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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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는 하나의 벽(癖)이 있다. 수집벽(蒐集癖)이다. 소소한 수집벽. 책을 수집하는 벽이다. 이 벽을 지병(持病)으로 여기고 있다. 어렵지만, 언젠가는 나을 수 있는 난치병이라 생각하며 살아오던 나. 그런데, 누군가에게서 그 병은 불치병이라 듣고는 그것이 진실이라 인정하게 됐다. 평생 안고 가야 할 이 병. 오히려 이 병 덕분에 더 힘차게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책과 나의 만남. 그 만남 하나하나에 소중한 인연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과 나의 대화도 마음의 깊이를 더하게 하고. 그렇게 책은 나에게 아름다운 빛의 조각이다. 간혹, 구하기 어려운 책이 있으면, 나도 살짝 집착이 생기기도 한다. 기다리다가 인연이 닿으면 만나기도 하지만, 끝내 못 만나기도 하는 책. 아쉽게 만나지 못하는 책은 인연이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집착을 내려놓기도 한다. 이제 나도 책과 대화를 나누며 여유를 배운 듯하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까지는 아직 아니어도.

 내가 만난 어느 책에 깊은 집착을 못 버린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깃털에 대한 집착. 결국 깃털 도둑이 된 그. 그 이야기가 담긴 책과 대화를 나누어 본다.

 

(사진 출처: 흐름 출판 네이버 포스트)


'"박물관에 침입해서 뭘 훔쳤다고요?"'

 (……)

 "죽은 새라고요?"' -16~17쪽.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한 점도, 궁금한 점도 늘어갔다. 나는 결국 직접 진실을 파헤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것이 플라이 중독자, 깃털 장수, 마약 중독자, 맹수 사냥꾼, 전직 형사, 수상쩍은 치과의사 같은 사람들을 만나, 은밀한 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23쪽.


 2009년 6월 24일 밤, 영국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16종 299마리의 새 표본이 사라졌다. 누군가 훔친 것이다. 박물관에 침입한 지 500일하고도 7일이 지난 날. 범인이 잡혔다. 그는 영국 왕립음악원의 플루트 연주자 에드윈 리스트였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그. 범행 당시 그는 열아홉 살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는 플라이1 타잉2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던 것이다. 그 재료로 깃털을 사용한다고 한다. 취미로 시작한 이 일. 결국, 범죄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그런데, 아스퍼거증후군이라 하며, 집행유예 12개월의 선고를 이끌어 낸다. 이런 에드윈의 이야기에, 탐험가이자 생물학자였던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탐험기, 월터 로스차일드가 세운 동물박물관 이야기, 19세기 말 여성들의 패션을 장악했던 깃털 열풍과 깃털 패션을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의 자연보호 운동, 플라이 타잉의 세계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촘촘하고, 강렬하게 그리고 있다.


 '나는 속임수와 거짓말, 위협과 루머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가도 좌절하기를 수없이 반복한 뒤에야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물론,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이해하게 됐다.

 나는 결국 5년의 시간을 보낸 뒤에야 트링박물관에 있던 새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23쪽.


 새. 멀리서 철새를 바라보며 낭만을 즐긴 적이 있다. 그리고 고구려의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를 생각하기도 하고, 다산 정약용의 '매화쌍조도'를 떠올린 적도 있다. 혹시, 신선이 된다면 학을 타고 다니며, 봉황을 만나는 상상을 한 적도 있고. 그런데, 박물관에서 죽은 새를 훔쳤다니, 정말 독특한 사건이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1992)에서 봤던 플라이 낚시. 범인 에드윈은 빅토리아식 연어 플라이에 희귀한 깃털을 재료로 했다. 이 실화를 추적하고, 깃털에 얽힌 매혹적인 여러 이야기를 담아낸 저자. 놀랍다. 가볍기만 한 깃털에서 크고, 많은 놀라움을 찾아냈다. 인간의 탐욕.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에서 강하게 보였다. 그리고 인간에 의한 동물의 멸종과 자연 파괴의 실체. 마음 아팠다. 그나저나 이 깃털 도둑! 에드윈은 너무 욕망만 보인다. 장 발장에게는 눈물이, 아르센 뤼팽에게는 낭만이, 홍길동에게는 의가 있었는데.




