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레 사진관 - 상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네오픽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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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 오래된 사진첩이 있다. 그 안의 빛바랜 사진 하나. 작은 외삼촌 사진이다. 아마도 고등학생 때의 사진인 듯하다. 사진의 그분은 어린 나를 많이 귀여워해주셨다고 들었다. 나도 어렴풋이 기억이 있고. 그분이 지금은 하늘에 계신다. 하늘로 가셨을 때, 외할머니께서는 작은 외삼촌 사진을 여럿 지우셨다고 한다. 마음이 아프셨기에. 지금은 외할머니와 작은 외삼촌께서 함께 하늘에 계시리라. 그런 시련을 이겨내고 남은 사진 하나. 그 사진을 볼수록 친숙해진다. 내가 많이 닮은 작은 외삼촌이 담긴 그 사진. 이제 내가 그 사진을 귀여워해주고 있다. 처음, 그 사진을 사진첩에서 찾았을 때, 어머니께서는 많이 우셨다. 막내 이모도 많이 우셨다. 작은 외삼촌의 마음, 내 마음, 어머니의 마음, 막내 이모의 마음이 담긴 그 사진. 아직도 살아 있는 그 사진은 하나하나의 추억이 되어 따스한 품 안에 영원히 안기게 되겠지.


 또 다른 사진 이야기가 있다. 아픔이 있지만, 따스함으로 감싸는 두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는 '고구레 사진관', 두 번째 이야기는 '세계의 툇마루'다. 이 이야기들의 시작은 사진관이었던 오래된 집에 이사한 한 가족이다. 고구레라는 할아버지께서 하셨던 사진관. 그 집에 들어간 그 가족의 형제 가운데 형. 16살, 에이이치. 그가 이야기를 풀어간다. 어느 날, 어느 소녀에게서 한 사진을 받게 되는 에이이치. 사람들의 사진. 그리고 그 사진 안에 유령처럼 한 여인의 얼굴. 울고 있는 듯한 여인. 에이이치는 그 수수께끼에 다가간다. 그리고 여운(餘韻)이 남는다. 이 이야기가 '고구레 사진관'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인 '세계의 툇마루'는 이상한 소문으로 상급 여학생의 강제적인 부탁으로 출발한다. 역시 사진의 수수께기. 사람들이 있고, 툇마루에서 세 명의 가족이 우는 환영이 있는 사진. 이번에도 풀리는 사진의 수수께끼. 그리고 남는 또 다른 여음(餘音).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 다양한 일들도 생기게 마련이다, 개중에는 신기한 일도 있다, 나는 그런 세계관으로 이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107쪽.


 '세상에는 마음속에 떠올린 영상을 필름에 인화시키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그것을 염사라고 부른다고 했다.' -185쪽.


 미야베 미유키 여사. 즉, 미미 여사. 글이 노란빛이다. 봄빛을 머금은 노란빛. 유채꽃, 개나리꽃, 병아리의 그 노란빛. 겨울 추위의 아픔을 아물게 하는 따스한 노란빛. 여사는 추리 소설 안에서 모두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여사만의 따스함으로 감싼다. 그 품에 안기는 게 정말 좋다. 마치 어머니의 품 같다. '고구레 사진관 (상)'의 두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다. 사진을 매개로 가족의 아픔과 따스함을 이야기한다. 첫 사진의 여인은 며느리였다. 이혼한 옛 며느리. 가족이 되었다가 나뉜 여인. 두 번째 사진을 촬영한 사람은 약혼자. 가족이 되려다가 멀어진 남자. 그 아픔들을 이야기한다. 그 아픔들이 사진에 남았다. 염사였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일들 가운데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더욱 살아 있게 하는 건 에이이치의 가까운 이들이다. 그의 부모님, 동생, 단짝 친구. 또, 부동산 회사 사장, 우울한 부동산 회사 여직원, 탄빵이라고 불리는 동급 여학생 친구. 모두 자기만의 색으로 도움을 준다. 여기에 에이이치는 우울한 부동산 회사 여직원, 탄빵이라 불리는 동급 여학생 친구의 아픔도 놓치지 않는다. 따스함의 확장이다. 더 큰 날개로 아픔을 품는다. 사진을 매개로 가족의 아픔을 따스함으로 감싸니, 격렬한 화학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긴 잔물결이 남는. 추억이 되는. 가을의 늦은 밤에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으며, 나도 사진을 남기고 싶다. 고구레 사진관에서. 아픔을 따스하게 감싸는 사진을. 작은 외삼촌 사진처럼 마음이 담긴 추억의 사진을. 오랫동안 품에 안고 다닐 사진을.




