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의 쇼 - 진화가 펼쳐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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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윈은『종의 기원』에서 곰이 거의 고래 같은 동물로 진화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해 다윈 비판론자들은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 될 수도 있겠다면 반박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면 왜 아직도 원숭이가 살아있는가? 따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가 하면 만약 이러한 진화가 사실이라면 왜 ‘원숭이인간’이라는 중간 형태의 화석이 존재하지 않는가? 라고 강한 부정을 거듭 주장하며 진화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창조론자 혹은 설계론자들의 질문 공세에 20세기 다윈주의자 리처드 도킨스는『지상 최대의 쇼』에서 궁극적으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진화는 ‘그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고 했다. 대신에 진화는 하나의 사실이다. 사실의 사전적 정의는 ‘실제 관찰이나 진짜 증언을 통해서 알려진 어떤 진실로, 그저 추출된 내용이나 추측이나 허구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론은 ‘어떤 사상들이나 진술들의 체계’다. 그래서 다윈의 진화가 사실이라면 자연선택은 이론이 되는 셈이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에는 진화라는 사실 자체는 반박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반면에 자연선택은 진화의 가장 중요한 추진력이지 유일한 추진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간 화석의 문제는 화석기록의 빈틈(gap in the fossil record)을 말한다. 이는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라고 하는데 인간과 다른 영장류를 이어주는 화석 증거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존재의 대사슬(The Great Chain of Being)에서 보면 인간은 고등 동물이며 원숭이는 하등 동물이다. 하등 동물이 고등 동물로 진화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과정에서 연결고리를 다루는 것은 오히려 반진화적인 개념이라고 염려하고 있다. 이유인즉 인간은 원숭이에서 유래하지 않았으며 대신에 인간은 원숭이와 공통선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현생종들은 선조를 공유하는 친척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저자는 화석의 빈틈은 존재한다고 역설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펼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화석은 필요 없다. 화석 없이도 진화에 대한 변론은 물 샐 틈 없이 확실하다.’고 했다. 즉 화석이 하나도 없더라도 다른 분야의 증거들만으로도 충분히 진화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방대하게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앞서 말한 다른 분야의 증거들이며 책 제목에 나와 있듯 ‘지상 최대의 쇼’ 그 자체였다. 이 모두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직접적인 결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친절한 진화론 입문서’것을 알게 된다. 그런가하면 ‘명쾌한 창조론 반박서’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무기경쟁과 신정론]을 다룬 12장이 가장 첨예하게 창조론의 허술함을 포착하고 있다. 창조론자에게 지구가 젊다고 한다면 진화론자에게는 늙은 지구다. 젊은 지구에서 신정론(神正論)을 모면 무기경쟁(armament race)이 발생하지 않는다. 설계된 경제라고 한다면 자연은 도덕적이어야 한다. 또한 상대방의 존재로부터 이득을 얻는 공진화(供進化)다. 하지만 자연은 포식자와 사냥감에서 보듯 사악하며 무도덕적이다. 이런 공진화가 바로 무기경쟁이다.

돌 이켜보면 ‘강자는 살아남고 약자는 죽는다.’라는 자연선택은 필연적이다. 이것이 곧 다윈이 말했던 “생명의 숨결이 불어넣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윈의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있다고 했다. 오히려 자연선택을 혐오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음울한 논리라고 말했다. 그래서 저자는 진화를 부정하는 40퍼센트의 사람들 즉, 역사 부인주의자들에게 진화의 증거를 인정하고 이해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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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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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종의 기원』에서 “먼 훗날 나는 훨씬 더 중요한 연구 분야가 열리리라 본다. 심리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서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19세기 과학 혁명을 일으켰던 다윈의 진화론은 오늘날 인간 본성과 행동에 대한 답을 제시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러한 과학 분야가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다. 국내 최초의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 박사는『오래된 연장통』을 통해 인간의 마음이 무엇인지?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다. 제목 그대로 인간의 마음은 ‘톱이나 드릴, 망치, 니퍼 같은 공구들이 담긴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획기적인 선택을 했다.


