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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생의 어느 한 부분을 안다는 것으로
서로 얼굴 한번 안 본 사이끼리 위안과 격려를 주고받습니다.
그런 소설이 되기를 바랐고 그것이 교감되었다는 것이 기쁘고 고맙습니다.
- 임영태-
책 표지 한장을 넘겨 작가 이력 밑에 조그맣게 새겨진 짧은 임영태님의 소감을 읽으며 나는 혹시나 이 책을 읽으며 엉엉 울게되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그 사람은 분명, 읽는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상처들을 하나가득 안고 있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울면서 걸어가는 걸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 끝끝내 참아도 흘러내리는 눈물. 자신의 의지로 감당할 수 없는 눈물,눈물의 호소들... 하지만 오랜만에 정말 마음껏 울 수 있는 책이면 오히려 읽고 난 후 개운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어야겠다는 마음졸임을 내려놓았다. 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테고 아직도 내 마음에는 남의 아픔에 공감하며 울 수 있는 눈물의 주머니가 비어 있지 않음을 깨닫는 것일테니.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은 '나'라는 대필작가의 이야기다.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던 사랑많은 아내를 잃고 반지하 연립주택을 사무실 겸 주거공간으로 삼아 매일 동네를 산책하며 밖에서 끼니를 때우는 처량한 40대 사나이. 그의 담담한 일상을 담고 있어 그저 술술 읽혀 내려가지만 그가 느끼는 비애감과 서글픔과 그리움은 내 마음을 계속 먹먹함으로 물들여갔다.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주인공의 마음따라 생각따라 추억따라 꿈따라 그렇게 이끌려간다. 이런 경험은 공지영님의 <도가니>를 읽었을 때도 느꼈더랬다. 그 충격의 도가니 속으로 한없이 이끌려 갔던 그 느낌.
그는 매일같이 떠나간 아내와 아꼈던 애견 태인이를 그리워하며 동네를 산책하면서 자신의 마음과 과거의 추억 또한 산책한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그는 과거의 자신을 위로하고 용서하기에 이른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아이가 컨베이어 라인에 앉아 있다. 아이가 식당의 긴 줄 뒤에 서 있다. 아이가 리어카를 끌고 자재과로 간다. 잠시 서서 담장 밖 미루나무를 본다. 아이는 낯익으면서 멀었다. 그 아이는 내 안 어느 곳에서 자라지 않은 또 다른 나였다. 내가 손을 놓은 아이였다. 내 입에서 저절로 말이 흘러나왔다. 자식, 외로웠구나. 많이 막막했구나. 말이 입밖으로 나오는 순간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아이가 오래도록 그 말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때 너 그랬구나....." <p.281>
"나의 맹렬한 허기와 대결 의식이 슬펐다. 참 못나게 살았다. 그건 치열함이 아니라 오히려 게으른 자만이었다. 질긴 엄살이었다. 그러나, 용서하고 싶었다. 가장 힘찬 용서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요. 아무 걱정 하지 마요." <p.282>
읽는 내내 먹먹했다. 읽으면서 엉엉 울었음 싶었지만 그런 류의 눈물이 아니라 가슴에 맺혀서 좀처럼 터져 나오지 않는 깊은 설움섞인 눈물이었다.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 죽은 자는 다만 염원하고 소망한다. 간절히 무언가를 바라지만 그건 욕망이 아니라 다만 그리움이다.<p.125>
그의 눈에 죽은 자들이 보였던 것은 그 또한 간절히 무언가를 향한 그리움으로 살아갔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그는 과거 속에서만 살아가고 현재속에서는 그저 삶이라는 것을 버텨만 가는 죽은 자였는지도 모른다. "그거 아니라도 살아 있는 이유를 모르면 죽은 거랑 똑같죠."<p.131>
'나'도 주인공처럼 과거 속의 나를 만나 그때의 나를 위로해야 할 것이고 용서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나도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과거 속에 갇혀 살았던 적이 있다. 속으로는 세상과 단절하며 내 속에 갇혀 살면서 세상을 향해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면을 쓰고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었고 늘 눈물을 머금고 살았다.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푹 눌러쓰곤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마음껏 울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 내가 네 마음을 안다. 그 때 많이 힘들었지. 같이 울어주는 이 하나 없이 얼마나 힘들었니. 그 때의 나로 돌아가 가만히 안아주고 싶다. 너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 있다고 힘있게 얘기해 주고도 싶다.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새벽이 밝아오는지도 모르고 어느새 한 권을 다 읽게 되었다. 앉은 자리에서 한 권을 다 읽은 게 아주 오랜만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그 주인공의 마음이 내 안에서 넘실거린다. 책을 읽으며 이대로라면 끝끝내 울진 않겠구나 생각했었는데 마지막에 주인공이, 태인이가 환생하여 왔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유기견을 바라보며 "몽아" 라고 부를 때 나는 느닷없는 공격을 받은 것처럼 가슴에 맺혔던 눈물들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몽이"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주었던 나의 반려동물 애견의 이름이다. 우리 세 남매 모두 자신의 미니홈피에 비공개 폴더를 만들어두고 남몰래 꺼내어 보는 사진의 주인공 몽이... 주인공의 애견 태인이가 아니라 우리 몽이가 다시 살아나 주인공의 품에 안긴 것처럼 기쁘고 반가웠다. 그리고 그립고 또 그리웠다. 몽이를 묻고 돌아오는 날 아버지도 울고 엄마도 울고 나도 울고 우리 모두 다 울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몽이를 입밖에 낸 적도 없고 지금까지도 함께 몽이를 떠올리며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
주인공이 태인이를 떠올릴 때마다 몽이를 떠올렸더랬는데 그렇게 몽이 이름을 마주할지 어떻게 알았으랴... 정말 느닷없는 대목에서..느닷없는 눈물이었다. 주인공이 태인이에게 가졌던 그 애잔한 그리움만큼이나 나는 몽이가 그립고도 그립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은 주인공의 아내가 만든 문패에 적혀 있는 문구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을 직접 읽으며 그 의미를 찾아보셨음 한다. 그 먹먹한 마음 안으로 들어가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한 사람을 온전히 만나면 거기에 다른 이들도 보인다. 배역이 다를 뿐 모든 사람의 욕망과 상처는 본질적으로 같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무게의 삶을 산다.
<p. 2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