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구의 증명 [할인] 은행나무 시리즈 N°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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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네.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하겠네.”


처음 접하는 작가의 책은 마치 처음 들어간 까페의 라떼 첫 한 모금처럼 긴장된다. 게다가 첫 장부터 죽은 남자 친구의 살점을 먹는 이야기라니. 지독한 사랑 이야기구나... 마침 무언가에 푹 빠져 읽을 만한 게 필요했던 참이어서 읽기를 멈추지 않았고, 끝까지 읽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운은 길고 묵직하고, 아주 진했다.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제대로 된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한 이들의 만남,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된 이들의 삶과 사랑. 사랑하는 이의 시체를 먹을 수밖에 없는 그녀의 일리 있는 명분. 살아도 죽은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 이들의 삶이 날 것 그대로 짓무르고, 피는 철철 흐르고 차마 터지지 못한 속울음까지 끄윽끄윽, 선명하게 귀에 들리는 듯해서 가슴이 답답하고 저릿했다. 눈을 감고 모른 채 지나치고 싶을 만큼 처절한 인생이었다.


살면서 그런 시절을 만난다. 울어버리면 그나마 붙들고 있던 정신 줄까지 놓게 될까 봐 차마 울지도 못하는 그런 시절. 하지만 구와 담이에겐 한때 지나가는 시절이 아니라 죽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삶이었다.


"몸뚱이…… 몸은 인격이 아니었다. 사람이라는 고기, 사람이라는 물건, 사람이라는 도구.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영혼 값은 달랐다. 돈 없는 자의 영혼을 깎는 것을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없으므로 깎이고 깎인 그것을 채우기 위해 돈에 매달리고, 매달리다보면 더욱 깎이고…… 뭔가 이상하지만, 그랬다." 


책을 덮고도 나는 그들의 지독한 사랑보다 그들의 삶의 환경에 더 마음이 머물렀다. 버려지고, 부모 빚을 물려받아 평생 빚을 갚으며 살 수밖에 없는 인생. "경찰도 공무원도 CCTV도 없는 산골로 들어가 까만 청설모처럼" 살고 싶은 사람들. 조금만 눈을 돌려도 그늘진 곳에 몸을 숨기고 희망조차 사치처럼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구의 증명>은 살아가면서 어디에 시선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해주었다. 햇볕과 그늘을 함께 바라보며 살 것인지, 햇볕 자리만 보며 그늘을 모른 채 살아갈 것인지의 선택은 내 몫이다. 어딘가에 있을 구와 담이와 같은 존재들에게 작은 햇볕만큼이라도 곁을 내어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늘 속으로 기꺼이 손을 뻗는 사람... 인생은 늘 햇볕에만 머물거나 늘 그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서로 빛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가슴에 새기듯 마지막 문장으로 적어둔다.


"그 마음이 제일 중요한 거야. 그 마음을 까먹으면 안 돼.

걱정하는 마음?

응. 그게 있어야 세상에 흉한 짓 안 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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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3-01-30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에게 버림 받았는데 빚까지 떠맡게 되었다니 ㅠ.ㅠ 구의 증명의 의미가 끊지 못하는 혈육의 고리 같네요...

안나 2023-01-30 23:52   좋아요 1 | URL
빚을 갚기 위해 빚을 지는 부모로부터 고스란히 그 빚을 물려받고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인생을 살아요. 근데 현실은 더한 걸 아니까 맘이 힘듭니다. ㅠㅠ
 
사랑하는 소년이 얼음 밑에 살아서 시간의흐름 시인선 1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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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낸다는 소식을 듣고 내내 기다렸다. 참 오랜만의 일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기다린 것이. 새로운 형식의 28개의 시. 뭉근한 슬픔 속으로, 소년이 사는 얼음 밑으로 계속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너무 슬픈데 아름답고, 아름다운데 저릿하다. 몇 번이고 계속 읽을 것이다. 정확한 감정의 정체와 시의 밑바닥에 숨은 실체와 대면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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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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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을 받고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새해 첫 책으로 유은실의 <순례 주택>을 읽었다. 사전 정보로는 희미하게나마 <순례 주택>의 순례는 건물주의 이름이며 그녀가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보만으로도 새해를 여는 책으로 안성맞춤이라는 감이 왔고, 결론적으로 내 예상이 적중했다는 것이다. 새해에는 새로운 각오도 필요하지만 다시 밭을 일구는 마음으로 착하고 좋은 마음의 씨앗이 될 롤모델도 필요한 법이니까.


