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단호해지는 심리 수업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한윤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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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연애사는 변변찮다. 어쩌다 보니, 연애라는 걸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흐지부지. 그것이 내 연애사에 정확히 맞는 낱말일 것이다. 이어질 듯하다가 안 이어진 인연. 혹시 저주에 걸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연애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잘 들어주다 보니, 연애 상담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연애 경험이 별로 없는 외로운 청춘이지만, 잘 들어주기만 하 대부분의 연애 상담은 거의 완료다. 거기에 맞장구를 쳐 주면 더 좋고. 그런데, 상처만 있는 연애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끊어야 할 인연인데,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움말을 주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그리고 나와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관계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40년 간 치유해온 독일의 심리학자이자 심리 상담가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이 연애 초반에는 아낌없이 애정을 쏟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 표현이 줄어드는 남자를 만나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때 언어폭력을 당하거나 물리적인 폭행을 당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험을 한 여성들 중에는 자신이 망가질 때까지 수년간 심하게는 십여 년이 넘도록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헤어지려고 할 때마다 돌아오는 파트너의 위협이 그들의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사이가 다시 좋아질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도 관계를 지속하는 데 한몫한다.

 이 책은 나르시시즘에 물든 착취 관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다루고, 두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6~7쪽.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지는 가시밭길 고행.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데이트 폭력이 보도되지 않던가. 그 상처. 그 아픔에도 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있다. 안타깝다. 저자도 이런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말한다. 소냐와 프랑크라는 두 인물을 그리며, 심리학적 관점으로 논평과 설명을 덧붙였다.


 '진정한 사랑은 두 사람의 성향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랑에 빠졌어도 우린 때때로 숨 돌릴 여유가 있어야 하고, 각자 편하게 발을 뻗을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 사랑에서 공감은 매우 중요하지만 독립성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계속 책임져야만 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과 상대의 가치를 존중하고 소중히 할 때 올바른 관계가 형성된다. 즉, 자신의 단점뿐만 아니라 장점을 스스로 인정하며 그것을 두 사람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인 자존감과 자기 인식을 갖춰야만 한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채 자신의 가치를 상대에게서 찾으려 한다면, 그 관계는 계속 삐걱댈 수밖에 없다.' -275~276쪽.


 따로 또 같이. 연인 관계에도 이 말이 적용된다. 아무리 사랑이 아름다운 구속이라 할지라도, 사랑 안에서 자유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의무와 권리. 사랑의 의무를 지켰다면, 마땅히 사랑의 권리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자기 존중과 상호 존중. 이것도 연인 관계에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안정적인 자존감과 자기 인식을 갖춘 자기 존중과 상호 존중. 지나치게 군림하려 하거나 또는 너무 의존하려는 한다면, 그 연인 관계는 건강하지 못하게 된다. 건강한 연인 관계를 위한 필수 요소 가운데 하나다.  


 나는 연애 예능 TV 방송을 재밌게 보기도 한다. 물론, 예능 방송이라, 편집의 공정성과 출연진의 진정성에 슬쩍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연애 심리를 살짝 엿볼 수도 있기에 재밌다. 내가 다른 이들의 연애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것과 같은 이치리라.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연애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그림을 보고, 하나하나 배우게 되고. 그런데, 간혹 상처를 받는 걸 보게 된다. 연인 관계에 상처가 아주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상처만 남은 연인 관계를 만난다면, 나는 다시 같은 도움말을 줄 것이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잊지 말라고. 그렇게 나도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로운 삶,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용기 있는 삶, 그런 삶을 그들이 되찾길 바랄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가 바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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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비🍎 2020-02-29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9년 6월 10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팀 쿡 - 애플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조용한 천재
린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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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8월 11일 일요일. 스티브 잡스는 팀 쿡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의 후계자로. 애플의 CEO로. 그렇게 애플의 새 선장이 된 그. 사실, 잡스가 없는 애플은 상상이 안 됐다. 혁신의 대명사인 잡스. 그가 없는 애플은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추락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새 선장이 된 팀 쿡. 안정과 실리를 지키는 조용한 그. 스티브 잡스와 너무나도 다른 그. 그의 항해는 좌초되지 않았다. 지금, 더 힘찬 바람으로 항해를 하고 있다. 그런 그의 모험담이 여기 있다.


