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리랜드 5 - 셉템버와 심장을 향한 경주
캐서린 M. 밸런트 지음, 아나 후안 그림,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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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 1981)'의 시작하는 장면. (동영상 출처: 유튜브)


 경주(競走). 도시 경주가 아닌, 달려 빠르기를 겨루는 경주. 그 경주라는 낱말에서 한 영화가 다가온다.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 1981)'가 다가와 품에 안긴다. 이 영화의 시작은 달리기다. 바닷가에서 달리는 젊은 남자들. 경주를 하기 위해 달린다. 그 안에 즐거워 보이는 이들이 있다. 열정의 달리기. 우정의 함께 달리기. 그리고, 갈등과 나약함을 넘어서는 감동의 달리기. 희망의 날개가 그들을 이런 즐거운 달리기로 안내한다. 보는 이들도 맑은 가락과 어울려, 즐거운 달리기에 하나가 된다. 그렇게 즐거운 달리기는 경주 안에서 빛나게 된다. 그리고 지금, 경주 안의 빛을 또 만나게 됐다.


 '"미안하지만, 셉템버, 넌 경주에 참가해야 해.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나? 네가 참가하지 않으면 경주가 이루어지지 않을 거다. 넌 양위할 수 없다는 것 기억하지? 우리가 너한테서 페어리랜드를 빼앗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야. 넌 여왕이고, 왕관을 갖고 있다. 말은 경주지만, 사실 절반만 경주야. 나머지 절반은 사냥이지. 그리고 결국은 경주가 결투로 마감될 것 같군. 결투가 없는 경주는 거의 없으니까 말이야. 우리는 서로를 상대로 경주를 벌이는 거다. 페어리랜드의 심장을 찾아서. 그리고 가장 강한 자를 판가름할 결투를 할 거야. 우리의 사냥감은 너다. 너는 여우고, 우린 사냥개야."' -94쪽.


 '선수들은 온갖 종류의 탈것을 타고 어디든 질주할 수 있다. (……) 가장 빠른 자가 언제나 이기는 경주에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이제 경주의 우승자는 누구보다 영리하고, 누구보다 운이 좋고, 누구보다 무모하고, 누구보다 변덕스러운 사람이다.' -111~112쪽.


 셉템버. 지금 페어리랜드의 왕관을 가진 여왕인 셉템버. 경주를 하게 됐다. 페어리랜드의 왕좌를 걸고. 페어리랜드의 심장을 찾아서. 험난한 경주를. 물론 벗도 있고, 적도 있다. 왕관의 선택으로 여왕이 됐지만, 도도새의 알 마법으로 옛 왕과 여왕이 부활하여 결국에는 그들과 경주를 하게 된 셉템버. 바다 요정 새터데이와 책을 좋아하는 비룡 엘, 깨물기가 특기인 전투 웜뱃 나팔총이 셉템버의 지음(知音)이다. 그들과 페어리랜드의 심장을 찾는 여행길에서 함께 빛나는 발자국을 남긴다. '위대한 대도서관'에서. '바다 밑'에서. '웜의 나라'에서. 빛나는 경주를 한다. 열정의 달리기를. 우정의 함께 달리기를. 갈등과 나약함을 넘어서는 감동의 달리기를. 과연 셉템버는 왕좌를 지킬 수 있을지.

 

 영화 '마스크(The Mask, 1994) 중에서.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심장 : (……) 생물의 몸에서 감정을 느끼고, 두려워하고, 뭔가를 원하고, 용기로 부풀어 오르는 부분. 중요한 것을 ‘문제의 핵심(heart)’이라고 한다. (……)" -151쪽.


 그런데, 이 경주의 결승선인 심장. 무엇일까. 또, 어디에 있을까. 영화 '마스크(The Mask, 1994)'에서 마스크를 쓴 남자가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깊이 간직한 힘찬 심장을 보여준다. 사랑을 느낀 남자가 용기로 고백하며 보이는 소중한 심장. 힘차게 움직인다. 이렇게 심장은 깊은 곳에서 우리를 힘차게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이다. 책곰에게 물린 이후로 기억을 전부 잃어버린 세터데이. 쓰러진 새터데이를 셉템버는 일으키려 한다. 그리고 심장을 알게 된다.


