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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 아저씨, 행복의 도구를 찾다 - 잘하려 애쓰는 대신 즐기는 마음으로, 취미생활 1년의 기록
이경주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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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다닐 때, 어떤 동기 하나가 있었다.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 동아리 선후배와 잘 어울리며, 대학교 생활을 즐겼던 그 친구. 축제 때는 여러 준비를 하며, 분주히 보내는 그 친구. 대학교에 있을 때는 수시로 그곳에서 지내기도 한 그 친구. 그에 반해 힘 절약주의자에, 낭만적 아웃사이더였던 나는 조용히 대학교 생활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동아리 활동을 해 보는 것도 괜찮았을 것 같다. 필수 과목은 아니지만 선택 과목 같은 느낌. 그 친구는 그 선택 과목을 즐기면서 수강한 것이었다. 평가가 없는 과목을. 즉, 그 친구에게는 대학교 생활에서 동아리 활동이 취미였다. 그 친구에게 지금 취미가 있을까. 있다면 뭐가 취미일까.

책, 《무채색 아저씨, 행복의 도구를 찾다》는 마흔셋의 나이에 그림을 취미로 갖게 된 사람의 이야기다. 그 나이에, 그림이라는 취미라니.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불현듯 대학교 다니던 그 시절의 그 친구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이 아저씨에게 그 친구를 투영하면서. 과연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삶은 팍팍해지고, 인생은 의미를 잃어가고, 일에 대한 열정은 슬슬 사라져가니 다른 세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금방 1년, 그림을 그리며 생각한 것> 중에서. (220쪽).

그는 <서울신문>의 이경주 기자다. 2018년 9월.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본 아내는 우물쭈물하다 또 아무것도 못한다며 아이처럼 내 손을 끌고 화실에 갔다.'(6쪽)라고 하며, 그 시작을 적었다. 지친 직장인이었던 그. 전에 한 선배가 술자리에서 '오래 사는 세상이다. 뭔가 할 게 필요해. 죽을 때까지 일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재미를 느낄 취미가 필요하다. 취미를 노후에 찾겠다고 나서면 이미 늦어. 젊을 때 하나 마련해라.'(17~18쪽)는 조언도 있었다. 게다가 2018년에 주 52시간제가 도입되었는데, 기자는 주로 금요일, 토요일에 쉰다고 했다. 아이가 학교에 가는 금요일 오전이 그에게 자유 시간이 된 것이다.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미술을 배워볼 것을 고민하던 그. 그렇게 아이가 다니는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칭찬의 고수인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취미는 산책처럼 마음 가는 대로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 내게도 그림은 하고 싶은 때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 되는 '일상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게으름이 허용되고, 그리다 중도에 포기해도 상관없다. '하면 된다'의 영역이 아니라, '되면 한다'의 영역인 것이다. 남의 평가로부터 벗어나고, 오롯이 내 마음에서 떠오르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편안해진다.' -<원데이가 아닌 꾸준한 취미를 갖고 싶다면> 중에서. (181쪽).

그는 '그림은 일기'(213쪽)라고 한다. '그림마다 당시의 생각과 삶에 대한 태도, 그날의 기분, 결심 같은 것들이 갖가지 형상으로 새겨져 있다'(213쪽)고 했다. 그는 또 말한다. '그림은 감정을 쏟아 붓는 용광로의 역할을 했다. 분노에, 우울함에, 두려움에, 기쁨에, 아름다움에 대한 탄성으로 한참을 그리고 나면 평온함이 찾아왔다'(222쪽)고 한다. '취미는 산책처럼 마음 가는 대로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는 그. 그림을 정말 즐겼다.


영화, <플레전트빌>(1998) 포스터.