 덧붙이는 말.


 1. 이 '고구레 사진관'은 개정판이다.    

 2. '고구레 사진관'은 상하권으로 나뉘는데, 상권만 읽고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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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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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교회에 다닌다. 성가대를 하며, 가족과 함께 다닌다. 그런데, 난 이 교회를 나가자고 가족에게 계속 말한다. 다투면서. 어제도 그랬다. 이 교회의 전 담임 목사는 감옥에 갔다. 두 번째다. 횡령죄로 한 번, 모해위증죄로 한 번. 이렇게 두 번. 모해위증죄는 미성년자 성추행에 대한 명예훼손죄를 다투다가 그랬다. 세습 받았던 이 목사. 이제 교회를 떠나게 됐다. 사임했다. 그런데 원로 목사의 아내이자 이 목사의 어머니가 외치는 욕심을 보니, 정말 추했다. 또 목사 가족이 숨긴 그동안의 어둠도 여럿 드러나니, 정말 더러웠다. 왕이었던 목사. 그리고 그 곁의 간신들. 그 간신들은 이제는 갈 이 목사를 버리고 올 새 목사에게 아부한다. 그렇게 그 목사를 쇠사슬로 묶으려 한다. 지난 여러 해 동안, 그 간신들에게 당하고 있는 나. 그들의 검은 거짓으로 모함당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힘들다. 이 교회에 깊은 환멸을 느낀다. 하얀 가면을 쓴 그 검은 얼굴이 싫다.


 여기, 무진에도 하얗지만 속이 검은 안개를 머금은 악의 꽃이 피었다. 난만(爛漫)했다. 특히 큰 두 악의 꽃. 이해리와 백진우라는 악의 꽃이다. 해리는 가톨릭 신자, 백진우는 가톨릭 신부다. 해리는 과부로 장애인 단체를 이끌고 있다. 이름하여, 엔젤스 윙 장애인 주간보호 센터. 벌을 이용한 봉침을 놓기도 하는 이해리. 백신부는 필요한 돈과 사람을 그 시설에 보내고 있고. SNS에서 인기인인 그들. 많은 돈을 모금하고 있었다. 인터넷 신문의 기자인 한이나. 화가인 어머니가 암 수술을 해야 하기에 무진에 왔다. 어머니가 계신 무진에. 어릴 때 이해리의 친구인 그녀. 고등학교 1학년 때, 백진우 신부에게 성추행을 당한 그녀. 그리고 무진을 떠났던 그녀. 다시 돌아온 그녀가 길을 지나다가 한 여성을 만난다. 1인 시위를 하는 최별라라는 여성. 딸이 자살했다고 한다. 백진우 신부와 이해리를 이야기하면서 억울해한다. 그렇게 한이나는 거대한 악의 꽃밭으로 들어가게 된다. 백진우 신부와 이해리의 악행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여럿 만나게 되고. 교구가 운영하는 무진 소망원의 어둠도 알게 되고. 또 다른 악의 꽃도 알게 되고. 그리고 무진 인권 센터의 서유진 센터장과 강철 변호사의 도움도 받게 되고.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영화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 1996)'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 부류가 있어요. 흔히 '상식적으로' 사고하고 늘 '좋은 쪽으로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 이게 이들의 토양이에요. 이게 이 사람들 먹이예요. 그래서 상식을 가지고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당해내기가 힘들어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대하면 절대 안 돼요. 아무리 작은 하나라도 다 의심해야 해요. 그래서 싸움이 정말 힘들어요.' -1권 246쪽.


