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가 된 독자 -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양병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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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의미의 공간을 넓히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메타포(metaphor)에 기댄다. 메타포란 A 뷴야의 경험을 이용하여 B 분야의 경험을 환히 비추는 방법으로, 언어의 직접적인 전달능력이 부족함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략) 따라서 인간의 재능에서 변하지 않는 부분, 글쓰기와 독서 행위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원리, 즉 메타포를 위해 사용되는 어휘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고 교훈적이다. (10-14쪽)

보나벤투라, 아우구스티누스, 단테에게 독서란 순례자가 계신된 길을 따라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책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 전까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양심을 찌른다. 거기까지가 책의 역할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위대하다고 일컫는 텍스트가 모두 그렇듯, 궁극적 이해는 우리의 능력을 벗어난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아무도 모르므로, 그 곳을 묘사할 단어가 없다. (59쪽)

‘인생=여행‘이라는 비유도 오래된 메타포 중 하나다. 독서란 책을 여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독서. 인생. 여행이라는 트리오는 ‘인생=여행‘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 인생. 여행은 서로에게서 의미를 차용하는 동시에 상대방의 의미를 풍부하게 해 준다. 따라서 독자는 책을 통해 세상을 여행하면서 인생을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단, 인생과 독서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오르한 파묵은 [조용한 집(Silent House)]이라는 소설에서 그 점을 잘 설명했다. "인생은 재출발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시에 운행되는 열차와 같다. 그러나 책은 다 읽은 후에도 헷갈리거나 당황스러울 때는 언제든 처음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당신은 원한다면 몇 번이고 다시 읽어 이해 못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62쪽)

종이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속에서는 ‘제2의 책‘이 생겨난다. 제2의 책은 ‘과거. 현재. 미래의 독서‘와 ‘회상과 기대‘로 구성된 마음속의 텍스트이며, 독서를 돕는 여행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중략) 반면 전자책은 자유로운 여행 공간이 아니다. 개념상으로만 봐도 현실감이 부족한 가상공간이다. 한마디로 유령 같은 존재여서 전통적인 연상 기능이 부족하다. (71쪽)

전광석화 같은 스크롤과 쓸어 넘기기가 판치는 오늘날, 우리는 천천히, 깊게, 철저히 읽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종이책이 됐든 전자책이 됐든 독서 여행의 목적은 ‘읽은 내용을 알뜰히 챙겨 귀환하는 것‘이다. 그런 독자라야만 진정한 의미의 독자라 할 것이다. (73쪽)

상아탑의 이중적 이미지, 즉 ‘학구적이고 호젓한 안식처(위험이 수반됨)‘와 ‘책임과 행동을 회피하는 은신처(죄책감이 수반됨)‘라는 모순된 이미지는 [햄릭]에서 잘 드러난다. (96쪽)

햄릿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어서가 아니라 학문적 가르침에 잔뜩 얽매여서다. ‘대학의 교리문답서를 모두 잊고, 현실의 경험에서 다시 배워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108쪽)

그람시는 묻는다. "비판의식 없이 생각하는 것과,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신념을 의식적. 비판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옳은가?" 이것은 햄릿의 유명한 말을 무의식적으로 반영한 것이지만, (중략) 그람시의 이분법은 햄릿에게 두 가지 독특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나는 상아탑이라는 서재에 머물면서 독서의 한계가 소장한 책과 일치하는 독자로 남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열린 공간으로 독서의 범위를 확대해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안한 세상책과 맞닥뜨리는 것이다. (123쪽)

오늘날 상아탑이라는 독서 장소는 또 하나의 공간을 상징하게 되었으니, 바로 인터넷 서핑 공간이다. 현대사회는 속도와 간결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그 때문에 느리고 강렬하고 사색적인 독서는 비효율적이고 케케묵은 것으로 여긴다. 다양한 종류의 전자책은, 하나의 텍스트를 오래도록 진득하게 음미하는 대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짧게 단편적으로 부지런히 쪼아 먹으라고 부추긴다. (중략) 그러나 사실, 그들은 호두 껍데기 속에 갇혀 무한한 공간의 왕들을 헤아리고 있을 뿐이다. 햄릿이 그랬던 것처럼. (125-126쪽)