 '"페어리랜드의 심장은 이야기야." (……) "자꾸만 자꾸만, 수없이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 이 이야기가 우리 모두를 계속 움직이게 해. 몸속을 도는 피처럼. 경주처럼. 사냥처럼. 심술궂은 더비처럼. 우리가 항상 심장을 만들고 있었던 거야. 바다 밑에서, 웜의 나라에셔, 위대한 대도서관에서. (……)"' -398쪽.


 영화 '마스크'에서 보이는 심장도 이야기다. 앞으로 나눌 사랑 이야기. 사랑을 위해 힘차게 움직이게 하는 이야기. 날마다 새롭고, 영원히 새로운 사랑 이야기. 날마다, 영원히 사랑을 향해 움직이게 한다. 영화 '불의 전차'에서도 '끝까지 달리게 하는 힘은 마음에 있다'고 한다. 이렇게 심장(마음)은 끝까지 달리게 하기도 한다. 셉템버도 심장을 향한 경주에서 끝까지 달리게 한 것은 결국 심장이다. 이야기인 심장.


 "'당신이 세상을 지배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지배하는 건 당신 자신뿐이에요. (……)"' -33쪽.


 심장을 향한 셉템버의 경주. 마침내, 빛나는 경주 안에서 벗들과 함께 심장을 찾은 셉템버. 이제 페어리랜드를 어떻게 새로워지게 할지 사뭇 궁금하다. 높다고 생각해 누르려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던 셉템버. 세상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지배하는 것뿐이라는 말. 벗과 심장(이야기)의 소중함을 아는 셉템버는 힘을 함부로 쓰지 않으리라. 높지만 낮아질 줄도 아는 셉템버는 열정과 우정, 그리고 감동을 지닌 이야기를 이어 나가리라. 나는 그렇게 믿는다.


 어릴 적, 외할머니께서 들려 주시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시골에서 듣는 외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 된장찌개를 먹으며. 툇마루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따스하게 빛나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년 전, 외할머니께서는 하늘로 가셨지만, 그 이야기가 나를 지금까지 움직이게 하고 있다. 끊임없이. 새롭게. 이것이 이야기의 힘인 것 같다. 나도 이제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다. 부모님께. 연인에게. 아이에게. 그렇게 이어진 인연들에게 영원히 새롭게 움직이게 하고 싶다.

  

 페어리랜드의 빛나는 이야기를. 그것도 마지막인 5권을 먼저 만났다.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전 이야기를 읽지 않아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그런데, 기우(杞憂)였다. 페어리랜드로 가는 상상의 날개를 나도 달 수 있었다. 찬란한 아침의 그 날개를. 셉템버와 그 친구들의 빛이 스며든 경주에 힘찬 응원을 할 수 있었다. 5권 안에서도 여러 얼굴들이 재미가 가득하고, 뜻깊게 그려지고 있기에 그럴 수 있었다. 그렇게 Never Ending Stroy가 되어 간다.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 영원히 힘차게 살아 있는 이야기. 이제 나를 생기 있게 움직이게 하는 하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곧 다른 이들을 움직이게 할 이야기다.   



 덧붙이는 말.


 2009 앙드레 노튼 상 수상, 2011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2011 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최고의 어린이 소설, 2012 타임 매거진 선정 최고의 소설, 2012 미국 도서관협회 선정 도서, 2012 로커스 상 수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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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9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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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Friend, 2001) 중에서.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영화 '친구(Friend, 2001)'에 나오는 대사다. 학교 선생으로 연기한 김광규의 대사. 체벌하며, 물은 말이다. 유명한 대사다. 아버지의 존재와 지위를 묻는 그. 아무래도 차별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 구별짓기는 상처를 남기고. 그 상처를 아물게 해주고 싶다. 그런 상처가 생기게 하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아버지들은 짐을 지고 걷는다. 아이들을 위해. 그런데, 작년(2017년)에 큰 부잣집 아들이 술자리에서 젊은 변호사들에게 난동을 부린 일이 있었다. 그도 '너희 아버지 뭐하시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남의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왜 궁금해할까. 나도 분연히 묻고 싶다. '너 그러고 있는 동안 아버지는 뭐하시고 계셨냐'고. 이제 편은 그만 나누었으면 한다. 여기, 어느 힘찬 남자가 있다. 그는 피로 맺어진 아버지는 아니지만, 한 소년을 위해 활약한다. 외로웠을 소년을 위해. 그는 해리 홀레고, 소년은 올레그다.


