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걸요 - 마음 아픈 사람들을 찾아 나선 ‘행키’의 마음 일기
임재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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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아르테 네이버 포스트)


 마음의 병, 그리고 그 마음의 병이 깃든 사람들. 그 마음의 병을 어루만지며, 사람들을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마음의 병을 고치는 사람. 그의 일기 같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로 내 마음에 떠오른 한 분. 몇 년 만에 기억의 수면 위로 올라오신 그분. 교회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셨던 분이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계실 때, 마음의 병이 다가왔다던 그분. 내가 만났을 때는 다행히 마음의 병이 안 보여서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병이 다시 찾아왔고, 소문이 돌았다. 불안증이라고 들었다. 잘 웃으셨고, 친절하셨던 분이었는데, 마음이 아팠다. 소문을 낸 사람이 마음의 병이 더 깊은 사람 같았다. 그렇게 다니던 교회에서 멀어지셨던 분. 지금은 마음의 병을 지우고, 두 아이를 잘 키우고 계시다고 들었다. 마음의 병이 있다고 백안시(白眼視)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눈에 깊은 상처를 받고 병원을 가까이 하지 않는 분들. 그런 분들을 보고, 홀로 참고 참다가 결국에는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분들. 그분들을 위해, 거리로 나선 행키. 바이올린을 연주하셨든 그분의 선율을 생각하며, 행키의 이야기를 살포시 포개어 본다.


 '그들은 속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속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데

 그 한 사람이 없어서 홀로 참고 참고 또 참다가

 결국 마음의 병을 얻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정신과 의사를 만나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홀로 힘겹게 버티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마음의 병을 얻기 전에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한 사람'이 되어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프롤로그 '당신 곁에 한 사람' 중에서. (6~7쪽)


 그들의 '한 사람'이 되어 위로하고 싶었다는 정신과 의사 행키. 행키는 '행복 키우미'의 준말이라고 한다. 영어 'hanky'는 손수건(handkerchief)의 준말이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 아픈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자 행복을 키우는 행키라고 한다. 사실, 그도 마음의 병을 앓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의대에 진학해 우울증을 만났던 그. 동병상련으로 마음의 병든 분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그렇게 거리로 나선 그. 거리의 의사다. 상담 트럭을 끌고 나선. 처음에는 사람들이 찾지 않던 상담 트럭. 그 우여곡절이 그려져 있다. 그러다가 TV 방송에 출연하게 되어 사람들이 그를 알게 되고. 그렇게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에 여러 상담이 이어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이 일기는 마음 깊숙이 들려준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남자, 자폐증을 가진 아이를 ‘독박 육아’ 하는 어머니, 알코올중독에 빠진 대학생, 딸이 성폭행당한 후 절망에 빠진 어머니 등'의 사례를 사실에서 살짝 변형하여 들려준다. 그분들에 대한 예의로. 그리고 행복을 키울 수 있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1. 삶의 즐거움을 음미하라', '2.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라', '3. 타인에게 먼저 도움의 손을 내밀어라', '4. 현재에 충실하라', '5. 평생 지속할 수 있는 목표에 헌신하라'를 말하기도 하고. 또, 2016년 2월,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라는 이름으로 거리 상담을 시작한 행키. '찾아가는 마음 충전소'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된 사연도 들려주고.


 '어쩌면 병원은 병이 난 후에나 찾는 곳이라는 인식 때문에, 사람들이 너무 늦게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병원은 검사와 예방을 담당하는 곳이기도 한데 말이다. 특히나 정신병원은 미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라는 편견 때문에 찾기를 꺼린다. 결국 아직 심각한 단계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될 위험성이 높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가서 도움을 받을 만한 정신 의료 기관이 없다는 게 문제다.' -'거리와 병원 사이' 중에서. (201쪽)


 행키가 말하길 마음이 아픈 분들이 정신병원에 오는 데 보통 18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18개월 동안 병을 키운 그분들. 그 18개월을 줄이고자 거리로 나섰던 행키. 병원, 정신건강복지센터, 거리 상담을 모두 경험한 행키. 병원은 편견으로 문턱이 높고, 정신건강복지센터는 병원에 비해서 전문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과 정신건강복지센터 사이에 있는 그곳을 상상하는 행키. 또, 정신 질환 예방, 조기 발견 및 조기 개입, 치료까지의 연결고리의 중요성을 절감한 행키.     