이상한 운명에 얽매인 독자가 할 일이라고는, 앞에 놓인 책에 눈을 고정하고 한 페이지씩 정독하는 것밖에 없다. 그건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무기력하고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책벌레는 주변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심지어 자신의 몸조차 종이에 감싸여 있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그 모습이 마치 고치와 비슷해 나중에 나비처럼 자유로워지리라고 상상하기 쉽지만, 그건 착각이다. (130쪽)

독자는 책바보와 책벌레라는 이중의 굴레에 갇혀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는 책바보가 되고 ‘걸신들린 독자‘는 책벌레가 되는데, 둘의 공통점은 ‘책에 사로잡힌 독자‘에 대한 은유라는 것이다. (147쪽)

여행자가 됐든, 상아탑 거주자가 됐든, 책벌레가 됐든, 각각의 메타포에 부여된 의미는 오랫동안 변화되어 왔다. (중략) 우리는 ‘독서하는 피조물‘이다. 단어를 섭취하고, 단어로 이우러져 있으며, 단어가 존재의 수단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단어를 통해 현실을 파악하고, 자아도 확인한다. (167-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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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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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아버지의 그 회상은, 군도로 인간을 내려치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 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현대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를-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51쪽)

아버지는 전쟁터에서의 체험에 관해 거의 얘기하지 않았다. 당신 자신이 직접 손을 댄 일이든 또는 그저 목격한 일이든. 아마 기억도 하고 싶지 않고 말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만큼은, 가령 서로의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 해도, 피를 나눈 아들인 내개 말해서 전하고 어떤 형태로 남겨야만 한다고 느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이는 나의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54쪽)

내가 이 개인적인 글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은 딱 한 가지뿐이다. 딱 한 가지 당연한 사실이다.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다. (92-93쪽)

(이어서)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된리라. 가령 그 한 방울이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 개체로서의 윤곽을 잃고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사라져간다 해도.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가기 때문에 더욱이. (93-95쪽)

아버지의 운명이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경로를 밟았다면, 나라는 인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라는 건 그런 것이다-무수한 가설 중에서 생겨난 단 하나의 냉엄한 현실.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있는 피가 되어 흐르다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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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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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것은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더는 무엇도 새롭지 않고, 낯선 도전이나 경험을 거부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익숙해지는 것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나의 반경을 축소하여 그 좁은 틀 안에서만 세상을 사는 것. 그리고 나를 넓히고 넓혀 세상 어디에 가든 낯섦이 껄끄럽거나 아프지 않게 되는 것. 그래서 그 낯섦을 순리로 보고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르는 것. (16-17쪽)

선진국이란 들춰보지 않아도 약속대로 사회 구석구석이 제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사회를 말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그 무엇하나 법대로, 원칙대로, 약속대로 이행되지 않고, 뒷구멍을 통해 수를 쓰면 다른 결과가 나오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독재의 기억이 비정상적인 힘. 법 이외의 관행에 의해 사회가 굴러가는 것을 내버려 둔 것 같다. (128쪽)

나는 이제 의회에서 본격적으로 ‘결선투표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1차에서는 각자 자유롭게 지지하는 정당을 찍고, 과반 득표자가 없는 경우 2차로 넘어가 최다 득표자 두 명을 중심으로 성향이 맞는 당끼리 헤쳐 모여 진검 승부를 가리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175쪽)

프랑스가 인류에게 기여한 가장 큰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혁명‘이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면 감옥을 부수고 왕의 목을 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보여주었고,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세상은 드디어 왕을 없애기 시작했다. (210쪽)

높은 곳에 있을수록 덜 자유롭다. 떨어지기를 두려워하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높을수록 진실에서 멀어진다. 발이 땅에 닿지 않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자들에게는. 머리를 날려 허공에 떠 있는 자들이 현실을 깨닫도록 만들어야 하는 고단한 임무가 있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계급투쟁이라 불렀다. (240쪽)