 '"이 세상에 우리가 남기고 갈 것은 우리가 사랑했다는 사실이에요."' -2권 267쪽.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와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 1996)'가 있다. 가톨릭의 어둠을 밝혀내는 기자인 한이나의 얼굴에서 '스포트라이트'의 얼굴도 보았다. 이 영화에서는 기자가 여럿이었지만, 그랬다. 또, 해리로 상징되는 악의 꽃들의 두 얼굴에서 '프라이멀 피어'의 얼굴도 보았다. 해리라는 이름이 '해리성 인격 장애'에서 비롯됐다고 하니, 더 절묘하다. '프라이멀 피어'에서 두 얼굴의 대주교를 죽인 피의자는 두 얼굴을 보이며 무죄를 받는다. '해리'에서는 악의 꽃들뿐만 아니라 그 꽃들의 가시에 찔린 꽃들도 몇몇은 두 얼굴을 가졌다. 검은 거짓으로 점철된 얼굴을 가린 하얀 가면. 그 가면에 당한 사람들마저 가진 두 얼굴. 그렇지만, 악의 꽃들의 두 얼굴은 너무나 무거웠다. 무진의 검은 안개를 머금었기에. 난만해서 많은 사람을 현혹했기에. 그런데, 어쩌다가 그렇게 됐을까. 사랑의 부재가 그 시작이었으리라. 내가 다니는 교회도 사랑이 없고, 욕망만 난무하고 있다. 그 민낯. 그것을 가린 가면만이 보인다. 무진의 검은 안개를 머금은 악의 꽃들에게. 교회의 검은 얼굴들에게. 속지 않기를. 아프지 않기를. 그들을 위해. 나를 위해. 사랑으로 기도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피어오르게 한 '해리'에게 감사한다.




 덧붙이는 말.

 

 공지영 작가의 구설에 대해서는 배제하고 이 소설만 읽고 쓴 글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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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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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Bridget Jones's Diary, 2001)'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Bridget Jones's Diary, 2001)'를 오래전에 봤었다. 르네 젤위거, 콜린 퍼스, 휴 그랜트가 나왔던 영화. 알아보니,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했다고. 작가는 헬렌 필딩. 더 알아보니, 그 소설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오마주한 거라고. 하긴,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다아시다. 나중에 알았지만, '오만과 편견'과 같다.읽었다. '오만과 편견'을. 아직 안 읽었던 소설이었기에. 역시 좋았다. 그래. 좋았던 사람이 많으니까 이렇게 오랫동안 헌사를 받고 있나 보다. 그리고 또 다른 헌사가 있다. '파이와 공작새'라는 소설. 할리퀸1 소설이 되시겠다. 할리퀸 로맨스 소설.


 '"이런 짓을 한 이유가 뭔지 알 것 같네요.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여기 집주인이니까. 그리고 당신은 영화배우 님이니. 남이 살고 있는 데 함부로 들어와서 음식을 훔쳐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 거군요. 어때요, 내 말이 틀려요?"' -80쪽.


 '그러자 테이트가 말했다.

 "저는 집 안에 들어온 공작새를 쫓아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절대로 믿지 않을 거예요. 에이미의 아빠가 어떤 놈인지 알려준다 해도 역시 믿지 않을 겁니다. 이미 철석같이 진짜라고 믿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설득할 수가 있겠습니까? 케이시는 이미 저를 싫어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걸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159쪽.


 '"아, 뭐. 오빠의 오만함과 당신의 편견이 만난 거죠. 아주 그럴듯한 맞수예요."' -423쪽.