 며칠 전, 보호자로 같은 병원에 다닌다고 말씀하신 분이 계셔서, 그곳에서 뵐 수도 있겠다는 말씀을 드렸었다. 농담조로. 그런데, 병원에서는 만나지 않는 것을 바란다는 그분. 병원은 병이 있는 사람만이 오는 곳이라 생각하셔서 그런 것이리라. 난 병원은 건강검진도 하는 곳이라 병원에서 뵙는 건 나쁘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치료도 있지만, 예방과 조기 발견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음의 병에도 예방과 조기 발견의 힘이 잘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 아픈 사람들을 찾아 나선 '행키'의 마음 일기'라는 이 책의 작은 이름. 그 이름에서 보듯, 역시 이 이야기는 일기였다. 마음의 병을 이겨내는 온기를 담은 일기. 그 용기와 그 희망을 따뜻하게 담은 일기. 소중한 일기. 마음의 병을 지운 그분, 바이올린을 연주하셨던 그분의 가락을 음미하며, 이 따사로운 일기에 추위를 녹여 본다. 이 따뜻함, 나눌수록 더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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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ma1228 2018-12-10 0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행키입니다! ^^ 리뷰 감사합니당~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ㅎㅋ

사과나비🍎 2018-12-11 22:56   좋아요 0 | URL
행키님~^^* 이곳에도 댓글 남겨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붕붕툐툐 2018-12-10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너무 와닿아요~ 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다니~ㅎㅎㅎㅎ

사과나비🍎 2018-12-11 22:57   좋아요 1 | URL
아, 붕붕툐툐님~^^* 댓글 감사합니다~^^*
답글이 늦어서 죄송해요~^^;
예~ 책의 제목이 그렇지요~^^* 저도 읽는 순간! 와닿더라고요~^^*
그럼, 붕붕툐툐님~ 좋은 시간되시기 바랄게요~^^*

AgalmA 2019-01-02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어른이 정말 적성에 안 맞다 하고 있어요ㅎㅎ
사과나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과나비🍎 2019-01-02 21:35   좋아요 1 | URL
아, AgalmA님~^^* 아, 어른이 적성에 안 맞으시다고 말씀하시고 계시군요~^^;
아, AgalmA님의 새해 인사 말씀 감사합니다~^^*
예~ AgalmA님도 새해 복 가득 받으시고요~ 행복과 건강이 함께 하시기 바랄게요~^^*
 
더 없이 홀가분한 죽음 - 고통도 두려움도 없이 집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법
오가사와라 분유 지음, 최말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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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음 (장자 VS 하이데거) (동영상 출처: EBS)

 삶의 시작이 있으니, 그 끝이 있다. 그 끝은 죽음. 삶의 끝은 죽음의 시작이다. 그 죽음. 장자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노래하고 춤을 췄다고 한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장자이기에. 또, 하이데거는 사람은 죽음의 자각으로 삶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천상병 시인은 삶을 소풍, 죽음을 귀천이라 하고. 그 죽음. 그것이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도 집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암이 낫는다면 항암치료를 받겠습니다. 하지만 겨우 한 달밖에 더 살지 못한다면 일을 선택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어요. 그러니 일을 할 수 있도록 진통제를 처방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항암치료 대신 건축가로서 일을 마무리 짓기로 하다' 중에서. (23쪽)

 아버지께서 2년 전 봄에 암 수술을 받으셨다. 병원에서. 췌장암과 직장암이셨다. 그때 암 환자분들을 많이 뵀었다. 물론, 말기 암 환자분들도. 아버지께서 수술을 받으러 가실 때, 그분들의 눈빛. 지금도 기억이 뚜렷하다. 죽음을 앞두신 그분들. 수술조차 하실 수 없으신 그분들. 꺼져가는 불빛들이신 그분들. 부러운 듯한 눈빛이셨다. 그래도 이내 마음을 잡고 죽음을 준비하시는 그분들. 홀가분한 죽음을 준비하는 그분들. 
 이 기억을 품고 있는 나였기에 말기 암 환자분 등 죽음을 앞둔 이들의 이야기에 울림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작은 이름처럼 '고통도 두려움도 없이 집에서 죽음을 준바하는 법'도 담았다.

