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도착하는 날은 출근도 즐겁다. 마치 책을 받기 위해 출근하는 것처럼.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의 도대체님의 글에서도 매일 택배를 회사로 오는 것으로 하면 택배 받기 위해서라도 퇴직을 안하게 될 거라는 내용이 있었던 듯 하다. 우리 동료들은 또 책이냐고, 할테지만 택배 품목이 사실 책 말고는 없다. 그래서인지 내 택배에는 동료들이 무엇이 들었나 궁금해 하지 않는다. 궁금해서 무슨 책이냐고 막 물어오면 좋겠구만. 그러면 나는 막 신이 나서 이야기하겠지. 그런데 그런 일이 묘하게 없다.

 

사실 김병종 화백의 <오늘 밤, 당신 안에 머물다> 책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으면서 참 좋아했는데 그분의 부인이 정미경 작가인 것은 몰랐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는다면서도 정미경 작가는 돌아가시고서야 알게 된 분이다. 인간내면 깊이 탐구하는 소설을 쓰셨다 하니 차근 차근 읽어봐야겠다 생각하고 구입한 것이 벌써 세 권을 소장하게 되었다. <새벽까지 희미하게>, <프랑스식 세탁소>, <당신의 아주 먼 섬>. 누군가에게 먼저 관심을 가지고 천천히 다가갈 때의 기분은 언제나 설레고 새롭다. 그렇게 다가가서 정말 좋아하게라도 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관계는 상대적이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다른 이에게는 원수일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고.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정미경 작가가 내게도 가슴 깊이 자리하는 작가로 함께 하면 좋겠다.

 

이렇게나 마음문을 활짝 열고 당신을 읽을 준비를 합니다.

당신의 깊이와 생각을 제게도 열어주세요.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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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급행열차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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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분명 낯설고 어렵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우리네 인생이 늘 낯설고 어려운 것처럼. 하지만 내가 헤아릴 수 없을만큼 깊다. 그리고 계속 생각이 나서 다시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지금 깨닫지 못한 그 무엇이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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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급행열차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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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가끔 행복하고 자주 외롭고 슬프다. 라고 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까.

 

제임스 설터의 첫 번째 단편집 <아메리칸 급행열차>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추운 겨울날, 갑자기 봄이 왔다는 소식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작가를 신뢰하고 작품이 기대된다는 뜻일테다.

 

그리하여, 책이 도착한 날부터 며칠 동안 몇 편씩 읽어가는데 예상과 달리 왠지 조금은 낯설고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작가의 깊은 통찰력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처럼, 숲을 바라보지 못하고 나무 한 그루에만 시선이 머무르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뭐랄까. 다 읽고 나서는 고급스런 독립영화들을 본 것 같은 만족감과 왠지 "삶의 우물 깊은 곳"을 들여다 본 것만 같은 가슴 깊이 느껴지는 벅참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조용히 차분해지면서 시간의 간격을 두고 한 편씩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깨닫지 못한 그 무엇이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 어느 때에는 정말 코끼리 전체를, 나무가 아닌 숲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이 모든 작품들을 마음깊이 이해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모든 인간은 가끔 행복하고 자주 외롭고 슬프다. 라고 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까. 나는 늘 기뻐하려고, 내 삶 안에서 만족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하지만 갑자기 닥친 문제들 앞에서 망연자실하기 일쑤고, 그 문제 앞에서 다시 균형을 잡으려고 힘겹게 일어서곤 한다. 그래서일까. 작품 <20>"삶은 우릴 때려눕히고 우린 다시 일어나는 거야. 그게 전부야."(p.51)라는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다. 왠지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서.

 

제임스 설터의 작품을 읽으면서 관계의 균열로 인해 무너지는 마음들을 보았고, 중년, 황혼으로 넘어가는 여성들의 비애를, 그리고 세상이 언제까지나 자기들 편이며, 자기들을 위해 움직일 거라고 느끼는 젊은이들과 배우들의 교만과 어리석음과 욕망을 들여다 보았고, 인생은 결코 내 생각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처절하게 깨닫는 시간들이 었었고, 아직 유명해지지 않은, 어쩌면 그때의 작가 자신을 투영한 것이 아닌가 싶은 무력한 작가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만의 세상이라고 여기고 책을 덮기엔 그 여운이 너무도 깊어서 다 읽고 나서도 며칠동안 책 안으로 다시 들어가곤 했다.

 

표면적으로는 평온하다. 일상의 평온함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 일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숨김으로써 더 강력해지는 감정들이 있다. 다만, 빙산의 봉우리가 난데없이 불길하게 나타났다가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공포가 드문드문 시야에 나타나곤 한다. (p.127) 영화

 

작품 곳곳에, 어쩌면 전체에서 묻어나는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숨겨진" 공포와 두려움과 슬픔이 내가 지나온 일상 속에서, 그리고 내가 앞으로 지나갈 삶 속에 동일하게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평온한 일상을 보며 왜 나에게만 고통을 주십니까. 부르짖는다. 하지만 한사람 한사람, 한 가정 한 가정, 들여다보면 모두가 평온한 일상 뒤에 자기 몫만큼 하나씩의 고통을. 자기 몫만큼의 외로움과 슬픔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지우고 싶은 시절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뇌리에서 아주 사라지는 일은 결코 없다고 말했다." (p. 187) 황혼

 

"그 시절은 끝났지만 그 시절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157) 잃어버린 아들들

 

사랑하는 사이가 헤어지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무심코 지나친 관계의 균열에서 이별은 이미 시작되었고, 나는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라고 생각하는 그때가 가장 많은 오물들을 싣고 달리는 때일수 있고, 영원히 늙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노화와 죽음 앞에서 "끝내 누워 죽지 않으려는 동물"처럼 계속 뒷걸음 치려고 하고 늘 관계 속에 살아가지만 결국은 혼자 걷는 인생길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직면하게 된다.