<플레전트빌>(1998)이라는 영화가 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TV 시트콤 '플레전트빌'. 흑백이다. 어느 날, 쌍둥이 남매가 이 TV의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흑백의 이 세상은 개인의 감정이 숨겨진 곳이었다. 그런데, 이 남매로 인해 개인의 감정을 찾게 되는 사람들. 그렇게 하나하나 컬러를 갖게 된다. 무채색 아저씨였던 이경주 기자. 일에 지친 직장인이었던 그는 감정을 담을 도구가 없었다. 마치 <플레전트빌>의 흑백 세상과 같았다. 그랬던 그가 감정을 담을 행복의 도구를 찾은 것이었다. 취미로 만난 그림이었다. 그렇게 유채색 아저씨가 되었다. 그것은 <플레전트빌>의 세상에서 컬러를 찾은 것에 비견되는 사건이었다. 인생의 소중한 변화였다. 탁월한 선택 과목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잠시 생각해 봤다. 대학교 동기인 그 친구. 동아리 활동에 열심이던 그 친구. 그도 아마 지금도 취미가 있을 것 같다. 산책처럼 마음 가는 대로 즐기고, 오롯이 집중하는 것만으로 편안해지는 그런 취미. 그 행복의 도구로 유채색 아저씨가 되었을 것 같다. 이경주 기자와 그가 다시 겹쳐진다.

책, 《무채색 아저씨, 행복의 도구를 찾다》는 그림이라는 취미 생활 1년의 기록이다. 그림만이 아니다. 그의 삶, 생각도 담겨 있다. 기자답게 글이 간결하고, 명확한 일기. 그가 그림을 그리며 느끼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하나하나 다가온다.

덧붙이는 말.

하나. 이경주 기자는 2020년 7월부터 3년 임기로 미국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고 있으며, 여전히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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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 - 몸과 마음을 쭉 펴는 시간 딴딴 시리즈 4
이소 지음 / 인디고(글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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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지치고, 닳는다. 영혼은 항상 충만하게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삶에서 넘어지거나 무너질 때마다 영혼은 더 지치고, 더 닳는다. 살아 있는 영혼은 지치고, 닳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영혼을 꾸준히 채우면서 살아간다. 그러기 위해 누군가는 취미를 만들기도 한다. 맑은 영혼을 끊임없이 채우기 위해 만드는 취미. 그것은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한다. 찬란하게 채워진 그 영혼이 가르침을 주기에.

수필 《검도》검도를 취미로 하는 어느 여인의 이야기다. 대학교 2학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20년 가까이를 한 취미. 4단이 된 지금은 5단 심사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오랜 동반자인 검도. 둘이 함께 걸어온 소중한 길을 뒤돌아본다. 그 길을 걸었던 순간순간을 몸과 마음을 쭉 펴는 시간이라고 하면서.




 '내 마음의 일부인 호승심을 다루는 내 태도는 약간 달라진 듯하다. 타인을 깎아내리며 밟고 올라서는 건 나쁜 일이겠지만, 노력한 만큼의 실력으로 누군가를 앞서가고 싶다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거니까.' -〈빛나라! 호승심〉 중에서. 39쪽. 


 '흔들리면서 강해지는 사람, 강해지다가도 또 흔들리는 사람. 그런 모습 자체로 하루분의 수련을 해내는 게 나 자신일 뿐 흔들리는 나 자신에게 좀 너그러워지고 싶다. 잘하다가 못할 수도 있고, 못하면 좀 노력하면 되지.' -〈흔들리는 사람〉 중에서. 76쪽. 


그녀의 《검도》 이야기를 듣다 보면, 득도한 고승이 연상된다. 산사(山寺)에서 오랜 세월 수행(修行)의 열매로 얻은 고승의 깊은 깨달음. 그녀도 도장에서 여럿이 검도로 수련하며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호승심을 다루는 태도나 흔들리는 자신에 대한 너그러움 등. 오래된 깊은 샘물에서 올린 맑은 깨달음이다. 소중한 깨달음이다.

지치고, 닳은 영혼을 채우기 위해 하는 취미. 그런데,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취미가 영혼을 더 지치고, 더 닳게 하기도 했을 것이고. 더이상 취미가 아니게 된 상황. 득도한 고승이 아니라 파계승(破戒僧)이 된 자신. 파멸의 길은 넓은 길이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취미로 영혼을 밝게 채운 이들은 경이롭다. 좁은 길로 나아간 그들이기에. 검도의 좁은 길을 계속 걸었고, 걷게 될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수필 《검도》는 검도라는 취미로 오랫동안 영혼을 빛나도록 채운 여인의 참된 고백이다. 솔직하고 담백하다. 익살스러운 그림도 간혹 함께 있어 즐거움을 더한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그녀의 오랜 검도인의 길이 가득 담겨 있다. 아름답게 채워진 영혼이 주는 가르침. 그 목소리가 이 책에서 들린다. 책도, 사람도 더욱 단단하게 한다.

