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으면 아프다 - 뇌가 사랑 없는 행위를 인식할 때 우리에게 생기는 일들
게랄트 휘터 지음, 이지윤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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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한다. 사랑하면 예뻐진다고. 사랑으로 사람이 밝아지고, 빛이 난다고. 옳은 말이다. 그런데, 연인 사이의 사랑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과 존재에 대한 아낌, 너그러움, 이해, 받아들임, 도움, 베풂의 감정도 그렇다. 즉, 넓은 의미의 사랑까지도 그런 것이다. 이런 사랑의 부재일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지 말하는 이가 있다. 독일의 신경생물학자이자 뇌과학자인 게랄트 휘터다. 차분히 그의 뜻을 책에 그렸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프다》라는 그의 책. 그곳에 새겨진 깊은 울림의 목소리를 들어 보자.


'우리가 병드는 건 ……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21쪽.


우리는 여전히 아프다. 눈부신 의학의 발전에도 우리는 여전히 몸과 마음이 아프다고 호소한다. 저자는 그것이 사랑의 부재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그. 이 주장을 차근차근 펼친다. 뇌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 안에 있는 스스로 치유하는 힘이 억제된다고. 관심을 받고 싶고,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강한 우리. 그에 대한 갈증으로 몸과 마음의 욕구를 외면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의 마음에는 소속과 애착, 자율과 자유를 향한 욕구가 있는데,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균형이 크게 깨진다고 한다. 강한 스트레스와 심한 불안을 야기해서. 그렇게 우리는 치유력을 잃고 몸과 마음이 아프게 된다고.

우리는 더 잘 적응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부와 권력을 향한 열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사랑이 있을 곳은 비좁다. 사랑 없음이 당연시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악용하고, 넘어뜨리고, 짓밟는다. 그렇게 우리는 아파 간다. 치열한 경쟁의 속에서 사랑은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자신도 사랑하지 않게 된 우리. 그런 우리가 다른 이를 사랑한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더욱 아픔이 깊어지고 있고.



'사랑의 감정이 채워지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다시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없다.' -5쪽.


사랑 없음은 우리를 불균형으로 만든다는 그. 사랑의 부재로 스트레스와 불안의 증폭은 우리의 신경망을 교란시킨다고 한다. 이 불균형은 아픔으로 이어졌고. 이런 사실을 통찰한 지은이. 그는 사랑 없음으로 아픔이 만연한 세상에서 역설(力說)한다. 사랑하라고. 스스로를. 그리고 다른 이를. 우리는 불균형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마음이 있다고. 사랑의 갈망을 외면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사랑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고. 사랑하면,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사랑은 봄에 피는 꽃.

모든 것을 희망으로 향기롭게 하며,

폐허조차도 향기로 그윽하게 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저자는 사랑하라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프다고. 신경생물학자이자 뇌과학자인 그가 그렇게 말한다. 유가에서 말하는 인(仁), 불가에서 일컫는 자비(慈悲). 기독교에서 전하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으리라. 그가 활약하는 학문인 뇌에 대한 설명이 더해졌을 뿐. 이런 그의 가르침이 참으로 소중하다. 망각하거나 외면했던 가르침이었다. 그가 말한 '내면의 나침반'을 믿고 나아가야 하리라.

플로베르의 말처럼 봄에 피는 꽃인 사랑. 모든 것을 희망으로 향기롭게 하는 사랑. 폐허조차도 향기롭게 하는 그 사랑. 사랑으로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향기를 담은 이 책. 그윽한 사랑의 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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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소크라테스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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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입관이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 눈은 보이는 것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이 눈은 고정된 틀처럼 우리를 가둔다. 갇힌 우리는 성장하지 못하고 움츠러든다. 그렇게 옥죄는 눈이다. 그런 눈은 하나로 시작하지만, 여럿의 동참를 불러온다. 더 크고, 더 무거운 눈덩이가 된 선입관은 우리를 더욱 짓누른다. 진정한 인식을, 올바른 성장을 가리는 이 선입관. 이것을 통쾌하게 타파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사카 고타로의 《거꾸로 소크라테스》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눈으로 그린 이 이야기. 따뜻하고, 시원하다. 그 안으로 들어간다.


'적은 선입관이야.' -<거꾸로 소크라테스> 중에서. (28쪽).


 다섯 단편의 모음인 《거꾸로 소크라테스》. 그 표제작인 <거꾸로 소크라테스>는 선입관에 찌든 초등학교 교사와 그에 맞선 아이들의 이야기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안다'라고 한 소크라테스 할아버지. 즉, 무지의 지를 설파했다. 그 반대, 즉 거꾸로가 구루메라는 초등학교 교사다. 그는 선입관을 가지고 그 대상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꾸로 소크라테스. 이 초등학교 교사는 구사카베라는 아이를 선입관으로 낙인찍었다. 교사 기대 효과의 나쁜 사례다. 이에 반발한 아이들 몇 명이 이 선입관을 무너뜨릴 작전을 세운다.

