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마리 루티 지음, 이현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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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명쾌한 정답이란 없으며, 바로 이 점이 인간이란 존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는 것 (중략) 그렇기에 우리는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동기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28쪽)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49쪽)

삶에는 그 누구도, 또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나 열망이, 우리가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치명적인 상실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이나 열망은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각인을 남겨 우리의 내면을 구성하는 주요 특징이 될 수도 있다. (90쪽)

욕망은 분명 평생에 걸쳐 진화한다. (127쪽)

자신을 비참하게 여기던 마음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으로 바꾸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내면에 쌓인 자기혐오의 앙금을 지워내야 한다. (138쪽)

현대의 도시 생활, 통신 기술, 장거리 이동의 용이는 때때로 우리가 낯선 사람의 팔꿈치를 끊임없이(그리고 마지못해) 문지르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사람들 간의 거리를 줄어들게 했다. (중략) 즉 사람들이 사방에서 우리 공간을 침해해 올 때는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161쪽)

긍정적인 사고가 우리 삶의 객관적인 상황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중략) 생각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다. (180쪽)

기질의 부름을 받는 것은 좋은 삶의 관습적인 정의에만 매여 있던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준다. (중략) 기질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을 해 나가길 원한다. (218쪽)

우리가 아무리 즐거운 경험을 갈망한다고 하더라도, 과하지 않은 수준이어야지 비로소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 선을 넘는 순간 우리는 고뇌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삶에서 항상 절제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227쪽)

우리는 낡은 자아의 모습을 올바르게 애도하는 법과 잘 버리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우리가 계속해서 삶을 의미 있게 느끼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258쪽)

우리가 가진 열망을 실제로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할 때, 우리는 ‘초월성‘을 일상생활 깊숙이 초대하게 된다. (280쪽)

삶의 기술은 무아지경과 절제력의 조화를 요구한다. (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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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3 소설 보다
강보라.김나현.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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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그대로였다. 역시 나이가 문제인 걸까. 나는 자책하듯 속으로 되뇌었다.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쉽게 어울리고 쉽게 헤어졌다. 지금처럼 남을 의식할 필요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었다. (10쪽)

‘나‘가 여행을 자주 다니던 이유는 ‘그 장소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65쪽)

그 실속 없는 하루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그의 하루가 아니라 나의 하루였다. (102쪽)

그를 보고 있으면 과연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게으른 듯하지만 어느새 주어진 일을 능청스럽게 해내고, 사람들에게 기분 나쁜 농담을 던지기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누구와도 적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109쪽)

어제와 비슷한 오늘도 괜찮은 것인지 아무에게나 묻고 싶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눈앞에는 없었다. 정말로 오긴 오는 것인가. (134쪽)

이 소설에는 ‘삶은 통제되지 않는 것‘ 혹은 ‘삶은 우연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는 개인적인 믿음이 반영되어 있어요. 사실 계획을 세우는 일이란 통제되지 않는 삶을 손에 쥐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거든요. (139쪽)

잠을 오래 자다 보면 고즈넉하게 늙는 기분이 들었다. 치열하지 않아서 좋았고 남몰래 시간이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151쪽)

그렇게 신중하게 골라내며 선별한 단어가 종국에는 나를 초라하게 또는 아프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162쪽)

사람들은 과연 언제나 안전한 방식으로 관계를 꾸릴까요?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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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2 소설 보다
김채원.성혜령.현호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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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는 삶을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순서나 차례이니 그러므로 삶에 해가 되는 기억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기 아니, 질서는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어. (11쪽, 빛 가운데 걷기)

얼마나 미운가. 노인은 생각했다. 어렵게 노력하여 죽은 그 애가 나는 얼마나 싫은가. 그런 것은 무료한 시간을 잘 보내다 갑자기 두 발을 구를 때의 기분처럼 잘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잘 알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21쪽, 빛 가운데 걷기)

지우고 쓰는 일의 반복이 백지 위에서의 걷기일 수도 있겠죠. 저에게 걷기라는 행위는 한 인간의 존재 방식, 살아 있음을 계속해서 감지하고 이어나가는 집요한 움직임과 관계 맺고 있습니다. (38-39쪽, 빛 가운데 걷기 인터뷰)

