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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최재천 지음 / 궁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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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티마이오스』에서 사람은 최고의 고등 동물로 신들이 창조했으며 다른 종들은 사람으로부터 타락과 퇴화의 과정을 거쳐 나왔다고 하였다. 가령, 겁쟁이들과 불한당들은 여자로 퇴화하고 지혜가 모자라는 사람은 저급한 동물로 퇴화한다. 지저귀는 새들은 자신들의 기분에 지나치게 좌우되는, 해롭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안이한 사람들이 변해서 생겨난 것이고 지상의 동물들은 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물고기와 조가비 따위는 인간 중에서 가장 멍청하고 어리석고 쓸모없는 사람들이 퇴화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동물학자의 눈으로 본 인간의 모습은 다르다. 결론적으로 인간과 동물은 하나다, 라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고도로 진화해오면서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인간의 눈으로만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생존자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즉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서도 아무 문제없이 살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최재천의 인간과 동물』은 눈여겨볼 만하다. 표지가 온통 초록색이다. 저자는 우리를 야생으로 초대하면서 동물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매우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더구나 동물들의 생존에 따른 적응 방식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산뜻하면서도 강한 느낌을 전달해주고 있다.

가령, 얼룩말이 기분이 좋을 때는 귀를 세우고 ‘히힝’거리지만 기분이 나쁠 때는 귀를 낮춘 상태에서 이를 드러내며 ‘히힝’거린다고 하는 세심한 관찰은 동물의 세계가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된다. 이밖에도 곤충이 노란 꽃을 좋아하고 새가 빨간 꽃을 좋아하는 이유를 진화적인 매커니즘을 통해 명쾌하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호기심 너머에는 동물에 대한 방대한 사례를 통해 인간이 가지고 모순을 재발견하고자 한다. 교육문제에 있어 저자는 어미 새가 새끼 새를 가르치는 방법을 살펴보고 있다. 어미 새는 새끼 새가 싫어한다고 해서 나는 방법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새끼 새가 지금은 왜 날아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날아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너무 아이들이 배우고자 하는 것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한다. 가르칠 건 확실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재미있게 가르쳐야 하는 방법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생명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이 책을 통해 인간과 동물이 상생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상생은 오늘날 자연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해법이다. 경제학 측면에 있어서도 이것이 최적화일 것이다. 인간만을 위한 혹은 동물만을 위한 치료는 곧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불협화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자연이 가르쳐 주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연의 소리를 가까이에서 듣지 않고 오히려 인간을 위한 처방만을 우선시하고 있다. 침팬지가 진화를 해왔듯 인간도 진화해왔음을 알면 인간과 동물이 상생하는 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광우병을 비롯한 각종 동물들의 역습에서 보듯 이제 함께 살지 않으면 모두가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2007년은 생물학의 해이라고 한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술을 자연에서 배웠으면 한다. 그래서 과학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과학화가 실현되었으면 한다. 또한 항생제의 남용으로 치료하기 어려운 문명화의 질병을 위해 다윈의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지구생명 사랑일 것이다. 앞으로는 우리의 눈이 초록색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진화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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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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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오우아거사(吾友我居士)란 말을 알게 되었다. 뜻을 풀이해보면 내가 나의 벗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내가 나의 벗이 될 수 없음을 생가해보면 그 척독(尺牘)을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면 오우아거사는 누구일까? 바로 이덕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스스로롤 간서치(看書癡)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책만 보는 바보였다. 그는『논어』로 병풍을 삼고 『한서』로 이불로 삼아 추운 겨울날을 견디며 살았다고 한다. 더구나『맹자』를 팔아 밥을 지어 배불리 먹고 희희낙락했다고 하니 정말로 미치지(狂) 않고서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이 책은 옛 사람들 중에서도 미친(狂)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어 이채롭다. 앞서 말했듯 미친(狂)은 치(癡) 혹은 벽(癖)이라고 불렸는데 단순히 미쳐서는 미칠 수 없었다. 정말로 미쳐야 미쳤다고 할 수 있었다.


