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티켓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옛 서부 영화를 여럿 보다가 보면, 간혹 이런 생각이 떠오르고는 했다. 총잡이인 백인 남성 주인공은 절대적인 선이라는 것이다. 그는 남자다움을 과시하거나 우월하게 여긴다. 그럼에도 여인들에게 인기가 있다. 또, 북미 원주민들은 인디언이라 불리며, 그들의 주체성이 배제되어 나온다. 모든 서부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서부 영화가 그랬다. 이런 영화에서 주인공의 활극이 시원한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이 보이면서 안타까움의 그림자가 드리우기도 했다.

소설, 《빅티켓》도 미국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서부 영화와 달랐다.

천연두로 부모를 잃은 열여섯 살의 소년 잭. 여동생인 룰라와 함께 남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이 남매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잭의 고모할머니인 테슬에게로 가기로 했다. 마차를 타고 가던 그들은 강을 건너기 위해 줄나룻배를 탔다. 그런데, 악당들과 시비가 붙었다. 결국, 할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했고, 여동생인 룰라는 납치를 당했다. 살아남은 잭은 그들을 신고하기 위해 실베스터라는 마을로 갔지만, 그곳에는 이미 보안관이 없었다. 할아버지를 죽인 컷스로트 빌 일당이 이미 은행 강도를 하고 보안관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흑인을 만나게 되고.

서부 시대는 무법자의 시대였다. 그 시대, 열여섯 살의 소년 잭은 여동생을 찾기 위해 추적단을 꾸리게 되는데, 그들이 평범하지 않다. 현상금 사냥꾼인 거구의 흑인 유스터스. 그는 백인, 흑인, 코만치 인디언 혼혈이다. 또 다른 현상금 사냥꾼인 쇼티. 그는 난쟁이다. 버림받았었지만, 문학과 철학을 아는 그. 그리고 도중에 만나게 되는 매춘부 지미 수. 또, 귀 하나가 없는 현상금 사냥꾼 출신 보안관 윈튼. 그리고 청소 등의 일을 하는 스팟. 마지막으로 돼지까지. 그들은 차별받는 이들이다. 차별이라는 억압을 받아온 그들. 그들이 서사의 주체들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추적당하는 객체는 백인 남성이 우두머리인 악당 일행이다.

'나는 불법 행위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게다가 보안관이 같이 하고 있으니, 솔직히 말해 나는 슬프게도 범죄 행위에 위안을 얻고 있었다.' -250쪽.

평범하지 않은 이들과 극한 상황에서 겪은 모험으로 열여섯 살의 소년 잭도 성장한다. 그는 선교사였던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무조건적인 신앙심이 가득했다. 종교적 이상주의자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법자의 시대에 여동생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잔혹한 현실을 만나게 된다. 개신교의 이상과 냉혹한 현실 사이에서 그도 범행을 자행하게 되면서 찾아온 자괴감. 또, 이어서 찾아온 그 행위의 익숙함. 잭은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잭은 알을 깨고 나온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의 화신처럼 행동하던 그가 깨달은 것이다. 현실주의자의 얼굴도 가져야 함을. 함께 추적했던 이들의 도움으로.

소설, 《빅티켓》은 차별받는 이들의 이야기다. 인종차별, 장애인 차별, 성차별 등을 당한 그들. 우월한 백인 남성이 아니라, 그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며, 서사를 이끈다. 또, 백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험한 모험이었지만, 그것으로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고, 더 자랄 수 있었다. 산업화 등으로 격변하던 무법자들의 시대, 그들의 무자비한 폭력에도 끈끈한 유대로 이어진 추적단의 이야기. 이 새로운 활극이 인상적이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뒤바뀐 영혼 - 류팅의 기묘한 이야기
류팅 지음, 동덕한중문화번역학회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은 상상한다. 그렇게 펼쳐지는 상상의 날개는 환상의 세계로 그들을 안내한다. 상상이 이끈 환상의 세계. 그곳은 만약이라는 가정(假定)들이 모인 곳이었다. 하지만 현실과 아주 동떨어지지 않은 그곳. 오히려 그것을 바탕으로 현실의 슬픔을 승화시키기까지 한다. 거기에 뜻밖이라는 의외성을 더하면, 사람들은 환상의 세계에서 파격의 울림까지 담게 되었다. 그렇게 가슴속 깊이 각인시키고.

중국 작가 류팅도 상상했다. 그리고 그의 책, 《뒤바뀐 영혼》은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파격의 색을 더하며, 기묘한 이야기를 그렸다. 열두 편의 단편으로.

'누군가가 기괴한 언어로 시를 읽는 것 같았다.' -〈뒤바뀐 영혼〉 중에서. (41쪽).