 나머지 단편 넷도 선입관과 대결한다. <슬로하지 않다>는 '왕따 당할 이유가 있어서 왕따를 당한다'를, <비옵티머스>는 '언제나 낡은 옷을 입는 아이는 가난하다'를, <언스포츠맨라이크>는 '범죄자와는 함께 살아갈 수 없다'를, <거꾸로 워싱턴>은 '의붓아버지는 아이를 학대한다'를 깨뜨릴 선입관으로 보여준다. 이 적들과 멋진 승부를 펼친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거꾸로 소크라테스> 중에서. (25쪽).


 선입관은 눈을 흐리게 해서 진정한 인식을 가로막는다. 또, 단단한 틀이 돼서 올바른 성장을 방해한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오만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다아시의 사랑을 진정으로 인식할 수 없었고, 그 사랑으로 함께 올바른 성장을 할 수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편견을 깨닫고 고친다. 열린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소설 《거꾸로 소크라테스》도 열린 마음의 어린 아이들이 선입관을 부순다. 해학과 재치로. 그런데, 이 어른들의 답답하게 갇힌 선입관. 마치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할아버지가 말한 우상 같다. 그는 우상설에서 네 가지 우상(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을 말하며, 타파해야 한다고 했다. 섣불리 단정하지 말자는 그. 이 소설, 《거꾸로 소크라테스》에서도 선입관을 '일방적인 단정(28쪽)'으로 규정한다. 그렇다. 프랜시스 베이컨 할아버지도 이사카 고타로 아저씨도 고정 관념을 버리고 하나하나 고찰하라고 한다. 열린 마음으로.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라고 말하며 행동하라고 한다. 무지의 지를 외친 소크라테스 할아버지처럼. 꿈과 용기를 가지고. 직접 경험하라고 한다. 선입관은 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그렇게 이 소설은 따뜻하면서도 시원해진다. 현실과 몽상이 잘 어우러졌다.

 덧붙이는 말.

 하나. 제33회 시바타렌자부로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또, 2020년 일본서점대상 4위(띠지에는 2021년이라고 하지만, 2020년이 맞는 것 같다)이고, <다빈치> 선정 올해의 책 2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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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두려워하는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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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독선가가 있다. 정확히는 거의 누군가에게 독선가로 만들어진다. 이런 이들이 신념을 가지면, 지극히 맹목적으로 행동한다. 그것이 지나쳐 광기를 보이게 되기도 하고, 마침내는 날카로운 폭력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무섭다. 그런데, 이들을 교사(敎唆)하는 이들도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이 만든 독선가를 더 강하게 세뇌한다. 대부분 자신들의 불순한 이익을 위해서 한다. 특히, 더러운 기득권자들이 그런다. 이들을 움직여 자신들이 더 올라서는 것이다. 악랄하다. 결국 그렇게 소용돌이에 휘말린 사람들만 아프다. 이런 사실을 그린 소설. 감사하게 만났다. 《빛을 두려워하는》이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빛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달라요. 우리와는 달리 확신을 갖고 있어요. 저는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확신이 두려워요.


……


자기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죠.' -316쪽.



우버 택시의 운전자 브렌던. 어느 날, 한 사람을 택시에 태운다. 병원으로 가는 손님, 엘리스. 그녀는 은퇴한 대학교수다. 임신 중절을 원하는 여성들을 돕는 그녀. 그녀를 병원에 내려 준 브렌던.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한 그는 한 사건을 목격한다. 엘리스가 들어간 병원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괴한이 화염병을 던지는 사건. 급히 엘리스를 찾기 위해 병원에 들어간 브렌던. 힘들게 엘리스를 찾아 다시 택시에 태우게 된다. 그런데, 집에서 뉴스로 그 병원 경비원의 죽음을 듣게 된다. 충격이었다. 그 후로 로스앤젤레스의 임신 중절 문제라는 거센 폭풍에 들어가게 되는 브렌던. 아내 아그네스카는 임신 중절 반대론자. 딸 클라라는 임신 중절 찬성론자. 가족조차 뜻을 달리한다. 거기에 어둠의 배후에 있는 이들도 있다. 즉, 토더 신부와 큰 자산가인 켈러허가 과연 어떻게 조종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임신 중절 문제. 솔직히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미혼이기에 임신은 먼 이야기로 느껴졌었다. 그저 막연히 될 수 있으면 임신 중절 수술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원하지 않는 임신도 있을 수 있으니, 그때는 임신 중절 수술을 해도 괜찮을 듯했고. 그런데, 이 두 진영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은 거대한 폭력을 낳을 수 있다. 그 폭력은 필연적으로 희생자를 불러오고. 원만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한 이유다.