저자가 말한 ‘오래된 연장통’은 창조론, 지적설계론과 반대다. 즉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였다. 진화에 있어 자연선택만이 복잡하고 정교하다. 그래서 혹 누군가 설계한 것이 아닌가? 라는 감탄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지적인 설계자가 복잡한 적응을 설계해낸 것은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 말대로 “다윈의 진화의 시기가 지나면 설계는 그 후에 일어난다. 설계는 진화에 앞서 일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우주의 배후 원리일 수 없다.”는 것이다. 겉만 봐서는 단순하더라도 본능의 진면목은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그 종에 속한 모든 구성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장착된 특수화된 신경회로’라고 저자는 거듭 주장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21가지 연장을 소개하면서 진화심리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주고 있다. 가령, 두 번째 연장인 같은 행성, 다른 선택압에서는 ‘남성과 여성은 정말로 다른가.’에 접근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번식 성공도’(한 개체가 평생 동안 낳는 자식 수)가 분포하는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여성의 번식 성공도가 평균값이라고 한다면 남성은 그 편차가 심하다. 이로 인해 남성은 성관계의 상대의 수에 비례하므로 하룻밤 섹스를 갈망하게 된다.


네 번째 연장인 문화와 생물학적 진화에서는 ‘본성과 양육’에 접근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마음은 과거 환경의 적응적 문제들을 풀기 위해 자연선택된 수많은 해결책들의 묶음이다. 이러한 묶음이 생물학적으로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본능이 인간 집단의 보편적이라고 한다면 문화는 각 집단마다 다른 무언가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집단 간의 차이를 문화로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 보다는 진화심리학지 존 투비와 레다코스미디스가 말한 ‘유발된 문화’(evoked culture)라고 할 수 있다. 즉 보편적인 심리 기제가 각기 다른 환경조건에 반응하여 각기 다른 결과물을 빚는 경우다. 그런가하면 생물학적 진화와는 무관한 ‘전파된 문화’도 있는데 리처드 도킨스는 문화적 전달의 단위를 ‘모방자’(meme)라고 하였다.


일곱 번째 연장인 웃으면 복이 왔다, 에서는 보면 ‘웃음의 목적’에 접근하고 있다. 웃음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되며 유머를 이해하는 능력은 그냥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두뇌의 생리학적 작용에서 나온다. 또한 웃음은 전염성이 강하다. 이러한 웃음에는 진짜 웃음인 ‘뒤셴 웃음’(Duchenne laugher)과 가짜 웃음인 ‘비뒤셴 웃음’ 혹은 ‘공손한 웃음’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입가뿐만 아니라 눈 둘레까지 움직이는 유쾌한 기분이 들게 한다면 후자는 입가만 올라갈 뿐 눈가에 주름살을 만들지 않는 긍정적 정서를 만들지 못한다.


열 번째 연장인 진화의 창 너머 보이는 풍경에서는 ‘사바나의 유혹’에 접근하고 있다. 인류의 진화사를 보면 농경과 목축은 고작 1년만 전에 처음 나왔다. 그만큼 정주형보다는 유목형인 수렵과 채집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조류학자 고든 오리온스에 따르면 조상들은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 선천적으로 끌리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사바나에는 먹을 것이 많았고 야가 탁 트여서 맹수로부터 안전했다. 이러한 진화 미학에 따라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자연 그 자체에 깃든 외부적 실재가 아니었다. 영장류 인간이 오랜 세월 진화하면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특정한 환경을 잘 찾아가게끔 그 환경에 대해 느끼는 긍정적인 정서일 뿐이라는 것이다.


