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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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비싸다.

-유발 하라리

 

정치(政治)에 대해 무관심하며 살았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정치는 나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정치 때문에 삶이 피곤한 나날의 연속이다. 더군다나 날씨가 갈수록 이상해지는 만큼이나 살림살이가 나쁜 쪽으로 기울다 보니 하루를 버티는 게 힘이 든다. 적어도 정치는 권력(權力)이 아니라 생활력(生活力)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2024123일 계엄은 큰 문제다. 처음에는 픽션이지 싶었는데 사실은 경악할만한 현실이었다. 계엄이라는 야만적인 시스템은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지만 정작 진짜 현실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그나마 남아있던 생활력마저 무기력해졌다. 한편으로는 생활력의 한계를 넘어 분노했다. 어쩌다 민주주의에 맞서 총을 들고 무력으로 통제하려고 했는지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계엄이라는 비합리적이며 극단적인 현실이 도래할 가능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모여 온몸으로 불의(不義)에 맞섰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이 있다. 결과적으로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계엄은 대통령의 파면으로 끝났다.


김영민의 한국이란 무엇인가는 비싼 책이다. 책값이 비싸다고 하면 다른 책보다 높아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의 정가는 18,000원이다. 이 정도 가격이면 한국 사회에서 보통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비싼 이유는 바로 진실을 파헤치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발 하라리 말대로 진실은 비싸다는 견해와 다르지 않다. 그가 말하는 진실은 제목에 나와 있듯 한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다. 기존의 방식대로 한국이라는 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공허에 불과하다.


계엄으로 돌아가면, 저자는 영화 <서울의 봄>을 바탕으로 쿠데타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한다. 쿠데타는 노상방뇨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단순히 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시녀로 부린다. 만약에 이 정도로 쿠데타를 해석하는 것은 새삼 주목받을 리 없다. 쿠데타의 모든 과정의 정당함을 법이 아닌 자기 자신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놀랍다. 그러려면 자기 자신을 더욱 미화(美化)하는 것으로 정당성을 완성해야 한다.


이러한 시선으로 저자는 12.12 쿠데타를 못생긴 쿠데타라고 해석한다. 여기서 못생긴 의미는 외모의 이미지보다는 쿠데타가 욕망하는 열악하고 조악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계엄을 포고하면서 헌법을 훼손하는 이미지가 좋을 리 없다. 뭔가 부도덕해야 한다. 그 대안으로 정의 사회라는 도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덕은 헌법이 담보하는 것이 아닌가? 이 모두가 못생긴 쿠데타의 결과다. 비록 쿠데타가 실패하고 민주화가 승리했다고 하여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과제는 민주화 역시 못생긴 민주화라는 불편한 사실을 좀 더 깊이 헤아려보려는 자세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다방면으로 넘나들면서 직면한 문제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물음을 하고 있다. 가령, 오늘날 한국은 결혼에 소극적이라는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두고 결혼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대안적 감수성이 되지 못한다. 지금과 같은 직장, 소득, 집을 확보하는 일마저 갈수록 어려운 현실에서 결혼하는 게 불가능하다. 모름지기 설득력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결혼은 자연스러운 인생사업이다. 이런 의미에서 결혼을 서비스로 접근해야 한다. 서비스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욕망, 기회, 능력이라는 삼요소의 균형이 필요하다. 결혼에 대한 욕망이 없는데 속절없이 제공되는 여러 가지 부가서비스는 오히려 채무감이 되고 말 것이다. 얼마든지 결혼지옥이 될 수 있다.


일찍이 니체는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라고 말했다. 알다시피, 한국의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여러 가지 문제로 삶이 피곤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도 없다. 더구나 내가 한국에서 태어난 것은 내 욕망이 아니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압도적이다. 그래서 늘 고통은 어려운 숙제와 같았다. 이처럼 숙제의 본질을 그대로 두고 숙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가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듯이, 이런 생각은 게으르다.


이제 우리는 고통을 극복하는 존재여야 한다. 고통을 극복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일차척으로는 개인의 문제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적인 문제이다. 한국 사회가 고통을 극복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러한 비상사태 또한 픽션이 아니라 심각한 현실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내놓은 대책은 의미 있는 고통이다. 의미 있는 고통은 자신의 현재를 극복하는 자세다. 어떤 점에서 고통은 한국 사회가 대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려면 앞서 말했듯 의미 있는 고통이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고통천국이다. 만약에 고통이 무의미하다면 우리가 도저히 감내하기가 어려 고통 그 자체이다. 달리 말하면 고통지옥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려면 고통지옥은 자기 심장에 박힌 치명적인 칼이다.