 '"그가 나를 선택할 때 내가 자신과 같지 않다는 것을, 내가 자신의 복사본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했을까요? (……) "또 그가 과연 애플을 맡길 후임자를 즉흥적으로 골랐을까요? 얼마나 오랜 시간 심사숙고했을지 안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나는 항상 그렇게 선택된 데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가제본 41쪽.


 정말, 잡스도 후임자 선택에 신중을 기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선택이 지금까지는 옳았다. 현재, 애플의 새 선장에 대한 불안은 기우(杞憂)였던 것이다. 잡스와 달리 공급망과 재고 관리의 귀재라는 그. 그의 항해 아래, 애플은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었고, 주가가 올랐으며, 현금 보유고도 늘었다. 그는 잡스의 선택에 완벽하게 호응하며, 자신의 책임을 모범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접근가능성: 애플은 접근가능성이 인간의 기본권이며, 모든 사람이 기술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교육: 애플은 교육이 인간의 기본권이며, 모든 사람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환경: 애플은 환경에 대한 의무감을 바탕으로 제품의 설계와 제조에 임한다.

 포용성과 다양성: 애플은 각기 다른 다양한 팀이 존재해야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프라이버시와 안전: 애플은 프라이버시가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믿는다. 애플의 모든 제품은 처음부터 사람들의 프라이버시와 안전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공급자 책임: 애플은 공급 사슬에 속한 사람들을 교육한 후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며 귀중한 환경 자원을 보전하도록 돕는다.' -가제본 11쪽.


 2017년 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한 재무보고서에는 애플을 경영하는 쿡의 여섯 가지 핵심 가치가 조용히 피력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접근가능성, 교육, 환경, 포용성과 다양성, 프라이버시와 안전, 공급자 책임이다. 팀 쿡의 경영 철학인 것이다. 동성애자인 팀 쿡. 그런 소수자이기에 특히, 포용성과 다양성이라는 그의 가치가 더욱더 이해된다. 


 '쿡은 '잘하면서 동시에 선을 행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격언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가제본 403쪽.


 팀 쿡이라는 애플의 새로운 선장이 그동안 모든 것을 잘했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꽤 항해를 잘했다. 그런데, 그는 선장이 된 지 아직 10년도 되지 않았다. 그를 평가하기에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또, 격변하는 세상에서 앞으로 어떤 역풍과 큰 파도 또는 무서운 해적이 이 배를 흔들지 모른다. 크게 흔들릴지도 모른다. 애플이라는 배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이 배가 좌초되어 썩은 사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팀 쿡을 보건대, 멋진 항해를 할 확률이 꽤 높다. 애플 전문 저널리스트라는 저자가 팀 쿡을 무척 호의적으로 이야기했는데, 그 누구도 쿡의 능력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함의 아름다움을 아는 애플! 그 큰 배를 이끄는 팀 쿡의 항해에 건투를 빈다. 다만, 애플의 고가 정책에는 쓴소리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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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0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31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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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한다. 우리는 그 끊임없는 질문에 대답을 하며 살아가고. 그 대답으로 아플지라도. 삶의 아픔, 그것으로 우리는 성장한다. 그런데, 어떤 대답은 아픔의 여부를 떠나, 우리를 작아지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오히려 삶에게 질문을 하기도 한다. 속절없이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그러나 삶은 우리에게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질문을 잇는다. 이어지는 무거운 질문에 무너지는 이는 결국, 대답을 무기한 유보하거나 동문서답하며 더욱 작아지게 된다. 마치, 수학의 서술형 문제에서 큰 덫에 걸린 것 같은 느낌으로. 어떤 수학 공식으로 풀어야 할지 몰라 난감한 그 느낌으로. 식은땀이 흐르는 질문들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물론, 정답이 없을 수도 있고. 정답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성실히 자신만의 답을 찾으며, 올바르게 대답하며 나아가는 이는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사람 가운데 하나. 그는 철학 등으로 삶에서 답을 찾으며 대답하는 이다.       