 '올레그. 총명하고 진지한 올레그. 내향적이라 해리 말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던 아이, 올레그. 라켈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해리는 올레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이고 뭘 원하는지 엄마인 그녀보다 더 잘 알았다. (......) 가끔 늦은 밤에 잠이 와서 몽롱할 때 그를 아빠라고 불러주던 올레그. 해리가 그 아이를 본 지 몇 년이 흘렀다. 그리고 라켈이 아들을 데리고 스노우맨이라는 소름끼치는 기억에서, 폭력과 살인으로 점철된 해리의 세계에서 도망치듯 오슬로를 떠난 지도 몇 년이 흘렀다.

 지금 그 아이가 저 문 앞에 서 있었다. 열여덟 살의 다 큰 소년이 아무런 표정 없이, 적어도 해리가 해석할 수 있는 표정 없이 해리를 바라보았다.' -61쪽.


 해리가 사랑한 여인, 라켈. 그 라켈의 아들, 올레그. 해리는 그의 친아버지가 아니었지만, 피보다 진한 의로 맺어진 아버지였다. 그런데, 무서운 일의 아픔으로 라켈과 올레그는 해리에게서 떠났고. 해리도 홍콩으로 떠났다. 그런 해리가 다시 돌아왔다. 아들 같은 이 때문에. 즉, 올레그 때문에. 올레그는 살인 누명을 썼다고 한다. 올레그가 죽였다고 알려진 소년은 구스토. 올레그와 가깝고도 먼 존재인 그. 마약 중독자다. 자신이 입양된 가정을 망가뜨린 도둑 소년. 올레그에게 다가와 마약의 세계로 인도한 소년. 올레그는 그 소년을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마약 속에서 살인한 혐의로 잡힌 올레그. 그에게 해리가 온 것이다. 홍콩에서. 아직도 '대체로 경찰'이라고 말하는 그가.

 

 영화 '테이큰(Taken, 2008)'.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해리는 좁은 터널을 응시했다. 폐소공포는 비생산적이고 위험에 대한 거짓 신호이며 극복해야 할 증상이었다. 해리는 탄창이 MP5에 제대로 장착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유령들은 우리가 허락할 때만 존재한다.' -492쪽.

 

 영화, '테이큰(Taken, 2008)'이 있다. 납치를 당한 딸을 찾는 아버지. 그는 전직 특수 요원이다. 리암 니슨이 연기한 아버지. 정말 힘찬 아버지였다. 악당들을 처벌하고, 딸을 구출하는 아버지. 해리도 오슬로의 마약 범죄 처벌과 올레그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위험은 항상 따라다니고. 어둡고, 거친 세계니까. 아버지의 부재로 외로웠을 올레그. 그렇게 돌아온 아버지는 벅찬 슬픔 안에서 아들을 이끌게 된다. 유령들을 잡으며. 이제, 아버지가 뭐하시냐고 물으신다면, 올레그는 대답할 수 있다. 유령들을 잡으며, 나를 아끼고 계신다고. 끝까지, 올바른 길을 가라고, 해리가 깊고 강한 슬픔 안에서 말한다고.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이야기를 '팬텀'으로 처음 만났다. 해리 홀레와의 첫 만남. 그에게 매료되었다. 그렇게 해리에게 홀린 나. 해리 홀레에게는 깊은 어둠 안에서 힘차게 가속하는 강렬함이 있다. '팬텀'에서는 마약과 올레그를 매개로 가속했다. 처연하게, 슬프게. 다른 해리 홀레의 이야기도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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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포스의 우편 포스트 1
모노 타마오 지음, 이누마치 그림, 이희정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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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소원(所願) 성취(成就)하고 싶다. 각자의 소원! 아마 있을 것이다. 있는데, 이루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만화 '드래곤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용신에게 소원을 이루고 싶어 한다. 드래곤볼 일곱 개를 모아서. 그러기 위해 손오공은 여럿과 길벗이 되어, 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 모험으로 위험과 시련을 겪으며, 더 자라게 된다. 든든한 우정은 덤이고. 우리도 그들의 여행에 멀리서나마 함께 하며, 깊은 울림을 받았고.


