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컬렉션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 전11권 - 가난한 사람들 + 죄와 벌 + 백치 + 악령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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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할아버지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선집!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은 저절로 손이 움직였었네요…^^; 그리고 드디어 만났던 이 책들! 하지만 같은 책이 있어서 교환 신청했고, 무사히 교환 받았었지요~^^* 품격 있는 책! 흐뭇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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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재영 책수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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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세월에 물든다. 시간의 흔적이 남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든 흔적에 기억이 깃든다. 책과 그 책을 만난 이의 기억. 책과 인연이 있어 만나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쌓은 기억. 또, 그렇게 앞으로 쌓을 기억. 더없이 소중하다. 그런데, 그런 책의 시간이 무너진다면, 우리는 상심의 울음을 짓고 만다. 귀한 인연의 끈이 끊어지려 하는 그 순간. 그 인연의 끈을 잡고 다시 잇고 싶지만, 쉽지 않다. 특별하지만, 아픈 책을 만난다는 것. 그래서 그 책과 대화를 더이상 할 수 없다는 것. 큰 슬픔이다. 결국, 아픔이 옮아오게 되기도 하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움직이는 이가 있다고 한다. 책 수선가라 호칭되는 이. 아픈 책을 치료하는 이다. 그 치료의 기록이 담긴 책을 감사한 인연이 있어 만나게 되었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이라는 책. 이 책과 따뜻한 대화를 나눴다.




'어렸을 적 친구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아요.' -'살아남는 책' 중에서. (22쪽). 


'그 책에 소중한 추억이 있다면 다시 오랫동안 튼튼하고 아름다울 수 있도록, 

특별한 감흥이 없다면 책 수선을 통해 새로운 추억이 시작될 수 있도록, 

재영 책수선은 언제나 망가진 책들을 환영하며 기다리고 있을 테니.'

-'우연히 만나 운명이 되는 책' 중에서. (266쪽). 


책도 수선한다. 그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기록을 보니, 대부분 책과 사연이 있는 이들이 책 수선가를 찾는다. 추억을 지키기 위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추억을 나누기 위해.

어렸을 적 친구 같았던 국어사전, 사랑의 흔적이 가득한 동화책, 선물받았다가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스물여섯 살 성경책, 어머니의 유품으로 어머니를 닮은 도안집, 수집가가 어렵게 구한 희귀한 잡지, 할머니의 정갈한 언어로 기록한 일기장, 할아버지께서 하나하나 정성으로 쓰신 천자문, 33년 된 사랑의 결혼 앨범, 힘들게 수집한 절판된 전집, 참된 친구와 함께한 여행 일지 등. 그리고 책뿐만이 아니다. 책갈피, 액자 등도 있다. 물론, 종이 재질로 된 것들이다.

이렇게 책이 가진 기억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추억이 되어, 우리에게 속삭인다. 징검다리가 되어 나에게, 또 다른 이에게 추억을 이어주기도 한다.


'책은 힘이고 용기이며, 동력이자 사유의 횃불이고 사랑의 샘.' -루벤 다리오.


책, 사물이지만, 사물 그 이상이다. 즉, 책이 대화할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저 미완성일 뿐이다. 그때는 단순 사물인 것이다. 운명의 영혼과 인연이 되어, 깊은 대화를 나누어야 비로서 완성된 책이 되는 것이다. 그때서야 책이 사물이지만, 사물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시인 루벤 다리오의 말처럼, 힘이고 용기이며, 동력이자 사유의 횃불이고 사랑의 샘인 되는 것이다. 그렇다. 책은 양가적(兩價的)이다. 어쩔 수 없이 마침내 병에 걸리거나 다치게 되는 책. 아끼는 책의 아픔! 비애가 솟아날 수밖에 없다. 고통이다. 이런 고통을 이해하고, 그 책의 기억을 관찰하며, 파손된 책의 형태와 의미를 수집하는 책 수선가. 아픈 책들의 수호자로서 치유의 손길을 베푸는 그녀. 그녀에게는 책에 아로새겨진 기억을 기꺼이 나누어도 된다. 언제나 아픈 책에게 환영의 인사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그녀이기에. 지금까지 대화를 나눈 이 빛나는 책 수선가의 책에서도 그 사랑스런 얼굴이 그려진다. 그런 그녀가 남긴 이 기록. 꼼꼼하고, 사려 깊다. 그러니, 대화가 싱그럽다. 이 책, 사물 그 이상이다. 힘, 용기, 동력, 사유의 횃불, 사랑의 샘이다.

덧붙이는 말.

하나. 이 책에는 리디셀렉트에 2020년 9월에서 2021년 5월 사이에 연재했던 글 스물한 편과 새로 쓴 아홉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한다.