 '아직 재택 호스피스 완화 케어의 개념은 확립되지 않았지만 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재택이란 생활하는 곳, 호스피스란 생명을 돌보며 삶과 죽음 그리고 이상적인 임종에 대해 생각하는 것, 완화란 통증과 고통을 줄이는 것, 케어란 따스한 보살핌 속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고 몸에 생기가 돋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환자에게 진정한 재택 호스피스 완화 케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떠나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함께 웃을 수 있는 마지막을 위해' 중에서. (7쪽)

 재택 호스피스 완화 케어. 이 책에서 처음 들었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할 텐데. 이런 제도도 있다니. 일본과 우리나라는 다른 점도 있겠지만, 새로운 선택지였다. 알아보니, 우리나라도 이른바 '연명의료결정법'이 2018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재택까지는 아니지만, '웰다잉', '존엄사'를 다룬 법이라 한다. 그 뿌리가 잘 내릴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여러 논의를 계속하기 바란다.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난다.
죽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知死必勇, 非死者難也, 處死者難.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염파 · 인상여 열전(廉頗藺相如列傳) 중에서.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 용기로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들. 저승사자와 다정하게 걸어갈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선사들은 게송을 부르고 입적했다고 한다.


삶도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도 한 조각 뜬구름이 스러짐이다.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부운자체본무실, 생사거래역여시.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


 서산대사가 입적하기 전에 남긴 게송이라 한다. 이 게송, 적멸위락 (寂滅爲樂)1을 노래했다. 그 가락이 맑고 은은하다.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웃으며 죽음으로써 남겨진 가족에게 슬픔을 안겨주지 않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죽음은 없을 것입니다.' -'함께 웃을 수 있어야 진정으로 행복한 죽음이다' 중에서. (298쪽)


 이 책도 행복한 죽음을 이야기한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죽음. 우리 모두 그런 죽음을 위하여 나아가자. 그렇게 귀천하자.  



 

  1. <불교> 생사의 괴로움에 대하여, 적정(寂靜)한 열반의 경지를 참된 즐거움으로 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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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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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법률가가 되고 싶었다. 아니, 지금도 법률가가 되고 싶다. 될 수 있다면. 그 법률가. 되리라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가끔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는 상상을 각각 해보고는 했다. 판사가 되어 옳은 길을 찾아 보이고. 검사가 되어 정의의 칼을 범죄자들에게 겨누고. 변호사가 되어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나아가고.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 무대인 법정. 많은 목소리가 어울린 그곳. 그곳의 주역이 되고 싶었다. 그런 나였기에 이번 사법농단 의혹1은 정말 안타까운 일로 다가왔다. 사법 불신! 우리나라를 흔들고 있다. 작금의 이런 상황. 그 뿌리를 알고 싶었다. 옛 스승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게 떠올랐기에. 무언가를 알고 싶을 때, 먼저 그 역사를 알아보라는 말씀이. 그리고 때마침 만난 책이 '법률가들'이다. 비록 가제본이지만. 그 일부를 담았지만. 


 '거칠게 평가하자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돌이킨 사람들은 예상한 것 이상의 불행을 맛보았고, 끝까지 개인의 안위만을 추구한 사람들은 기대한 것 이상의 영광을 누렸다. 전반적으로 그런 시대였고 어느 누구도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제본 '1부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38쪽)


 1937년 고등시험 사법과 조선인 합격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그렇게 살았다. 그 시대를 시작으로 이루어진 이 책. 이 책의 프롤로그를 바탕으로 줄거리를 본다.

