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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에 따랐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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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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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삶이 불 꺼진 밤의 창문처럼 공허할 때가 있다. 공허는 검은빛이다. 공허라는 말이 주는 아득한 미로 속으로 들어가면 지나고 나서 후회했던 순간들과 다시 마주한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되풀이되었다. 지금과는 아주 똑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자면, 참 많은 세월을 맨몸으로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이것이 삶의 이유가 아니라는 두꺼운 벽()을 마주할 줄 몰랐다. 벽을 깨뜨릴수록 수많은 파편이 온몸으로 파고들었고 그리하여 인생을 끝까지 사랑하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세상 곳곳이 전쟁터여서 슬픔을 막을 수 없지만 사랑을 선택하고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때로 삶이 밤하늘의 별처럼 은은히 빛날 수도 있을 거라고 믿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나오는 펄롱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 숨이 막혔다. 사소한 삶에서 느끼는 감정과 자기 믿음 사이에서 갈등하였다. 사람들에게 삶은 사소하거나 사소하지 않다. 사소함은 사람을 살아가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석탄과 목재를 팔면서 다섯 딸을 키우는 그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딸들은 각자 자기에게 필요한 일을 하고 그의 아내 또한 지극히 현실적이며 시퍼런 직감으로 살림을 꾸려나간다. 그의 가족들은 각자 만의 방식으로 사소한 일상을 삶 그 자체로 여긴다. 다시 말하면 사소한 인간은 사소한 일상을 사소롭게 생각한다. 그래서 은유 작가의 표현대로 사소한 인간은 가족 인간으로 불릴지도 모른다. 가족 인간은 다름 아닌 가족에게만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가족 인간만 있는 게 아니다. 소설에 나오듯 한겨울에도 먹을 것이 없고 땔감이 없어 힘들게 지내는 불행한 인간들이 있다. 펄롱은 석탄을 배달하면서 불행한 사람들을 본 이후로 가족 인간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얼핏 보면 불행한 인간은 운이 없다고 해도 할 수 있으나 그가 느끼기에는 가족의 결여로 보였다. 그래서 그는 불행한 인간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떠올라 어째서 우리는 불행한 인간을 도와주지 못할까? 라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그가 반가웠다. 가족 인간인 듯 하면서도 조금은 덜 가족 인간이어서 대화가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불행한 인간을 보면서 저마다의 감정을 자아낸다. 불행이라는 단어는 긴 설명이 없어도 가슴에 와닿는 슬픔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느 누구는 그와 같이 불행한 인간을 모른 척하며 지나갈 수 없어 남몰래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의 아내처럼 우리한테는 아무 상관이 없어.’라고 하며 발길을 돌리기 마련이다. 불행한 인간을 걱정하거나 도와주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나름대로 핑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의 아내가 무심하게 말했던 말이 내 머릿속에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차별주의자라는 말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어느 누구도 차별주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이중적인 잣대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얼굴이다. 다섯 딸을 부족함 없이 키우면서 남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부지런하게 사는 것은 누구에게 물어봐도 선량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선량함이란 당연한 일이니까.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선량함이라는 말이 오히려 부당한 차별로 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이 힘들게 사는 것을 알면서도 어디든 운 나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까라며 잠잠히 넘기곤 한다. 정말 그들을 스스로 제 무덤 판 사람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부분에서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게 망설여졌다. 소설에 나오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보수적이었다. 내가 너무 고집스럽게 이상적으로만 살려고 해서 그런지 모른다. 하지만 선량한 차별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더 이상 다정함이라고만 여길 수는 없게 되었다. 그것은 정말 걱정 때문이라기보다는 차별이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든 일종의 무시였다.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는 관계만 유지하면서 불행한 그들의 삶에는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는 펄롱이 선량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다행히 사람들의 무관심에 벗어나 자신의 소명을 지키려 했다. 그는 사소한 일상이 끌어당기는 아픈 현실에 대해 외면하지 않았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얼핏 담담해 보이면서도 배어나오는 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런지 물으면 우리는 서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구원의 손길을 알면서도 태연한 얼굴로 앞만 보고 스쳐 지나갈 뿐이다. 때로는 우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올 때는 도망가려는 마음뿐이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의 아픔을 대신 덜어줄 순 없고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연약했지만 멈춰서 생각하고 뒤돌아보는 사람이었다. 세상이 점점 더 힘들어져서 안간힘을 써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은 후회와 허무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그토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의 선량함은 진실이었다.


