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기행 2 - 뉴욕, 한낮의 우울 시화기행 2
김병종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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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거리 건너마다 위치한 박물관과 미술관뿐 아니라 브로드웨이와 소호, 첼시, 웨스트사이드와 브롱크스, 할렘을 거느린 뉴욕, 그야말로 다양하고 거대한 세트장이라 할 만하다. 그 위에 시나리오 작가가 스토리의 얼개로 지붕만 덮으면 영화로 완성될 정도다.
영화가 인생이고 인생이 곧 영화라는 말이 맞는다면 뉴욕은 대체로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도시다. 영화 같은 인생, 인생 같은 영화 그 자체이기 때문에. (18쪽)

샌프란시스코에서 드넓은 초원 같은 야채밭을 차로 두 시간쯤만 지나면 검은 숲 사이 군데군데 하얀 모래톱이 드러나고, 거기 수줍은 듯 돌아앉은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한없이 부드러운 모래밭과 고요히 흐르는 물과 숲속의 길, 캐멀비치에서 스페니시베이라고 부르는 해안까지 따라가노라면 사슴이 한가하게 풀을 띁는 연둣빛 풀밭과 햇살이 반사하는 하얀 조약돌에 부리를 씻는 물새가 보인다. (140쪽)
캐멀비치와 페블비치를 지나 스페니시비치까지 이어지는 ‘17마일 드라이브‘ 코스는 미국 서부의 대표적 경관 여행지로 꼽힌다. (142쪽)

그랜드캐니언, 유타주를 가로지르며 멀리 애리조나주까지 뻗어나간 대협곡. 억겁의 세월 동안 바람과 물롸 공기가 만나고 틀어지며 만들어낸 장엄한 풍경.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며 단아한 유럽 도시 문명의 전통을 여지없이 깨트린 미국에서 그랜드캐니언은 반전도 그런 반전이 없다. 황토와 괴석 그리고 바위산을 돌아 흘러가는 콜로라도강의 천년 물길은 사람이 지어올린 빌딩과 비교될 수 없다. (중략)
그랜드캐니언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밤에 별빛을 모아 스스로의 내면을 비추어볼 일이다. 덧없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잘못 알고 한사코 붙잡으려 했던 마음. 강박적 쾌락과 가짜 기쁨에 몰말라 했던 나날......
그랜드캐니언에서는 시작과 끝이 없다. 심지어 죽음도 삶의 한 형태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엄습하는 알 수 없는 충만과 평온, 도시로 돌아가서도 제발 이 느낌만은 지속될 수 있기를. (169-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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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같은 글쓰기 -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의 대담
아니 에르노.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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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글쓰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그녀는 실존의 고통과 즐거움과 복잡함을 적나라하게, 뼛속까지 파헤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6쪽)

내게 하나의 텍스트는 생각과 욕망의 미끄러짐과 겹치기를 통해서 조직되는 무엇입니다. 내가 글을 쓰던 순간에는 모호하고 형태가 뚜렷하지 않던 것을 차후에 해명하고 그 맥락을 잇기를 원한다면, 바로 그러한 미끄러짐과 겹침을 설명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그 텍스트를 정성들여 조탁하는 과정에 투여되는 삶의 작용, 즉 현재의 작용을 무시하도록 내게 강요하는 셈이될 겁니다. (20쪽)

‘위험한 어떤 것‘을 쓰고 싶은 욕망의 다른 이유가 생각나는군요. 이것들은 내가 내 출신 사회계층을 배반하고 있다는 감정에 깊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나는 ‘사치스러운‘활동을 하고 있어요. 비록 역시 고통스러운 일일지라도,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글쓰기에 바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사치가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이러한 삶을 ‘속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어떤 안락한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 글쓰기를 하는 것, 내가 손으로 한 번도 노동해보지 않은 만큼 나 자신의 존재 전체로써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속죄의 다른 방법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대한 지배적인 관점들을 전복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68-69쪽)

나는 글을 씀으로써 내 모든 지식뿐 아니라 교양, 기억 등이 모두 연루된 어떤 작업을 통해, 외양을 넘어서 나 자신을 세상에 투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작업은 하나의 텍스트로, 따라서 타인들에게로 귀착되지요. (중략)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작업, 즉 하나의 텍스트를 타인에게 증여하는 적업을 의미합니다. 타인이 그것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상관없습니다. (79쪽)

내 생각에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활동입니다. 다시 말해 글쓰기는 세상의 베일을 벗기고 변화시키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기존의 사회적. 도덕적 질서를 다지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활동입니다. (97쪽)

내게 글쓰기란 철저하게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삶의 즐거움보다 우월한 어떤 즐거움을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아름답고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드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은 곧 ‘멀리‘ 있는 것, 바로 나 자신의 것이었던 그 현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것과 동일시되었죠. (중략) 갑자기 정치적 행위를 위해 글을 쓰겠다는 욕망을 갖게 된 것도 아닙니다. 아니, 나는 삶과 인식의 차원에서 험난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도정을 거치면서, 점차적으로 이 명백한 사실에까지 도달하게 되었어요. (중략) 이러한 삶의 사건들을 통과하면서 글쓰기에 관한 나의 관념 혹은 직관을 전복시켜버린, 문학과 현실 사이의 일종의 정면 대질이라고 할 과정을 겪었습니다. (98-99쪽)