 ​1부는 바로 그 '1937년 합격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 제도를 탐구했다'. 고등시험 사법과 합격자들. 제1법률가군 이야기다. 

 2부는 '일제시대 '이류' 법률가로 취급받았으나 해방이후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과 함께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형성한 조선변호사시험 출신들의 삶을 다뤘다'. 제2법률가군이다.

 3부는 해방으로 '일제시대 서기 겸 통역생으로 일하며 일본인 판검사들을 보조했던 사람들'이 법률가가 되는 기회를 잡은 이야기다. 미자격자였던 그들이 제3법률가군이다. 

 4부는 '해방공간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등 좌익세력을 일거에 불법화시킨 1946년 5월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을 이야기한다'.

 가제본은 4부까지의 이야기만 들려준다. 그래도 프롤로그에는 그 다음 줄거리도 있다. 

 5부는 '정부수립을 전후해 법조계에서 벌어진 각종 좌익 관련 사건을 다룬다'.

 6부는 '한국전쟁이라는 쓰나미가 법조계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7부는 '이른바 '이법회' 또는 '의법회' 문제를 발굴함으로써 초창기 법조계 5년의 역사가 오늘에 끼친 영향을 설명한다'. 해방 당일 시행 중이던 조선변호사시험의 응시자들이 모두 합격증을 받게 된다. 그리고 해방 후 각종 필기시험을 면제받은 이 사람들이 이법회를 구성한다. 이법회 출신들은 제4법률가군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법률가들의 뿌리는 깊지 않았다. 너무 앝았다. 우선 일제 시대의 판사, 검사, 그리고 변호사도 친일의 흔적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제3법률가군을 형성하는 미자격자들. 그들의 일부는 그들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그렇게 좌익과 중도의 날개를 꺾는다. 또, 일찍 옷을 벗고 전관이 되어 좋지 않은 관행을 만들기도 하고. 그리고 이법회의 존재. 난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만 만났지만, 그들의 정당성에 그늘이 드리우는 건 알 수 있었다. 물론 각기 다른 삶으로 나아가겠지만. 이렇게 우리의 법률가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그들. 그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이기에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듯하다. 뿌리 깊은 나무가 되도록 우리 모두 잘 키워야 하겠다.  


 이 책, 가제본이었고, 일부였지만 우리 법률가들의 역사를 아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마치 족보 같다. 평을 곁들인 족보. 우리 법률가들의 족보. 사람들이 족보를 보며, 뿌리를 알고, 오늘날의 자리를 알 수 있듯이.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보면, 법률가들의 뿌리를 알고, 오늘날의 자리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관심 있는 사람은 읽어 보시라. 후회는 안 하시리라.      



 

  1. 나무 위키 항목 참조. ( https://namu.wiki/w/%EC%82%AC%EB%B2%95%EB%86%8D%EB%8B%A8%20%EC%9D%98%ED%98%B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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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인문학 - 잠재된 표현 욕망을 깨우는 감각 수업
김동훈 지음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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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민음사 블로그)

 

 내가 끌리는, 나를 끌어당기는 그 무엇. 나는 그것을 소유하고 욕망한다. 나의 그것 가운데 하나가 '애플'이다. 그 단순함. 그 깔끔함. 또, 존재 목적에 정확하게 합치됨. 나는 그것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사족(蛇足)이 없는 '애플'의 작품들. 나와 닮았고, 혹은 내가 닮으려고 하기에 함께 거닌다. 그렇게 아이폰을 소유하고 있고, 아이패드를 소유했었다. 그리고 계속 욕망한다. 그런데 그 객체는 다르지만, 나처럼 소유하고 욕망하는 사람들의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 모를 욕망. 즉, 무의식의 의미는 무엇일까.