여기서 푸코의 견해를 통해 광적(狂的)인 경계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다. 첫째로 지식의 문제이다. 지식은 곧 안다는 것인데 참된 지식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가령 김득신은 자신의 거처에 억만재(億萬齋)라는 당호를 지었다고 한다. 그의『독수기(讀數記)』를 보면 내 눈을 의심하게 한다.


즉『백이전(伯夷傳)』은 1억 1만 3천 번을 읽었고『노자전(老子傳)』은 2만 번을 읽었고『장자』와『사기』은 많이 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읽은 횟수가 만 번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싣지 않았다고 했다. 미련하다고 하기에는 그의 노력이 애틋한데 깨달음의 비밀을 풀 수 없을 것 같았다.


둘째로 권력의 문제이다. 이 책에 나오는 18세기 지식인들은 권력의 이방인이었다. 홍길주가『김영전(金泳傳)』에서 “세상은 재주 있는 자를 결코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한탄했는데 그들에게 권력은 시시비비를 따지는 한바탕 일장춘몽이었다. 비록 김영이 굶어죽은 천재이었지만 그가 남긴 학문의 길은 언제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푸코의 문제가 아닌 저자의 관점으로 보면 만남의 문제이다. 저자가 말한바 멋진 만남은 맛난 만남이라는 것이다. 옛 사람은 벗을 제이오(第二吾)라고 했다. 벗은 이익과 권력에 얽매이지 않았을 정도로 인생의 동반자였다. 뿐만 아니라 홍대용의 그의 벗들이 보여 준 실내악 연주는 이념, 나이, 계층, 성, 지역 등 삶의 조건들이 달랐지만,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신뢰한 낭만적인 클래식이었다.


이처럼 파란만장한 조선 지식인의 내면을 마주하는 순간 일상의 편안함을 쫓아다니는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죽비소리가 생생했다. 그들의 삶을 보고 있으면 분명 고단하고 쓸쓸해보였다. 그런데도 가슴을 물컹거리게 하는 멋스러움이 부러웠다. 삶의 길목 길목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상처 투성 이었지만 그들은 바보소리를 들을 정도로 무심했다. 더욱이 아픈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진통제 같은 약 대신에 바람에 흔들려도 꺼지지 않는 촛불마냥 지식인의 불빛을 밝혔다.


돌이켜 보면 이 책에 나오는 지식인들의 삶은 이상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어쩌면 이것이 불합리한 생을 견디는 나름대로의 현명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것마저 없었다면 초라한 생(生)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이덕무를 비롯한 18세기 조선 지식인들과 시공을 초월하여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복이었다. 일찍이 플라톤은『향연』에서 사랑의 마지막 단계에서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을 말했다. 그들이 곧 오우아거사와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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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이 온다 -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레이 커즈와일 지음, 김명남.장시형 옮김, 진대제 감수 / 김영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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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이 온다』라는 대단한 책을 읽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저자의 탁월한 식견은 과학에 대해 문외한이더라도 매우 흥미로워 매력적이었다. 또한 놀라웠다. 기계가 사람이 되고 사람이 기계가 된다는 것이다. 미래의 인간은 더 이상 생물학적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트랜스 휴먼으로 한층 진화된  AI(인공지능)으로 사이보그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예측은 바로 특이점이라는 패러다임에 의해서 현실화되고 있다. 특이점이란 미래에 기술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그 영향이 매우 깊어서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시기를 뜻한다. 이로 인해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이 인간을 가속적으로 변화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류가 진화해온 패턴을 여섯 단계로 구분하면서 신인류가 도래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제 1단계에는 물리학과 화학의 패턴에서 DNA가 진화했다. 제 2단계에는 생물학 패턴에서 뇌가 진화했다. 제 3단계에는 뇌의 패턴에서 기술이 진화했다. 제 4단계에는 기술의 패턴에서 기술이 인공지능의 방법을 터득한다. 그리고 제 5단계인 특이점의 패턴에서 기술과 인공 지능의 융합으로  진화하며 마지막으로 제 6단계에서는 인공지능이 우주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업그레이된 우리는 궁극적으로 ‘버전 3.0 인체’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결함투성인 버전 1.0 인체는 과학기술의 덕분에 지금 ‘버전 2.0 인체’로 변화되고 있다. 다름아닌 특이점 시대의 핵심적인 GNR(유전공학, 나노공학, 로봇공학)혁명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몸 속에는 세포내지 유전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AI(인공지능)의 기계들과 공생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서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저자는 생물학적인 인간의 특징을 엄지 손가락이라고 한다.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도 물건을 잡을 줄은 알지만 힘있게 단단히 붙잡지 못한다는 것으로 해서 인간의 엄지 손가락의 과학성을 혁명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기계가 생물학적인 한계를 극복하려면 인간의 엄지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인공지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뇌와 기계의 패턴은 서로 장단점이 명확하다. 사람의 뇌가 연산 속도에 있어서는 느리지만 시냅스가 가지고 있는 고도의 병렬적인 조직(동시성) 덕분에 정보를 삼차원적으로 구축하여 막대한 힘을 발휘한다. 반면에 기계는 연산 속도는 빠르지만 문제 해결에 있어 순차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