단편 〈뒤바뀐 영혼〉에서 야거는 천재 시인이다. 그는 샤셩이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함께 하게 되지만, 문제가 있다. 그렇다. 돈이다. 그는 아직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에는 타인과 바꾸게 된다. 그의 시재(詩才)와 다른 이의 삶에 대한 지혜를. 또 다른 단편 〈당나라로 돌아가다〉의 나는 교수로 당나라에 가고 싶어한다. 미녀인 아내는 총장과 부적절한 관계이고, 출세 지향적이다. 이런 타락한 것들에 신물이 난 나는 결국 당나라로 가게 되지만, 당나라의 현실도 비참하다. 그리고 〈귀〉라는 단편에서는 개발에 대한 보상 문제로 대치하다가 전신 마비가 된 사람의 이야기다. 오직 귀의 감각으로만 세상을 느끼는 그. 또, 〈죽음의 신과 친구가 되다〉라는 단편에서는 사신이 나온다. 죽음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사신. 그런데, 사람들이 죽음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욕망과 쾌감, 분노와 증오을 느끼게 되니, 사신도 굶주리게 된다. 이렇게 나머지 단편들도 기묘하게 그려진다.

'문학의 대세는 허구가 오래되면 진실이 되고, 진실이 오래되면 허구가 된다는 것이다.' -〈작가 후기〉 중에서. (470쪽).

허구가 오래되면 진실이 되고, 진실이 오래되면 허구가 된다는 작가. 극과 극은 이어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렇다. 가장 환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것이다. 그는 이 단편집 《뒤바뀐 영혼》에서 그것을 잘 보여 주었다. 작가가 상상한 환상의 세계. 허구다. 그렇지만, 그 허구는 진실을 바탕으로 한다. 외면할 수 없는 진실. 잘 그려진 진실은 환상 속에서도 부각된다. 그 진실과 함께 환상도 반응하고 빛나면서. 그렇게 환상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류팅의 상상은 현대 중국의 민초들이 가진 아픔을 놓치지 않았다. 그 아픔의 뿌리가 되는 인간의 탐욕, 정신적 피폐. 그것을 정교한 서사로 그렸다. 파격을 곁들이며.

그렇게 류팅이 그린 환상으로 가는 특급 열차인 열두 가지 기묘한 이야기. 현실의 독자에게도 절묘한 울림을 준다. 교훈과 함께. 

덧붙이는 말.

하나. 이 책의 지은이 류팅은 '80후'를 대표하는 중국 작가라고 한다.

둘. 이 책은 동덕한중문화번역학회에서 번역하였는데, 각 단편과 역자 후기까지 열세 명의 책임 역자가 번역하였다고 한다. 그 다음 감수자가 감수하여 출간했다고 한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꾸로 소크라테스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입관이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 눈은 보이는 것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이 눈은 고정된 틀처럼 우리를 가둔다. 갇힌 우리는 성장하지 못하고 움츠러든다. 그렇게 옥죄는 눈이다. 그런 눈은 하나로 시작하지만, 여럿의 동참를 불러온다. 더 크고, 더 무거운 눈덩이가 된 선입관은 우리를 더욱 짓누른다. 진정한 인식을, 올바른 성장을 가리는 이 선입관. 이것을 통쾌하게 타파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사카 고타로의 《거꾸로 소크라테스》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눈으로 그린 이 이야기. 따뜻하고, 시원하다. 그 안으로 들어간다.


'적은 선입관이야.' -<거꾸로 소크라테스> 중에서. (28쪽).


 다섯 단편의 모음인 《거꾸로 소크라테스》. 그 표제작인 <거꾸로 소크라테스>는 선입관에 찌든 초등학교 교사와 그에 맞선 아이들의 이야기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안다'라고 한 소크라테스 할아버지. 즉, 무지의 지를 설파했다. 그 반대, 즉 거꾸로가 구루메라는 초등학교 교사다. 그는 선입관을 가지고 그 대상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꾸로 소크라테스. 이 초등학교 교사는 구사카베라는 아이를 선입관으로 낙인찍었다. 교사 기대 효과의 나쁜 사례다. 이에 반발한 아이들 몇 명이 이 선입관을 무너뜨릴 작전을 세운다.

 나머지 단편 넷도 선입관과 대결한다. <슬로하지 않다>는 '왕따 당할 이유가 있어서 왕따를 당한다'를, <비옵티머스>는 '언제나 낡은 옷을 입는 아이는 가난하다'를, <언스포츠맨라이크>는 '범죄자와는 함께 살아갈 수 없다'를, <거꾸로 워싱턴>은 '의붓아버지는 아이를 학대한다'를 깨뜨릴 선입관으로 보여준다. 이 적들과 멋진 승부를 펼친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거꾸로 소크라테스> 중에서. (25쪽).