누구나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다. 어른, 사전적 의미로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그런 기준으로 나를 들여다보면 자신있게 어른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키는 내면의 자람과 상관없이 쑥쑥 컸지만, 어른이라 자명할 수 있는 내면의 키는 실제 내 키와 같으려나.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53쪽) 그런 의미에서 순례 씨는 참으로 어른이다. 땀 흘리지 않고 번 돈은 내 돈이 아니라는 순례 씨는 때를 밀어 번 돈으로 산 순례 주택의 임대료도 받을 만큼만 받고 시세에 따라 올리는 법이 없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순례 주택의 사람들은 그런 순례 씨에게 고마워서 자기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더 애쓰는 사람들이 되었고, 자연스레 어른의 면모를 더해가게 된다. 인생에서 좋은 어른을 만난다는 것은 만남에 있어 큰 복이 아닐 수 없고, 주위에 그런 분이 있다면 더욱 감사할 일이다. 


“순례 씨가 좋아하는 유명한 말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가 떠올랐다. 나도 순례자가 되고 싶다. 순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내 인생에 관광객은 되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99-100쪽)


‘순하고 예의바르다’ 뜻의 순례에서 ‘순례자’의 순례로 개명을 한 순례 씨. 순례자의 순례라니. 정말 취향저격의 순례 씨가 아닐 수 없다. 내 삶의 모토는 나그네 길, 순례자의 삶인데 현재는 안타깝게도 마음만 앞서는 어설픈 불량 나그네다. 하지만 주인공인 중3 수림이의 고백을 통해 수림이는 좋은 어른, 참 순례자가 될 재목임을 알 수 있는데 다행히 순례 씨와 함께 한 덕분이다. 어릴 때부터 산후 우울증을 겪는 엄마로 인해 외할버지와 그의 연인인 순례 씨에게 맡겨진 수림이는 일찌감치 자신의 부모가 얼마나 철이 없고, 부끄러운 어른들인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가만히 그 부모들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고, 그들이 철없이 하는 말들이 곧 우리 내면의 목소리임을 깨닫게 된다. 그걸 깨닫는 순간, 수림이와 순례 씨 입장에서 부모들을 바라보던 시선이 내 안의 어두운 부분을 향하는 경험을 한다. 스스로 높은 체 하는 시선이 바닥을 향해 떨구어지는 경험…


순례 씨를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좋은 아파트, 좋은 직업, 대학, 부모의 유산…, 세상적인 기준에 맞춰진 시선을 새롭게 조정하고 회복시키는 시간을 순례 씨를 통해 가지게 하고 싶다. 언젠가 사랑하는 조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 살 때 가장 친했던 “재물”이라는 친구는 죽을 때 같이 가지 못하고, 그리 친하지 않았던 “선행”이라는 친구는 죽어서도 끝까지 같이 간다고.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순례 주택>을 읽으면서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나도 어른다운 어른, 순례자 다운 순례자로 살아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잘 책임지며 살고 싶어졌으므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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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7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7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헤아려 본 슬픔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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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A Grief Observed, “비탄에 잠기다.” 혹은 “(직접 겪은) 비탄에 대한 관찰”이 되겠다. 큰 슬픔을 직접 겪지 않고는 다른 이의 슬픔을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다. 그 아픔을 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이해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차원이 다른 슬픔이다. 그런 큰 슬픔을 지나온 자의 눈빛은 자주, 남몰래 깊어질 것이며 그자의 애도의 깊이는 분명 다를 것이다. 살면서 너도나도 한 번쯤은 겪어야 하는 깊은 강.

“우리는 그 진실성이나 거짓됨이 우리의 생사를 좌우하는 문제가 되기 전에는 그것을 얼마나 진정으로 믿는지 알 수 없다.” (43쪽)

“사랑은 소유하지 않고 갈망할 때에야 비로소 완벽해지고, 신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의 선물을 주는 것이며 고통은 귀 기울이지 않는 세상을 깨우는 확성기”라고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한 C.S.루이스를 기억한다. 하지만 그가 써내려간 <헤아려 본 슬픔>에는 그런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사랑하는 H(헬렌 조이 그래셤)가 암으로 사망하자, 하나님을 원망하며 사람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하는 악한 신으로 표현하기까지 하며 자신의 슬픔을 격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루이스 자신의 믿음을 제대로 직시하는 일생일대의 시험의 장, 그리고 지금까지 확신에 차서 강의하고, 집필한 내용의 그 모든 것이 불시에 수면 위로 올려져 그의 믿음을 하나님께 감사()당하는 상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믿음은 늘 그렇게 시험을 당하므로.