 

이렇듯 특이점이 시대에는 기계가 인간과 공생하면서 인간을 초월한다. 더 이상 기계는 인간의 부속품이 아니다. 바야흐로 고도로 발달된 기술이 융합된 기계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관리하게 된다. 가령, 우리가 감기에 걸렸을 경우 과거에는 감기약을 먹었으나 미래에는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 대신 몸속의 AI(인공지능)의 기계들이 나쁜 세균을 파괴할 것이다.

 

저자는 이런 폭발적인 현상을 통해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장밋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한마디로 기술제일주의자라는 것이다. AI(인공지능)의 기계들이 우리를 간섭할 수도 있으며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감염될 경우 통제 불능의 상태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우려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아주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처치-튜링 명제이다. 명제에는 약한 해석과 강한 해석이 있다. 약한 해석은 튜링 기계가 풀지 못하는 문제는 다른 어떤 기계도 풀 수 없다는 것이다. 강한 해석은 튜링 기계가 풀 수 없는 문제는 사람도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기술의 발달은 매우 카오스적이면서 빠르다. 예전에는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였다. 그만큼 과거에는 기술의 발달이 선형적이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기술의 발달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 법칙에 따라 기술의 발달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상현실을 여행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정말로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누군가는 이를 끝가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는 앞서 받아들일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선택해야 하는데 특이점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즉 보다 강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기계와 공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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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특이점이 온다 -레이 커즈와일
    from 김재호의 디지털보단 아날로그 2009-06-21 21:39 
    특이점이 온다 - 레이 커즈와일 지음, 김명남.장시형 옮김, 진대제 감수/김영사 회사에 과학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이 책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앞으로 변할 미래 세계의 모습을 담은 책인데, 그리 멀지 않은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변화를 예언하고 있어서 나는 사이비같은 이야기라 생각하고 한귀로 흘려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진대제의 열정을 경영하라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고는, 그가 쓴 다른 책이 없을까 하고 찾아봤는데 이 책이 떡하니 나오..
 
 
 
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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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지구는 둥글게 돌아가는데 그 속에서 우리들은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다. 사람으로 태어난 즐거움이 갈수록 불편해지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삶을 일주일에 비유하면서 6일의 혹사와 1일의 안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하루마저도 권태롭다고 했다.

삶을 되돌아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취직해야하고 아파트를 사야하고 모름지기 부자가 되어야 한다. 이렇듯 바쁜 나날을 보내면 살이 빠져야 하는데 오히려 뚱뚱해진다. 뚱뚱해지니 정신적으로 비만해지고 게을러진다. 그리고 어느 날 인생에 빨간불이 깜박거림을 느낀다.