세상의 모든 분노는 정당하다. 그것이 분로라 불린다면, 짜증도 화풀이도 아니고 분노라면, 그것은 표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분노를 표출할 때 그 방향은 정확해야 한다. 엉뚱한 사람에게로 향한 분노의 화살은 피해자인 서로를 괴롭히고, 우리를 결코 그 분노에서 헤어날 수 없게 만든다.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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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번지는 곳 미국 서부 - LA,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라스베가스, 시애틀 In the Blue 12
백승선 지음 / 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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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곳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소재로 한 ‘펄떡이는 물고기처럼‘FISH 에 소개된 작가이자 비평가인 존 가드너의 글 중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의미란, 수수께끼의 정답이나 보물찾기처럼 어쩌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미란, 당신 스스로 자신의 삶 속에서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의 과거로부터, 당신의 애저오가 충성심으로부터 그런 것들로부터 당신이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중략) 비린내 나는, 단순한 일을 하는 "일터"를 "놀이터"로 그 의미를 바꾼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생선가게들, 그래서 꼭 와보고 싶었다.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동차로 약 4시간 걸리는 캘리포니아 주 중부 시에라네바다Sierra Nevada 산맥 서쪽 사면에 위치한 산악지대에,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에 출몰하던 회색 곰을 지칭하는 말에서 유래한 요새이다. (중략)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기암 절벽들로 그중에서도 높이 1000m의 거대한 화강암이 수직으로 솟아있는 지상 최대의 단일 화강암인 엘 캐피탄El Capitan이다. 터널 뷰Tunnel View에 서면 요세미티에서 가장 유명한 ‘엘 캐피탄‘이 왼쪽에, 그리고 오른쪽에 ‘브라이달베일 폭포‘를 볼 수 있으며, 저 멀리로 유명한 삼각형 모양의 ‘하프 돔Half Dome‘이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



크고 작은 언덕들로 인해 구불구불한 샌프란시스코. 이곳을 ‘낭만의 도시‘로 만든 일등 공신, 케이블카. (중략) 북동쪽에는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인 붉은색의 골든게이트 브리지Golden Gate Bridge, 금문교)가 있으며 남쪽으론 산자락을 따라 난 도로의 양쪽으로 집을 지은 트랙하우스Track House를 볼 수 있다. (중략)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수많은 요소요소들. 많은 도시를 가보았지만 다시 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은 이곳뿐이다.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세쿼이아 국립공원의 나무들은 보통 높이가 50m 이상이며 무게와 부피 또한 거대하다. 이 정도면 뿌리가 땅속 깊이 박혀 있을 듯 한데, 이곳 세쿼이아 나무들은 그렇지 않다. (중략) 식물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얕은 뿌리를 가진 나무는 사방으로 수십 미터를 뻗어나가 다른 나무의 뿌리와 엉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나무와 연결해 서로 의지하며 바람과 폭풍을 견디었던 것이었다. 수많은 세쿼이아는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이어져 있었다. 세쿼이아 국립공원을 소개하는 책이나 엽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터널 로그Tunnel Log라고 부르는 거대한 나무 터널이다. 1937년 차도로 쓰러진 세쿼이아 나무를 치우지 않고 높이 2.44m, 너비 5.18m의 터널을 뚫어놓아서 터널을 만들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말이다. (세쿼이아 국립공원Sequoia National Park)

데스밸리 국립공원 서쪽 아래에는 나무와 풀이 자라지 못하는 레이스 트랙 플라야Race Track Playa라고 부르는 건조한 곳이 있다. 그곳에는 항해하는 돌Sailing Stone이 있다. 작은 돌부터 무게가 최대 300kg이나 나가는 돌들. 이 항해하는 돌이 굴러가며 만든 흔적 때문에 유명하다. 돌들이 굴러가며 만든 흔적은 모두 방향도 다르고 이해할 수 없는 기하학적 곡선 등 다양하다. (데스 밸리Death Valley National Park)

대밪에 취해 걸어다녀도, 만난 지 하루 만에 결혼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하루 만에 전 재산을 날리기도 하고 단 몇 시간 만에 일확천금이 생기기도 한다. 라스베이거스는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다.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매혹적인 도시다. (라스베이거스Las Vegas)

연한 붉은빛을 띤 수천 개의 작은 절벽들이 한데 어우러져 고요히 서 있다. 마치 자연이 만든 원형 경기장에 서서 다시 시작되는 한편의 드라마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은,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에서 볼 수 있는 붉은 돌기둥, 후두Hoodoo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