덧붙이는 말.

하나. 인디고 '딴딴'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라고 한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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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재영 책수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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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세월에 물든다. 시간의 흔적이 남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든 흔적에 기억이 깃든다. 책과 그 책을 만난 이의 기억. 책과 인연이 있어 만나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쌓은 기억. 또, 그렇게 앞으로 쌓을 기억. 더없이 소중하다. 그런데, 그런 책의 시간이 무너진다면, 우리는 상심의 울음을 짓고 만다. 귀한 인연의 끈이 끊어지려 하는 그 순간. 그 인연의 끈을 잡고 다시 잇고 싶지만, 쉽지 않다. 특별하지만, 아픈 책을 만난다는 것. 그래서 그 책과 대화를 더이상 할 수 없다는 것. 큰 슬픔이다. 결국, 아픔이 옮아오게 되기도 하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움직이는 이가 있다고 한다. 책 수선가라 호칭되는 이. 아픈 책을 치료하는 이다. 그 치료의 기록이 담긴 책을 감사한 인연이 있어 만나게 되었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이라는 책. 이 책과 따뜻한 대화를 나눴다.




'어렸을 적 친구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아요.' -'살아남는 책' 중에서. (22쪽). 


'그 책에 소중한 추억이 있다면 다시 오랫동안 튼튼하고 아름다울 수 있도록, 

특별한 감흥이 없다면 책 수선을 통해 새로운 추억이 시작될 수 있도록, 

재영 책수선은 언제나 망가진 책들을 환영하며 기다리고 있을 테니.'

-'우연히 만나 운명이 되는 책' 중에서. (266쪽). 


책도 수선한다. 그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기록을 보니, 대부분 책과 사연이 있는 이들이 책 수선가를 찾는다. 추억을 지키기 위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추억을 나누기 위해.

어렸을 적 친구 같았던 국어사전, 사랑의 흔적이 가득한 동화책, 선물받았다가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스물여섯 살 성경책, 어머니의 유품으로 어머니를 닮은 도안집, 수집가가 어렵게 구한 희귀한 잡지, 할머니의 정갈한 언어로 기록한 일기장, 할아버지께서 하나하나 정성으로 쓰신 천자문, 33년 된 사랑의 결혼 앨범, 힘들게 수집한 절판된 전집, 참된 친구와 함께한 여행 일지 등. 그리고 책뿐만이 아니다. 책갈피, 액자 등도 있다. 물론, 종이 재질로 된 것들이다.

이렇게 책이 가진 기억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추억이 되어, 우리에게 속삭인다. 징검다리가 되어 나에게, 또 다른 이에게 추억을 이어주기도 한다.


'책은 힘이고 용기이며, 동력이자 사유의 횃불이고 사랑의 샘.' -루벤 다리오.


책, 사물이지만, 사물 그 이상이다. 즉, 책이 대화할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저 미완성일 뿐이다. 그때는 단순 사물인 것이다. 운명의 영혼과 인연이 되어, 깊은 대화를 나누어야 비로서 완성된 책이 되는 것이다. 그때서야 책이 사물이지만, 사물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시인 루벤 다리오의 말처럼, 힘이고 용기이며, 동력이자 사유의 횃불이고 사랑의 샘인 되는 것이다. 그렇다. 책은 양가적(兩價的)이다. 어쩔 수 없이 마침내 병에 걸리거나 다치게 되는 책. 아끼는 책의 아픔! 비애가 솟아날 수밖에 없다. 고통이다. 이런 고통을 이해하고, 그 책의 기억을 관찰하며, 파손된 책의 형태와 의미를 수집하는 책 수선가. 아픈 책들의 수호자로서 치유의 손길을 베푸는 그녀. 그녀에게는 책에 아로새겨진 기억을 기꺼이 나누어도 된다. 언제나 아픈 책에게 환영의 인사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그녀이기에. 지금까지 대화를 나눈 이 빛나는 책 수선가의 책에서도 그 사랑스런 얼굴이 그려진다. 그런 그녀가 남긴 이 기록. 꼼꼼하고, 사려 깊다. 그러니, 대화가 싱그럽다. 이 책, 사물 그 이상이다. 힘, 용기, 동력, 사유의 횃불, 사랑의 샘이다.