 덧붙이는 말.


 이 책은 2018년 출간 직후 미국 아마존닷컴에서 45주 간 분야 1위를 지켰던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또한 아마존닷컴 선정 ‘2018년 최고의 논픽션’, 북페이지 선정 ‘2018년 최고의 책’, 포브스지 선정 ‘2018년 최고의 신작’, 미국도서관협회 선정 '2018년의 주목할 도서'라고 한다.  
 


  1. 깃털, 털, 실 등의 재료를 사용해서 작은 물고기나 곤충 모양으로 만든 낚시용 미끼.
  2. 플라이를 '만드는 것'을 타잉(tying)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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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 - 장석주의 인물 읽기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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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어머니께서 아이에게 권하는 책, 아무래도 위인전이리라. 아이가 자라서 위인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선뜻 권하시리라. 나의 어머니도 그러셨다. 책장 안에 고이 모셔져 있던 위인전. 그때, 귀한 친구였다. 나라를 구하신 세 영웅.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이 세 분의 첫 만남이 그 위인전으로 기억한다. 오래전, 사촌 동생들에게 물려졌을 그 위인전. 이제 위인전을 잘 읽지는 않지만, 공경하는 분들의 책은 소중히 하고 있다. 나의 서재 깊숙한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 장석주 시인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 열다섯 사람을 선각자라 부르며.


 '이 선각자들에 대해 깊이 알면 알수록 나는 그 비범함에 놀라고, 그것이 무른 영혼을 단단하게 다지며 나를 더 높이 도약하도록 이끄는 계기가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내 영혼이 처음엔 걷고, 그다음엔 뛰었으며, 나중엔 더 높이 도약하여 춤을 추었다.' -'서문' 중에서. (6쪽)


 '노자, 공자, 붓다와 같은 성인에서 레프 톨스토이, 프란츠 카프카, 알베르 카뮈, 허먼 멜빌, 아르튀르 랭보 같은 작가들, 프리드리히 니체, 체 게바라, 스콧 니어링,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혁명가와 사상가, 그리고 화가 프리다 칼로, 기업가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6쪽)' 그들의 삶을 펼친다. 솔직히, 모르는 사람 하나, 뜻밖의 사람이 하나가 있었다. 스콧 니어링은 모르는 사람이었고, 스티브 잡스는 뜻밖의 사람이었다. 스콧은 불평등한 사회, 천박한 실용주의를 떠나 자연과 충만하고, 조화로운 삶을 산 사람이었다. 잡스는 아시다시피 '애플'의 아버지. 다르게 생각하며, 직관력으로 세상을 바꾼 놀라운 삶. 그렇게 보니, 선각자로 볼 수 있었다. 나도 애플의 단순함, 간결함, 존재 목적에 정확히 함치됨을 좋아해서 서서히 끄덕일 수 있었다.


 '혼자 있는 것은 고독한 일이다. 하지만 진정한 고독은 복잡한 세속에서 벗어난 심리적 피난처일 뿐 아니라 심미적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다. 외로운 것은 혼자라서가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온몸의 감각을 열고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금세 깨달을 것이다. 바람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빗방울이 종일 눈물을 떨구는 사연을 들으며, 물새의 웃음소리에 화답하듯이 웃어보라.'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 중에서. (221쪽)


 시인의 선각자! 그분들 가운데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삶을 비추면서, 고독을 이야기한 글이다. 고독의 달콤함을 말한다. 온몸으로 바람, 빗방울, 물새를 느껴 보자. 서로 이어져 있다. 혼자일 때, 더 단단하게 이어진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중에서.