 '철학을 배워서 얻는 가장 큰 소득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해석하는 데 필요한 열쇠를 얻게 해 준다는 점이다.' -프롤로그 '교양이 없는 전문가보다 위험한 존재는 없다' 중에서. (7~8쪽)

 

 철학. 아마도 대부분 학창 시절에 배웠으리라. 그렇지만, 나는 시험 문제 풀이 외에는 삶에서 철학을 다룬 기억이 희미하다. 나름 철학에 관심이 있었음에도. 그저 좌우명을 몇몇 철학자들의 글로 삼기는 했지만. 철학을 내 삶에 녹아들게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걸 생각한 이는 말한다. 철학을 배움으로써 얻게 되는 네 가지 이점을. '①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한다. ②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운다. ③어젠다를 정한다. ④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라는 이점을. 그래서 나도 철학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바야흐로 최적의 해답을 최적의 접근법으로 찾으려만 하지 말고 ‘만족할 수 있는 해답’을 휴리스틱으로 추구하는 유연성이 필요한 시대다.'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 보이지 않는 손' 중에서. (215쪽)


 '우리가 갖고 있는 객관적인 세계관은 애초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 세계관을 확신하지도 말고 버리지도 않는, 이른바 어중간한 경과 조치로 일단 잠시 멈춰 보는 중용의 자세가 바로 에포케다. 그러니 이 에포케의 사고관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더더욱 필요한 지적 태도가 아닐까?' -'때로는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에포케' 중에서. (303쪽) 


 삶이 주는 질문들에 대답하고자 혈안이 될 필요는 없다. 나도 간혹 대답을 하고자 강박적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그런데 '만족할 수 있는 해답'을 휴리스틱으로 추구함과 '일단 잠시 멈춰 보는 중용'의 자세인 에포케. 이 두 가지도 삶의 질문들에 좋은 대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凡戰者, 以正合, 以奇勝. (...)

戰勢不過奇正, 奇正之變, 不可勝窮也.

奇正相生, 如循環之無端, 孰能窮之?


무릇 전쟁은 정직함으로 적과 싸우고 기발함으로 승리한다. (...)

전세는 기와 정 두 가지에 불과하지만, 기정이 변화하면 다 알 수 없다.

기정은 상생하여 순환하는 것이 끝이 없는 듯하니 누가 다할 수 있겠는가?


-손자병법(孫子兵法) '세'편​('勢'篇) 중에서1 

  

 삶에는 변화가 많다. 그래서 알 수 없고, 불확실하다. 물론, 그렇기에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그래도 도우미의 존재를 우리는 간절히 원한다. 일찍이 무릇 전쟁은 기()와 정(正)이 상생하며, 순환하여, 변화한다고 손자병법은 말하지 않았던가. 정이 없으면, 기도 없다. 또, 정이 기가 될 수도 있고, 기가 정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삶도 전쟁과 같이 기와 정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기와 정이 변화하여 알 수 없는 삶.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질문들. 이제 나도 철학 등의 도움을 받아 대답하려 한다. 50가지 개념. 좋은 구슬이다. 이제 잘 꿰어서 보배를 만들어 보자. 변화하는 삶을 믿으면서.




 덧붙이는 말.


 하나. 이 책을 여타 철학 입문서들과 구별 짓는 핵심은 '①목차를 시간축으로 구성하지 않는다. ②현실의 쓸모에 기초한다. ③철학 이외의 영역도 다룬다.'라고 한다.

 둘. 이 책에서 소개한 50가지 철학, 사상(심리학, 경제학 등)의 핵심 개념은 지은이가 경영 컨설팅 현장에서 알아 두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라고 한다.

 셋. 지은이가 일본인이기에 일본 사회의 배경과 상황을 예시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1. 리링, 전쟁은 속임수다, 37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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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17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샀는데 그래서 반갑군요. 책이 온 날에 들춰보고 꽤 잘 만든 책이네, 그랬어요. 아이디어가 좋은 것 같아서요.
인지부조화는 다른 책에서도 접했던 건데 이 책에서 다시 보니 인간을 통찰한 것 같아 흥미롭더군요.
한꺼번에 책을 다섯 권 구입해서 이 책을 아직 읽지 못했어요. 읽고 있는 책을 먼저 끝내 놓고 보려 합니다.
님이 한 발, 아니 여러 발 빠르십니다. ㅋ

사과나비🍎 2019-04-17 22:11   좋아요 0 | URL
아, 페크님도 이 책을 만나셨군요~^^* 맞아요~ 저도 지인분의 추천으로 읽게 됐는데요.
좋더라고요~^^*
아, 다섯 권을 한 번에 만나셔서 아직 대화는 안 하셨군요~
아, 대화하시는 책 먼저 대화하시고 천천히 대화하시려고 하시는군요~^^*
즐독하시기 바랄게요~^^*
그럼, 미인 페크님~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시고, 반짝반짝 빛나시기 바라라게요~^^*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 - 고종 즉위부터 임시정부 수립까지
김태웅.김대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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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아르테 팝콘양 네이버 포스트) 