둘. 저자가 말하길 테이프는 종이의 적이라고 한다. 장갑도 책에게 망령이라고 하고.

셋. 초판 1쇄 기준으로 233쪽의 '학업과책'을 '학업과 책'으로 고쳐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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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 옛날이야기 × 본격 미스터리 트릭
아오야기 아이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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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의 시작. 


 하늘 아래 새로움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창작자들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야 하는 그들. 고통 받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지금 완전히 새로운 것이 있을까. 먼저 길을 닦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자고로 공자 할아버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1이라고.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뜻이다. 옛것에서 새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無)에는 이미 누군가의 작은 씨앗들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보이지 않게. 그런 그것을 누군가 보고, 잘 심어서 싹을 틔워 유(有)를 창조한다고 할 수 있고. 미스터리 소설가들은 어떤가. 그들도 그렇다. 이미 많은 소재와 다양한 속임수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양 동화와 본격 미스터리의 어울림을 그린 작품이 보인다. 기발하다.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2라는 소설이다. 이 작가의 전작은 일본 전래 동화와 본격 미스터리의 만남이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일본 전래 동화보다 서양 동화가 더 익숙하기에 이 여행이 더 반가울 수밖에 없으리라. 


 여행길에서. 


 '"네 범죄 계획은 왜 그렇게 허술해?"' -60, 135쪽. 

 ''당신 범죄 계획은 왜 그렇게 허술해?'' -216쪽. 


 쿠키와 와인병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빨간 모자가 달린 빨간 망토를 입고 여행을 떠난 소녀. 일명 빨간 모자. 실로 명탐정이 아닐 수 없다. 1장 '유리 구두의 공범'에서 신데렐라를 만난 빨간 모자. 함께 호박 마차를 타고 가던  시체도 만나게 된다. 범인은 누구이고, 왜, 어떻게 했는가. 현장 부재 증명의 속임수가 있지만, 빨간 모자는 훌륭하게 사건을 해결한다. 2장 '달콤한 밀실의 붕괴'에서 헨젤과 그레텔의 새엄마는 과자집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밀실 살인이다. 빨간 모자는 이 또한 명쾌하게 풀어낸다. 3장 '잠자는 숲 속의 비밀들'에서는 살인자로 지목된 남자를 위해 사라진 목격자를 찾아야 한다. 빨간 모자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가진 비밀과 그 주변 인물의 비밀도 환하게 밝혀낸다. 그렇게 그 남자의 누명을 벗게 되고, 범인도 알게 된다. 최종장 '소녀여, 야망의 성냥불을 붙여라'에서 빨간 모자는 성냥팔이 소녀와 불꽃 튀는 대결을 펼친다. 명탐정과 범죄자. 여행의 종착지에서 드디어 밝혀진 여행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빨간 모자의 대활약. 이 소설의 대미를 장식한다. 


 여행의 마무리. 


 우리는 아는 것에서 익숙함을 느끼고, 그것으로 편안함을 품는다. 이 소설에서 보인 '빨간 모자',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성냥팔이 소녀'는 우리에게 익숙하게 들린다. 그래서 처음에는 편안했다. 그런데, 그들이 비틀렸다. 착하고, 바른 얼굴만 있지 않았다. 익숙함 뒤에 이어진 그런 의외성. 씁쓸하기도 했지만, 로 인한 놀라움은 크게 다가왔다. 게다가 기상천외한 속임수가 담긴 수수께끼와 빈틈없는 논리로 하나하나 짚으며 보여주는 풀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빨간 모자가 남긴 여행의 발자국은 놀라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알게 된 작가. 우리를 그 새것으로 안내한 그는 가는 발길에 큰 놀라움을 더한 것이다. 이 새것도 지금은 알게 되어 앞으로는 익숙하고 편안해지겠지만, 그 앎으로 가는 길의 그 놀라움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무(無)에 담긴 쉽게 보이지 않고, 작은 씨앗. 그것을 잘 심어서 싹을 잘 틔우니, 이런 유(有)도 나오게 된 것이리라. 이제 작가가 앞으로 걸을 여행길에서 한 작품, 한 작품의 마지막에 뒤돌아볼 발자국도 아름답기를 소원해본다. 그러면, 그때마다 나도 그 여행의 동행자가 되리라.   





 덧붙이는 말. 