 소로의 삶을 보면서, 이 글이 먼 곳에서 마음에 슬며시 다가왔다. 인연이 이어져 온 이 글. '혼자서 가라'는 말에서 또 깊은 울림이 증폭되었다. 혼자일 때, 자연과 뜻을 나눌 수 있게 되리라. 소리에 놀라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으며,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게 되리라.  


 '요원한 것을 향한 갈망을 품은 자, '금단의 바다'에 유혹을 느껴 항해를 떠나는 자, 먼 세계를 갈망하고 미지의 곳으로 자기 몸을 밀어 넣는 자, 가능한 것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리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과 제 몸을 비비며 모든 사물과 친해지려는 자! 그는 분명 청년이리라.'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중에서. (277쪽)


 '오늘날 누가 카뮈의 소설과 산문을 읽어야 하는가? 나는 특히 제 행복을 유보하고 끊임없이 현실과 싸우는 청춘들, 고향을 잃고 세계의 저 먼 곳에서 헤매는 이들, 사막에서 자신의 목마름을 응시하며 살아갈 능력을 키우는 이들, 운명이란 중력의 압력 속에서 무지와 광신에 맞서며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자기의 꿈을 위해 나아가는 세대에게 카뮈를 권유한다. -'가난조차 호사로 느낀 지중해의 영혼' 중에서. (242쪽)


 장석주 시인의 이 선각자 열전(列傳)들. 그의 솔직한 고백이자, 청춘들과 청년들을 위한 힘찬 격려의 목소리다. 저 멀리까지 들리는 사자후(獅子吼)다. 피를 끓게 하는, 열정에 가득찬 사자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 열다섯 사자후! 그 하나하나가 강렬하다. 또, 그 하나하나가 유연하다. 이 선각자들로 힘겨운 밤을 이겨내고, 찬란한 아침을 맞이하자. 밤을 이겨 내고 '아침에 뜨는 별이 태양'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처럼.


 '어른은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다. 더 나아가서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한다. 어른 되기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뜻이다. 앎과 생활이 어긋난 것은 어른답지 못하다. 그러므로 어른-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어제보다 오늘 더 미더운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상갓집 개에서 성인으로' 중에서. (74쪽)


 공자님 말씀. '어른-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어제보다 오늘 더 미더운 존재로 살아가라고 하신다. 열다섯 사자후 가운데 하나다. 이 사자후도 강렬하며, 유연하게 나를 감싼다. 그렇게 숨결 하나하나에 사자후 하나하나를 깊이 담고, 장석주 시인처럼 고백하도록 해보자. '내 영혼이 처음엔 걷고, 그다음엔 뛰었으며, 나중엔 더 높이 도약하여 춤을 추었다'고. 그리고 나만의 선각자도 이어서 만나자. 만나고 또 만나자.   




 덧붙이는 말.


 하나. 이 글들은 2016년 한 해에 걸쳐 《월간중앙》에 연재한 것이라 한다.

 둘. 초판 1쇄 기준으로 오타가 있다. 218쪽에 1937년을 1837년으로. 

 셋. 책 말미에 참고 문헌이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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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24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과나비님 메리크리스마스 하시고 늘 건강하소서!

사과나비🍎 2018-12-26 22:46   좋아요 1 | URL
아, 답글이 너무 늦었네요...^^; 죄송해요~ 카알벨루치님~^^;
제가 요즘 바쁘고, 제 두 어깨에 곰돌이가 앉아 있는 것 같았거든요...^^;
크리스마스 인사 말씀 정말 감사하고요~
카알벨루치님도 즐거운 성탄절 보내셨기 바랄게요~^^*
참, 추워진다고 하니까요~ 추위 조심하시고요~^^*

카알벨루치 2018-12-27 00:22   좋아요 1 | URL
늦을수도 있지요 be happy

사과나비🍎 2018-12-27 23:44   좋아요 1 | URL
^^* 예~ 말씀 감사해요~^^*

겨울호랑이 2018-12-31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과나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하시는 바 다 이루시는 한 해 되세요!^^:)