덧붙이는 말.

하나. 이 책에는 리디셀렉트에 2020년 9월에서 2021년 5월 사이에 연재했던 글 스물한 편과 새로 쓴 아홉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한다.

둘. 저자가 말하길 테이프는 종이의 적이라고 한다. 장갑도 책에게 망령이라고 하고.

셋. 초판 1쇄 기준으로 233쪽의 '학업과책'을 '학업과 책'으로 고쳐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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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 - 삶은 결국 여행으로 향한다
채지형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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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이 멈췄다. 새로운 전염병 때문에. 그래도 남는 건 뭘까? 여행 작가 채지형은 말한다. 사랑이라고. 그녀의 책, 《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2021)라는 이름에서. 그녀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모두들 여행에 가면 남는 건 사진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그 사진에 담겨 있는 것. 사진으로 투영된 여행자의 가슴에 담겨 있는 것. 그것은 사랑이다. 그렇다. 여행의 기록에 담긴 것은 사랑이다. 찬란하게 빛나고, 다채로운 색채의 사랑이다.


 '돌아보니, 인생의 변곡점마다 피와 살이 된 여행의 순간이 있었다. 오늘의 나는 그 순간이 모여 이루어졌다. 가슴 찡했던, 후끈 달아올랐던, 소름 돋을 정도로 오싹했던, 넙죽 엎드려 절하고 싶었던, 무릎을 탁 치게 했던 길 위의 순간을 책에 담았다. 여행 유전자를 물려주신 부모님에 대한 사연, 예쁜 쓰레기를 모으는 여행 컬렉터의 구구절절한 변명도 들어 있다. 신문과 잡지에 낸 글이 주를 이루지만, 처음 선보인 글도 적지 않다.' -prologue <여행, 너를 믿는다> 중에서. (7쪽). 


 여행의 순간들. 그 순간들이 모이고 쌓여서 삶의 힘이 되어 준다. 사랑을 품고 있기에. 여행 작가 채지형에게도 그랬다. 지금은 여행이 멈췄지만, 세상의 곳곳을 다녔었던 그녀. 네팔, 핀란드, 미국, 스리랑카, 스위스, 인도, 일본, 타이완, 나미비아, 태국 등. 여기저기의 하늘을 보고, 이곳저곳의 땅에 닿았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도 만났다. '여행의 효능을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이 만남(140쪽)'이라는 그녀.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과의 만남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하늘, 땅, 사람. 그녀는 그 창문을 통해 무한하고, 끊임없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여행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며 밝히는 사연들. 또, 그녀가 여행하며 모으는 것들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인형, 마그네틱, 패브릭, 커피, 차, 영수증, 엽서 등. 그중에 '인형은 여행을 하며 만났던 '그 사람'을 닮았다(258쪽)' 모은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인형은 정말 그곳의 사람을 닮았다.

 이 모든 것이 사랑에서 비롯되었고, 사랑을 남겼다.


 '이 책이 우리 모두에게 길 위에 빛나던 순간을 소환해 주길 기대한다. 터널을 지나는 우리에게 한 줌의 햇살이 되기를, 어두운 방에 걸린 작은 창문이 되기를 소망한다. 여행이 보이지 않지만, 사라진 건 아니다.' -prologue <여행, 너를 믿는다> 중에서. (7쪽). 


