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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작가와의만남님의 "<100℃>의 최규석, 이야기 손님 허지웅 - 그들과의 만남에 초대합니다."

만화를 보고선 눈을 땔 수 없더군요. 시공간을 뛰어넘어 내가 있는 현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힘, 만화이지만 행간과 행간의 의미를 더듬어야 하는 소설같은 만화. 그 주인공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현실과 사회 그리고 예술의 접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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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작가와의만남님의 "연극 <다락방> 초대 이벤트"

모두가 남이 되어버린 세상, 격자형으로 짜여진 공간에 안주하는 사회, 정치적 권리마저 아파트의 소유와 교환되는 사회, 대형마트에서 장 보는 것만이 낙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소통에 대한 욕구는 누구도 갖고 있으되 정작 소통의 욕구가 소통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외로워 합니다. 김씨표류기를 보고서 눈물을 흘리는 이유, 김애란의 소설을 읽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요. 다들 그렇게 서로를 그리워하는데 왜이렇게 우리는 제 방에서 나오지를 못할까요. 절망을 희망으로, 소망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이 연극을 통해 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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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소요 > 기형도를 사랑한 사람들의 특별한 공감의 시간들

3월 7일은 그가 낙원동 심야극장에서 홀로 이 세상을 떠난지 20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본다. 작은 시집에서 배어나는 깊은 허무의 목소리, 안개는 자욱하고 싯누런 해가 솟아오르는 그의 세계를 나는 어렵게 나의 혀 속에 새기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를 올라가는 그 혼란의 시기, 그 속에서 설레임 속에 어렵게 밀려드는 허무와 공허함들을 긍정하게 할 수 있는 객관화된 힘은 문학에 있었고 그 것들 중에서 기형도와 황석영 백석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진정한 절망의 시기에 매말라버린 내 손이 찾는 것은 기형도의 시집, 입속의 검은 잎이었다. 

 2000년도에 대학을 들어간 이들은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세기말과 신세기, 혹은 밀레니엄에 걸쳐 대학을 다니는 우리들은 수사학적으로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로 변화의 한 가운데 있었다. 풍미하던 운동의 시대, 정치의 시대의 끄트머리를 경험하고 비운동권 총학의 출범과 신자유주의로 재편되는 사회와 대학,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함께한 공동체가 뿔뿔히 흩어지고 깨어져서 철저히 개인화되고 파편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 우리의 전에는 함께함만이 있었고, 우리으 후에는 홀로함만이 존재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몹시도 갈팡질팡했고, 함께하는 방법을 잃어버렸으며 희망에 대해서 절망하는 법을 배웠고, 이른바 '쿨'하다는 냉소를 이른바 미학으로 배웠다. 

그런 세대에게 80년대 후반에 작고한 기형도의 시가 얼마만큼의 호소력을 갖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 철저한 절망의 목소리 속에서 우리는 밑바닥을 볼 수 있었고 역설적이게도 따뜻하게 나를 채워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런 이유로 그렇게 나는 그를 내 세계에 끌어들였고 그 후로 오랜 동안 골방에서나, 서울 어느 오래된 골목에서나 고시공부를 하며 신림에서 지낼 때 가끔씩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가엾은 내사랑이니, 먼지투성이니 위험한 가계니, 돌계단이니 검은 잎이니 하는 단어들도 어줍잖게 인용하고. 기실, 떠나간 사랑을 말하기에, 떠나간 나의 공동체를 그리워하기에, 학창시절 내내 공시소리로 씨끄럽기만 했던 대학시절을 떠올릴 때 그의 시만한 것이 있었을까. 백석의 동북지방과 농촌은 우리에겐 너무 멀었고, 황석영의 치열함은 우리에겐 너무 큰 모험이었으니까. 사실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갖지 못한 세대였으니까. 적어도 그때까지는.. 

시간은 지나고, 그 절망과 혼란 속에서 함께함의 북적거림에서 홀로 있음을 견뎌하지 못한 한 사람은 시와 소설 나부랭이를 읽다 고시공부를 작파했고, 갓 학교를 느즈막히 졸업해 회사원이라는 타이틀을 겨우 달았다. 어느덧 그는 기형도가 세상을 뜰 때의 나이와 비슷해졌고 사진에서의 그의 모습과 비슷하게 바바리를 입고 서울 도심을 오가게 되었다.  

오늘은 그는 그래서 홍대로 갔다. 바바리를 입고, 양복을 입고.  2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20년간 그가 남긴 시들은 흐르고 흘러 수많은 사람들을 적셔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의 시를 읽는 밤을 만들었다.

문학과 지성사와 인터넷 서점이 청지기였고 홍대 앞 카페 '이리'를 빽빽히 채운 100여명의 사람들은 요절한 그의 추종자였다.
늦게사 도착한 그 곳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진행할 때마다 내 바로 옆 의자에서 일어나는 분들이 다들 소설가, 시인이었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리더이자 시인인 성기완,  자칫, 그의 설명처럼 '제사'같은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 뻔한 시간을 중간중간 가벼운 농담으로 생기있게 만들었다. 

조곤조곤하고 얇은 목소리로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낭독한 이는 한강, 그의 여린 목소리는 더욱더 시 낭송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촉매가 되었다. 내밀한 마음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시. 그녀의 소설만큼이나 그녀의 목소리로 읊은 시는 흔들리는 내면을 말하는 기형도의 시에 어울렸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를 낭독한 장난기 가득한 얼굴은 김중혁. 기형도가 사라진 90년대에 등단한 '김연수'와 함께 내가 주목하는 작가인만큼 정말 좋은 시를 골라 읽어주었다.

