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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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 인터넷 등은 아주 친숙한 단어가 되었고 멀게만 느껴지던, SF 소설과 영화로만 함께하던 미래의 세계는 조금씩 앞당겨져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2001년, 무려 20년 전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미래를 두려운 마음으로 기대하게 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일본에서는 이미 눈물을 흘리며 감정에 호소하는 로봇까지 나왔고, 우주선에서 함께 하던 동료가 우주선을 떠나게 되니 외로워서 스스로 전원을 끄고 자살하는 로봇도 나왔다.

그리고 이제는 영화와 소설도 스티븐 스필버그에서 더 나아가 <A.I>의 데이빗에게서 느껴지던 불완전하고 조금은 꺼림직한 불편함은 사라지고 이제는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테크노 사이언스 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에 보았던 매력적인 영화 <애프터 양>의 양도, 그리고 김영하의 <작별 인사>에서의 철이도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로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착각할 정도로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구체적으로 깊게 들어가진 못했지만 나에게는 오랫동안 품고 있는 질문이 있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결국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답이 나오고 나만의 기준과 원칙이 세워진다면 선택은 쉬워질 것이다. 인간다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작별인사>를 읽은 것이 타이밍이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다움의 근간을 흔드는 선택의 시대는 올 것이고 제대로 된 선택을 하고 싶은 소망이 간절하다면 오버일까.

˝그럼 김 박사는 자기 뇌를 업로드해서 인공지능과 같이 영생할 거야?˝ (본문에서)​

˝영생˝이라는 단어 앞에서 한참동안 책을 붙들고 있었다. 3D 프린트를 통해 인공장기를 만들고, 유전자 가위를 통해 유전자를 수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영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선택에까지 이르겠구나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오싹했다.​

몸은 없지만 네트워크를 자유롭게 다니며 영생하는 인공지능과 뇌를 업로드해서 몸은 죽고 없지만 생각은 살아있는 인간과 종국에는 무엇이 다를 것인가.​

책을 읽는 내내 작가 김영하 자신의 고민들이 계속 등장 인물들의 대화들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라고 느꼈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이고, 인공지능의 끝은 어디인가.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들. 책 속 인물인 선이를 끝까지 인간다움을 지키는 이로 둔 것은 작가 자신이 지향하는 정체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미래로의 시대가 많이 앞당겨졌다.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고, 미래의 그 무엇과 상관없이 어떠한 때에도 나답게,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나만의 정의는 내리고 살아야겠다.

김영하의 <작별 인사>는 클론, 복제인간과 관련한 SF소설, 케이트 윌헬름의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에 이어 두고두고 생각날 작품이다. 책을 마치고 나니 나의 작별 인사는 어떠해야 할까. 더욱 고민이 깊어진다.​

————-✏️ (이북인 관계로 페이지 생략)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자기가 누구인지 잘못 알고 있다가 그 착각이 깨지는 것, 그게 성장이라고 하던데?​

이미 인간은 기계와 결합하고 있어. 지금 웨어러블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여기 아무도 없잖아? 우리의 심장박동, 혈압, 혈당, 그 밖의 모든 수치가 기계에 기록되고 관리되고 있어. 우리가 기계와 다를 게 뭐야? 이미 우리는 사이보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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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5
에밀 졸라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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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프와 독서나눔 책으로 선정했던 <인간 짐승>. 에밀 졸라는 익히 알고 있는 작가지만 작품으로는 처음이었다. 친구가 읽다가 너무 좋아서 “미쳐버리겠다”고 표현했던 <인간 짐승>. 철도 배경 안에서 날 것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들과 잘못된 선택으로 짐승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의 이야기.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제대로 된 선택을 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이름만 아는 작가와 직접 읽고 그의 작품 세계를 경험한 작가는 얼마나 다른지 실감하며 이후로 에밀 졸라의 작품을 계속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자연스레 하게 되더라. 그리고 읽는내내 철도 배경 묘사와 정교한 서사구조에 감탄하며 읽었는데 마침 보게 된 David Plowden의 사진은 책의 한 장면 같아서 절묘한 타이밍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영화로도 나왔을 거 같은데 찾아봐도 없어서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친절한 분이 영화 정보 링크를 알려 주셨다.





