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의 말 (경쾌한 에디션)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수전 손택 & 조너선 콧 지음,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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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바로 지금 겪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28쪽)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60쪽)

산다는 건 일종의 공격이에요. 세계 안에서 움직이다 보면 온갖 차원에서 공격과 연루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타인이 점유할 수 없는 공간을 점유하고 걸을 때마다 식물군, 동물군, 작은 생물들을 짓밟게 되죠. (82쪽)

사유와 감정의 분리를 타파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요. 이런 이분법이야말로 사실 모든 반지성적 견해들의 기반이죠. 심장과 머리, 사유와 감정, 판타지와 분별....... 전 그런 이항 대립이 옳다고 믿지 않습니다. (102쪽)

내 상상력이 제멋대로 뛰어다니게 두는 건 나를 어디 다른 곳으로 데려 가주는 교통수단 같아요. 정확하게 내가 하는 일, 생각하고 느끼는 것, 내가 사는 방식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게 해주거든요. 그래서 그런 게 좋은 거죠. 그래서 자전적인 글을 쓰지 않는 거고요. (156쪽)

언어가 참 근사한 건 우리가 같은 사물에 대해 이처럼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단어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언어가 무한한 보물인 거에요. (168쪽)

궁극적으로 우리는 거짓되고 선동적인 해석들을 파괴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중략) 저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바 작가의 소명은 온갖 종류의 허위에 맞서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에요...... 역시 마찬가지로 이것이 끝없는 작업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하는 일이죠. 아무리 해도 허위나 허위의식이나 해석의 체계를 끝장낼 수는 없을 테니까요.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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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을 읽는 내내 속이 울렁거린다. 모두에게 적어도 발가락 하나 정도는 꼬투리가 될 만한 이야기라서 그럴까. 이 이야기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나에게로 이어지는, 할머니의 이야기로 전달된다. '할마이는 언니에게 지나간 사람이라고. 지나간 사람이 언니 발목을 잡을 수 없다고(298쪽)', 지나간 사람이 현재의 사람의 발목을 잡으면 안된다면서, 그러면 안된다고 하면서 모두들 부여 잡고 있다. 누군가에게 하는 말은 자신에게 하는 말로 반복된다.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 부질없지 않고 의미가 있음을, 결국 나로 되돌아와서 나에게 집중해야 하는 거다...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 살의 나이기도 하고, 열일곱 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내게서 버려진 내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도. 그 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큰글자책, 453쪽)

'고려거란전쟁' 마지막 회를 보았다. 적군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단단한 마음을 가지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래전 그 상황을 떠올려보면 무너질 거 같은 마음이 먼저 드는데.. 그래서 귀주대첩이 아직까지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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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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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을 위해 그만큼 울었을 거이고 남편을 다시 만나서도 그만큼 행복했을 것이다. 내가 잃은 것은 기만을 버리지 못한 인간이었지만, 그가 잃은 건 그런 사랑이었다. (131쪽)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사람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고. 사람이 저지른 일이야. (162쪽)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206-207쪽)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을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 (266쪽)

아깝다고 생각하면 마음 아프게 되지 않갔어. 기냥 충분하다구. 충분하다구 생각하고 살면 안 되갔어?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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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문체 연습'이다. 이야기 하나로 아흔아홉 가지 방식으로 변주 된 글을 읽을 수 있다. 첫 번째 요약한 이야기, '약기'에서 새로운 형식과 문체로, 무형식으로, 일상에서 사용되지 않는 문체, 외국인이 말하는 문체, 고문으로, 외국어가 침범한 문체 등으로 아흔아홉 개의 문체를 가진 아흔 아홉 개의 글이 있다. 그리고 원문과 해제까지 들어있다. 번역자의 노고가 느껴진다.  

레몽크노 글을 읽다 보면, 생각지 못한 문체의 글을 저절로 수용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수많은 작가들은 제각각 고유의 문체를 가지고 글을 쓴다. 하지만 이들은 독자가 수용할 수 있는 폭에 들어 있다. 

레몽크노 '문체 연습'은 가히 실험적이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글쓰기, 발상의 전환, 무한의 상상력, 실험 정신, 아주 다양한 문체로 독자에게 독서의 폭을 상상 너머까지 넓혀 준다.

하지만 나는 뻔한 문체로 글을 쓴다.  

날씨는 변덕이 심하지만 봄이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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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 연습
레몽 크노 지음, 조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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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고, 핑계였다. 서있는 자도 아니고, 쓰러진 자도 아니고, 앉아서 존재하기를 바라는 자였다. 전날도 아니고, 이튿날도 아니고, 같은 날이었다. 북역도 아니고 리옹역도 아니고, 생라자르역이었다. 부모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어떤 친구였다. 욕설도 아니고, 조롱도 아니고, 의복에 관한 조언이었다. (29쪽 부정해가며)

남자를 생라자르역 앞에서 다시 보았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 나는 그 조금 올려 달라고 그에게 말하는 그는 자신의 외투 위로 단추를 동료와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89쪽, 어절 단위로 늘려가며 바꾸기)

결국 두 시간 후, 생라자르역 앞에서 의복 개량을 그에게 제안하고 있는 우아한 친구 하나와 동행중인 이 인물이 다시 출현하여 내게 준 인상을 어떻게 진술하면 좋을까? (119쪽, 뭐라 말하면 좋을까?)

문학적이지도 않고, 유달리 흥미를 끈다고 할 수도 없으며, 아슬아슬한 모험담도 아니고, 서스펜스가 가득한 추리들도 아니며, 유머러스한 콩트도 아니고, 삶의 지혜나 심오한 철학이 배어있는 에세이도 아니며, 유려한 시나 웅장한 연설도 아닌, 그저 (중략) 어느 날 오후, 정오 무렵에 벌어진 이야기 하나를 우리는 보고 있다. (154-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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