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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찰스 다윈은『종의 기원』에서 “먼 훗날 나는 훨씬 더 중요한 연구 분야가 열리리라 본다. 심리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서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19세기 과학 혁명을 일으켰던 다윈의 진화론은 오늘날 인간 본성과 행동에 대한 답을 제시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러한 과학 분야가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다. 국내 최초의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 박사는『오래된 연장통』을 통해 인간의 마음이 무엇인지?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다. 제목 그대로 인간의 마음은 ‘톱이나 드릴, 망치, 니퍼 같은 공구들이 담긴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획기적인 선택을 했다.
저자가 말한 ‘오래된 연장통’은 창조론, 지적설계론과 반대다. 즉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였다. 진화에 있어 자연선택만이 복잡하고 정교하다. 그래서 혹 누군가 설계한 것이 아닌가? 라는 감탄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지적인 설계자가 복잡한 적응을 설계해낸 것은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 말대로 “다윈의 진화의 시기가 지나면 설계는 그 후에 일어난다. 설계는 진화에 앞서 일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우주의 배후 원리일 수 없다.”는 것이다. 겉만 봐서는 단순하더라도 본능의 진면목은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그 종에 속한 모든 구성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장착된 특수화된 신경회로’라고 저자는 거듭 주장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21가지 연장을 소개하면서 진화심리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주고 있다. 가령, 두 번째 연장인 같은 행성, 다른 선택압에서는 ‘남성과 여성은 정말로 다른가.’에 접근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번식 성공도’(한 개체가 평생 동안 낳는 자식 수)가 분포하는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여성의 번식 성공도가 평균값이라고 한다면 남성은 그 편차가 심하다. 이로 인해 남성은 성관계의 상대의 수에 비례하므로 하룻밤 섹스를 갈망하게 된다.
네 번째 연장인 문화와 생물학적 진화에서는 ‘본성과 양육’에 접근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마음은 과거 환경의 적응적 문제들을 풀기 위해 자연선택된 수많은 해결책들의 묶음이다. 이러한 묶음이 생물학적으로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본능이 인간 집단의 보편적이라고 한다면 문화는 각 집단마다 다른 무언가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집단 간의 차이를 문화로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 보다는 진화심리학지 존 투비와 레다코스미디스가 말한 ‘유발된 문화’(evoked culture)라고 할 수 있다. 즉 보편적인 심리 기제가 각기 다른 환경조건에 반응하여 각기 다른 결과물을 빚는 경우다. 그런가하면 생물학적 진화와는 무관한 ‘전파된 문화’도 있는데 리처드 도킨스는 문화적 전달의 단위를 ‘모방자’(meme)라고 하였다.
일곱 번째 연장인 웃으면 복이 왔다, 에서는 보면 ‘웃음의 목적’에 접근하고 있다. 웃음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되며 유머를 이해하는 능력은 그냥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두뇌의 생리학적 작용에서 나온다. 또한 웃음은 전염성이 강하다. 이러한 웃음에는 진짜 웃음인 ‘뒤셴 웃음’(Duchenne laugher)과 가짜 웃음인 ‘비뒤셴 웃음’ 혹은 ‘공손한 웃음’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입가뿐만 아니라 눈 둘레까지 움직이는 유쾌한 기분이 들게 한다면 후자는 입가만 올라갈 뿐 눈가에 주름살을 만들지 않는 긍정적 정서를 만들지 못한다.
열 번째 연장인 진화의 창 너머 보이는 풍경에서는 ‘사바나의 유혹’에 접근하고 있다. 인류의 진화사를 보면 농경과 목축은 고작 1년만 전에 처음 나왔다. 그만큼 정주형보다는 유목형인 수렵과 채집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조류학자 고든 오리온스에 따르면 조상들은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 선천적으로 끌리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사바나에는 먹을 것이 많았고 야가 탁 트여서 맹수로부터 안전했다. 이러한 진화 미학에 따라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자연 그 자체에 깃든 외부적 실재가 아니었다. 영장류 인간이 오랜 세월 진화하면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특정한 환경을 잘 찾아가게끔 그 환경에 대해 느끼는 긍정적인 정서일 뿐이라는 것이다.
열일곱 번째 연장인 도덕은 본능이다, 에서는 ‘직관이 추론에 우선한다.’에 접근하고 있다. 어떤 행동에 대한 도덕 판단은 ‘도덕적 직관’과 ‘도덕적 추론’이 있다. 도덕적 직관은 어떤 사건의 옳고 그름에 대해 빠르고 즉각적인 판결을 내린다. 도덕적 추론은 정서의 개입이 거의 없이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도덕적 직관이 도덕적 추론에 우선한다는 것에 대해 저자는 관광객을 태운 인도코끼리의 행보와 같다고 했다. 어디로 갈지는 코끼리(도덕적 직관)가 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다윈, 쇼핑을 나서다를 보면 과시적 소비를, 고기를 향한 마음에서는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자연의 미(美)에서는 카플란의 길찾기 이론을, 여왕 벌거숭이 두더쥐의 사생활에서는 진사회성 포유류를, 발정기는 사라지지 않았다를 보면 여성의 가임기는 곧 여성의 발정기라는 배란 혁명을, 가을빛이 전하는 말에서는 단풍의 진화적 기능에 나타난 해밀턴의 신호 가설을, 음악에 왜 존재하는가를 보면 스피븐 핑커의 음악은 귀로 듣는 치즈케이크라는 명제를, 마지막으로 종교는 피할 수 없는 부대비용에서는 최소한도로 반직관적인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중환의『오래된 연장통』을 읽으면 우리는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그것도 이론적인 과학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이 토대로 하면서 진화심리학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번쩍 떠오르게 했다. 저자의 진화론은 독특하게도 ‘오래된 연장통’이다. 저자는 서문에 밝혔듯이 다윈의 렌즈를 통해 우리의 문화 전반을 들여다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다채로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고 했다. 그래서 신(神)이 세상을 설계했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가능성이나 출구가 아니었다. 마치 물을 떠난 물고기와 같다. 최재천 교수가 말한 대로 ‘진화심리학이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화심리학이 다윈의 진화론을 기반으로 하여 인지과학, 뇌과학, 컴퓨터과학등 첨단과학적 방법론의 도움을 받아 수행하는 ‘통섭형 과학’이라는 것에 부응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