아, <인간 짐승>이 아니라 <인간 야수>라는 제목으로 1938년에 프랑스 작품으로 올려져 있더라. 너무 행복하고 기뻐서 목이 마른 자에게 생수를 나눠주는 멋진 이웃을 만난 기분이었다. 아직 못 봤지만 조만간에 영화로도 접하며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인간 짐승>의 여운에 깊이 빠져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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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2-21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추천 합니다
오래된 흑백 영화지만
원작의 느낌을 충분히 살린 ㅜ.ㅜ

안나 2022-02-22 00:15   좋아요 1 | URL
와아! 이미 보셨군요. 역시 스캇님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원작의 느낌을 충분히 살렸다니… 두근두근!!
 

장혜경 옮김,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오늘의 밑줄_

식물이, 동물이, 아이가, 남편이, 아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 모르고 무엇이 상대에게 최선인지 정한 내 선입견과 상대를 통제하려는 욕망을 버릴 수 없다면 내 사랑은 파괴적이다. 내 사랑은 죽음의 키스인 것이다. (28쪽)

폭력과 달리 사랑은 인내를 전제로 한다. 내적 노력을, 무엇보다 용기를 전제로 한다.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실망을 참고 견딜 용기, 일이 잘못되어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겠다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 사람은 자신의 강인함만 믿으면 되기 때문에 그 힘의 왜곡된 형태인 폭력을 믿을 필요가 없다. (34쪽)

고요를 좋아하지 않으면 사랑은 없다. 사랑은 행동, 소유, 사용이 아니라 존재에 만족하는 능력이다. (41쪽)

아, 좋다. 밤이 하얗게 새도록 대화하고픈 사람을 만난 기분이다. 계속 얘기해 주세요. 쉬지 말고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대화 도중 잠깐 쉬는 순간엔 숨을 죽이고 그다음을 기다리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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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결혼, 죽음
에밀 졸라 지음, 이선주 옮김 / 정은문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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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했던 에밀 졸라의 <인간 짐승>을 읽고 작가를 더 깊이 알고 싶어 선택한 작품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인물들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가의 면모를 다시 한번 더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단편 ‘어떤 사랑‘은 책자로 출간되면서 그 유명한 ‘테레즈 라캥‘이라는 제목을 달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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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을 읽은 지가 언제였나 싶게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런 날, 외롭지 않은데 외로운 날. 그리운 사람은 없는데 그립고, 따뜻한 품이 아쉬운 그런 날. 


책 좋아하는 사람은 또 외로움과 아쉬움을 책으로 달래야지 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고른 책이 전경린의 <이중 연인>이다. 아... 읽고 나서 더 외로워졌다. 읽고 나서 더 사랑이 고파졌다. 외롭고 아쉬운 날은 연애 소설이 아니라 이성적인 감각을 마구 깨우는 인문과학 책을 읽었어야 했다. 정말 그랬어야 했다. (꼭 메모해두자.)


주인공 수완과 그녀에게 약간의 시차를 두고 찾아온 두 남자 이열과 황경오와의 사랑. 그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너무도 알겠고, 그들의 심연의 깊이를 헤엄치다 나는 더 외로워졌다. 심각한 부작용이 생겼다. 


오늘은 집에서 오랜만에 월드콘을 "할짝할짝 핥으며"(너무 상투적인데 이런 표현 한 번 써보고 싶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두고 오랜만에 찾아온 이 지독한 외로움을 즐겨야지. 그것만이 이 외로움의 터널을 지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완전히 전부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완전히 솔직하려 해도 그렇게 될 수 없다. 사람 자체의 감각과 인식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한계 안에서조차, 선해서든 악해서든, 사랑 때문이든 미움 때문이든, 사람은 저마다 마지막 카드를 숨긴다. 그것은 타인이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다. 하나의 주체가 차마 손댈 수 없는 또 다른 주체의 존재 이유가 있기에. (144/360)

사람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이 새삼 심오하게 느껴졌다. 이름은 일종의 트렁크니까. 사람들은 자기 이름 속에 경험과 기억과 꿈과 소망, 능력과 한계와 비참과 고통을 수납한다. 불행과 행복을 담고, 걸어 다니고, 밥을 먹고, 어둠 속에서 누워 잠을 자고 깨고, 그리고 마침내는 운명을 걸어 닫고 이름 속에 영면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자기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 사물들의 이름을 바꾸고 언어를 다르게 사용해야 한다. (20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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