햇빛이라는 ‘자연‘은 언제나 무구하고, 숨고 싶은 작은 사람에게조차 동일한 빛을 내리쬐니까요. "보이는 것을 보는 일과 보이는 것이 되는 일, 혹은 보일 수 있는 곳에 있는 일"이란 저에게 있어 깨끗하고 환한 ‘빛‘이라는 존재와 따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고 저의 오랜 화두입니다. 인간에게 적으로 여겨지는 무구한 빛. (42쪽, 빛 가운데 걷기 인터뷰)

뭐가 잘 안되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말과 행동을 자꾸 반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것 같은데 다른 것. 다른 것 같은데 같은 것. 그런 분간이 어려운 것들을 표현할 때에도 반복이 유용하고, 반복을 통해 발생하는 문장의 주고받음, 일종의 리듬을 경험하는 것이 저에게 의미가 있고, 즐겁기 때문에, 앞으로도 소설을 쓸 때 반복을 많이 해야겠다고 혼자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52쪽, 빛 가운데 걷기 인터뷰)

어떤 부모도 자식을 끝까지 책임을 질 순 없는 거 아냐. 자식이 해야지. 주고받고. 그게 순리 아닌가? 내가 지금 내 자식한테 계속 줄 때는 지났지. 나는 우리 어머니한테 갚을 때고. 그걸 하려고 여기 있는 거고. (67-68쪽, 버섯 농장)

경찰은 부모님의 시체를 찌그러진 자동차 안에서 꺼낼 때 어쩔 수 없이 약간의 훼손이 생겼다고 했다. 기진은 진화와 함께 병원의 시체 안치소로 갔다. 자주 싸우고 그보다 더 자주 서로를 무시하면서 살던 부모님이 같은 날 함께 죽었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느꼈졌다. (78쪽)

두 사람이 단지 경제적 조건 때문에 멀어진 건 아니지만, 그 차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중략) 선을 넘어오는 살마들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86쪽, 버섯 농장 인터뷰)

기진의 부모의 사고사에서 언급되듯, 자신이 초래한 것이 아닌 죽음에마저도 신체의 일부를 훼손당하는 방식으로 ‘삶‘이 수습됩니다. 누군가의 삶에 대한 비의지가 필연적으로 타인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면 역으로 부러 타인을 해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수습하는 알리바이로 삼고자 하는 것이, 진화가 남자의 사체에 손을 댄 까닳이 아닐까 추측해보았어요. (중략) 의지적 훼손은 앞으로 이들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게 될까요? (90쪽, 버섯 농장 인터뷰)

"보리차, 숭늉, 된장국 따위에서 나는 맛이나 냄새와 같다." 구수함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보리차와 숭늉과 된장국의 공통점은 최후의 음식이라는 것뿐이었다. 훙년이 들어 먹을 게 없을 때, 몸이 아플 때, 마음이 아플 때. 내 연명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라고 여겨질 때, 그러니까 내가 음식을 먹고서 하루를 더 살아가는 게 이 세계와 주변에 누가 되는 게 거의 확실해졌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할 수 없는 밥상.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낮은 밥상의 맛이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구수한 맛이란 먹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는 유일한 맛. 현실적으로도 구수한 맛은 최후의 맛이다. (104쪽, 연필 샌드위치)

영적인 탯줄은 언제 끊어지는 것일까. 아마도 딸이 엄마가 되는 그 순간일까? 그 순간에 엄마는 자신과 자기 엄마를 이어주던 그 탯줄을 끊고 나와의 결속을 선택한 걸까? 사람의 배꼽이 하나인 이유는 그 때문일까? 나는 어쩌면 할머니와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는 건 엄마가 아니라 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110-111쪽, 연필 샌드위치)