바르크는 어디선과 말한 바 있습니다. "글쓰기는 작가가 자기 언어의 본질적 성격을 어느 사회 영역에 위치시킬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 영역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선택을 명료하게 인식했고, 그 인식은 나를 ‘거리 두고 글쓰기‘로 이끌었습니다. (중략) 지배자들의 언어도구, 그 중에서도 특히 고전적인 문장구조를 채택하고 있는데, 내가 선택한 글쓰기는 그러한 언어도구를 사용하여 피지배자들의 관점을 문학 속으로 침입 혹은 난입시키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102-103쪽)

말, 여행, 광경 등, 그 어떤 수단으로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을 글로 쓰면서 발견하는 것, 숙고 똔ㄴ 홀로는 그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글쓰기 이전에는 현장에 없던 것을 발견하는 것, 바로 거기에 글쓰기의 희열이 있습니다. 글쓰기는 무엇을 다가오게 하고 도래하게 하는지는 결코 미리 알 수 없어요. 그러니 글쓰기에는 공포 또한 도사리고 있는 것이지요.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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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같은 나
빅토리아 토카레바 지음, 승주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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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사람은 없다. 리더십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단점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수도없이 갈등하게 된다. 옷으로 비유하면 리더십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외출복이고 인품은 평상복이다. 물론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27쪽)

온 가족이 타원형 식탁에 둘러앉았다. 부모님, 레나 부부, 자식들과 손녀까지 4대가 함께 모인 자리였다. 전통을 중시하며 예의를 갖추고 말이다. 모두가 서로를 사랑했고, 그래서 괴로워했다. 노인들은 늙고 병든 몸 때문에 힘들어했다. 젊은 부부는 부모님의 간섭과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했다. 레나와 니콜라이는 애정 결핍으로 힘들어했다. 두 사람 모두가 사랑을 원했다. 그들의 옛사랑은 닳고 닳아서 구멍이 났는데, 새로운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고, 언제 또 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62쪽)

"얼굴 표정이 달라. 얼굴 표정이라는 건 가정교육으로 결정되는 거야. 다시 말하면 책을 얼마나 읽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지." "그런 거라면 노력해서 얻을 수 있겠네요." 안젤라가 지적했다. (64쪽)

니콜라이는 문든 ‘존재하다‘와 ‘존재하지 않는다‘를 구별하는 경계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깨달았고, ‘해야 한다‘와 ‘하면 안 된다‘라는 관습에 얽매일 필요가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누구도 뭔가를 해야 할 의무를 갖지 않은 것 같았다. 사실 쓰나미가 그를 쓸어가 버릴 수도 있었고, 비행기와 함께 추락할 수도 있었고, 병에 걸릴 수도 있었고, 죽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러시아 남자는 수명이 짧다. (88쪽)

물론 지조와 성공 두 가지를 다 갖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96쪽)

우리는 자기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염탐한다. 물론 가상의 삶이었다.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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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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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건 아니야.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무서운 거지." 엄마는 바닥을 기어가면서 생각했다고 한다. 넘어가야 하는 순간이 온 거라고. (19쪽)

엄마가 자신의 몸을 드러내 보이는 걸 태평스럽게 승낙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더 불쾌하게 했다. 엄마가 평생 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금지 사항이나 지시 사항을 벗어던졌다는 점에 있어서는 엄마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것들을 벗어던진 결과 엄마의 몸은 한낱 몸뚱이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고, 그 결과 시체와 다를 바 없어져 버린 셈이었다.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 거기에서 생명은 어처구니없을 만큼 관성적인 상태로만 연장되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엄마를 살아있는 존재로 여겨 왔던 나는 언젠가, 그것도 얼마 안 가서 곧 엄마가 죽는 걸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인 시간의 차원에 속한 것이었다. (26쪽)

내게는 권리가 있다. 우리를 짜증나게 했던 이 말은 사실 엄마에게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말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엄마의 욕망이 그 자체로는 인정받지 못해 왔다는 걸 보여 주는 말인 셈이었다. (53쪽)

자기 생각을 스스로 반박해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주 많은 걸 얻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던 것이다.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참아 내기 위해 엄마는 온 힘을 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엄마는 유년 시절 내내 규범과 금기라는 갑옷을 두른 채 몸과 마음, 정신을 억압당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끈으로 옭아매도록 교육받았다. 그런 엄마의 내면에는 끓어오르는 피와 불같은 정열을 지닌 한 여인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뒤틀리고 훼손된 끝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가 되어 버린 모습이었다. (58쪽)