 

모처럼『인생수업』를 읽었다. 평소 입버릇처럼 읽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하지 못했다. 이유인즉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을 앞에 두고 누구나 후회하거나 두려워한다는 메시지가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제목에 나와 있듯 인생수업이었다. 그리고 소녀가 코끼리에게 들려주는 매우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보듯 깨달음이 명상적이어서 읽는 이의 마음을 맑게 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거대한 산을 올라가게 한다. 정상에 올라서면 날아갈 것 같다. 한순간 죽음이라고 하는 막막함을 시원하게 적셔준다. 노발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너는 죽음이다. 너만이 우리를 튼튼하게 한다.”에 가깝다.

 

이 책은 크게 두 갈래이다. 하나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의 생(生)이라면 다른 하나는 죽음을 맞이하는 생(生)이다. 전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해준다. 가령, 우리가 돈이나 자동차 같은 물질적인 것에 욕심을 부릴 때 “이걸로 충분할까?”라는 생각을 중단하라고 한다. 즉 이걸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욕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을 치유하고자 한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대신에 “이만하면 충분해.”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후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말해준다. 단지 죽음을 안쓰럽다고 여기면서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죽음이라는 과정의 다섯 단계 즉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을 통해 죽음과 관계 맺기를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죽음을 통해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앞서 말했듯이 죽음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진한 삶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죽음에 대해 소홀하다. 아무래도 삶에 대한 과열 현상이 문제이다. 이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탁해졌다.

 

저자는 이런 삶의 연민들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보라고 한다. 그리고는 바다를 보고 산에 올라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우리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인생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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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 - 강양구의 과학.기술.사회 가로지르기 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 1
강양구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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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소 충격적이다. 여기에 나오는 과학적 사실들이 정말일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몰랐던 과학에 대한 치명적 오류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한마디로 불량과학이라는 것이다. 즉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품이라는 수단으로 매매되는 현실이 너무나 불량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제목에 나와 있듯 오늘날 과학은 세 바퀴로 가는 자전거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과거 자전거가 두 바퀴였다면 지금은 과학, 기술, 사회라는 세 바퀴이다. 이 세 바퀴가 서로 균형있게 작동하면서 전진해야 한다. 만약 과학, 기술만이 강조된다면 과학은 여전히 상품이라는 효율성을 내세워 괴물이 되고 말 것이다.

가령,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를 경악하게 한 황우석 사태에 비친 자화상은 많은 문제점과 위험성을 보여주었다. 우리 과학자에게 의해 줄기세포가 연구된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장애인을 위해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으니 휴머니즘 관점에서 이 보다 좋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휴머니즘 사기에 농락되고 말았다. 줄기세포의 장밋빛에 가려진 가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환상에 사로잡혀 허점을 놓치고 말았다.

우선적으로 연구를 위해 난자를 제공하는 여성들의 고통이 심각하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점은 줄기세포의 결과가 앞서 말했듯 상품으로 매매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소외된다는데 있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다.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했는데 정작 비싼 치료약이 목구멍을 막아버린다. 글리벡이라는 백혈병 치료제에서 발생했던 상황이 반복되고 만다.

이밖에도 환경 문제, 정보 문제, 복제 문제에 관련된 과학 기술에 대해 저자는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러면서 과학 기술의 결과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때로는 당신의 차(車)와 이혼하라고 한다. 이로 인해 어느 누구는 대한민국을 구했다고 한다. 반대로 어느 누구는 비전문 과학자라는 오명을 감정적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지난 날 기념비적인『침묵의 봄』을 통해 환경호르몬의 역습을 주장했던 레이첼 카슨을 “미친 여자”라고 했듯이 “미친 남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량과학에 대한 저자의 고발은 호기심 차원에서 지식을 남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 분야의 과학 기술에 대한 겉과 속을 파헤치면서 과학 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다. 또한 과학전문 기자답게 풍부한 사례를 통해 객관적이면서 설득력있게 과학 기술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비전문 과학자라는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고 있다. 오히려 비전문 과학자라는 장점을 새롭게 하고 있다. 그것은 과학자들의 기술을 사회적으로 적용하고 발전시키는데 지극히 일상적으로 우리가 역할을 분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과학 기술과 사회가 소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현실적인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학 기술을 보는 눈(眼)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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