사과나비🍎 2018-12-31 21:20   좋아요 1 | URL
아, 겨울호랑이님~ 이렇게 새해 인사 말씀 남겨 주시고 정말 감사해요~^^*
한적한 서재에 감사하게도 찾아오셨네요~^^*
겨울호랑이님도 새해 복 가득가득 받으시고요~
새해! 건강과 행복이 언제나 함께 하기를 바랄게요~^^*

서니데이 2018-12-31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과나비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새해에는 가정과 하시는 일에 좋은 일들 가득한 시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 더합니다.
따뜻한 연말과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과나비🍎 2018-12-31 21:24   좋아요 1 | URL
아, 서니데이님~^^*
이렇게 잊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인사 말씀을 남겨 주시니, 정말 감사해요~^^*
먼저 이렇게 누추한 서재에 오셨네요~^^*
서니데이님도 새해에 복을 한가득 꼭 받으시고요~
또, 새해에도 뜻하시는 것을 다~ 이루시기 바랄게요~
건강과 행복이 함께 있으시기 바라고요~^^*
 
웃어라, 내 얼굴 슬로북 Slow Book 4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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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였으리라.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주어진 낱말을 넣어서, 짧은 글짓기를 했었다. 한 문장으로. 숙제로. 나름 고민해서 지었다. 생각보다 어려웠기에. 선생님은 어휘의 힘과 작문의 힘을 키우기 위해 그런 숙제를 주셨으리라. 지금도 낱말을 찾가다 보면, 그 낱말의 예문을 볼 때가 있다. 국어사전에서. 대체로 좋은 문장들이다. 그렇게 한 문장이지만, 간결하고도 밀도 높은 문장은 지금도 어렵다. 그렇기에 나는 문장이 적게 모인 짧은 글이라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짧은 글에 깊은 감동과 높은 재미를 담는 건 더 많은 내공이 필요하리라. 그런 내공 깊은 고수를 만났다. 소설가라 한다. 그의 소설을 만나지 않고, 산문을 먼저 만났다. 20년차 소설가의 산문. 20년 동안 돈과 바꾼 1500여 개의 산문 중에서 추린 산문. 126편.


 '조금만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세상에 이런 일이' 천지다. 괴력난신의 파노라마다. 미디어와 사이버 세상은 괴력난신 공작소 같다. 하기는 나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잡생각으로 점철된 괴력난신 덩어리다.' -'괴력난신' 중에서. (91쪽)


 공자님도 괴력난신을 가능한 줄여보자고 말씀하셨다는 그. 역시, 해학적으로 그의 나날들을 그리고 있다. 네 묶음으로.

 1부는 '가족에게 배우다'라는 묶음. 그 가운데 '어머니는 야담가'라는 산문이 있다. 맞울림이 온몸에 이어진다. 옛 여인분들처럼 우물가에서는 아니지만, 어머니는 야담을 곳곳에 담아 오신다. 난 경청하고. 또, '대출 세계관'에서 작가는 도서 대출을 말하지만, 아내는 은행 대출을 말하는 부분이 있다. 나도 대출이라는 낱말을 보면, 도서 대출을 먼저 생각한다. 작가와 같은 세계관인가. 동질감을 안 가질 수가 없다.  

 2부는 '괴력난신과 더불어'라는 묶음. 그 가운데 '스스로 반짝이는 별'이라는 산문에서 열정을 말하는 그. 어린이가 열정을 바치는 것은 스스로 반짝이는 별이 되기 위함이라는 그. 세상을 바라본 생각의 눈이 깊음에 감탄이다.

 3부는 '무슨 날'이라는 묶음. '법의 날'에서 작가는 말한다. '법아, 법 없이 살 사람들을 더 이상 울리지 마라'라고. 나도 자연스레 중얼거렸다. 진실로 그래야 한다고.