 요리사 케이시. 영화배우 테이트. 각각 파이와 공작새로 상징된다. 그리고 파이와 공작새를 매개로 얽매인다. 실연을 당한 요리사 케이시는 한적한 서머힐이라는 곳에서 휴식을 갖기로 한다. 알고 보니, 영화배우 테이트가 집주인. 새벽에 케이시가 있는 오두막의 베란다에서 샤워하는 테이트를 케이시가 한동안 봤다. 테이트는 그런 케이시를 파파라치로 오해했고. 그런데, 테이트는 케이시의 집 안에 들어온 공작새를 내보내고, 케이시가 만든 파이를 먹어서 오해를 받았고. 오해로 둘러싸인 그들. 그 둘은 함께 연극을 하게 된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로. 과연, 어떤 일이 그들에게 생길지. 강한 자존심은 오만을, 깊은 오해는 편견을 만들기에.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My Lovely Sam-Soon, 2005)'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오만과 편견'의 새로운 변주. 그것도 할리퀸 로맨스 소설. '파이와 공작새'. 사실, 할리퀸 로맨스 소설은 처음이다. 주로 여성의 환상이 가득 담긴 연애 소설이라는 느낌이다. '파이와 공작새'는 거기에 '오만과 편견'의 색을 입혔고. 살짝 다른 점은 베넷 부인 역의 올리비아 패짓의 역할. 그녀는 이해와 열정을 지녔다. 그래서 조언과 감동을 준다. 그렇게 케이시와 테이트가 오만과 편견으로 좌충우돌할 때, 안식처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나저나 케이시를 보며, 생각난 사람이 있다. 바로, 김삼순! 우리나라의 브리짓 존스다. 김삼순과 브리짓 존스는 동명의 소설을 영상화한 것도 같다. 30대 미혼 여성의 일과 사랑의 이야기에서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으며, 인기가 높았던 둘. 담백과 농후를 넘나드며, 웃고 울게 만들었었다. 김삼순도 요리사! 케이시도 요리사! 그런데, 케이시의 얼굴은 다소 달고, 화려했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Bridget Jones's Diary, 2001)' 중에서.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파이와 공작새'는 헌사였다. '오만과 편견'에 바치는. 그런데, 그 변주가 좀 지나쳤. 그 설탕과 색이 가벼움과 자극을 준다. 테이트의 샤워. 그리고 바라보는 케이시. 살짝 낯간지러웠다. 그렇게 낯간지러운 글이 간혹 보였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대사. 'I like you very much. Just as you are. (난 있는 그대로의 네가 정말 좋아)'가 맞다. 있는 그대로가 정말 좋은 거다. 너무 과하지 않게. '파이와 공작새'는 그게 다소 아쉽다. 그래도 그 쾌락! 다가가는 걸 말리지는 않겠다. 할리퀸 소설은 그런 재미인 것 같으니. 아, 아이들은 빼고.  


 

  1. 나무위키의 할리퀸 항목 참조. ( https://namu.wiki/w/%ED%95%A0%EB%A6%AC%ED%80%B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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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30 1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오만과 편견>을 처음으로 읽었어요. 역시 읽어보니 요즘 로맨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올 법한 설정과 익숙한 장면들이 보였어요. 알라딘 블로그에 움직이는 사진 이미지를 등록할 수 있나요? 처음 봅니다.. ^^

사과나비🍎 2018-03-30 21:47   좋아요 0 | URL
아, cyrus님은 ‘오만과 편견‘을 최근에 읽으셨군요~^^* 예~ 아무래도 이 소설이 오랫동안 헌사를 받더라고요~^^* 아, 예~ 알라딘 블로그에 움직이는 사진이 등록돼요~^^* 검색하다가 보니, 좋은 사진이 있어서요~^^;
그나저나 cyrus님도 언제나 건강 유의하시고요~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랄게요~^^*
 