 '"나는 내 삶을 마감할 자리를 찾고 있어요."' -25쪽.


 소원을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이 여기에도 있다. 정확히는 레이버라 불리는 개조 인간이다. 나이는 200살이 넘었고, 화성에 살며, 이름은 존 쿠로. 화성의 올림포스 산 정상에 있는 우체통에 가고자 한다. 그 우체통에는 편지를 넣으면 신이 어디로든지, 누구에게든지 전해준다는 전설이 있다. 정말 낭만적인 전설이다. 만날 수 없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 아마도 따뜻한 편지일 테지. 그 편지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진다니. 쿠로는 그곳에 가고자 한다. 그리고 당연히 길벗이 있다. 장거리 우편배달부 소녀, 에리스다. 쿠로가 자신에게 우표를 붙이고 우체국으로 왔기에, 에리스가 배달하게 된 거다. 에리스가 올림포스의 우체통으로 가는 이유를 물으니, 쿠로는 삶을 마감할 자리를 찾고 있다고 한다. 무슨 의미일까. 에리스는 그런 의문을 뒤로 한 채, 8,635킬로미터, 109일의 여행을 쿠로와 함께 시작한다. 거듭된 재앙과 내전으로 황폐한 화성에서. 물론, 이 모험에도 위험과 시련이 따라온다.

 

(사진 출처: 아르테팝 네이버 포스트)


 '"다음에 또 같이 여행하자."' -299쪽.


 우체통까지 걸어가서 손으로 정성스레 쓴 편지를 넣는다는 것. 정감가는 일이다. '드래곤볼'에서 드래곤볼이라는 구슬을 모으는 것도 정감가는 일이고. 편지와 구슬이 옛 추억을 담고 있기 때문일 거다. 편지가 닿기를, 구슬이 모이기를 희망하던 옛 추억. 소원 성취를 희망하던 옛 추억. 영원히 아름다운 나의 옛 추억이다. 아마도 희망을 담고 있기에 더욱 기쁘게 빛나는 옛 추억으로 남았을 테. 영화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4)'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희망은 좋은 거에요. 아마 가장 좋은 것일 거에요. 그리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라고. 그렇게 쿠로와 에리스의 이야기는 나에게 희망이 담긴 옛 추억으로 다가온다.

 또, 손오공과 길벗들에게 처럼, 쿠로와 에리스에게 여행은 빛이 스며든 발자국을 여기저기에 남기는 여정이다. 새로운 나를 찾고, 서로를 찾는 길인 거다. 나의 발걸음 소리와 서로의 발걸음 소리를 듣는 시간인 거다. 나를 깨닫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시간. 그 시간의 틈새에 빛이 스며든다. 그래서 불꽃이 된다. 그 불꽃 안에서 '다음에 또 같이 여행하자'라고 말하게 된다. 그들과 함께 발자국을 남긴 나도 말하게 된다.



 덧붙이는 말.


 제23회 전격소설대상 심사위원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라이트 노벨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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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19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무위키에는 이 책을 설명한 항목이 아직 안 나왔군요. 이 책 단권인가요? ^^

사과나비🍎 2018-01-19 23:28   좋아요 0 | URL
아, cyrus님~ 댓글 감사해요~^^* 아, 나무위키에 그렇군요~^^;
아, 서점의 책 소개를 보니, ‘『올림포스의 우편 포스트』 또한 출간 즉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곧바로 다음 권 출간이 결정된 화제작이다.‘라고 하네요...^^; 다음 권의 출간이 결정이 됐나 봐요~^^;
그나저나 미세먼지가 요즘 심하더라고요...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랄게요~^^*
 
저물 듯 저물지 않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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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벌레. 즉, 서두(書蠹). 별명으로 서치(書癡), 반와(泮蛙), 공붓벌레가 있다. 점잖게는 독서가(讀書家)라고 불리고. 그들의 행위는 오직, 수불석권(手不釋卷), 과골삼천(踝骨三穿), 위편삼절(韋編三絶)이다. 그런데, 나는 그저 그들의 그 행위를 부러워하며, 소소하게 장서가(藏書家)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다. 같은 애서가(愛書家)라는 것에 위안을 삼으면서.