 

제임스 설터는 어떻게든 외면하고 싶은 우리네 삶의 민낯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어떤 소설들은 너무도 픽션이어서 나와는 다른 세계로 느끼며 안도하기도 했는데 제임스 설터의 이번 단편집은 계속 외면하고 싶은 삶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낱낱이 비추는 것 같아서 읽을수록 너무도 차분해지는 것이다. 촤악 가라앉는 기분이랄까.

 

제임스 설터의 마음 문턱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의 마음문을 열고 들어가, 마음 속 우물 깊은 곳까지 내려가 그의 생각들을 모두 길어 올리고 싶은 간절함이, 계속 나를 붙든다. 두서없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생각들을 적고 있는데 희한하게도, 생각을 정리하며 적을수록 이 책의 진가가 마음깊이 느껴지는 듯 하고, 내가 발견하지 못한 보석이 더 많이 숨겨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분명 낯설고 어렵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우리네 인생이 늘 낯설고 어려운 것처럼. 하지만 내가 헤아릴 수 없을만큼 깊다. 그리고 계속 생각이 나서 다시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아직 <어젯밤>을 읽지 않은 분들은 이 첫번째 단편집을 읽고 두번째 단편집인 <어젯밤>을 읽어도 좋겠다. 그러면 제임스 설터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면서 그의 진가를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장으로 끝내려고 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쩌면 인생의 굴곡진 꼭지점마다 터져 나오는 영혼의 목소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충격이었다. 충격 이상이었다. 하긴 정말 사리에 맞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없었다. 거의 없었다." (p.119) 이국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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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만 들리면 어김없이 전화를 하는 두 살 터울 남동생이 있다. 오늘도 변함없는 첫 마디. "오빠다. 뭐하니?" 처음에 오빠라고 할 때는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 싶어서 당황했었는데 이제는 나도 면역이 되었는지, 포기를 한건지 "응, 잘지내. 왠일이야." 한다.

서점인데 읽고 싶은 책이 있느냐고 묻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잠시 후에 메시지로 보내겠다고 하고선 끊고 잠깐 고민을 하는데 며칠 전에 어느 분의 리뷰를 보고 메모해 두었던 터키소설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가 문득 떠올랐다. 그 분의 리뷰에서 "울컥 무언가가 치밀더니 정말 뜨겁게 울어버렸다."라는 감상평이 있었고, 나에겐 그 문장만으로도 그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했다. 책을 읽으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려본 적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물론, 내가 그 분처럼 뜨거운 눈물을 흘리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가슴 뭉클,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한 책이라면 꼭 읽어 보고 싶다. 터키 문학을 접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남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니, "이러니 내가 누나한테 직접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어. 이런 책을 내가 어찌 알고 사겠어." 덧붙여, 설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고맙게 받으라는 동생님. "ㅎㅎ 네에네에." 그러고보니 곧 설이구나. 나에겐 긴 휴가다. 생각만해도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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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2-05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은 이야기네요.
그리고 저 책, 저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담아갈게요.
:)
 

 

오랜만에 늦잠을 잤고 아무 생각없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느끼며 오후까지 집에서 쉬다가 저녁 즈음이 되어 동네 북까페에 갔다. 이곳 또한 오랜만이라 어떤 책들이 있나 한참을 들여다보고서야 자리를 잡고 책을 펼칠 수 있었다.

 

내 목소리를 듣고 오랜만에 오신 손님이란 걸 아셨단다. 목소리를 기억하는 까페 주인이라... 원래 목소리로 사람들을 기억하느냐고 여쭈었더니 그건 또 아니라고 하시는데 말씀해 주신 이유에 감사하게도, 까페 주인이랑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아늑한 까페는 몇 편의 단편을 남겨 두었던 <아메리칸 급행열차>를 음미하며 읽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었고, 까페 주인과 나만 있음에도 꽉 차게 따뜻한 훈기가 흐르는 공간이었다.

 

두 시간 남짓 머물다가 책장에 꽂힌 책들을 다시 한 번 훑어보는데 반가운 김영하 작가의 오래된 소설집 <호출>이 눈에 띄었다. 책을 한참 들여다 보고 있으니 까페 주인이 "빌려 드릴테니 읽고 가져다 주세요." 하시더라. 무얼 믿고 빌려 주시나 싶어 책을 들고 머뭇거리고 있으니 "손님이 자주 오셨으면 해서 빌려 드리는 거예요." 라고 하신다. 순간 감동의 물결이. 왠지 이 곳이 나의 아지트가 될 것 같은 느낌이 확 밀려오더라. 예전에 왔을 때 책을 읽기에는 음악이 좀 시끄러운 듯 해서 부러 멀리있는 북까페에 갔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심도 되었다. "네에~ 자주 올게요."로 화답하며 기분좋게 까페를 나섰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사람과 공간의 만남, 그리고 책과의 만남은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찾아온다. 그래서 내일이, 한치 앞의 삶이 더욱 기대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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