 

 어느 명절 즈음이었다. 부모님과 나는 외가에 있었다. 그때, 외할머니께 문안 인사를 하러 오신 분이 계셨다. 외가의 집안분이셨다. 외가는 전주 이씨인데, 그분의 자부심이 상당하셨다. 왕의 후손이라는 당당함. 그 언행의 바탕에 있는 힘이 느껴졌다. 그 뒷면에는 망국의 한(恨)도 드리워져 있었고. 물론, 왕실과 그분은 살짝 거리가 있었지만. 그 후로 조선의 아픔을 생각할 때면, 오래전 그분이 떠오르고는 했다. 그리고 고종 즉위부터 임시정부 수립까지의 발자취를 담은 글이 있다. 2019년인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글이리라. 우리의 근대사. 아픔의 역사다. 하지만, 이 글과 함께 그 아픔까지 감싸며 자부심을 갖고자 한다. 예전에 뵌 외가의 집안분처럼.


 글은 고종이 즉위한 1863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까지의 발자국을 담고 있다. 그 당시, 격동의 시기였다. 1910년, 조선은 국권을 상실했다. 이제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했다. 어떻게 나라를 잃었으며, 어떻게 나라를 찾고자 했는지 그리고 있는 이 글. 29가지의 큰 질문을 던지며, 그 안에 작은 여러 질문과 함께 그 답을 꼼꼼히 새기고 있다. 3장 '김옥균, 혁명가인가 반역자인가?', 7장 '명성왕후는 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는가?', 27장 '그들은 왜 독립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등의 질문들. 깨닫기에 알맞은 질문들이었다. 그 질문 하나하나에 대한 답도 현답(賢答)이었고.


 '3·1운동의 출발은 파리강화회의나 고종의 국장 등 특정한 계기에서 비롯되었지만, 이 운동이 한반도 전역에서 장기간 지속되고 전 계층이 동참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일제와 맞서 싸웠던 1910년대 국내외의 모든 조직이 간직한 내적 역량 때문이었습니다.' -28장 '무엇이 3·1운동을 '세계적인 경이'로 만들었는가?' 중에서. (558쪽)


 살다 보면, 상처로 아픔을 받기도 한다. 조선도 그랬다. 결국, 조선은 사라졌다. 그렇지만, 많은 분들의 소원이 대한의 독립이었다. 소원이 쌓여 3·1운동을 낳은 것이고. 모두의 내적 역량을 담은 그때의 함성. 고귀한 외침이었으리라. 경건한 놀라움이었으리라.         


 역사는 삶의 스승.


-마르쿠스 키케로의 '변론가론(De Oratore)' 중에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 정말 뜻깊은 해라고 생각한다. 이때, 이런 좋은 책을 만나서 행운이었다. 질문으로 호기심을 불러 나의 가슴을 뛰게 한 책. 그 질문의 답을 함께 풀며, 깨달음을 얻게 한 책. 우리 근대사를 담은 이 책은 내 삶의 스승이 되기에 충분했다. 학창 시절, 시험을 위해 외우기만 했던 이 역사.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아픔의 역사인 근대사는 일부러 가까이 하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아프다고 멀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며 질문하고 이어가고 싶다. 또, 계속 답하고 싶다. 아픔 안에서 자부심을 가지며. 나의 삶 속에서. 스승으로 모시고. 그렇게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하리라.  




 덧붙이는 말.


 이 책은 2017년 9월 7일부터 2018년 10월 25일까지 60회 연재한 네이버 오디오클립 <역사탐구생활>을 바탕으로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까지 충실히 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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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수업 -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예술 강의
문광훈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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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을 보고, 깊은 그리움이 다가와 내게 머물었던 기억이 있다. 음악을 들으며, 마르지 않는 눈물이 흘러 나를 적셨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소설과 시를 읽으며, 넓은 상상이 날개를 내 안에서 펼쳤던 기억이 있다. 또, 조각과 건축을 만나며, 전율 같은 감동이 나에게 숭고함을 주었던 기억도 있다. 누군가와 함께 미술관에 갔을 때였고,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 간 음악회에서였다. 그리고 밤을 새우며 누군가의 글과 대화를 나눴을 때였으며, 박물관이나 고궁을 누군가와 함께 거닐 때였다. 이렇게 예술은 나의 삶을 일깨워 주었다. 그런 어느 예술 강의가 있다.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예술 강의. 그 강의에 수강 신청해 보았다.  