 겉표지 안 쪽에 특별 수록된 짧은 글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1.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2. 아오야기 아야토, 《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 이연승 옮김, 한스미디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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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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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남자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졌다. 가장 뜨거우면서도 가장 차가운 남자! 강자에게 차갑지만, 약자에는 따뜻한 그! 더 넓고, 더 크게 보고, 거친 듯하지만, 부드러운 사내! 낭만적이고, 냉정한 탐정! 바로, 사와자키의 새로운 이야기다. 그 새 무대가 올라왔다. 전설이 이어진 것이다. 무려 십사 년 만이라고 한다1오랜 기다림 끝에 감격스럽게 다가왔다. 그 무대의 이름은 《지금부터의 내일》2이다. 이 무대에서 사와자키는 새로운 공연을 멋지게 펼쳤고, 또다시 많은 관객에게 박수갈채를 받았다. 레이먼드 챈들러를 동경하며 하드보일드3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하라 료(1946~). 그가 일본 하드보일드 소설의 역사라 불릴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다시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이제 오십 대가 된 탐정 사와자키. 신주쿠의 뒷골목에 있는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에서 여전히 탐정으로 홀로 지키고 있다. 그런 그에게 한 의뢰인이 찾아왔다. 저축은행 '밀레니엄 파이낸스'의 신주쿠 지점자 모치즈키 고이치라 밝힌 그. 대출과 관련해서라고 말하며, 아카사카의 요정 '나리히라'의 여주인인 히라오카 시즈코의 신변 조사를 부탁한다. 그런데, 사와자키는 그녀가 이미 고인이라고 알게 되고. 그 사실을 의뢰인에게 알리려 하지만, 연락이 안 된다. 그래서 은행에 찾아가는 사와자키. 그런데, 갑자기 복면 강도와 마주치게 되고.


 '오십 년 이상 살다 보면 놀랄 일이 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이었다. 탐정 업무를 하는 탓에 죽음의 위험에 빈번히 노출되기도 하지만, 땅속에서 올라오는 거대한 폭력이 상대라면 악담을 내뱉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에 들린 담배를 다시 들고 연기를 천천히 빨아들였다. 나는 아무래도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았다.' -422~423쪽.


 '의무반고(義無反顧)4'라는 말이 있다. 의로운 일이라면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와자키가 그렇다. 칼에 베이고 화살에 맞아도 의로운 일이라면 조금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정말 위험하다. 의인은 고난이 많다고 하더니 역시다. '의에 살고 의에 죽는' 사와자키가 위험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영화, <영웅본색>(1986)에서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의 주윤발과 버금간다. 그렇지만, 주윤발은 이겨낸다. 그 힘은 호연지기(浩然之氣)5에서 비롯됐으리라. 사와자키도 그렇다. 호연지기로 승풍파랑(乘風破浪)6의 마음을 품고 이겨낸다.


험한 인생길이여, 험한 인생길이여!

수많은 갈림길에서 나는 지금 어디 있는가?

큰 바람을 타고 물결을 깨치며 나아가는 날이 반드시 오리니

구름 같은 돛을 곧장 펴고 드넓은 창해를 넘어가리라!

行路難 行路難
多岐路 今安在
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

-이백의 <행로난(行路難)> 중에서.

 사와자키도 이백과 같은 마음이리라. 험한 인생길에서 이렇게 다짐했으리라. 그렇게 지금도, 내일도 대장부가 되기로 하고 나아간다. 의식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맹자가 말한 그 대장부(大丈夫)!


 居天下之廣居   천하의 가장 넓은 곳에 살며

立天下之正位   천하의 가장 바른 곳에 서고

行天下之大道   천하의 가장 큰 도를 행한다.

得志與民由之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하고

不得志獨行其道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행한다.

富貴不能淫      부귀도 나를 타락시킬 수 없고

貧賤不能移      빈천도 나를 움직일 수 없고

威武不能屈      위세나 무력도 나를 꺾을 수 없다.

此之謂大丈夫   이런 사람을 일컬어 대장부라 한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의 하편 중에서.

      

 이렇게 사와자키가 앞으로 걸어야 할 길. 지금부터의 내일에 걸어야 할 길은 대장부의 길인 것이다.

 책, 《지금부터의 내일》은 역시, 사와자키의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의 대사와 행동에 그의 향이 진하게 묻어난다. 그리웠던 그 향! 잘 음미했다. 그나저나 사와자키 탐정! 내일은 건강을 위해서 정말 금연해야 할 텐데.