 '나에게 여행은 해결사였다(138쪽)'는 그녀. '여행이야말로 나를 숨 쉬게 하는 이유(142쪽)'라는 그녀. 그녀는 누구보다 뚜렷한 여행 유전자를 물려받은 게 확실하다. 그래서 여행이 일상인 여행 작가가 되었나 보다. 그리고 여행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고. 그렇다고 여행 유전자가 없는 사람들은 실망하지 마시라. 여행은 분명 모두에게 주는 힘이 있다. 길 위에 빛나는 발자국을 남기던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있기에. 그 순간들은 한 줌의 햇살이 되고, 작은 창문이 되기도 한다. 사랑으로. 여행은 그런 것이다. 아쉽게도 전염병이 세상을 뒤덮은 지금은 이런 여행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말처럼 여행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행은 꼭 돌아온다. 여행의 귀환을 기다리며 나온 이 책, 사랑이 담긴 이 여행 기록은 아름다운 기도다. '여행 다닐 때 꼭 엽서를 쓴다(282쪽)'는 그녀가 새로운 엽서 쓰기를 염원하며 하는 기도. 여행이 남긴 사랑으로 다시 여행을 부르는 기도. 사랑스럽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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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1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6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 - 먹고 마시는 유럽 유랑기
문정훈 지음, 장준우 사진 / 상상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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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간 지 오래됐다. 코로나19라는 불청객으로 낯선 단어가 된 여행. 그 여행에 대해 누군가 말했다. 여행을 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새로워지고, 더 넓어진다고. 옳은 말이다. 여행에 약(藥)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행에는 독(毒)도 있다. 다만, 그 독은 약에 중화된다. 그렇게 되면서, 약의 효능을 증진시키거나 감퇴시킨다. 여행 예찬론자들은 여행의 독으로 여행의 효능을 극대화시킨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동적(動的)이다. 나는 어떤가. 나는 힘 절약주의자다. 그래서 정적(靜的)이다. 여행의 약효를 알면서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여행의 독이 여행의 약효를 많이 감퇴시키는 건가. 그래도 막상 여행을 하게 되면, 나름 즐긴다. 나에게도 확실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여행. 그런 여행이라는 낱말이 이제는 너무 멀리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힘 절약하며, 집에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영상이나 책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수밖에 없다.

 가지 못하는 여행의 미련을 살짝 두고 있을 때, 프랑스 여행을 다룬 책을 만났다. 그런데, 프랑스 시골을 여행한다. 특이하다.


 '유럽의 매력은 파리, 런던, 뮌헨 같은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 있다. 물론 처음 유럽을 간다면 누구나 유명한 빅벤 앞에서,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긴 하겠지. 이해는 한다. 그러나 그게 그 지역 주민의 삶과 정서와 어떤 개연성이 있고, 그 지역의 문화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을까? 한국 사람들 중 남산타워에 가본 사람은 몇이나 있고, 63빌딩엔 몇 번이나 올라가 보았을까? 이런 구조물들은 한국 사람들의 삶과 문화와 그다지 개연성이 없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보여줘야 할 것이 바로 우리의 밥상이다. 밥상에 뭐가 올라갈까? 그걸 알기 위해 나는 시골로 간다. 그곳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있고,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프롤로그 '시골 여행을 시작하며' 중에서. (17~18쪽).


 그렇다. 이 책에 글을 담은 문정훈 교수의 말이다. 서울대 농대 교수라는 그. 그는 시골을 좋아하고, 시골 밥상을 좋아한다. 그곳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이해하고자 시골로 가고 시골 밥상을 만난다고 한다. '세계 시골 전문가'라는 별칭이 있다는 그. 그이 책에 사진을 담은 장준우 셰프, 그리고 몇 명의 동행과 함께 프랑스 시골 여행을 시작했다. 시기는 아마도 2019년 7월 초인 듯하다. 장소는 부르고뉴 지방과 프로방스 지방. 지도를 보니, 프랑스의 중동부와 남동부 지방이다. 부르고뉴 지방에서는 마콩, 브레스, 코트 도르, 보졸레 지역을. 프로방스 지방에서는 론 강 남부, 프로방스 알프스, 프로방스 지중해 지역을 다녔다.