“오직 극심한 고통만이 진실을 이끌어 낼 것이다. 오직 그러한 고통 아래에서만 그는 스스로 진실을 발견할 것이다.” (62쪽)

평생 사랑이 없을 것처럼 살던 루이스에게도 거의 예순이 다 되어 진정한 사랑이 찾아왔으니 얼마나 달콤하고 행복했겠는가. 심지어 H가 암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결혼까지 했으니 그 사랑은 참으로 진실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감당할 수 없는 크기와 무게이기에 루이스는 H를 떠나보내고 흔들리는 신앙의 시기를 겪게 된다. 어떻게 “그 C.S.루이스가 그럴 수가 있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러한 루이스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 뿌리까지 믿음이 흔들리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정하는 시간을 겪지 않은 자의 신앙은 언젠가는 또 그러한 시험을 치뤄야 할 것이기에 솔직하게 자신의 슬픔 앞에 무너져, 하나님을 원망하는 그의 모습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 하지만 참으로 진실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내가 어떤 상태를 묘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슬픔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슬픔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그것은 지도가 아닌 역사서를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임의로 어느 지점에서 그 역사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영원히 멈출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87-88쪽)

루이스 답게 글을 쓰면서 슬픔을 관찰하며 파헤치려고 했지만 그는 슬픔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하나님과 H를 그 자체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아간다. 자신의 슬픔에만 빠져 있을 때는 오히려 하나님과 H와 멀어질 수밖에 없지만 차츰 슬픔에서 벗어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때에야 하나님과 H가 그 자체로 존재하며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처절하게 몸부림치지 않으면 알지 못할 깨달음이겠다. H에게 돌아오라고, 제발 돌아오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자신만을 위한 것인지 철저하게 인식하지 않고는 다다를 수 없는 깨달음이겠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이나 사랑의 자질을 알아보시려고 시험을 하시는 게 아니다. 그분은 이미 알고 계시니까…. 그분은 언제나 내 성채가 카드로 만든 집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내가 그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쳐서 무너뜨리는 것뿐이었다.” (78쪽)

C.S.루이스와 H의 사랑을 담은 영화 <섀도우랜드>를 보고, 이어서 <헤아려 본 슬픔>을 읽으니 그 슬픔과 감동이 두 배, 세 배가 되는 듯했다. 마치 내가 옆에서 생생하게 겪는 아픔같이 느껴졌달까. 책을 통해서 상실의 아픔을 이렇게 절절하게 느껴본 적이 있었나 싶게 깊이 맛보며 묵상할 수 있었다. 내가 겪지 않고는 감히 당신의 아픔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실의 아픔을 대면하여 관찰한 루이스 덕분이다. 먼 훗날, 내가 직접 겪는다면 “정말” 알게 되겠지. 루이스가 느낀 그 아픔의 깊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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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25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s루이스 작가 좋아합니다 안나님이 알려주신 이책 꼭 읽어볼께요 영화도😊
안나님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 🎄☃

안나 2022-12-25 00:42   좋아요 1 | URL
아, 좋아하신다니 기뻐요. 특히 <순전한 기독교>의 그 명징한 문장력은 읽을 때마다 설레는 것 같아요. ㅎㅎ 참고로 <섀도우랜드>는 넷플에서 봤어요. 시간되실 때 꼭 한 번 보시길요 ^^ 스캇 님도 부디,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내년에도 스캇 님의 매력적인 글, 자주 읽으러 들를게요. 🎄⭐️🙋‍♀️

2023-01-06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6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리커버 에디션)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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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과 아버지

들여다보면 아버지의 상처에서 기인한 연약함의 표출이다. 상처가 자기연민이 되고, 갈수록 자격지심과 자기방어로 이어져 가장 가까운 가족들을 힘들게 한다.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고, 솔직하게 상처를 내보여 위로 받는 방법을 모르는 가장은 결국 자신의 가정과 인생을 해친다. 그러한 자신 또한 얼마나 두려울까. 상처 입은 아이와 청년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해서 좋은 가장이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자신과의 싸움이며 얼마나 큰 인생의 승리인지… 상처 입은 인생이 그 상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우리 인생의 숙제가 아닐까 한다. 또한 상처 입은 아버지를, 또는 어머니를 어떻게 대하느냐도.