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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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작가의 첫 만남을 유작으로 만나게 됐다. 따뜻하고, 세세한 이야기의 그림이 다정했다.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새해, 동해에서 바닷가에 서서 멀리 있는 섬을 바라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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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2-15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과나비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과나비🍎 2018-02-15 18:23   좋아요 1 | URL
아, 서니데이님~^^* 말씀 감사해요~^^*
서니데이님도 설 연휴 즐겁게 보내시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랄게요~^^*
행복이 가득하시고요~^^*
 
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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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나만의 섬이 있었으면 했다. 바다 한가운데의 섬.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만한 섬. 나의 쉼터. 나의 낙원. 나와 너희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한다. 그럼, 나는 바다를 이루는 물방울이다. 그 물방울이 사는 바다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출렁출렁. 거친 파도가 치기도 한다. 그때, 바다 사이의 이상향(理想鄕)에 가고 싶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새해. 동해를 보러 갔었다. 겨울 바다. 그 바닷가의 모래 위에서 바다 한가운데의 섬을 보았다. 나만의 섬으로 하고 싶었다. 강한 바람을 지나 상상의 날개로 그 섬에 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그래도 그 섬은 나의 섬이다. 아주 멀지만 나의 섬. 또, 가고 싶은 섬.


 남도의 작은 섬.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섬에 얽히고 설킨 사람들. 그 섬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 섬을 오래전에 떠난 연수. 이제는 예술가로서 높아지려고 한다. 그런데, 고등학생 딸, 이우. 그 소녀는 가까운 친구 태이를 잃고 슬픔의 방황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상담실과 병원을 오가게 되고. 결국, 연수는 딸 이우를 그 섬에 보낸다. 그 섬에 귀향해 살고 있는 어릴 적 벗 정모에게. 정모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삶의 희망도 잃어가고 있었는데, 소금 창고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소금 창고를 도서관으로 새롭게 하려는 희망. 섬의 유지인 영도의 아들이자 친구인 태원에게 받은 소금 창고. 정모는 이우와 함께 도서관을 위해 새 힘을 낸다. 한편, 이우도 정모, 그리고 말을 잃은 섬의 소년 판도와 함께 하며, 슬픔을 지워 나간다. 도서관의 태동(胎動)을 느끼며. 판도에게 태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런데, 영도는 느닷없이 도서관의 탄생을 반대하고.


 '판도는 이런 순간이 좋다. 마치 누군가가 나 대신 써놓은 일기장을 우연히 집어든 듯한, 그냥 읽어나가다 어떤 한 문장에 붙들려, 그 문장의 무엇에 붙들렸는지도 알 수 없는 채로 몇 번이나 다시 읽게 되는.' -59쪽.


 '"아저씨, 내가 올게. 당장은 아니어도, 돌아와서 책을 읽어줄게."' -208쪽.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섬. 그 섬은 쉼터, 낙원, 이상향이다. 즉, 소통과 관심, 믿음과 정(情), 사랑과 공감이 모인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희망을 새기고 치유를 받는다. '당신의 아주 먼 섬'의 이우도, 정모도, 판도도. 섬에서 희망을 보고, 상처가 낫는다. 도서관이라는 희망으로. 이야기라는 희망으로. 그 희망으로 소통과 관심, 믿음과 정(情), 사랑과 공감이 자라난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정미경 작가의 첫 만남을 유작으로 만나게 됐다. 따뜻하고, 세세한 이야기의 그림이 다정했다.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새해, 동해에서 바닷가에 서서 멀리 있는 섬을 바라본 것처럼.


 

 

 덧붙이는 말.

  

 '이 소설은 작가 정미경의 진정한, 그리고 유일한 유고작이다. 다른 원고들은 아내가 세상을 뜨기 전 출판사에 넘겨졌거나 가계약한 상태였지만 이 원고만은 내가 그녀의 방배동 집필실을 정리하다가 책더미 속 박스에서 발견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출력해놓은 듯한 이 원고 뭉치는 하마터면 다른 폐지들과 함께 쓸려나가버릴 뻔했다. _‘발문’, '정미경, 서늘한 매혹', 김병종(화가, 정미경 작가 남편), 중에서.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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