어느 날 그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수녀원의 온갖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한 깊숙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부끄러웠던 일이 떠올라 일요일에 미사를 보고 도무지 잠들 수 없을 정도로 고민에 빠졌다. 그저 크리스마스가 이름만 그럴듯한 축제가 아닐까 의심했다. 수녀원의 아름답지도 않은 부조리한 모습에 남들처럼 침묵하며 쉬쉬하며 그냥 살아도 되는지 묻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그가 할 수 없는 일이 없었으니까. 어떻게 해서 수녀원에 있는 소녀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소녀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어쩌면 예전보다 최악의 시련과 싸워야 하는 두려움이 없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는 안타까운 체념에서 벗어나 참회의 용기를 냈다. 만약 그의 선량한 마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기적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그의 마음은 크리스마스처럼 따뜻했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내 마음 어딘가에 그의 절실한 말이 깊은 자국을 남겼다. 그의 말을 들었을 때 묘한 안도감이 생겼으며 내 마음을 부끄럽게 했다. 동시에 그에게 힘내라는 말도 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를 도와줄 때가 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결코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만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었다. 사소하더라도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괜찮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다름 아닌 최선이었다.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했다.


클레이 키컨의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읽었다. 그의 소설은 뭔가 뚜렷한 이야기나 주제는 없어 보였다. 대신 사소한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담담한 시선 속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사소한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사소한 일상을 몇 번이고 되돌아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담담함에는 갑자기 무언가가 목구멍에서 울컥 치밀었다.’라는 미세하면서도 강렬한 울림을 준다. 앞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뒤돌아보는 시간이 우리의 살아 있음을 선명하게 한다.


우리는 까마귀 울음소리로 추악한 세상이 금방이라도 망해버렸으면 하는 섬뜩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어째서 지옥 같은 세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 것일까? 에 대해서는 여전히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작가의 물음은 아득한 일상의 체념이 아니라 변화로 읽혔다. 우리를 멈추고 또 돌아서게 하면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가장 좋은 부분을 빛나게 하였다. 겨울밤에 켜지는 불빛처럼 춥고 배고픈 세상을 어둡게 하지 않았다. 나는 작가에게 답할 것이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선량한 관심으로 삶의 부드러움이 확장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말이다.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드러움은 다른 존재를 향한 깊은 감정적 관심이다. 부드러움은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유대감을 인식하게 하며 또 우리에게 존재하는 유사성과 동일성을 인식하게 한다.”


이 소설은 사랑을 뒤돌아보게 한다. 부드러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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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아지트 추전도서

[철학으로 돌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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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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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桑田碧海). 풀이하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된다는 고사성어이다. 보통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어떻게든 변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문화적 충격을 보면서 사람은 어떻게 될까? 라는 것이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변화의 속도를 거창하게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패러다임은 어떤 한 시대를 지배하는 우리의 인식이나 사고를 뜻한다. 패러다임에 따라 사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변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는데 목숨을 바친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내일을 상상하며 메시아적 희망을 꿈꾸기 때문이다.


김이정의 유령의 시간60세 김이섭이 자서전을 쓰는 내용이다. 자서전에는 해방 30주년 전후의 혼란스러운 현대사가 격동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하여 한국전쟁, 박정희 독재 정권 등의 사건들이 배경으로 잡혀 있다.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역사적 사건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라 시대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의 자서전 역사적 사건을 고발하는 울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신 역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격동의 물결에서 김일성은 싫지만 사회주의자가 지금도 옳다고 믿는 지식인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수배자가 되었고 평생을 빨갱이라는 주홍글자를 달며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살 수 없었다. 권력자들은 참으로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이념과 사상으로 민족을 와해시키고 분단의 상처를 치료하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반공(反共), 사회안전법이라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강요했다.


그런데 그의 자서전은 원고지 스물 두 장에서 미완성으로 멈추고 말았다. 이때가 그의 딸 지형의 나이 15세이었다. 그로부터 40년 지나도록 그녀의 묵직한 슬픔은 흉터로 남았다. 이러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그녀는 그를 애도하였고, 퍼즐 조각마냥 흩어진 그의 삶을 하나하나 완성하였다. 그의 자서전의 제목대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유령의 시간이었다. 이중삼중으로 고립된 삶, 이 땅 어디에서도 그는 존재하지 못했으니까.


작가는 무엇 때문에 지금에 와서 김이섭의 비극적인 삶을 복원하는 것일까? 단순히 국가와 사회의 역사가 어떻게 개인의 역사를 망가뜨렸는지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서둘러 달려온 한국 현대사가 흘린 남겨진 진실에 눈을 뜨면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진실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열정적으로 살았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한 대가는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가혹했다. 소설을 읽어보면 그의 불행한 가족사에 대한 책임이 오로지 그 자신에게 있는 듯했다. 차라리 그랬으면 얼마나 다행이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가족은 물론 친족까지 위험에 빠뜨렸다. 그들은 신원조회라는 바늘구멍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원망 때문에 가혹한 운명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그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이중적인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국가는 그가 그토록 믿었던 사회주의를 개인의 문제로 외면해버렸다. 그러면 국가는 책임져야 할 부분에서 은근쓸쩍 물러나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장인이 말한 것처럼 어떤 사상도 절대적으로 옳을 수 없다. 절대적 믿음은 적대적 관계로 파생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게 더 인간적인 제도냐의 문제인지 모른다.