열일곱 번째 연장인 도덕은 본능이다, 에서는 ‘직관이 추론에 우선한다.’에 접근하고 있다. 어떤 행동에 대한 도덕 판단은 ‘도덕적 직관’과 ‘도덕적 추론’이 있다. 도덕적 직관은 어떤 사건의 옳고 그름에 대해 빠르고 즉각적인 판결을 내린다. 도덕적 추론은 정서의 개입이 거의 없이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도덕적 직관이 도덕적 추론에 우선한다는 것에 대해 저자는 관광객을 태운 인도코끼리의 행보와 같다고 했다. 어디로 갈지는 코끼리(도덕적 직관)가 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다윈, 쇼핑을 나서다를 보면 과시적 소비를, 고기를 향한 마음에서는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자연의 미(美)에서는 카플란의 길찾기 이론을, 여왕 벌거숭이 두더쥐의 사생활에서는 진사회성 포유류를, 발정기는 사라지지 않았다를 보면 여성의 가임기는 곧 여성의 발정기라는 배란 혁명을, 가을빛이 전하는 말에서는 단풍의 진화적 기능에 나타난 해밀턴의 신호 가설을, 음악에 왜 존재하는가를 보면 스피븐 핑커의 음악은 귀로 듣는 치즈케이크라는 명제를, 마지막으로 종교는 피할 수 없는 부대비용에서는 최소한도로 반직관적인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중환의『오래된 연장통』을 읽으면 우리는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그것도 이론적인 과학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이 토대로 하면서 진화심리학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번쩍 떠오르게 했다. 저자의 진화론은 독특하게도 ‘오래된 연장통’이다. 저자는 서문에 밝혔듯이 다윈의 렌즈를 통해 우리의 문화 전반을 들여다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다채로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고 했다. 그래서 신(神)이 세상을 설계했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가능성이나 출구가 아니었다. 마치 물을 떠난 물고기와 같다. 최재천 교수가 말한 대로 ‘진화심리학이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화심리학이 다윈의 진화론을 기반으로 하여 인지과학, 뇌과학, 컴퓨터과학등 첨단과학적 방법론의 도움을 받아 수행하는 ‘통섭형 과학’이라는 것에 부응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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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
로널드 L. 넘버스 엮음, 김정은 옮김 / 뜨인돌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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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창포 해수욕장은 신비의 바닷길로 잘 알려져 잇다. 무창포 해수욕장과 석대도 사이의 바닷길이 썰물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성경』의「출애굽기」 14장에 따르면 무창포 바닷길은 ‘모세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 사람들은 더 이상 모세의 기적을 믿지 않는다.『성경』대신 과학자들의 주장이 훨씬 합리적이다. 즉 무창포 바닷길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해서 생기는 자연현상이며 결정적으로 달과 태양의 인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의 기적을 믿는 신학자들의 심경은 미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학자들의 설명에 일리가 있음을 어느 정도는 자신들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神)을 버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로널드 L. 넘버스가 엮은『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는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있다. 이 책은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통사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그러면서 과학과 종교에 내재된 통념(myth)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학의 최대의 적은 종교라는 것이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창조론과 진화론의 첨예한 대립을 간접적으로 접해왔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코페르니쿠스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브루노가 순교자가 된 최초의 과학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른바 종교재판으로 자행된 희생자는 브루노만 뿐만 아니라 갈릴레이도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러한 사실들이 전복되고 만다. 그들이 과학자였다는 지엽적인 사실만으로 박해를 받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신학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학적 개념이 이단적이라는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7세기 과학혁명이 과학을 종교에서 해방시켰다고 하지만 그 시대를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17세기 근대과학자는 없었다. 그보다는 그들은 자연철학자였다. 자연철학이란 자연의 근본 원리, 일반적인 변화와 움직임, 그리고 신의 천지 창조 등을 다루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뉴턴은『프린키피아』「일반주해」에서 “완전한 존재라 하더라도 세상을 관장하지 않는다면 주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신을 ‘성스러운 시계공’이라고 하였다. 

데카르트에 의해 합리론이라는 흐름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자연철학을 답보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을 달리 기계론적 철학자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계론적 철학은 모든 것을 인과관계로 단순화시켰다. 그럼에도 그들은 인과관계라는 기계론적 세계조차도 목적과 설계를 위한 공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시 말하면 기계론적 철학은 ‘모두 신이 물질을 창조하고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곧 피에르 가상디가 말한 ‘최종 원인’이었다. 자연철학자들은 최종 원인이라는 용어를 ‘창조에 드러나는 신의 의도’라는 의미로 재해석했다. 

한편으로 다윈의『종의 기원』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자연신학이 거대한 담론이었다. 자연신학은 신의 특성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증에는 ‘존재론적 증명’과 ‘우주론적 증명’이 있다. 전자는 완벽한 존재로서의 신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후자는 필연적인 존재인 신이 있기 때문에 우주가 부수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는 ‘설계논증’이 논의 되었다. 설계논증의 특징은 적응과 관련된 유용성과 지적 설계였다. 하지만 다윈의 자연선택은 ‘지적인 통제가 있었다는 증거’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인슈타인이 말한 “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습니다”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스피노자의 신은 ‘인간의 운명과 행동이 자신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하는 신’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세상의 규칙적인 조화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신’을 말한다. 중세와 근대 철학에서는 자연을 초월적 신의 창조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신은 곧 자연이었다. 즉 세계는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세계 자체가 바로 신이었다.