소설 《빛을 두려워하는》은 이 문제를 묵직하게 그려 낸다. 가독성 높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안에서. 독선가를 만들고 세뇌하는 악랄한 이들을 비판하는 이 이야기. 큰 어둠에 맞선다. 빛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사람들이 빛을 찾은 것처럼 꾸며 착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어둠에 들어오게 한다. 어둠에 들어온 이들은 또 다른 이들을 어둠으로 인도하고. 결국 어둠의 정점에 있는 이들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부와 권력을 움켜쥔다. 이 소설은 말한다. 이제 비록 작지만 빛이 되는 용기를 내어 보자고 한다. 그리고 그 빛은 사람들에게 이어 주자고. 그렇게 큰 빛을 이루어 빛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나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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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스완 - 회복과 재생을 촉진하는 새로운 경제
존 엘킹턴 지음, 정윤미 옮김 / 더난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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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조는 우아하다. <백조의 호수>는 그것을 잘 보여주는 빛나는 거울이고. 춤추는 발레리나의 몸짓은 백조의 환생처럼 기품의 향연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거울의 이면에는 슬픔도 있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 오데트는 저주에 걸려 낮에는 백조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백조의 슬픈 이면은 또 있다. 슈베르트의 가곡집 <백조의 노래>는 그의 사후 출판하는 사람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삶의 마지막을 기리며, 애도의 뜻을 담아. 그리고 동화 <미운 오리 새끼>도 있다. 백조는 어릴 때,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차별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우아함과 슬픔. 백조의 거울이다. 하지만, 거울이 또 생겼다. 2007년 《블랙 스완》이라는 나심 탈레브의 책이 나오고서다. 그 거울은 극대화된 슬픔. 즉, 죽음이다. 그리고 '그린 스완'이라는 용어도 있다. 그 개념을 담은 《그린 스완》이라는 책. 지속 가능 경영의 선구자라는 존 엘킹턴이 쓴 이 책은 어떤 거울을 비출지 보고자 한다.






 '우리는 블랙 스완 또는 그린 스완의 특성을 반영하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및 지속가능성의 여러 가지 측면을 살펴볼 것이다. 이 중에는 두 가지 스완의 특성이 공존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15쪽.


 그럼, '블랙 스완'이란 무엇인가. 가능성이 극히 적지만, 일단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건을 말한다. 9.11 테러나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그린 스완'은 무엇인가. 기후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 금융 분야의 위기다. 백조의 거울 가운데 하나. 죽음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그 거울의 이면도 말한다. '그린 스완'을 세계적으로 위기에 처한 경제, 사회, 정치, 환경 등을 모두 아울러, 회복과 재생을 추구하는 것으로 확대한다. 이 거울은 소생이다.

 그리고 우리 세상의 다섯 가지 사악한 문제도 말한다. 첫째, 플라스틱 쓰레기로 오염된 바다. 둘째, 살인자 격인 고칼로리 음식. 셋째, 항생제의 심각한 남용으로 인해 인류와 생태계에 생긴 내성. 넷째, 지구의 기온을 급격히 상승시키고 있는 탄소. 다섯째, 우주 쓰레기다. 

 이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필요한 지도자의 자질도 말한다. 알고리즘이 되지 말고 리더가 되라고. 즉, 시스템에 매몰되지 말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인류세를 이해하고 경영도 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그리고 변화에 있어 U자형 곡선을 만들라고.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면서. 이런 지도자가 되어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린 스완의 날개와 함께 하라고.


'그린 스완은 미래가 예상보다 훨씬 좋아질 가능성을 상징한다.' -13쪽. 



 우아함의 극치는 결국 소생이라고 생각한다. 백조가 가진 두 개의 거울, 우아함과 슬픔. 이런 백조의 한 거울은 더 나아갔다. 슬픔이 극대화가 되어 죽음이라는 것을 비추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죽음이라는 거울의 이면에는 소생이라는 거울도 있었다. 우아함의 극치를 비추는 거울, 소생. <백조의 호수>의 가장 보편적인 결말에서 오데트는 죽음으로 저주의 마법을 푼다. 그리고 삶은 다시 이어진다. 또, 슈베르트의 죽음을 기린 <백조의 노래>는 불후의 명곡이 되었고. 동화 '미운 오리 새끼'의 백조도 마침내는 아름답게 날아오른다. 순결한 우아함이다. 그렇다. 백조의 다른 거울은 죽음을 이겨낸 소생이다.