 '브랜드가 나의 감각에 던지는 눈길인 어떤 파장을, 그리고 나 또한 그 자극에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반응하며 눈길을 주는 이유를 범주화해 보았다. '정체성, 감각과 욕망, 주체성, 시간성, 매체성, 일상성'들이었다. 이것으로 브랜드를 이해하고 인간의 신체와 감각에 대해 안목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프롤로그 '지금은 브랜드의 땅' 중에서. (8~9쪽)


 '브랜드 인문학'은 이렇게 6부로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솔직히 잘 몰랐던 몇몇 '브랜드'를 이해할 수 있었고. 부족한 안목도 살짝 넓혀졌다.  


 '접속과 배치를 통해 특정 방향으로 향하던 '욕망'이 몸에 배면 취향이 된다. (……) 저 브랜드가 내게 다가왔고 내가 그것을 택했다.

 선택을 통해 브랜드와 접속한 우리는 나름의 정체성이 형성된다. 선택이 있기 전 브랜드와의 마주침과 나의 선택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각의 자극은 우리 안에 묻힌 과거를 떠올리게 만든다. 묻힌 우리의 과거를 들뢰즈는 앙리 베르그송의 이론을 따라 '잠재력'이라 불렀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특정 브랜드와 접속하여 생기게 된 우리의 정체성은 잠재력이 현실화된 것이다.

 (……) 들뢰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활용하여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력은 감각으로 자극받을 때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 욕망은 저마다의 잠재력을 깨우는 것이다. 어떤 브랜드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은 자신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2부 프롤로그' 중에서. (96~97쪽)


 '창조력은 현실에서 잠재력과 함께 빛을 낸다.

 (……)

 잠재력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변화, 즉 운동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변화를 위해 감각자극을 말했다. 그 자극이 지속될 때 운동은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다. 그 잠재력 자체가 사실은 무한한 창조력인 것이다.' -'4부 프롤로그' 중에서. (250쪽)


 이 책 '브랜드 인문학'의 작은 이름은 '잠재된 표현 욕망을 깨우는 감각 수업'이다. 그 이름처럼 잠재력을 깨우라고 한다. 감각을 자극해서. 그 감각을 자극하는 열쇠는 브랜드에 있다. 내가 소유하고, 욕망하는 브랜드. 내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그 정체성은 나의 잠재력이 현실화된 것이고. 그 정체성. 그 브랜드. 감각 자극으로 잠재력을 깨우자. 그 잠재력은 곧 창조력이니. '소비에 앞서 정체성을, 과시에 앞서 나다움을.(31쪽)' 잊지 않으며.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현대문학, 1952.

   

 내가 소유하고, 욕망하는 브랜드인 '애플'. 단순함, 깔끔함, 존재 목적에 정확히 합치됨. 그 잠재력이 정체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내 무의식이 그 '애플'과 접속하여 형성된 정체성. 내가 '애플'을 부르고, '애플'이 나를 부른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감각을 자극하는 브랜드가 되고. 꽃처럼. 하나의 몸짓이었던 꽃. 이름을 불러주어, 나의 꽃이 된다. 결국,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애플'은 나에게, 나는 '애플'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나의 잠재력은 깨어난다. 창조력으로 이어질.


 '브랜드 인문학'은 서른두 가지의 브랜드를 이야기한다. 각 브랜드의 탄생과 정체성을 그린다. 그 사유의 장(場). 그 바다에서 항해했다. 희열을 느끼기도 하며. 파도를 넘어 여정을 함께 했다. 항해하며 들은 수업. 준비된 수업이었다. 수강 신청 잘했다. 

 참고로 '애플'은 이 책에 안 나온다. 프라다, 스타벅스, 샤넬, 구찌, 루이비통 등이 나온다. 나오는 것 가운데 눈에 띄는 건 '민음사'다. 이 책의 출판사. 애서가인 내가 관심 있는 우리나라 출판사. 

 


 

 



 덧붙이는 말.