 

 

카라바조 <도마뱀에 물린 아이>. (사진 출처: 흐름출판 네이버 포스트)


 '예술은 삶의 한계 속에서 어떤 자유를 느끼게 하고, 그 자유 이상의 책임을 떠올려주며, 이런 책임 속에서 다시 자유가 얼마나 고귀한지를 절감케 한다. 자유와 책임 중 하나라도 누락된다면, 예술은 미망에 불과하다.

 (……) 

 삶의 변화는 내가 꿈꾸면서 다른 사람의 꿈을 깨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어난다. 우리는 예술 속에서 다시 꿈꾸고 선택하며 새롭게 깨어나 행동하게 된다. (……) 예술은 설렘과 아쉬움의 교차 경험이다. 이는 우리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잠시 돌아보게 한다.' -'프롤로그' 중에서. (28~29쪽)


 '예술의 경험은 우리의 세계가 그리 좁은 것이 아니라는 것, (……) 깨우쳐준다.

 예술이 아름다운 것은 예술 자체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경험에서 오는 감각의 쇄신 때문이다. 감각의 쇄신은 삶의 쇄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넓고 깊은 삶의 지평을 떠올리게 하지 못한다면, 예술은 쓸모없을지도 모른다. (……) 이 지평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다른 가능성, 다른 삶의 형성 가능성이야말로 곧 예술의 가능성이고 아름다움의 가능성이다. 다르게 살 수 없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의 배반이다. 심미적 경험이 삶의 변형에 이어지지 못한다면,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서문 '삶의 심미적 조형' 중에서. (11~12쪽)


 르누아르, 렘브란트, 드가, 마네, 피카소, 최북, 추사(김정희), 브람스, 슈만, 김수영, 백석, 황인숙, 카프카, 포스터, 국립중앙박물관, 도산서원 등. 강의에 소환된 예술의 혼이다. 그 혼들의 예술. 삶의 한계 속에서 자유와 책임을 떠오르게 한다. 또, 예술은 삶의 변화를 준다. 나는 예술을 만나서 그리움, 눈물, 상상, 감동을 경험했다. 이 경험이 내 다른 삶의 형성 가능성을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랬다. 풍성한 삶. 그것은 예술이 바탕이었다.


 '삶의 자발적 구성, 바로 여기에 미학 수업의 목표가 있다.' -서문 '삶의 심미적 조형' 중에서. (13쪽)


 우리 옛 선비들이 갖춰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심미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심미안으로 예술을 했고, 또 예술을 감상했다. 시, 서, 화 등. 그 안의 아름다움과 그 짝인 끔찍함을 포용하며. 그들의 삶을 구성해 나아갔다. 자발적으로. 그렇게 품격 있는 삶을 이루어 나아갔다. 이 마흔여섯 강의를 이어온 목소리도 말한다. 예술로 삶을 자발적으로 구성하라고. 나는 그의 목소리에서 옛 선비의 예술로 이루어진 삶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살리라 다짐했다. 선비로서의 자유와 책임을 느끼며.

 그림, 음악, 소설과 시, 조각과 건축 등. 그 예술과 요즘 가까이 하지 못했다. 그저 정지해 있었다. 바쁨과 피곤을 핑계로. 그 좋았던 기억이 있었음에도. 예술은 가까이하면 할수록 더욱 나에게 크게 다가올 텐데. 예술의 아름다움. 그 영원한 기쁨과 함께 할 텐데. 예술이여. 나의 삶과 함께 하자.

 깊은 사유로 '미학 수업'이라는 예술 강의를 담았고, 그 강의에 경청했다. 잘 준비된 강의였다. 매 강의마다 빛나는 통찰이 있었다. 그의 높은 뜻이 나의 '영혼을 섬세하게 조율'해주는 책이었다.




 덧붙이는 말.


 이 책은 2011년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영혼의 조율'을 새롭게 가다듬고 수정하여 편집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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