수 없는 날, 개츠비를 읽는다. 모든 순간은 상처를 주고 마지막 순간은 목숨을 앗는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에 개츠비를 읽는다. 나의 절망 때문에 우는 날은 개츠비를 위해서도 울 수 있다. 뒤라스식으로 말하면, 눈물 흘리는 것이 쓸모없다 할지라도 눈물은 흘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절망은 만져지는 것이 아니므로. -202쪽
오랫만에 새벽까지 책읽다. 봄바람이 창가까지 와있다. 명동에 나가볼까. 나지막한 구두를 신고 나풀대는 원피스를 입고, 스카프까지 할까... 음악듣고 있다. 2AM은 죽어도 못보낸다고 한다. 내게도 한때 그런 사람이 있었던가...
2004년 로셸 알메이다는 [애도의 정치학]에서 특별히 여성의 애도 작업 4단계를 제시한다. 상실의 현실 수용하기, 고통과 슬픔 통과하기, 망자 없는 환경에 적응하기, 죽은 자에 대한 감정을 재조직하고 삶과 함께 나아가기. 의존 대상이던 배우자를 잃었을 때 여성에게는 특히 자립과 생존의 문제가 더 무거운 현실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28쪽
울음을 잘 참는 사람을 강한 사람이라 여기는 인식은 언제쯤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두려움이나 불안감에서 비롯된 편견이아닐까 싶다. 슬픔을 참는 이들은 대체로 한번 울음을 터뜨리면 자기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일단 울기 시작하면 절대로 그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지배당하기도 한다. 잘 갈무리된 사회적 얼굴을 헝클어뜨리는 순간 자신이 해체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우리는 불안 때문에 슬픔을 감추면서 날마다 더 많은 불안감을 쌓아가고 있는 셈이다. -211쪽
상실한 대상, 과거의 자기를 떠나보낼 때 마음 깊은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일은 내면의 부모 이미지, 내면의 아기도 떠나보내는 일이다. 우리는 오래도록 부모나 교사가 성장기 내내 만들어준 바로 그 모습으로 살아왔다. 우리의 꿈 역시 부모의 꿈이 그대로 주입된 경우가 많다. 우리는 여전히 내면의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 채 부모에게서 배운 생존법을 구사한다.-2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