그리고 침대 위헤서 눈을 떴다. 오래된 우울이 느긋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오고 낯선 슬픔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머릿속을 파고드는 이른 오후였다. (중략)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만 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다. 그러므로 나를 잠에서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손을 움켜쥐는 것이다. 헛되이 바삐 움직이는 손가락을 꽉 붙들어 때늦은 자상함과 의미 없는 보살핌이 만들어내는 기만적인 보람을, 비겁한 기쁨을, 지어낸 행복을 깨뜨리는 것이다. 미처 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았던 일들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 나를 다시 끌어다놓는 것이다. 글로 씌어진 좋은 이야기들이 내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침대 밑으로 툭툭 떨어진다. 밥상을 차려 온 엄마의 발등을 멍들게 한다. (114-115쪽, 연필 샌드위치)

먹고, 자고, 숨 쉬고,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들에 관한 의심이 생의 전반에 걸쳐 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먹는 게 맞나‘ ‘이런 식으로 숨 쉬는 게 맞나‘를 생각하며 방 한구석에서 겁에 질려 있던 어린이가 삼십대 여성이 되며 나름대로의 "단호한 주장"이랄지 "오랫동안 간직해온 진심"같은 것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요. (117쪽, 연필 샌드위치 인터뷰)

한국 사회에서 삼 대에 걸친 여성들이란 무엇보다도 함께 먹고, 서로를 먹이고, 서로에게 먹히는 존재이기 마련이니까요. 자연히 ‘돌봄‘이라는 주제도 떠오르고요.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건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한데요. 삼 대에 걸친 여성의 관계란 무언가 좋은 것이 하나 그 삼각형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게 당연히 내 몫이 아니라고, 일단 내 몫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관계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121쪽, 연필 샌드위치 인터뷰)

소설에는 다섯 개의 제법 긴 각주가 달려 있습니다. (중략) 이렇게 달린 주석들은 독자에게 ‘쓰는 자‘의 존재를 환기시킵니다. ‘쓰는 자‘는 아무리 거식증으로 고통받으며 얕은 잠 사이에 놓인 꿈과 기억의 공간을 헤매고 있을지라도,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이 모든 과정을 글로쓰고 주석을 달아둘겄입니다. (중략) 각 이야기마다 그것에 어울리는 형식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찾아내려는 방식들이 있을 텐데, 저는 [연필 샌드위치]를 쓰며 이 소설의 정념이나 일화들이 잘 정돈되지 않고 울퉁불퉁하기를 바랐고 이를 통해 읽는 이가 자신의 정념이나 사건들이 이루는 톱니에 이 소설의 톱니를 일부 맞추어 돌릴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여성들의 이야기, 엄마와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평면적이라고 평가되는 경우가 많기에 어디까지 입체적일 수 있을지 보여주고 싶었고 스스로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23-125쪽, 연필 샌드위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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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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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문장은 그 자체로 완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장을 다른 맥락 속에 위치시킬 때, 다른 문장들과 만나게 할 때, 완벽함이 생각만큼 대단한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된다. (10쪽)

언젠가 이탈로 칼비노가 정의한 것처럼,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고,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하기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보다 더 적절한 책은 없다.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 아니다. 프루스트를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프루스트를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 다만 끝까지 읽은 사람이 극히 적을 뿐이다. (40쪽)

그리하여 연필 깎기의 기술은 삶의 기술이 된다. 연필 촉을 완벽하게 가다듬는 것조차 불가능한 게 평범한 우리들의 삶이다. 어디 그뿐인가. 깎으면 깎을수록 짧아지는 연필처럼,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할수록 우리의 남은 시간은 점점 짧아질 뿐이다. 그것이 바로 향나무와 흑연의 쌉싸래한 연필밥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연필을 깎아야 한다. 그럼에도 삶을 살아야만 한다. (81쪽)

단지 한 권의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평소에 별 생각 없이 스쳐지니가던 이들의 삶에 대해 뭐라도 아는 양 이야기해도 좋은가? 그것은 그들의 땅 뿐만 아니라 이야기까지 빼앗는 일이 아닌가? 그러니 내가 아는 이야기를 하자. (114쪽)

배움이란 "자동판매기처럼 동전을 넣으면 ‘자격‘과 ‘졸업장‘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스승이란 삼각김밥처럼 먹기 편하게 포장된 조언과 위로를 건네는 존재가 아니다. 한마디로, 스승은 기성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관계, 차라리 연애에 가까운 무엇이다. 모두가 사랑하는 연예인보다는 나 혼자만 사랑하는 연인이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처럼, 필요한 것 역시 화려한 ‘스펙‘의 멘토가 아닌 나만의 스승이다. (180쪽)