 4부는 '읽고 쓰고 생각하고'라는 묶음. 그는 소설가이기에, 글과 책 이야기를 한다. 그 가운데 한 이야기.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세상'에서 말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세상이 무릉도원일지도 모른다고. 이렇게, 지금, 서평이라고 쓰고 있는 나. 왜 쓰고 있을까. 그렇다.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일지도. 그리고 나와 같은 이들이 많아지기를.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보물 제2010호.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절로 웃을 수밖에 없는 소설. 위로받아서 웃고, 짠해서 웃고, 기가 막혀 웃고, 분해서 웃고, 절묘해서 웃고, 깨쳐서 웃는, 가진 자들의 체제와 권력에 대하여 날이 바짝 서 있으면서도 울음보다 강한 웃음기를 머금은 그런 웃기는 소설.

 (…) 다짐 삼아 얼밋얼밋 그려진 웃는 내 얼굴 보고 주문을 읊어본다. 웃어라, 내 얼굴! 웃어라, 내 소설!' -'웃어라, 내 얼굴' 중에서. (340~341쪽)


 예전에 '재밌는 TV 롤러코스터 1 - 남녀탐구생활'이라는 방송이 있었다. 일상 속에서 남녀의 각각 다른 심리와 행동을 재밌게 재연한 방송이었다. 공감에 공감을 했었다. 아마도 탐구 생활을 제대로 했기에 그랬을 거다. 소설가 김종광 씨도 탐구 생활을 제대로 했다. 훌륭한 생활 탐구가인 듯하다. '웃기는 소설'을 쓰고 싶다던 그. 이제는 '웃기는 산문'을 썼다. 그래서 웃었다. 마치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의 웃음처럼. 자연스럽고,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고, 아픔과 슬픔을 녹이는, 꿈과 바람을 담은 그 미소. 옛 사람들은 수막새의 저 미소를 보고 그대로 웃음을 지었겠지. 나도 이 글들의 미소를 보고, 그대로 웃음을 지었다. 수막새에 그려진 웃음과 포개어졌다. 편지이자, 회고록이자, 기행문이자, 일기인 이 글들. 그 안에서 위로받아서 웃고, 짠해서 웃고, 기가 막혀 웃고, 분해서 웃고, 절묘해서 웃고, 깨쳐서 웃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도 생활을 탐구하고. 그렇게 생활의 발견을 하나하나 이어가고 싶다. 그래서 나도 주문을 읊어본다. 웃어라,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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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0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걸요 - 마음 아픈 사람들을 찾아 나선 ‘행키’의 마음 일기
임재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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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아르테 네이버 포스트)


 마음의 병, 그리고 그 마음의 병이 깃든 사람들. 그 마음의 병을 어루만지며, 사람들을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마음의 병을 고치는 사람. 그의 일기 같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로 내 마음에 떠오른 한 분. 몇 년 만에 기억의 수면 위로 올라오신 그분. 교회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셨던 분이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계실 때, 마음의 병이 다가왔다던 그분. 내가 만났을 때는 다행히 마음의 병이 안 보여서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병이 다시 찾아왔고, 소문이 돌았다. 불안증이라고 들었다. 잘 웃으셨고, 친절하셨던 분이었는데, 마음이 아팠다. 소문을 낸 사람이 마음의 병이 더 깊은 사람 같았다. 그렇게 다니던 교회에서 멀어지셨던 분. 지금은 마음의 병을 지우고, 두 아이를 잘 키우고 계시다고 들었다. 마음의 병이 있다고 백안시(白眼視)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눈에 깊은 상처를 받고 병원을 가까이 하지 않는 분들. 그런 분들을 보고, 홀로 참고 참다가 결국에는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분들. 그분들을 위해, 거리로 나선 행키. 바이올린을 연주하셨든 그분의 선율을 생각하며, 행키의 이야기를 살포시 포개어 본다.