163번 도로의 ‘밸리 드라이브‘ 진입 도로 입구를 지나쳐 북동쪽으로 13km 더 달리며 도착하는 곳. 이 곳에 오면 누구나 보게 되는 모뉴먼트밸리를 대표하는 세 개의 바위가 있는 풍경이다. 왼쪽으로부터 웨스트 미튼 뷰트West Mitten Butte, 1882m), 메릭 뷰트(Merrick Butte, 1892m), 이스트 미튼 뷰트(East Mitten Butte, 1898m)라는 이름의 바위산. 야구 글러브 같다 해서 붙여진 미튼이지만, 주전자 같기도 하고 코끼리 같기도 하다. 이름은 장갑이지만 보는 사람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바위의 모습들.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앞 다투어 소개하는 곳. (중략) ‘지질학의 보물창고‘라고도 불리는 그랜드캐니언을 여행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림Rim이라고 부르는 계곡의 가장자리를 따라 설치된 전망대에서 협곡을 내려다보며 장관을 감상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협곡 아래로 직접 내려가 그 사이를 걷는 트래킹이다. 사우스 림(남쪽 가장자리)의 전망은 반드시 보아야 하는 곳으로, 사우스 림은 그랜드캐니언 빌리지를 중심으로 서쪽은 허미츠 레스트, 동쪽은 데저트 뷰로 나뉘는데 그 중에서도 마더 포인트는 차로 이동할 수 있는 곳으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웨스트 림(서쪽 가장자리)은 나바호 족 인디언의 사유지로, 이용료가 비싼 것이 흠이지만 스카이워크나 헬리콥터를 타고 협곡을 둘러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이스트 림(동쪽 가장자리)의 데저트 뷰 포인트에는 ‘인디언 첨성대‘라 부르는 전망대가 있다. (그랜드케니언Grand Canyon)

할리우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극장이다. 디즈니사에서 운영하는 엘 캐피탄El Capitan 극장을 비롯하여, 가장 먼저 상영하는 곳으로 유명한 그로만즈 차이니즈 극장Grauman‘s Chinese Theatre 그리고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돌비 극장(구 코닥 극장)이 영화의 사아징인 이곳 할리우드를 지키고 있다. 돌비 극장은 아카데미 시상식뿐만 아니라 극장 앞 할리우드 대로와 바인 스트리트Vine Street 까지 약 4km에 이르는 명예의 거리Walk of Fame로도 유명한 곳이다. (할리우드Hollywood)

산타모니카 비치Santa Monica Beach를 상징하는 490m 길이의 나무교각Santa Monica Pier은 1909년에 만들어진 서부해안에서 가장 오래된 부두로 영화 ‘스팅‘이 촬영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중략) 산타모니카는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4000km에 이르는 최초의 대륙횡단 도로인 -루트 66으로 더 유명한 - 66번 도로가 끝나는 지점이다. (산타모니카 비치Santa Monica B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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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산책 - 내 마음 같지 않은 산티아고 순례
장 크리스토프 뤼팽 지음, 신성림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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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내가 그랬듯 우거진 풀숲 사이로 이어지는 오래된 길과 그 위로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고독한 순례자들을 상상한다. 하지만 이 엄청난 착각은 순례자들이 알베르게에 묵는 데 꼭 필요한 서류인 그 유명한 ‘크레덴시알‘을 찾으러 가는 순간 바로 깨어진다. (9쪽)

카미노가 특별한 점은 산타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이 처벌이 아니라 자발적인 시련이라는 데 있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이 생각은 실제 경험이 시작되면 바로 반박된다. 카미노를 걷는 사람이라면 언제가 되었든 결국 자신이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카미노 그 자체가 무엇이냐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4쪽)

카미노를 걸으면 세월 저 밑바닥에 숨어 있던 감정들이 되살아 날 거라는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사실 그곳에선 오히려 세상에 대한 환멸이 한층 깊어진다. (중략) 간단히 말해서, 꿈과 환상의 영역을 떠나면서 카미노는 불현듯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근육통에 붙이는 파스, 평범한 세상의 단면, 육체와 정신의 시련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기에 약간이라도 경이로움을 보태려면 무척 힘겹게 분투해야 할 것이다. (42쪽)

일주일간의 행군은 아직 산책에 불과하다. 확실히 길고 고통스럽고 평소와 달랐지만, 일주일은 한 번의 휴가 일정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그것을 넘어서면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서게 된다. (중략) 다 그만두고 싶다는 유혹이 굴뚝같았다. 무엇보다 볼 만큼 다 보지 않았는가. 순례라는 게 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똑같은 나날을 되풀이하는 것일 뿐 다른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 같았다. (88쪽)