 부러운 책벌레가 여기 또, 있다. 소설 안이다. 일본 소설의 한 인물, 미노루. 나이는 쉰. 부모님의 유산으로 풍족하게 살고 있다. 어른이지만, 아이인 듯 사는 그. 피터 팬 증후군(Peter Pan syndrome) 같기도 하다. 전담 세무사이며, 친구인 오타케에게 그의 일을 맡기고 그는 책의 세상에서 유유자적한다. 다만, 사진작가로 독일과 일본을 오가는 친누나 스즈메. 또 같이 살지 않는 딸인 하토. 이렇게 둘과는 핏줄로 이어진 실을 놓지 않고 있다. 오타케와도 친구의 끈을 놓지는 않았고. 아뿔싸, 미노루의 핏줄인 하토의 엄마이며, 미노루의 옛 연인인 나기사도 있다. 그녀는 미노루를 떠나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책벌레 미노루의 아이 같은 어른의 얼굴에 고개를 돌리고, 이제 다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거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나비.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당연히 그건 소설이고, 조니도 라우라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지. 세상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일까.' -286쪽.


 소설, 그리고 현실. 그렇다. 다른 듯 같다. 그 경계가 모호하다. '저물 듯 저물지 않는' 해의 얼굴 같다. 해 질 녘의 그 해. 서쪽 바다에 담기던 그 해. 낮과 밤의 교차하고 있는 그 때. 때로는 어지럽지만, 신비롭기까지 한 그 때. 소설과 현실이 그렇다.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처럼, 나비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나비이다. 또,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인 거다. 삶은 그런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저물 듯 저물지 않는'은 소설 안의 소설로 시작한다. 미스터리 소설이다. 책벌레인 미노루가 읽는 소설이다. 북유럽의 미스터리. 그리고 미노루가 나중에 읽는 다른 소설도 미스터리 소설이다. 카리브해 어느 섬의 미스터리. 그렇게 두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미노루. 그리고 그의 현실. 긴장감 있는 소설이 끊기면서 현실이 스며든다. 그렇게 서로 뜻밖에 잘 어우러졌다. 잔잔하면서도 파문(波紋)이 인다. 에쿠니 가오리만의 물결이다. 이제, 나도 책벌레 미노루가 되는 꿈으로 다시 들어간다. 무늬만 장서가인 내가 여유로운 독서가를 다시 상상한다.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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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스토리콜렉터 59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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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개구리 왕눈이.'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오래 전, 꼬마였을 때였어요. 친할아버지 댁 근처에서 청개구리1를 본 적이 있었어요. 도시에 살다가 잠시 온 시골. 그곳에서 본 청개구리. 신기해서, 쫓다가요. 겨우 잡았었지요. 마냥 바라보았다가요. 다시 놓아주었어요. 그 청개구리. 어릴 적에 본 애니메이션 '개구리 왕눈이'2에서 왕눈이가 청개구리잖아요. 무지개 연못에 이사를 와서 아롬이를 만나지요. 이 애니메이션이 방영될 때, 학교 운동회 등에서 응원가로 그 주제가를 불렀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었어요. 그 주제가 가운데 '네가 울면 무지개 연못에 비가 온단다'라는 노랫말이 있거든요. 예전에 방학 때 머물던 외할머니 댁에서 보니, 청개구리가 울면 정말 비가 오더라고요. 전래 동화에서는 늘 반대로 행동했던 청개구리가 어머니의 무덤이 떠내려갈 것 같아서 운다고 하지요. 이 청개구리 이야기는 이괄(1587~1624)의 이야기에서 유래됐다고 하네요3. 그 '이괄의 난4'의 이괄이에요. 청개구리 이야기의 시작인 그. 결국, 죽음을 당한 이괄. 개구리와 죽음. 그런데, 어떤 남자가 마치 개구리를 잡아서 죽이듯 사람을 사냥한다는 이야기가 있네요.


 '"유아는 싫증 나거나 혼나지 않는 한 마음에 든 놀이는 절대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60쪽.


 매달다, 으깨다, 해부하다, 태우다. 그렇게 표현되는 네 살인 사건이 일어나요. 그리고 그 곁에 남겨진 네 쪽지. 마치 어린아이가 쓴 듯한 글씨로 줄이 삐뚤고 글자 크기가 제각각이에요.