 포도밭에서는 나무 아래 땅을 제대로 관찰할 것을 그는 추천한다. 시골 여행의 백미라면서. 그리고 땅을 관찰하려면 흙을 직접 만져봐야 한다고 한다. 또, 포도뿐 아니라 떼루아가 와인이 된다고 한다. 떼루아는 포도밭을 둘러싼 전반적인 환경을 일컫는 말로 바람, 태양, 흙 등이다. 역시, 뭔가 안다. 이런 그브레스 지역에서는 토종닭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프로방스 지방에 가서는 꽃과 허브 이야기도 하고. 물론, 이 두 지방에서 꼭 들어가는 이야기는 와인 이야기고.


 '많은 이들에게 프랑스는 화려하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내 머릿속의 프랑스 감성이란, 과한 듯 과하지 않고 어색한 듯 세련된, 그러니까 알고 보면 겸손한 그것이다. 이게 내 마음속 ‘프랑스다운’ 느낌이다.' -'페루즈 마을' 중에서. (89~92쪽).


 '우리에게 그가 처음으로 내놓은 안주는 토종닭의 벼슬볶음이었다. 다시 한번 정확하게 말하지만 닭벼슬볶음이다. 닭의 머리에 달린 그거. 치킨의 나라 대한민국에서도 먹지 않는 바로 그것!' -'도미니크 아저씨네 농장' 중에서. (79쪽).


 '웰컴 드링크를 한 잔 마시니 정원에서 갓 딴 샛노란 오이꽃 튀김이 식탁에 올랐다. 태어나서 처음 본 오이꽃이 튀긴 오이꽃이라니!' -'레스토랑 라 샤사네트' 중에서. (230쪽).


 프랑스 시골 여행기.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별미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닭벼슬볶음도, 오이꽃 튀김도, 그밖에 여러 진미도 맛보았다. 부르고뉴 지방은 버터와 크림을. 프로방스 지방은 올리브오일과 식초를 요리에 주로 사용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 두 지방의 교집합이 있다. 바로, 와인이다. 부르고뉴 뫼르소의 와인. 이 와인은 화이트 와인이다. 또,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 품종으로 빚은 와인. 이건 레드 와인이다. 참, 부르고뉴에는 한국인도 와인을 생산한다. 박재화 씨로 일본 남성과 결혼했다고 한다. 라벨에 한자(漢字)로 천지인이 쓰여 있다고. 만화 '신의 물방울'에 이 부부가 생산한 뫼르소 와인이 소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프로방스 지방에는 로제 와인이 유명하다고 하고.

 이런 식도락(食道樂). 무척 즐거웠으리라. 이런 프랑스의 시골 밥상은 그들의 삶과 정서를 담았으리라. 문정훈 교수는 프랑스다운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과한 듯 과하지 않고 어색한 듯 세련된, 알고 보면 겸손한 그것'이라고. 이런 감성이 담긴 프랑스 시골 음식! 맛보고 싶다!


 아마 초등학생 때였을 거다. 어느 여름 방학에 외할머니 댁에 갔었다. 그때 먹었던 시골 밥상. 텃밭에서 난 채소로 요리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외할머니의 논에서 난 쌀로 지으신 밥도 있었고. 그 밥상에는 외할머니의 삶과 정서가 담겼으리라. 그 시골 밥상을 받을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외할머니께서 안 계신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프랑스 시골을 여행하며 그곳 음식을 다룬 책을 보니, 그 생각이 났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의 삶과 정서도 생각했다. 글과 사진으로 만났지만, 그래도 내 미각을 자극하며, 여행의 약효가 나타날 수는 있었다. 생각하건대, 외할머니의 시골 밥상에 대한 기억이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또, 글과 사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정성이 보였기 때문이리라. 알맞은 설명과 솔직한 감상의 글. 거기에 감각적인 사진. 그들이 남긴 발자국은 아름다웠다.

 코로나19의 활개여행이 멀어진 요즘. 프랑스 시골 음식 여행기인 이 책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는 것. 그들의 발자국을 함께 밟는다는 것. 충분히 약이 된다. 세상을 보는 눈이 더 새로워졌고, 더 넓어졌기에.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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