 저자가 《경향신문》에 「서양고전학자의 브랜드 인문학」으로 연재하다가, 민음사 양희정 부장의 손길이 더해져 한 권의 책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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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1-29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하시고 리뷰 하셨네요 굿👍👍👍

사과나비🍎 2018-11-29 22:24   좋아요 1 | URL
아 카알벨루치님~ 말씀 감사해요~^^*
그런데, 저 지각 서평이었어요... 여러모로 부족한 글이었고요...^^;
아무튼! 정말 말씀 감사해요~^^*
좋은 밤되세요~^^*

카알벨루치 2018-11-29 22:37   좋아요 1 | URL
지각해도 괜챦습니다 쓰기만 하면 되는거죠 굿밤하소서!

사과나비🍎 2018-11-29 22:42   좋아요 1 | URL
^^* 예~ 그런 거겠지요?...^^*
카알벨루치님의 말씀! 정말 감사해요~^^*

카알벨루치 2018-11-29 22:45   좋아요 1 | URL
저도 애플, 문동 그리고 요즘 고전읽으면서 민음사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민음사는 좋아했는데 고전의 활자가 맘에 안 들었는데 요즈음은 내용에 빠지니 민음사도 나름 그 활자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ㅎ

사과나비🍎 2018-11-29 22:51   좋아요 1 | URL
아, 그러시군요~^^* 민음사의 고전도 많이 읽으시고 계시군요~^^*
그러게요... 읽기가 불편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좋은 내용에 깊이 들어가셔서 그 매력을 아셨나 봐요~^^*
깊은 독서를 하시는 카알벨루치님! 언제나 응원드려요~^^*
 
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송정림 지음, 채소 그림 / 꼼지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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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르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최선 옮김, 민음사, 1997

 나는 눈물이 많다. 삶이 나를 속였기에. 그래서 슬퍼했거나 노했기에. 여린 나는 눈물을 한없이 머금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울한 날들이 여럿이었다. '우울은 얇게 퍼져 있는 분노다'1라고 하던가. 분노가 피웠던 우울의 안개가 차가웠고, 짙었다. 하지만, 이런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올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 믿음에 견디고 있다.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것, 그것이 삶을 달콤하게 만드는 것이다.'2라고 하던가. 지나가는 것은 훗날 달콤하고, 소중하게 되리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에,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리라. 이와 같이 슬픈 물음표에 따뜻한 쉼표로 말하는 글을 만났다. 가슴으로 만났다.


 '부지런히 가다가

 문득문득

 슬픈 물음표가 마음을 침범합니다.


 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나, 부지런히 가고 있는데

 왜 자꾸 우울한 거니?


 (……)


 더 늦기 전에

 행복해졌으면 해요.

 당신도, 나도,

 우리 같이


 행복해졌으면 해요.' -'프롤로그' 중에서. (11~13쪽)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왜 자꾸 우울한 거니?'의 슬픈 물음표. '당신도,' '나도,'의 따뜻한 쉼표. 그 쉼표로 '행복해졌으면 해요'라는 바람. 부드럽고, 포근한 바람.


 '위로는 손을 잡고

 그 추운 영혼 위에

 이불을 덮어주는 일.

 그리고 그 따뜻한 이불이

 내 영혼도 덮어주는 일.' -'위로 전달법' 중에서. (38쪽)


 겨울을 만난 추운 영혼에게 위로는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는 일. 그리고 위로는 그 영혼도, 내 영혼도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는 일. 끄덕이게 하는 글이다. 그리고 나도 위로하고 싶어지고. 그렇게 하게 되면 나에게도 위로가 되겠지. 좋다.


 이번 겨울의 첫눈이 온 날. 따뜻한 쉼표를 남기는 글의 느낌을 남긴다. 슬픈 물음표에 슬며시 다가와 남기는 따뜻한 쉼표. 그리고 행복을 바라는 마음. 소곤소곤 온기를 담은 글들이 온몸에 따뜻하다. 이 땅의 많은 이들이 눈물과 우울에 잠기고 있는 이 때. 온기로 부드럽게 안을 수 있는 책. 또 쓰다듬는 책. 그 가슴 안에서 울고 위로를 받자. 그리고 하루하루 행복해지자. 기쁨의 날이 오리니.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1.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 독일의 신학자)
  2.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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