 선입관은 눈을 흐리게 해서 진정한 인식을 가로막는다. 또, 단단한 틀이 돼서 올바른 성장을 방해한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오만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다아시의 사랑을 진정으로 인식할 수 없었고, 그 사랑으로 함께 올바른 성장을 할 수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편견을 깨닫고 고친다. 열린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소설 《거꾸로 소크라테스》도 열린 마음의 어린 아이들이 선입관을 부순다. 해학과 재치로. 그런데, 이 어른들의 답답하게 갇힌 선입관. 마치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할아버지가 말한 우상 같다. 그는 우상설에서 네 가지 우상(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을 말하며, 타파해야 한다고 했다. 섣불리 단정하지 말자는 그. 이 소설, 《거꾸로 소크라테스》에서도 선입관을 '일방적인 단정(28쪽)'으로 규정한다. 그렇다. 프랜시스 베이컨 할아버지도 이사카 고타로 아저씨도 고정 관념을 버리고 하나하나 고찰하라고 한다. 열린 마음으로.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라고 말하며 행동하라고 한다. 무지의 지를 외친 소크라테스 할아버지처럼. 꿈과 용기를 가지고. 직접 경험하라고 한다. 선입관은 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그렇게 이 소설은 따뜻하면서도 시원해진다. 현실과 몽상이 잘 어우러졌다.

 덧붙이는 말.

 하나. 제33회 시바타렌자부로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또, 2020년 일본서점대상 4위(띠지에는 2021년이라고 하지만, 2020년이 맞는 것 같다)이고, <다빈치> 선정 올해의 책 2위라고 한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을 두려워하는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는 독선가가 있다. 정확히는 거의 누군가에게 독선가로 만들어진다. 이런 이들이 신념을 가지면, 지극히 맹목적으로 행동한다. 그것이 지나쳐 광기를 보이게 되기도 하고, 마침내는 날카로운 폭력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무섭다. 그런데, 이들을 교사(敎唆)하는 이들도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이 만든 독선가를 더 강하게 세뇌한다. 대부분 자신들의 불순한 이익을 위해서 한다. 특히, 더러운 기득권자들이 그런다. 이들을 움직여 자신들이 더 올라서는 것이다. 악랄하다. 결국 그렇게 소용돌이에 휘말린 사람들만 아프다. 이런 사실을 그린 소설. 감사하게 만났다. 《빛을 두려워하는》이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빛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달라요. 우리와는 달리 확신을 갖고 있어요. 저는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확신이 두려워요.


……


자기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죠.' -316쪽.



우버 택시의 운전자 브렌던. 어느 날, 한 사람을 택시에 태운다. 병원으로 가는 손님, 엘리스. 그녀는 은퇴한 대학교수다. 임신 중절을 원하는 여성들을 돕는 그녀. 그녀를 병원에 내려 준 브렌던.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한 그는 한 사건을 목격한다. 엘리스가 들어간 병원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괴한이 화염병을 던지는 사건. 급히 엘리스를 찾기 위해 병원에 들어간 브렌던. 힘들게 엘리스를 찾아 다시 택시에 태우게 된다. 그런데, 집에서 뉴스로 그 병원 경비원의 죽음을 듣게 된다. 충격이었다. 그 후로 로스앤젤레스의 임신 중절 문제라는 거센 폭풍에 들어가게 되는 브렌던. 아내 아그네스카는 임신 중절 반대론자. 딸 클라라는 임신 중절 찬성론자. 가족조차 뜻을 달리한다. 거기에 어둠의 배후에 있는 이들도 있다. 즉, 토더 신부와 큰 자산가인 켈러허가 과연 어떻게 조종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임신 중절 문제. 솔직히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미혼이기에 임신은 먼 이야기로 느껴졌었다. 그저 막연히 될 수 있으면 임신 중절 수술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원하지 않는 임신도 있을 수 있으니, 그때는 임신 중절 수술을 해도 괜찮을 듯했고. 그런데, 이 두 진영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은 거대한 폭력을 낳을 수 있다. 그 폭력은 필연적으로 희생자를 불러오고. 원만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한 이유다.