길을 걷는 행복은 바로 그런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저기 위쪽 차도 위에서 현재라는 장애물 없이 전속력으로 차를 몰고 가는 사람들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그런 순간들 말이다. (99쪽)

카미노를 걷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생각을 한다. 알고 있던 모든 지표는 사라지고, 너무 멀어서 접근이 불가능해 보이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주변을 둘러싼 공간의 광막함 때문에 마치 자신이 벌거벗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상황은 오직 야외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형태의 자기 성찰에 적합하다. 그럴 때 우리는 홀로 자신을 대면한다. 친숙한 것이라고는 생각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생각은 대화를 재현하고 추억을 되살려주며, 우리는 그 속에서 어떤 반가운 존재와 가까워짐을 느낀다. (중략) 걷기는 생각을 자극해 생각을 시작하게 하지만, 거꾸로 생각에서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중략) 걷는 사람은 몇 시간 지나면 또다른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바로 그의 육체다. (중략) 평소에 무시하고 지냈던 기관들, 생리적 욕구, 불쾌감은 육체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 결국에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145-147쪽)

순례는 영광스러운 기독교 왕국이라는 사라진 세상의 유물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과거에 그것이 어떠했을지 경험할 특별한 기회를 준다. 성소와 에르미타에서, 수도원과 작은 예배당에서, 도보 여행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환상을 품을 수 있다. (중략) 기독교가 억압의 수단으로 변하기 전에는 원래 놀랄 정도로 해방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을 내가 깨달은 것은 바로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다. (중략) 그 수 인류는 새로이 탐험하는 장소마다 그리스도가 보초를 설 수 있도록 잊지 않고 신성한 안식처를 추가하면서 한없이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나 도보 여행자는 이 기독교의 그물이 골수까지 이교도로 남아 있었던 사람들을 얼마나 통발 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는지도 직접 확인하게 된다. 발데디오스 수도원을 떠나면서 나는 그것을 경험했다. (162-164쪽)

산티아고 순례자는 더 혼합주의적이고 더 유동적이고 교회의 테두리를 훨씬 벗어난 이 시대의 영성과 잘 어울린다. 산티아고 길에 뛰어들었던 많은 이들이 절제, 자연과의 합일, 자아의 성숙 같은 가치에 이끌렸다. 이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가 처음 시작된 시대에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가치들이다. 이런 순례자들의 행보는 기독교적이라기보다는 포스트모던하다. 따라서 아마 다른 종교가(아시아나 중동의 순례지 같은 이미지로) 산티아고를 내세웠더라도 그들은 똑같이 그곳을 찾았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184쪽)

카미노를 걷는 동안 산티아고에 대해 상상할 시간이 많았다. 상상 속의 산티아고는 대성당과 그 앞에 있는 오브라도이로 관장으로 압축되었다. 그러나 진짜 산티아고에 가까운 곳에 도착해 한 걸음씩 도시 안으로 ㄷ르어가면서, 순례자는 제일 먼저 폭스바겐 전시장과 슈퍼마켓, 중국 식당들을 마주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거리에서 마추치는 현지인들은 사도 야고보에 대해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제 할 일에만 전념한다. (263쪽)

마침내 도착한 오브라도이로 광장은 여행의 끝이자 순례자 표지가 처음 시작되는 지점이다. (중략) 카미노는 오만이 아닌 긍지로만 가득 차 있으며, 요구하지 않고 기억하기만 한다. 카미노는 인생처럼 좁고 구불거리며 끈질기다. (270-271쪽)

순례자들의 대미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화합의 순간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점들, 다른 여정들, 각자 그 길을 걷기 위해 겪었던 시련들을 몽땅 집어넣고 녹이는 도가니이자, 기도의 시간이자, 단순음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결합이다. 미사 의식은 사람들이 꽉 들어찬 대성당에서 진행된다. (273쪽)

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여행이 그저 여행에 불과해서 잊어버릴 수 있다고, 혹은 상자 속에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고 편리한 착각이다. 나는 카미노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정말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생생하게 살아 있고, 지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여행 전체를 들려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해도 핵심은 빠져 있다. 나도 알고 있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나는 머지않아 다시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아마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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