책과 나의 관계를 한번쯤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책은 내게 단지 밥벌이에 불과한가? 아마도, 하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엔 얽혀 있는 감정의 역사가 너무 깊었다. 그렇다면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고, 나아가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하지만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중략) 그 무렵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를 읽었다. 존 레논을 닮은 주인장, 윤성근 씨의 네 번째 책이다. (중략) 그가 주목한 것은 낯모르는 독자들이다. 그들이 책의 면지에 써내려간 짧은 글이다. (중략) 그들의 짧은 사연들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책을 읽었던 마음을, 책과 맺었던 관계를, 그 처음을, 어느덧 까맣게 잊어,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그때의 시간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내 밥벌이의 고단함을 핑계로 점점 무감해져만 가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189-190쪽)

이제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서평이라는 게 소개와 설명을 위해 존재하는 건데 이렇게 어정쩡하게 할 거냐고. 나는 이렇게 대꾸하겠다. 서평을 읽는 게 읽을 만한 책을 고르기 위해서라면 서평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고 그냥 책을 읽으시라고. 나는 다만 "이 책을 읽으세요!"라고 말하고 끝내기에는 이 지면이 너무 넓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말들을 늘어놓았을 뿐이라고. (205쪽)

금: 그렇다면 왜 책을 읽는가?
연: 읽지 않으면 그조차 남지 않으니까. 리베카 솔닛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책이 없으면 못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책을 읽어도 좋고 안 읽어도 그만인 사람이 있는 한편 책의 마법에 걸려 다른 세상에, 책들이 사는 세상에 사는 사람이 있다.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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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박숙자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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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읽어야 하는 것은 그들의 목소리이고 그들의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과 내 삶을 연결하는 일일 것이다. (6쪽)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이 고백체가 되어야 했던 시대, 그럼에도 귓속말로 전할 수 있는 가족이 귀했던 시대. 이 난민의 경험은 악착같은 생존의 서사로 대한민국의 유전자가 되었다. 살아남아야 했다. 그리고 잘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나 살아남았단 사실이 마냥 자랑스럽지는 않았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라고 누군가 말해주었으면 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귀한 일이라고 말이다. (46-47쪽)

1960년대 청년들의 삶은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다. 민주주의를 배우고 학습한 이들에게 4.19혁명 이후의 세계는, 더 이상 참아낼 수 없을 정도로 환멸스럽다. "무관심 하라"라는 명령은 위협적인 동시에 억압적이었다. 누군가는 이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무관심하게 굴었는 데 그 모습은 흡사 괴물과 다르지 않았다. 괴물이란 언제든지 발각될 수 있는 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잉여인간이다. 괴물의 존재는 이 국가 내에 거주하는 자가 감수해야 할 몫일지도 몰랐다. ( 114-115쪽)

도처에 넘쳐흐르는 헐리우드식 사랑, 그럼에도 몸빼 바지를 입고 억척스럽게 살아내야 하는 일상, 그리고 여공과 식모로 전전하며 소녀 잔혹사를 재현하던 이 시기에 "나는 몰라요"로 일관하는 소녀는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므로 소녀들이 단지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못해 아직도 완구점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스무 살 남짓 처녀가 서울 한복판 길거리에서 술 마시는 침팬지를 바라보고 있고, 중학생 소녀는 완구점 불이 꺼질 때까지 그 가게 앞에 서 있었던 사정은 실은 하루키 식 표현대로라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지"라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다시 말해 "여성"이 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아니 1960년대 ‘여성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이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152쪽)

삼중당문고는 돈이 없어도 그리고 나이가 어려도 가질 수 있는 책이었다. 내 몫의 책이었고 내 몫의 언어를 흉내 낼 수 있는 거울이었다. 주머니에서, 그리고 책가방이나 손아귀에서 삼중당문고를 놓지 못한 것은 베르테르의 번뇌이거나, 헤스터의 위반, 혹은 갈매기의 꿈 같은 것이었다.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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