 '오늘 개구리를 잡았다. 상자에 넣어 이리저리 가지고 놀았지만 점점 싫증이 났다. 좋은 생각이 났다. 도롱이벌레 모양으로 만들어 보자. 입에 바늘을 꿰어 아주아주 높은 곳에 매달아 보자.' -12쪽.


 첫 살인 사건에 남겨진 쪽지예요. 개구리를 사냥하듯 살인을 하는 연쇄 살인마. 언론은 결국 '개구리 남자'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지요. 미궁 속에 들어간 사건. 유아성을 가진 범인. 사람들의 감정은 불안에서 공포로 이어지지요.

 

 '"이건 말 그대로 정신 이상자의 소행이야. 형법 39조(심신 상실자에게는 책임 능력이 없어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일본 법 조항./옮긴이)와 싸울 각오를 해 두는 게 좋을 걸세."' -23쪽.


 '고테가와는 형법 39조의 재검토보다 심신 상실이라는 정의를 엄격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심신 상실 혹은 심신 쇠약이라면서 그런 인간들이 손대는 상대는 언제나 여자와 아이뿐이다. 실수로도 폭력단 사무실이나 씨름 선수 방에 난입하지 않는 것은 충분히 판단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50쪽.


 일본 형법 39조. 우리나라 형법 10조에도 심신 장애5에 대한 조항이 있지요. 일명 조두순 사건6에서 가해자인 조두순이 만취 상태였음을 이유로 심신 미약을 주장했고요. 그 심신 장애의 정의를 엄격히 했으면 해요.  

 

 영화 '프라이멀 피어.'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영화 '프라이멀 피어 (Primal Fear, 1996)'가 있어요. 리차드 기어와 에드워드 노튼이 주연인 영화예요. 리차드 기어가 변호사로 에드워드 노튼을 변호하지요. 결국, 다중인격장애로 정신이상에 의한 무죄를 배심원으로부터 받아 내요. 에드워드 노튼의 첫 작품인데요. 정말 그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지요. 천사와 악마의 두 연기. 그 눈빛부터 몸짓 하나하나까지 완벽했어요.

 소설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개구리 남자. 그도 심신 장애가 있어요. 그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해요. 그런데, 그를 꼭두각시처럼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요. 어떨까요? 그저 개구리를 사냥하듯 사람을 죽인 그를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요. 그런, 모든 계획의 설계자가 있다면요. 두 얼굴을 품은 인형놀이의 주인, '프라이멀 피어'의 에드워드 노튼처럼요. 정말 무섭네요. 진정 Primal한 Fear일 거예요. 

 심신 상실자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그와 함께 Primal한 Fear까지 느끼게 하는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라는 소설. 좋아요.


        

 


 

  1. https://namu.wiki/w/%EC%B2%AD%EA%B0%9C%EA%B5%AC%EB%A6%AC
  2. https://namu.wiki/w/%EA%B0%9C%EA%B5%AC%EB%A6%AC%20%EC%99%95%EB%88%88%EC%9D%B4
  3. http://news.joins.com/article/21640465
  4.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34159&cid=40942&categoryId=31778
  5. https://namu.wiki/w/%EC%8B%AC%EC%8B%A0%EC%9E%A5%EC%95%A0?from=%EC%8B%AC%EC%8B%A0%EB%AF%B8%EC%95%BD
  6. https://namu.wiki/w/%EC%A1%B0%EB%91%90%EC%88%9C%20%EC%82%AC%EA%B1%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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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1-04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구리 왕눈이 보면 투투에게 늘 당하는 게 어찌나 화나고 짜증나던지!
사과나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말 안 해도 책은 알아서 열심히 보시니 그에 대해선 생략ㅎ;;

사과나비🍎 2018-01-04 23:38   좋아요 1 | URL
아, ‘개구리 왕눈이‘를 아시는군요~^^* 예~ 저도 항상 왕눈이를 응원했었어요~^^*
아, 새해 인사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AgalmA님~^^*
AgalmA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랄게요~^^* 아, 저 책 열심히 못 보고 있어요~^^;
그나저나 올해도 AgalmA님의 좋은 글을 볼 수 있는 영광에 미리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