가정폭력과 아버지, 그리고 딸

상처는 대물림된다고 해야 하나.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모두 집을 떠나고 습지의 오두막에 일곱 살 난 카야만 홀로 남는다. 나이가 어려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습지의 생태가 제 삶의 근원인 것처럼 습지의 한 부분이 되어간다. 성경의 다윗이 생각난다. 막내였던 다윗은 형들이 하기 싫어하는 양치기를 도맡아 하며 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루 종일 양을 쳤다. 외로워서 수금을 타며 노래를 했고, 양들을 노리는 곰이나 맹수가 나타나면 매일 연마한 물맷돌로 양을 지켰다. 일상의 성실, 원했던 삶은 아니지만 그 삶에 정성을 다했던 다윗은 후에 사울 왕을 괴롭히는 악신을 수금 연주로 떠나게 했고, 그 유명한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쓰러뜨렸다. 그렇게, 홀로 남은 카야도 습지의 동물들과 새와 벗하며 습지의 모든 환경에 자신을 맡기면서 결국 누구도 쓸 수 없는 습지 생태 관련의 책을 계속해서 펴내게 된다. 상처 입은 사람은 있을 수 있으나 그 삶을 어떻게 대하느냐, 어떻게 이겨나가느냐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양을 치는 들판이 왕이 되는 훈련 장소였고, 홀로 남아 살아야 하는 습지가 자신을 생태 전문가로 만들어 주는 곳일 줄이야. 삶을 대하는 태도에 언제나 답이 있고 미래가 있음을 깨닫는다.


사랑, 선택의 어려움

두 남자가 등장한다. 마음 깊이 우러나는 사랑으로 카야를 대하는 인간적인 남자, 카야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습지를 떠나 자신의 세계로 들어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포기하고 만다. 문득,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생각나는데 워딩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그리고 한 남자, 사랑하는 이가 떠난 공허한 자리를 끝까지 좋은 남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며 살기에 카야는 외롭고 허전하고, 그 남자는 육체적으로 끌린다. 선택의 문제. 저 사람이 내 사람이 아닌 걸 알지만 나의 외로움을 저 사람으로 채울 것인가. 말 것인가. 카야는 선택했고, 선택은 늘 책임을 요구한다. 인생을 살면서 늘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사랑.

자신의 세계로 그녀가 올 수 없다면 자신이 그녀의 습지로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에게는 그를 대신하는 남자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대로 된 선택을 한다. 떠나지 않고 그녀 주위에서 그녀를 지지하고 격려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남자로서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킨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의 위대함이란. 상처입은 남자, 여자. 어쩌면 우리 모두는 상처 하나씩 안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 상처를 알아보고 모난 부분을 부드럽게 대해주고, 기다려주고, 안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하지만 누구나 그런 사람을 기대하고 소망하고 바란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 그런 기대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언제까지 기대만 해야 하나. 우리의 사랑을 어떤 상황에서도 품을 수 있는 그릇으로 용량을 키워야지. 그렇게 생각만 해도 용량이 좀 커지는 것 같더라. 한 사람에게만큼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면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친구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을 장래희망으로 삼아도 좋겠다 싶은 마음. 하지만 기대는 쪼끔 남겨 두고파. 난 언제나 "그럼에도, 사랑"을 믿는다.


마무리.

미처 못한 이야기가 내내 마음에 떠다녀서 이렇게 또 구구절절 적어 보았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다 읽고 개인적으로 작가에게 속았다 싶은 부분도 있었는데 그것도 이 책의 재미라면 재미겠다. 아, 이제는 마음에서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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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02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영상으로도 제작 된다는데 아 ㅜ.ㅜ 원작 만큼 가슴 아플것 같습니다

안나 2022-12-02 00:32   좋아요 1 | URL
ㅠㅠ 안그래도 찾아보니 영화는 11월 초에 개봉했더라구요. 원작의 여운이 조금 잦아들면 영화도 챙겨 보려구요. 습지와 오두막 내부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너무 궁금해요. 영화도 책만큼이나 좋을 거 같아서 기대 잔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