또한 스피노자의 신을 믿었던 아인슈타인의 종교관은 새삼스러웠다. 그는 종교의 최종 단계를 ‘우주의 질서에서 느끼는 종교적 감정’이라고 했다. 유한한 인간의 존재를 깨닫고 자연과 사고의 세계에서 드러나는 경이로운 질서를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인격화된 신’을 버릴 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감정은 ‘과학과 종교 사이의 충돌에 대한 생각을 없애준다고’ 했다. 이유인즉 과학은 이해할 수 있는 우주에 대한 믿음을 종교에 의존하고 , 종교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우주의 질서에 대한 발견을 과학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과학과 종교가 적인가 동지인가’라는 통념에 대해서 비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과학적인 생각이 일상화된 오늘날 ‘서구 문화를 세속화시켰다고?’ 라는 의문은 얼핏 당연해 보인다. 세속화란 과학지식이 초자연적 현상의 지배를 덜 받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종교가 걸어온 길을 당대의 현실과 함께 더듬어 보면 늘 반목했다는 것은 잘못된 통념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러한 주장은 낡은 개념에 불과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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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생각한다 - 기후변화, 에너지, 식량, 질병, 물 : 5가지 키워드로 읽는 지구
김수병 외 지음 / 해나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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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간 없는 세상이 된다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뉴스위크」는 21세기 인류에게 계시록으로 남을 책으로 앨런 와이즈먼의『인간 없는 세상』을 추천했다. 이 책을 들여다보면 ‘인간 없는 세상 연대기’가 흥미롭게 소개되고 있다. 그중에서 10만 년 후 된다면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의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때문에 지는 부담을 덜어버린 세상. 사방에 야생 동식물이 멋지게 자라는 세상을 생각하면 우선 마음이 솔깃해진다, 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인간이 인간만을 위한 개발에 치중하면서 지구는 ‘코드 레드(Code Red)’상태에서 심한 몸살을 앓은 지 오래다. 토머스 프리드먼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다. 그래서 그는 ‘코드 그린(Code Green)’을 주장하면서 지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른바 그린 혁명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기획하고 국내의 과학저술가들이 지은『지구를 생각한다』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5가지 키워드로 지구를 둘러싼 문제들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기후변화, 에너지, 식량, 질병, 물 등등 굵직한 키워드를 자신의 영역에서 문제점에 대한 대답과 비전을 제시해주고 있다. 결국 우리가 살고 싶은 지구가 되기 위해서는 이 책의 서문에 나와 있듯 ‘녹색 미래’가 되어야 한다.

기후변화에 있어 1938년 가이 스튜어트 캘린더가 “인간의 산업 활동으로 지구온난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이 지나친 기우만은 아니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는 석유 같은 화석 연료를 무분별하게 사용한 결과였다. 이로 인해 지구의 온도가 지난 반세기 0.6도 올랐으며 급격한 기후변화를 일으켰다. 역사적으로 기후변화는 몇 차례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기후변화는 인간이 주범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탄소 중립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에 있어 석유 중독이라는 고탄소 경제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석유 중독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1차 에너지 즉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했다. 경제적 효율성에 있어 원자력 발전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치유는 태양, 풍력이라는 저탄소 경제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세계 경제의 미래는 ‘수소에너지 체제’가 현실화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수소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식량에 있어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먹을거리가 위기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기계화된 농토 그리고 유전자조작 농산물로 인하여 우리의 밥상은 안전하지 못하다. 더구나 식량의 비윤리적 태도가 거대한 산업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만큼 마이클 폴란이 걱정한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정크푸드(junk food)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밥상의 개성을 살리는 느리고 맛있는 슬로푸드(slow food)를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질병에 있어 점차 더워지는 지구로 인해 말라리아 같은 곤충의 공포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또한 여름철 식중독이 주로 세균성이라고 한다면 겨울철 식중독은 노로바이러스가 일으킨다. 그리고 대기오염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으로 인하여 ‘창백한 악마’가 창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환경파괴로 인한 부메랑이 인간을 공격하는 데 있어 최근 뜨거운 이슈는 무엇보다도 환경 호르몬에 있다. 환경호르몬은 내분비계 장애물질로 인체 호르몬 시스템을 혼란시켜 이상을 일으키게 한다.