정말로 인간적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나는 인간적이라는 것을 조금 오래 생각해 보았다. 그가 공평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믿었던 이념도 인간적이었고, 이념 때문에 월북했지만 이쪽에서 내 가족을 희생시킬 만큼 더 나은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때문에 다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인간적이었다. 그의 삶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얼굴에는 삶에 대한 비극과 찬가가 혼재되어 있었다. 결국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욕망이 철저히 통제된 세계와 욕망이 지나치게 과잉된 세계의 경계선에서 희망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유령의 시간은 역사적 소용돌이를 겪은 사람들의 상처를 주목하고 있다. 그들의 상처는 한 번 지나고 나면 사그라지는 별거 아니라는 냉소적인 말과 달랐다. 오히려 아주 오래도록 가슴속에 새겨져 있어 완전히 상처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망상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최선은 아니었다. 유령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존재와 같았다. 이러한 유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가는 기꺼이 과거를 소환하고 대화하였다. 작가에게 과거는 고통인 동시에 부적(符籍) 같았다.


소설 속에서 그는 유령 같았던 삶을 회고하면서 딸에게 뭐든지 뜨거운 마음으로 해야 돼. 공부를 해도 마음을 다 바쳐야 돼. 그렇지 않으면 의무감만 남고 사는 게 재미없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는 스스로를 몽상가’, ‘이상주의자라고 부르며 실패한 삶을 증명하였다. 마치 물 밖에 나온 새우의 모습처럼 투항의 자세처럼 보였다. 만약 그가 의무감으로 자신의 신념대로 살았다면 영원히 비극 속에서 외롭게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후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보란 듯이 살아남았다그는 세상을 절망했으나 삶을 살았다, 실패한 인간이 아니라 뜨거운 인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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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31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방아지트에서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책방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한 눈에 봐도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뜻한 눈빛에 믿음이 가고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살면서 이런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반가워 헤어지기가 아쉽습니다. 반면에 그런 사람은 걱정과 안타까움을 마구 쏟아내면서 후회하는 듯한 말투와 표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눈빛이 굳어지고 숨이 막혀 답답할 지경입니다.


사람을 아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사람, 말을 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런 사람은 ‘일루미네이터 Illuminator’입니다.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분하게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 말을 건성 건성으로 하고 남의 기분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말만 스스럼없이 늘어놓는 그런 사람은 ‘디미니셔Diminisher’입니다. 상대방에게 겉도는 말을 해서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합니다. 자꾸만 아픈 데를 콕 짚어낼 뿐이어서 오히려 상처로 얼룩집니다.


우리 삶이 좀 더 행복해지고 싶으면 서로가 일루미네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일루미네이터는 불빛이 되어 당신에게 가고, 당신의 마음을 열고 움직이게 합니다. 움직이면서 당신이 미처 몰랐던 자존감을 밝게 비춥니다. 비로소 자존감이 폭발하게 되면 당신은 스스로를 괜찮은 존재라고 느끼게 됩니다. 일루미네터는 당신을 빛나는 존재, 최고의 존재로 만듭니다. 일루미네이터는 당신을 먼저 생각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디미니셔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척 합니다.


일루미네이터는 당신을 변화시켜 주는 좋은 인연입니다. 좋은 인연에는 분명 삶의 거대한 힘이 있습니다. 당신이 누구이며 왜 사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당신의 암호를 풀어주는 조용하지만 카리스마(Charisma)가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라고 하면 비상한 힘과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매료시키는 영향력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카리스마의 가치를 알고 있기에 우리는 늘 카리스마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보통 카리스마에 대한 기준으로 부와 명예를 가진 성공한 사람이라 믿고 있습니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생각해보면 아무나 성공할 수 없다는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성공이라는 가치는 카리마스가 있어야만 빛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데이비드 브룩스의『사람을 안다는 것』을 읽다가 ‘뒤집힌 카리스마’ 라는 유명한 단어를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소설가 E.M.포스터의 전기를 쓴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포스터와 대화를 나누면서 뒤집힌 카리스마에 사로잡히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했습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내 말에 얼마나 집중하는 지 나 자신이 가장 정직하고 예리하며 최상의 인물이 되는 기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포스터가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로 인해 작가는 무척이나 행복해서 인생의 특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특별한 즐거움이 바로 뒤집힌 카리스마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책방아지트에 와서 격려와 응원을 해주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이웃들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카리스마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카리스마는 부와 명예가 아니라 아름다움에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처럼 부드럽습니다. 모난 데 없이 둥글게 사는 아름다운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리스마입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밝은 표정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요즘에도 책방아지트에 있으면 마음에도 없는 쓴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책방으로 밥 먹고 살 수 있냐?’고 묻는 말을 듣게 되면 그걸 헤아리느라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애써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잘 될 리 없습니다. 무기력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면 습관적으로 마음이 캄캄해져 어두운 얼굴을 하게 됩니다.


뒤집힌 카리스마를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요? 카리스마가 됩니다. 내가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소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뒤집힌 카리스마를 주기 위해서 입니다. 내가 선물해주고 싶은 카리스마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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