《그린 스완》의 저자도 '그린 스완'이 가진 백조의 두 거울을 말한다. 죽음과 소생. 그 소생의 호수. 그 호수로 배를 저어 나아가는 길을 말하고 있는 그. 일리가 있다. 깊은 통찰에서 나오는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그것을 담은 이 책을 현자의 거울이라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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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의 살의
미키 아키코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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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억울한 일을 겪고는 한다. 그 억울함의 크기와 깊이는 다르겠지만, 대부분 성장통(成長痛)처럼 겪는다. 억울함의 아픔. 일반적으로 우리를 자라고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사라진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억울함으로 인한 그 아픔이 너무 크고 깊다면, 우리를 삼키고 추락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화인(火印)처럼 남기도 하고. 그렇게 남은 아픔은 피눈물의 분노로 이어지기도 쉽다. 그래서 결국에는 비극의 복수를 낳으며 마무리되는 억울함의 아픔도 많고.

추리 소설 속의 한 남자. 살인자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억울하다는 그. 소설 《기만의 살의》는 그의 슬픈 분노로 외친 목소리다. 그는 어쩌다가 그런 애통한 노래를 하게 되었을까? 또, 마침내 어떤 결말을 지을까?







'자 이쯤에서 확실히 말씀드리지요. 저는 죄가 없습니다.' -76쪽.


살인자의 낙인이 찍힌 한 남자. 니게 하루시게. 명문 니게 가문의 데릴사위로 변호사였다. 그런 그가 아내 사와코와 조카이자 양자인 요시오를 독살한 범인으로 지목된다. 장인이자 선대 당주인 니레 이이치로의 오칠일에 이런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정황과 증거가 그를 살인범으로 몰았다. 흠집이 난 커피잔에 든 아비산. 아비산이 든 초콜릿. 부엌에 간 적이 있는 그. 그의 재킷에서 나온 은박지 조각. 게다가 그가 어느 여인과 찍은 의심스러운 사진도 나왔다. 사면초가였다. 그때가 1966년. 그는 사형을 피하고자 범행을 자백하고야 말았다. 무기 징역이 확정된 그. 2008년에야 가석방이 되어 나오게 된다. 40년이 넘게 감옥에 있었던 것이다. 나온 후, 홀로 니게 저택을 지키는 처제 도코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신은 죄가 없다며.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게 되는데.


'이 모든 악의 근원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 것에 있다.' -244쪽.


'증오는 가라앉은 노여움이다.' -마르쿠스 키케로.


그는 억울했다. 그럴 만했다. 죄도 없이 하루아침에 두 명을 독살한 범인이 됐으니. 그것도 아내와 양자를 죽인 파렴치범으로. 그렇게 철저히 어둠에 삼켜지고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됐다. 잔인한 살인자로 낙인이 찍혔다. 누군가의 교묘한 속임수로 그렇게 파멸된 그. 감옥에서 그의 노여움은 쌓여만 갔다. 그리고 그는 범인의 정체와 기만의 수법에 대해 골몰하게 된다. 드디어 이 모든 악의 근원은 그가 누군가와 서로 사랑한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그렇게 키케로 할아버지의 말처럼, 가라앉는 노여움은 그에게 증오가 되면서.

손자 할아버지는 손자병법에서 전쟁은 속임수라 했다. 그렇다. 전략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속임수를 기반으로 한다. 전쟁은 시작하면 반드시 이겨야 하기에. 이렇듯 속임수도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대결에서 보이는 규칙 안의 기만. 추리 소설과 마술은 그 전형적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거기에도 전략이 있다. 그 창작자들은 독자, 관객을 속이고, 속은 그들은 놀라며 즐거워한다. 속았는데, 진심으로 웃는다. 약이 되는 좋은 기만이다. 소설 《기만의 살의》도 그렇다. 공정한 단서와 치밀한 복선. 그 위에 지어진 착한 속임수. 튼튼하고 꼼꼼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속임수는 기쁨이다. 마지막에 가서야 소설에서 말하는 기만 안에 담긴 살의를 완전히 꿰뚫을 수 있었다. 이런 벅찬 환희의 속임수는 언제나 환영이다.

덧붙이는 말.

하나. 이 소설의 작가인 미키 아키코는 변호사 은퇴 후 집필 활동을 하는 여성 작가라고 한다.

둘. 이 소설은 2021년 '본격 미스터리 대상' 최종 후보였다고 한다.

셋. 초판 1쇄 기준으로 348쪽의 '도쿄'를 '도코'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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