 


 

  1. 일본에서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가 2004년에 출간되었고, 《지금부터의 내일》이 2018년에 출간되었으니, 14년 만이다.
  2. 하라 료, 《지금부터의 내일》, 문승준 옮김, 비채, 2021.
  3. 1920년대부터 미국 문학에 나타난 창작 태도. 현실의 냉혹하고 비정한 일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간결한 문체로 묘사하는 수법이다. 헤밍웨이의 <살인자>를 비롯한 초기 작품이 있으며, 주로 탐정 소설에 영향을 끼쳤다.
  4. 한나라 사마상여의 《유파촉격(喩巴蜀檄)》에 의불반고(義不反顧)라는 표현이 있다.
  5. 1.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원기. ≪맹자≫ <공손추(公孫丑)>의 상편에 나오는 말이다.
    2. 거침없이 넓고 큰 기개.
  6. 먼 곳까지 불어 가는 바람을 타고 끝없는 바다의 파도를 헤치고 배를 달린다는 뜻으로, 원대한 뜻이 있음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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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 - 삶은 결국 여행으로 향한다
채지형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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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이 멈췄다. 새로운 전염병 때문에. 그래도 남는 건 뭘까? 여행 작가 채지형은 말한다. 사랑이라고. 그녀의 책, 《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2021)라는 이름에서. 그녀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모두들 여행에 가면 남는 건 사진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그 사진에 담겨 있는 것. 사진으로 투영된 여행자의 가슴에 담겨 있는 것. 그것은 사랑이다. 그렇다. 여행의 기록에 담긴 것은 사랑이다. 찬란하게 빛나고, 다채로운 색채의 사랑이다.


 '돌아보니, 인생의 변곡점마다 피와 살이 된 여행의 순간이 있었다. 오늘의 나는 그 순간이 모여 이루어졌다. 가슴 찡했던, 후끈 달아올랐던, 소름 돋을 정도로 오싹했던, 넙죽 엎드려 절하고 싶었던, 무릎을 탁 치게 했던 길 위의 순간을 책에 담았다. 여행 유전자를 물려주신 부모님에 대한 사연, 예쁜 쓰레기를 모으는 여행 컬렉터의 구구절절한 변명도 들어 있다. 신문과 잡지에 낸 글이 주를 이루지만, 처음 선보인 글도 적지 않다.' -prologue <여행, 너를 믿는다> 중에서. (7쪽). 


 여행의 순간들. 그 순간들이 모이고 쌓여서 삶의 힘이 되어 준다. 사랑을 품고 있기에. 여행 작가 채지형에게도 그랬다. 지금은 여행이 멈췄지만, 세상의 곳곳을 다녔었던 그녀. 네팔, 핀란드, 미국, 스리랑카, 스위스, 인도, 일본, 타이완, 나미비아, 태국 등. 여기저기의 하늘을 보고, 이곳저곳의 땅에 닿았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도 만났다. '여행의 효능을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이 만남(140쪽)'이라는 그녀.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과의 만남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하늘, 땅, 사람. 그녀는 그 창문을 통해 무한하고, 끊임없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여행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며 밝히는 사연들. 또, 그녀가 여행하며 모으는 것들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인형, 마그네틱, 패브릭, 커피, 차, 영수증, 엽서 등. 그중에 '인형은 여행을 하며 만났던 '그 사람'을 닮았다(258쪽)' 모은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인형은 정말 그곳의 사람을 닮았다.

 이 모든 것이 사랑에서 비롯되었고, 사랑을 남겼다.


 '이 책이 우리 모두에게 길 위에 빛나던 순간을 소환해 주길 기대한다. 터널을 지나는 우리에게 한 줌의 햇살이 되기를, 어두운 방에 걸린 작은 창문이 되기를 소망한다. 여행이 보이지 않지만, 사라진 건 아니다.' -prologue <여행, 너를 믿는다> 중에서. (7쪽). 


 '나에게 여행은 해결사였다(138쪽)'는 그녀. '여행이야말로 나를 숨 쉬게 하는 이유(142쪽)'라는 그녀. 그녀는 누구보다 뚜렷한 여행 유전자를 물려받은 게 확실하다. 그래서 여행이 일상인 여행 작가가 되었나 보다. 그리고 여행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고. 그렇다고 여행 유전자가 없는 사람들은 실망하지 마시라. 여행은 분명 모두에게 주는 힘이 있다. 길 위에 빛나는 발자국을 남기던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있기에. 그 순간들은 한 줌의 햇살이 되고, 작은 창문이 되기도 한다. 사랑으로. 여행은 그런 것이다. 아쉽게도 전염병이 세상을 뒤덮은 지금은 이런 여행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말처럼 여행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행은 꼭 돌아온다. 여행의 귀환을 기다리며 나온 이 책, 사랑이 담긴 이 여행 기록은 아름다운 기도다. '여행 다닐 때 꼭 엽서를 쓴다(282쪽)'는 그녀가 새로운 엽서 쓰기를 염원하며 하는 기도. 여행이 남긴 사랑으로 다시 여행을 부르는 기도. 사랑스럽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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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1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6 0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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