생각해보면, 고통은 어떤 날 어느 순간 발생하고야 만다. 그러니 고통은 우리 삶의 영원한 서사다. 의미 있는 고통을 몰랐으면 치명적인 칼을 몰랐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의미 있는 고통을 몰랐다면 고통의 가치를 몰랐을 것이다. 만약에 고통이 무의미하다면 고통의 진실을 외면했을 것이다. 비로소 고통의 진실을 되돌아보니 왜 그토록 고통이 값비싸야 하는지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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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전두환은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란 무엇인가? 쿠데타는 단순히 법을 어기는 행위가 아니다. 누가 노상방뇨를 한다? 그것은 위법일 수는 있어도 쿠데타는 아니다. 누가 소매치기를 한다? 그는 잡범이지 쿠데타 수괴가 아니다. 미셀 푸코에 따르면, 법을 어기는 것이 쿠데타가 아니라 초월하는 것이 쿠데타다. 그래서 미셀 푸코는 쿠데타 상황에서 국가이성은 "법 자체"에 명령한다고 말했다. 법을 어기고 지키고의 문제는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권위 자체에 도전하는 것이 쿠데타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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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 -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어나니머스 옮김 / RISE(떠오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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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에 대한 인생수업! 고개를 끄떡이게 하며 인간에게는 극복하고자 하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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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 -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어나니머스 옮김 / RISE(떠오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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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삶을 전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프란츠 카프카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기 위해 책이라는 도끼를 들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철학이라는 망치를 들었다. 하지만 니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망치보다는 초인(超人)’이라는 인간의 형상이다. 지금에 와서는 초인보다는 위버멘쉬(Übermensch)’라는 말이 새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다. 삶이 무엇인지를 갈구하던 시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위버멘쉬는 어떠한 고통에서도 자신을 창조하는 존재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위버멘쉬는 말 그대로 위버멘쉬와 함께 하는 인생 수업이다. 삶은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의 연속이다. 결과적으로 문제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삶은 슬픔과 고통의 바다와 같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 니체는 인간의 영혼을 일깨워주고 있다. 바로 인간은 극복되어야 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가령, 니체는 강한 사람을 주장한다. 강한 사람이라는 비유는 고전적이지만 매우 유효하다. 강한 사람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강한 사람은 좋은 날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날보다는 나쁜 날이 많은 사람이다. 좋은 날은 삶의 변화가 없다. 반면에 나쁜 날은 삶이 무한히 변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하는 법이다. 비록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가슴 뛰는 삶이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고통을 좋아할 리 없다. 그래서 인지 고통을 앞에서도 자신의 일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위버멘쉬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극복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버티고 싸우며 스스로를 극복하는 것이다. 또한 극복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진보하는 용기가 바로 위버멘쉬였다. 고통 앞에서 적당히 살아온 나에게는 위버멘쉬가 정말이지 강한 사람이었다. 고통으로부터 삶을 배우는 용기 있는 영혼이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을 바라는 삶.


위버멘쉬는 진실의 힘을 믿는다. 진실은 단순히 거짓말의 반대는 아니다. 진실은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찍이 영국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한 번의 거짓말은 스무 개의 거짓말을 더 만들어낸다고 했다. 결국 거짓말은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거짓말은 삶의 무수한 변명이다. 어디 그뿐인가. 삶에 대한 변명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거짓말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자신의 방향을 알아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은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자유로운 존재다.


되돌아보면, 나에게도 자유를 갈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철학자들의 글을 읽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니체를 만났다. 그의 철학은 불편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의 철학은 인간의 삶에서 자유의지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끝없이 만들어냈다.


그래서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의 핵심은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니체는 자유의지를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착각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우리는 착각 덕분에 삶을 살아가는 추진력을 얻게 되고 비로소 내 의지대로 살 수 있게 된다. 자유의지는 폭포와 같다. 폭포는 물리법칙에 따라 아래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폭포가 만들어내는 모습은 아름답다. 만약에 자유의지가 없으면 폭포는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고통을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믿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며 왜 그렇게 사느냐고 함부로 묻지 않을 수 없다.


니체의 말처럼 우리는 위버멘쉬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불투명한 삶을 걱정하고 두려워만 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극복되어야 하는 존재다. 막연히 열심히 사는 것이나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는 단단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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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뜨겁고 고결한 자신의 영혼을 느끼는 것이요, 치욕스럽고 어리석은 것들에 대한 경멸을 유감없이 온몸으로 살아내는 것이다..내가 오늘 무엇인가에 쓸모 있는 존재라면 그것은 내가 홀로 서 있기 때문이요, 증오하기 때문이다.

 - 에밀 졸라, [나의 증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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