마지막 물에 있어 20세기가 석유 분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물 분쟁의 시대라는 것이다. 더구나 석유는 바이오 연료나 신에너지로 대체 할 수 있지만 물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물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빗물, 바닷물을 식수로 만드는 해수 담수화 그리고 마법의 물이라고 불리는 해양심층수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일상적으로 하수를 처리하면서 ‘맛있는 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구온난화, 석유 고갈, 생태계 파괴, 환경호르몬, 물 부족이라는 전반적 위기를 맞고 있는 지구의 미래를 냉철히 내다볼 수 있었다. 이 책에 나와 있듯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넘어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이제 더 이상 나중은 없다. 바로 문제를 인식하는 지금은 아마도 비관론과 낙관론의 중간에 위치할 것이다.

이럴 때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일 것이다. 일찍이 평생을 침팬지와 함께한 제인 구달이 “우리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위해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조금씩, 매일, 함께, 노력한다면 지구의 미래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라고 일깨워주었다. 이 책 또한 지구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 무엇인지를 모색하는데 매우 시의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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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 초개체 생태학
위르겐 타우츠 지음, 헬가 R. 하일만 사진, 최재천 감수, 유영미 옮김 / 이치사이언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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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은 곤충일까? 포유동물일까? 우리가 아는 꿀벌은 곤충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포유동물이라고 주장하는 생물학자가 있다. 그는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를 지은 위르겐 타우츠였다. 이 책에서 그는 꿀벌 군락을 두루 살피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꿀벌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그의 주장을 이해하기 앞서 우리는 두 명의 생물학자를 빼놓을 수 없다. 한 사람은 윌리엄 모튼 윌러(William Morton Wheeler)이며 나머지 한 사람은 요하네스 메링(Johannes Mehring)이다. 윌러를 주목하는 이유는 ‘초개체(superorgnism) 개념’에 있다. 초개체 개념이란 꿀벌은 각각 별개의 생명을 지닌 개체이지만 언제나 군락 전체가 마치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메링을 주목하는 이유는 ‘척추동물’에 있다. 메링은 “일벌은 생명 유지와 소화를 담당하는 몸이고, 여왕벌은 여성의 생식기이며, 수벌은 남성의 생식기다.”라며 꿀벌의 군락을 척추동물이라고 했다.

이러한 꿀벌에 관한 특성을 바탕으로 하여 저자는 앞서 말했듯이 ‘포유동물’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낮은 번식률, 엄마젖과 자매젖이라 불리는 로열젤리의 유사성, 벌집이라는 ‘사회적 자궁’, 포유동물의 체온이 약 36도 관련하여 유충의 체온을 약 35도 일정하게 유지하는 점, 포유동물의 인지능력에 견줄 만한 꿀벌의 집단 지성이 각각 포함되어 있다. 이중에서도 저자는 꿀벌 군락의 생리학적 필수 요소는 벌집이라고 말했다. 꿀벌 군락에 있어 벌집은 거주공간, 저장 공간, 그리고 육아 공간이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꿀벌 군락을 사회생리학으로 살펴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꿀은 피보다 진하다.’라고 말하면서 꿀벌 군락의 연결고리를 분석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진화의 가장 우선적인 전제는 자신의 종(種)을 존속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꿀벌의 짝짓기를 보면 다윈 스스로도『종의 기원』에서 ‘꿀벌의 일벌들은 자신의 이론을 적응하기 매우 어려운 존재’라고 토로할 정도였다. 여왕벌에서 태어난 생식능력이 없는 암벌 즉 일벌들은 모두가 같은 엄마가 낳은 자식들이다. 그리고 암벌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확산시키기 위해 스스로 자식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의 어머니가 가능하면 자매들을 세상에 많이 배출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다면 암벌의 생존전략은 무엇일까? 저자는 ‘혈연선택’이론으로 꿀벌의 생물학적 특성을 말하고 있다. 이는 동물들이 협동적이고 매우 이타적인 행동하는 이유를 알려주며 꿀벌들이 진화하면서 ‘외톨박이’에서 사회적 생물로 옮겨간 현상을 적절하게 설명해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윌리엄 해밀턴이 대중화시킨 ‘대립유전자’을 개체군에 많이 확산시키는 데 있어 친척끼리 서로 돕는 행동은 도움을 베푸는 자와 그의 대립유전자에도 유익이 된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책의 요지는 꿀벌의 진화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초개체라는 꿀벌 군락에 있다. 다른 동물들이 개체에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진화했다면 꿀벌은 집단 간에 협력 관계를 수립하였다. 이러한 능력에는 ‘복합적응계’라는 특성을 발휘하는데 “서로 병행적으로 끊임없이 행동하고 동료 행위자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많은 행위자들로 이루어진 역동적인 네트워크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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