 '그들은 속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속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데

 그 한 사람이 없어서 홀로 참고 참고 또 참다가

 결국 마음의 병을 얻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정신과 의사를 만나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홀로 힘겹게 버티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마음의 병을 얻기 전에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한 사람'이 되어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프롤로그 '당신 곁에 한 사람' 중에서. (6~7쪽)


 그들의 '한 사람'이 되어 위로하고 싶었다는 정신과 의사 행키. 행키는 '행복 키우미'의 준말이라고 한다. 영어 'hanky'는 손수건(handkerchief)의 준말이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 아픈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자 행복을 키우는 행키라고 한다. 사실, 그도 마음의 병을 앓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의대에 진학해 우울증을 만났던 그. 동병상련으로 마음의 병든 분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그렇게 거리로 나선 그. 거리의 의사다. 상담 트럭을 끌고 나선. 처음에는 사람들이 찾지 않던 상담 트럭. 그 우여곡절이 그려져 있다. 그러다가 TV 방송에 출연하게 되어 사람들이 그를 알게 되고. 그렇게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에 여러 상담이 이어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이 일기는 마음 깊숙이 들려준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남자, 자폐증을 가진 아이를 ‘독박 육아’ 하는 어머니, 알코올중독에 빠진 대학생, 딸이 성폭행당한 후 절망에 빠진 어머니 등'의 사례를 사실에서 살짝 변형하여 들려준다. 그분들에 대한 예의로. 그리고 행복을 키울 수 있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1. 삶의 즐거움을 음미하라', '2.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라', '3. 타인에게 먼저 도움의 손을 내밀어라', '4. 현재에 충실하라', '5. 평생 지속할 수 있는 목표에 헌신하라'를 말하기도 하고. 또, 2016년 2월,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라는 이름으로 거리 상담을 시작한 행키. '찾아가는 마음 충전소'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된 사연도 들려주고.


 '어쩌면 병원은 병이 난 후에나 찾는 곳이라는 인식 때문에, 사람들이 너무 늦게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병원은 검사와 예방을 담당하는 곳이기도 한데 말이다. 특히나 정신병원은 미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라는 편견 때문에 찾기를 꺼린다. 결국 아직 심각한 단계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될 위험성이 높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가서 도움을 받을 만한 정신 의료 기관이 없다는 게 문제다.' -'거리와 병원 사이' 중에서. (201쪽)


 행키가 말하길 마음이 아픈 분들이 정신병원에 오는 데 보통 18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18개월 동안 병을 키운 그분들. 그 18개월을 줄이고자 거리로 나섰던 행키. 병원, 정신건강복지센터, 거리 상담을 모두 경험한 행키. 병원은 편견으로 문턱이 높고, 정신건강복지센터는 병원에 비해서 전문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과 정신건강복지센터 사이에 있는 그곳을 상상하는 행키. 또, 정신 질환 예방, 조기 발견 및 조기 개입, 치료까지의 연결고리의 중요성을 절감한 행키.     

 며칠 전, 보호자로 같은 병원에 다닌다고 말씀하신 분이 계셔서, 그곳에서 뵐 수도 있겠다는 말씀을 드렸었다. 농담조로. 그런데, 병원에서는 만나지 않는 것을 바란다는 그분. 병원은 병이 있는 사람만이 오는 곳이라 생각하셔서 그런 것이리라. 난 병원은 건강검진도 하는 곳이라 병원에서 뵙는 건 나쁘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치료도 있지만, 예방과 조기 발견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음의 병에도 예방과 조기 발견의 힘이 잘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 아픈 사람들을 찾아 나선 '행키'의 마음 일기'라는 이 책의 작은 이름. 그 이름에서 보듯, 역시 이 이야기는 일기였다. 마음의 병을 이겨내는 온기를 담은 일기. 그 용기와 그 희망을 따뜻하게 담은 일기. 소중한 일기. 마음의 병을 지운 그분, 바이올린을 연주하셨던 그분의 가락을 음미하며, 이 따사로운 일기에 추위를 녹여 본다. 이 따뜻함, 나눌수록 더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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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ma1228 2018-12-10 0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행키입니다! ^^ 리뷰 감사합니당~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ㅎㅋ