평소 같았으면 자기가 없을 때 남이 집에 들어오는 걸 참지 못했을 것이다. 병으로 인해 엄마를 둘러싸고 있던 편견과 오만의 껍질이 깨어져 버린 것이었다. 아마도 이제는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리라. 체념이나 희생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가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회복하는 것, 즉 자기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일에 전적으로 몰두하면서 마침내 엄마는 원망의 감정에서 벗어났다. (83쪽)

어느 날 엄마가 내게 말했다. "부모는 자식을 이해 못 하는 법이지. 하지만 자식도 부모를 이해 못 하기는 매한가지란다......" (97-98쪽)

죽음을 삶과 통합하려는 건, 그리고 합리적인 영역에 속하지 않은 일에 직면해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려는 건 모두 소용없는 짓이다. 각자가 나름대로 혼란스러운 감정을 풀어 나가야 한다. 나는 유언을 남기고자 하는 모든 이의 심정을 이해한다. 또한 그 어떤 유언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의 심정 역시 이해한다. (142-143쪽)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 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146쪽)

"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거죠." 이 말은 노인들을 슬프게 하고, 또 그들을 유배된 것과 다를바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런데 자기가 죽을 나이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략) 사람이 죽는 것은 태어났기 때문도, 살 만큼 살았기 때문도, 또 늙었기 때문도 아니다. 사람은 무언가로 인해 죽는다. (중략)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152-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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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딸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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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착하다‘는 단어에 걸려 넘어지고, 당신, 그리고 부모님과 연결하여 그 의미를 풀어보려 애씁니다. 이 단어의 의미가 번쩍이자마자 나의 위치가 일순간에 바뀌었으니까요. 부모님과 나 사이에 이제는 당신이 있어요. 보이지 않지만 사랑스러운 당신이. 나는 당신에게 자리를 만어어주기 위해 멀찌감치 밀려났습니다. 당신이 영원한 빛에 둘러싸여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동안 난 그늘로 떠밀려갔지요. 무남독녀라 누구와도 비교당하지 않고 살던 내가 비교의 대상이 된 거예요. 현실은 서로 배척하는 단어들이 만들어냅니다. 더/덜, 또는/그리고, 전/후,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삶이나 죽음 같은 단어들에 의해. (22-23쪽)

그렇다. 나는 믿는다. 내가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 온 것은 아니라는 걸. 그리고 내 안에는 세상이 묵과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나는 당신이 죽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죽은 것은 내가 글을 쓰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39쪽)

언제라도. 심지어 어른이 되고,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조차도 나는 왜 당신에 대해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을까? (중략) 우리는 허구를 마치 실제인 양 지탱해나갔습니다. (중략) 아이들은 비밀을 간직한 채,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 것과 함께 살아가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렇답니다. 침묵은 그들과 나,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비밀이 나를 지켜주었어요. 가족 중에서 죽은 아이들을 숭배해야 하는 부담을 피하게 해주었으니까요. 그건 살아 있는 자들에게 알 수 없는 비참한 마음을 안겨주어요. 내가 분노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그 당사자였으니까요. (51-55쪽)

이 편지를 시작하기 전에는 무심코 당신을 떠올려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평온하던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마치 꿈을 꾸듯 이끼만 잔뜩 돋은 인적 없는 습지에서 걸음을 내딛는 듯하고, 단어들의 틈새를 헤치고 나아가 불분명한 것들로 가득 찬 공간을 넘어가야 할 것만 같아요. 내겐 당신을 위한 언어도, 당신에게 말해야 할 언어도 없으며, 부정적인 방식을 통해 지속적인 비존재 상태로 있는 당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정과 정서의 언어 바깥에 있는 당신은 비언어입니다. (60-61쪽)

‘당신‘은 덫입니다. 숨 막히게 하는 무언가를 가진채, 역겨운 슬픔의 냄새를 풍기며 당신에 대한 가상의 친밀감을 만들어내요. 나를 비난하려 가까이 다가오죠.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당신 때문이라고 믿게 하며, 당신의 죽음을 우위로 두어 내 존재 전부를 깎아내리려 합니다. 내가 그렇게 여기는 까닭은,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엄밀하게 저울질하여 만든 나에 대한 인식을 당신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완성할 수 있다는 유혹 때문이에요. (71쪽)

며칠 수 투생 휴가가 돌아오면 언제나처럼 산소에 갈 생각이에요. 이번에는 당신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을까요?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건네야 할 필요가 있을지, 이 편지를 썼다는 게 부끄러울지 자랑스러울지, 편지를 쓰고 싶었던 욕구가 정말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 나는 당신의 죽음이 내게 준 삶을, 이번에는 내 차례가 되어 당신에게 돌려주며 가상의 빚을 털어내길 원했던 것 같아요. 아니면 당신과 당신의 그림자로부터 떠나기 위해 당신을 되살리고 다시 죽게 한 걸 수도 있고요. 당신에게서 벗어나려고. 죽은 자들의 오래 지속되는 삶에 대항애 투쟁하려고.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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