'어느 푸른 저녁'을 읽고자 내 뒤쪽에서 나오신 이는 성석제. 그의 소설에 나오는 능청만큼이나 느긋느긋한 목소리로 가장 가까운 문우와의 일화를 듣는 시간은 이 이벤트에서도 가장 소중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가 사랑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그에 대한 추억. 그의 습관. 그의 내면. 오랜 시간이 지나 그들역시 머리가 희끗희끗해졌고 문단에서는 이른바 중진을 넘어 곧있으면 원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와 함께할 때를 논할 땐 언제나 그들은 청춘이었고 문학청년일 수 있었으리. 아마도 그 날, 성설제 작가는 참으로 많은 술을 먹지 않았을까... 

'잎속의 검은 잎'을 읽던 흰 머리에 백팩을 매고 온 이는 이문재. 장례식에 대한 그의 기억으로 말문을 연 그는 그토록 기형도가 단정적일 수 있었을까 라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써 농담으로 옛기억들이 가져오는 소회를 지우려 하는 듯 했다. 많은 독자들이 수십번 보았던 그의 시집을 그의 문우였던 이문재 시인은 2번정도 보았다고 했다. 일부러 보지 않았다고. 그동안 기형도란 이름은 얼마나 떠올리기 쉽지 않은 이름으로 기형도 시인의 친구들에 남아있었을까 짐작할 수 있었던 듯. 

 '그 집 앞'을 읽은 아주머니는 황인숙,'검은 잎의 입'을 바친 이는 함성호, '갇힌 사람'을 바친 이는 진은영,'포도밭'을 바친 매우 겸손한 시인은 최하연. 행사 내내 한쪽에서 큰 키에 베이스 기타를 한쪽에 두고 맥주를 마시던 이는 아....그랬다. '달로'라는 소설집으로 독특한 그녀만의 소설작법을 내비친 한유주.
 

가히 문인의 향연. 그를 사랑한 사람들이 문상객이고 그가 사랑한 사람들이 상주가 되어 그를 추모하는 자리. 서구의 장례식처럼 망자의 주변인이 모여 그에 대한 추억을 말하면서 추모하는 작은 축제. 그의 시처럼 지하에 모여 그의 시가 자아내는 울림을 모두 경험하는 공감의 자리. 그리고 추억의 자리. 추억의 절정은 매우 급히 스쳐가듯 소개되었지만 그의 누님인 기향도님이 소개되는 자리 아니었을가. 그의 혈육은 한 구석에서 이 자리를 그저 목격하고 있었고, 이미 그의 넋은 수많은 그의 독자들과 문인들로 점유되어버린 이 상황. 결국 그는 이제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공공재'적인 인물이 되었고 20년 전 그의 장례식이 개인적 차원, 혹은 가정과 친구들 사이로 한정된 것이었다면 오늘의 이 자리는 '사회장'으로 그를 우리 모두의 것으로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마지막, 우리는 그를 음악과 함께 보냈다. 백현진씨와 성기완 ,한유주, 김남윤이 함께하는 공연으로 그를 우리의 마음속에 흘려보냈다. 
 

시와 음악과 또 기형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찬 소중한 공간.

우리가 시를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는 기적의 시간.

우리가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잃고 그리워하는 공동의 감정을 나누는 자리.

 

즐거운.

비오는.

목요일.

홍대.

나.

<폐 속에 흥건히 자리잡았던
반지하의 지독한 축축함처럼
어둡고 음습했던 지나간 20대여
눈 감고 잘 가거라

미쳐 날뛰는 세상에 몸 뉘어버린
갓 26의 흐린 눈망울로는
20대에 흐린 구름 사이 간혹 비친
찬란한 햇살을 기록하지 못하겠네

백양로 은사시나무, 소철나무, 청송대의 솔밭을
그는 걸었다면
안암의 다람쥐길 짙은 상수리나무, 아카시아 나무를
나는 지나 왔으리

90년대의 허무와 퇴폐가 세기말의 징후라
애써 이해되건만
21세기 벅찬 희망은 야수의 잔혹함과
물신의 전능함으로 짖이겨져벼려감은
이 무슨 슬픈 시대의 조우련가

그러함에 잘 잠드시길. 기형
그대의 시어로. 그 음습함과 절망은
희망의 21세기를 힘겹게 살아가는 이 땅의
젊음에게 아직 유효하기에

나 역시 눈감아 미쳐가려오
죽지 않는다면> 

나 역시 치기어려 단정에 익숙하던 시절 썼던 그의 시를 읽고 나서 쓴 시 나부랭이는 이제 이 자리에서 떠나보낸다. 안타깝게도 혹은 다행이게도 이젠 회의함에 익숙해져버린 내 자신이 되어버렸기에. 외로이 죽음을 맞이해 불멸로 남아버린 기형도를 만나고 나서 쓰는 이 글은 새로운 삶의 지평에서 지나온 뒷길을 돌아보는 일일 것이다. 지금 우리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철저한 절망이요 얻을 것은 그로 인한 완전한 거듧남일테니까. 그래. 다시금 우린 그의 시를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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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작가와의만남님의 "연극 <서울은 탱고로 흐른다> 초대 이벤트"

2월 11일 / 춤과 책은 발음의 첫 음소도 같고 그 특성도 비슷한 것 같네요. 춤이 몸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라면 책은 아마도 정신을 승화시켜나가는 것일테니까요. 탱고는 그런 의미에서 남미의 환상적 리얼리즘의 기수들, 마르케스나 보르헤스를 상징하는게 아닐까요. 이런 좋은 이벤트를 통해 몸과 마음을 두루두루 자극시키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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