사과나비🍎 2018-12-11 22:56   좋아요 0 | URL
행키님~^^* 이곳에도 댓글 남겨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붕붕툐툐 2018-12-10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너무 와닿아요~ 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다니~ㅎㅎㅎㅎ

사과나비🍎 2018-12-11 22:57   좋아요 1 | URL
아, 붕붕툐툐님~^^* 댓글 감사합니다~^^*
답글이 늦어서 죄송해요~^^;
예~ 책의 제목이 그렇지요~^^* 저도 읽는 순간! 와닿더라고요~^^*
그럼, 붕붕툐툐님~ 좋은 시간되시기 바랄게요~^^*

AgalmA 2019-01-02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어른이 정말 적성에 안 맞다 하고 있어요ㅎㅎ
사과나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과나비🍎 2019-01-02 21:35   좋아요 1 | URL
아, AgalmA님~^^* 아, 어른이 적성에 안 맞으시다고 말씀하시고 계시군요~^^;
아, AgalmA님의 새해 인사 말씀 감사합니다~^^*
예~ AgalmA님도 새해 복 가득 받으시고요~ 행복과 건강이 함께 하시기 바랄게요~^^*
 
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송정림 지음, 채소 그림 / 꼼지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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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르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최선 옮김, 민음사, 1997

 나는 눈물이 많다. 삶이 나를 속였기에. 그래서 슬퍼했거나 노했기에. 여린 나는 눈물을 한없이 머금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울한 날들이 여럿이었다. '우울은 얇게 퍼져 있는 분노다'1라고 하던가. 분노가 피웠던 우울의 안개가 차가웠고, 짙었다. 하지만, 이런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올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 믿음에 견디고 있다.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것, 그것이 삶을 달콤하게 만드는 것이다.'2라고 하던가. 지나가는 것은 훗날 달콤하고, 소중하게 되리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에,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리라. 이와 같이 슬픈 물음표에 따뜻한 쉼표로 말하는 글을 만났다. 가슴으로 만났다.


 '부지런히 가다가

 문득문득

 슬픈 물음표가 마음을 침범합니다.


 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나, 부지런히 가고 있는데

 왜 자꾸 우울한 거니?


 (……)


 더 늦기 전에

 행복해졌으면 해요.

 당신도, 나도,

 우리 같이


 행복해졌으면 해요.' -'프롤로그' 중에서. (11~13쪽)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왜 자꾸 우울한 거니?'의 슬픈 물음표. '당신도,' '나도,'의 따뜻한 쉼표. 그 쉼표로 '행복해졌으면 해요'라는 바람. 부드럽고, 포근한 바람.


 '위로는 손을 잡고

 그 추운 영혼 위에

 이불을 덮어주는 일.

 그리고 그 따뜻한 이불이

 내 영혼도 덮어주는 일.' -'위로 전달법' 중에서. (38쪽)


 겨울을 만난 추운 영혼에게 위로는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는 일. 그리고 위로는 그 영혼도, 내 영혼도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는 일. 끄덕이게 하는 글이다. 그리고 나도 위로하고 싶어지고. 그렇게 하게 되면 나에게도 위로가 되겠지. 좋다.


 이번 겨울의 첫눈이 온 날. 따뜻한 쉼표를 남기는 글의 느낌을 남긴다. 슬픈 물음표에 슬며시 다가와 남기는 따뜻한 쉼표. 그리고 행복을 바라는 마음. 소곤소곤 온기를 담은 글들이 온몸에 따뜻하다. 이 땅의 많은 이들이 눈물과 우울에 잠기고 있는 이 때. 온기로 부드럽게 안을 수 있는 책. 또 쓰다듬는 책. 그 가슴 안에서 울고 위로를 받자. 그리고 하루하루 행복해지자. 기쁨의 날이 오리니.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1.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 독일의 신학자)
  2.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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