소설 《빛을 두려워하는》은 이 문제를 묵직하게 그려 낸다. 가독성 높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안에서. 독선가를 만들고 세뇌하는 악랄한 이들을 비판하는 이 이야기. 큰 어둠에 맞선다. 빛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사람들이 빛을 찾은 것처럼 꾸며 착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어둠에 들어오게 한다. 어둠에 들어온 이들은 또 다른 이들을 어둠으로 인도하고. 결국 어둠의 정점에 있는 이들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부와 권력을 움켜쥔다. 이 소설은 말한다. 이제 비록 작지만 빛이 되는 용기를 내어 보자고 한다. 그리고 그 빛은 사람들에게 이어 주자고. 그렇게 큰 빛을 이루어 빛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나아가자고.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만의 살의
미키 아키코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살면서 억울한 일을 겪고는 한다. 그 억울함의 크기와 깊이는 다르겠지만, 대부분 성장통(成長痛)처럼 겪는다. 억울함의 아픔. 일반적으로 우리를 자라고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사라진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억울함으로 인한 그 아픔이 너무 크고 깊다면, 우리를 삼키고 추락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화인(火印)처럼 남기도 하고. 그렇게 남은 아픔은 피눈물의 분노로 이어지기도 쉽다. 그래서 결국에는 비극의 복수를 낳으며 마무리되는 억울함의 아픔도 많고.

추리 소설 속의 한 남자. 살인자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억울하다는 그. 소설 《기만의 살의》는 그의 슬픈 분노로 외친 목소리다. 그는 어쩌다가 그런 애통한 노래를 하게 되었을까? 또, 마침내 어떤 결말을 지을까?







'자 이쯤에서 확실히 말씀드리지요. 저는 죄가 없습니다.' -76쪽.


살인자의 낙인이 찍힌 한 남자. 니게 하루시게. 명문 니게 가문의 데릴사위로 변호사였다. 그런 그가 아내 사와코와 조카이자 양자인 요시오를 독살한 범인으로 지목된다. 장인이자 선대 당주인 니레 이이치로의 오칠일에 이런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정황과 증거가 그를 살인범으로 몰았다. 흠집이 난 커피잔에 든 아비산. 아비산이 든 초콜릿. 부엌에 간 적이 있는 그. 그의 재킷에서 나온 은박지 조각. 게다가 그가 어느 여인과 찍은 의심스러운 사진도 나왔다. 사면초가였다. 그때가 1966년. 그는 사형을 피하고자 범행을 자백하고야 말았다. 무기 징역이 확정된 그. 2008년에야 가석방이 되어 나오게 된다. 40년이 넘게 감옥에 있었던 것이다. 나온 후, 홀로 니게 저택을 지키는 처제 도코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신은 죄가 없다며.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게 되는데.


'이 모든 악의 근원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 것에 있다.' -244쪽.


'증오는 가라앉은 노여움이다.' -마르쿠스 키케로.


그는 억울했다. 그럴 만했다. 죄도 없이 하루아침에 두 명을 독살한 범인이 됐으니. 그것도 아내와 양자를 죽인 파렴치범으로. 그렇게 철저히 어둠에 삼켜지고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됐다. 잔인한 살인자로 낙인이 찍혔다. 누군가의 교묘한 속임수로 그렇게 파멸된 그. 감옥에서 그의 노여움은 쌓여만 갔다. 그리고 그는 범인의 정체와 기만의 수법에 대해 골몰하게 된다. 드디어 이 모든 악의 근원은 그가 누군가와 서로 사랑한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그렇게 키케로 할아버지의 말처럼, 가라앉는 노여움은 그에게 증오가 되면서.

손자 할아버지는 손자병법에서 전쟁은 속임수라 했다. 그렇다. 전략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속임수를 기반으로 한다. 전쟁은 시작하면 반드시 이겨야 하기에. 이렇듯 속임수도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대결에서 보이는 규칙 안의 기만. 추리 소설과 마술은 그 전형적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거기에도 전략이 있다. 그 창작자들은 독자, 관객을 속이고, 속은 그들은 놀라며 즐거워한다. 속았는데, 진심으로 웃는다. 약이 되는 좋은 기만이다. 소설 《기만의 살의》도 그렇다. 공정한 단서와 치밀한 복선. 그 위에 지어진 착한 속임수. 튼튼하고 꼼꼼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속임수는 기쁨이다. 마지막에 가서야 소설에서 말하는 기만 안에 담긴 살의를 완전히 꿰뚫을 수 있었다. 이런 벅찬 환희의 속임수는 언제나 환영이다.

덧붙이는 말.

하나. 이 소설의 작가인 미키 아키코는 변호사 은퇴 후 집필 활동을 하는 여성 작가라고 한다.

둘. 이 소설은 2021년 '본격 미스터리 대상' 최종 후보였다고 한다.

셋. 초판 1쇄 기준으로 348쪽의 '도쿄'를 '도코'로 바꿔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