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로 토요일 근무를 하는 나로서는 쉬는 토요일 전날 금요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토요일 하루를 온전하게 나만의 시간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이 늘 새롭게 설렌다. 봄의 길목을 지나 햇살도 따뜻하던데 내일은 호수 산책이라도 나가볼까. 오랜만에 북까페에 가서 반나절 책을 읽을까. 아니면 그동안 밀린 필사를 정성껏 해볼까. 행복한 고민들이 뭉게뭉게 구름꽃을 피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에게 매달 Why? 시리즈를 한 권씩 선물하고 있는데 다음 달엔 "곤충"편이 읽고 싶대서 알라딘에 들렀다. 거하게 세트를 사줄까 고민하다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읽지 않게 될까봐 한 권씩 선물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꿨는데 지금 생각해도 좋은 결정인 것 같다. 손편지와 함께 책을 선물하면 조카가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 모습을 매월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흐뭇하고도 흐뭇하다. 


책 구입을 당분간 참아야지 하지만 이렇게 책을 구입하려고 들어온 이상 Why 시리즈 한 권만 구입하고 돌아설 자신이 없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고 부엌에 간 김에 물 마시고, Why 시리즈 사는 김에 읽고 싶었던 책을 구입하는 것이 이치 아니겠는가. 호기롭게 Why 시리즈 곤충 편을 선택한 뒤에 뭔가 신나서 책을 둘러보는데 내가 생각해도 심상찮다. 자중을 시켜야할 듯. 워~ 워~ 


내일 도착하면 또 다정스레 책등을, 표지를 쓰담쓰담하겠지. 좋은 책을 알아보는 눈을 갖고 싶다. 남이 좋다고 하는 책 말고, 내가 선택해서 나 스스로 엄지척 할 수 있는 책. 내가 읽고 내가 당당하게 추천하고 선물할 수 있는 책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아, "사랑스럽고, 반사회적이며 멋지게 이기적인, 독서라는 습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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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3-2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에게 한달에 한권씩 선물하는 이모(고모?)시라니! 거기에 손편지까지! 너무 좋네요!!

안나 2018-03-24 02:51   좋아요 0 | URL
소문난 조카바라기 이모랍니다. ^^ 책을 읽다가도 이건 다음에 조카에게 꼭 읽혀야지. 생각할 정도예요. ㅎㅎ 이렇게 첫인사 나누게 되어 반갑습니다.
 
























월요병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다른 날보다 출근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택배가 도착하는 월요일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배송완료 문자와 함께 출근이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원래 토요일에 도착했어야 할 택배가 월요일에 도착하게 되면서 공교롭게도 토요일엔 슬픔이었던 택배가 월요일엔 기쁜 소식이 되었다. 김정선 님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에 감동받고 이어서 시킨 것이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이다. 김정선 님의 <소설의 첫 문장>과 <동사의 맛>을 주문하려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충분히 익힌 다음에 주문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미루었다. 나머지 두 권이 도착하면 빨리 읽고 싶어서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제대로 익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의 단편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귀은님의 <이토록 영화같은 당신>. 바로 읽지 못해 쌓일 것이 분명한 책들이 도착했지만 보기만 해도 만족스럽다. 책을 느리게, 자세하게 읽겠다는 마음을 먹고 책 구입도 자제하려는 이 때에 그 전에 시킨 책들이 도착하니 새롭게 만나는 책에 대한 기쁨이 얼마나 큰 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읽은 책도 다시 읽어야겠다는 마음까지 먹은 이상, 오늘 도착한 책들 중에 몇 권은 언제 읽을지 기약할 순 없지만 그래도 자주 책등을 쓰다듬으며 이뻐해야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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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 집에서, 제부를 거실로 내몰고 동생 부부의 침대에서, 고른 숨을 내쉬며 깊이 잠든 여동생 옆에서 난다의 읽어본다 시리즈 세 번째 책을 읽고 있다. 장석주, 박연준 부부의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 보오>. 실은 시리즈 다섯 권 중에 제일 마지막에 읽으려고(좋아하는 분들의 책을 젤 마지막 순서로 두면 그 책을 읽기까지 계속 설렐테니까) 했던 책인데 그 결심을 거스르고 말았다. 어제부터 읽고 있는데 온통 밑줄이다. 장석주 작가의 문장은 똑똑하고 사려깊은 문장이라면 박연준 시인의 문장은 언젠가 나도 써먹고 싶은 문장이랄까. 그녀의 에세이 <소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책의 문장들을 사랑한다. 부부가 함께 쓴 첫 책이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인데 그때와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칼로 물 베는 소소한 부부싸움이 이 책에도 등장한다. 동생이 건네준 북램프에 의지해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를 읽는데 너무 잘 읽혀서 이러다 밤 샐까봐 잠시 숨을 고르며 흐름을 애써 끊어본다. 오늘은 여기까지 읽고 내일 다시 이어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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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정비소에 차를 맡기고 북까페에 왔다. 오늘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허기가 졌는데 다른 종류는 없고 케잌만 있다고 하셔서 라떼만 시키고 돌아서는데, 맞은 편 빵집에서 빵을 사와서 먹으라고 하신다. ... 감사하지만 그럴 순 없죠. 하니 괜찮다고 얼른 가서 사오세요. 하신다.

 

얼떨결에 나가서 빵을 사서 들어오니 접시랑 빵칼이랑 포크를 챙겨 주신다. 같이 나눠 먹자며 좀 갖다 드리니 극구 사양하시고. 라떼를 가져다 주시면서 앞집 빵은 녹차랑 먹으면 더 맛있어요. 하신다. , 감동의 총알이 쉴 새 없다...

 

 

오늘도 까페엔 혼자다. 토요일 늦은 오후를 보내기에 이곳보다 좋은 곳이 있을까 싶게 아늑하고 마음까지 쉬는 듯 편안하다. 지난 주에 이곳에서 빌렸던 김영하 소설집 <호출>을 읽으면서, 분주했던 한 주의 소음을 하나씩 지우면서, 그렇게 토요일이 지나간다.

 

언제 그렇게 바빴냐는 듯이 느리고도 평온하게.

 

 

그때의 당신은 알지 못했다. 음과 음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깊고 넓은 것인지, 그 간극을 감당하는 자만이 인생의 여백에 시라도 한 수 적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인생 자체가 하나의 간극임을, 그때는 정녕 알지 못했다. (pp.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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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도착하는 날은 출근도 즐겁다. 마치 책을 받기 위해 출근하는 것처럼.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의 도대체님의 글에서도 매일 택배를 회사로 오는 것으로 하면 택배 받기 위해서라도 퇴직을 안하게 될 거라는 내용이 있었던 듯 하다. 우리 동료들은 또 책이냐고, 할테지만 택배 품목이 사실 책 말고는 없다. 그래서인지 내 택배에는 동료들이 무엇이 들었나 궁금해 하지 않는다. 궁금해서 무슨 책이냐고 막 물어오면 좋겠구만. 그러면 나는 막 신이 나서 이야기하겠지. 그런데 그런 일이 묘하게 없다.

 

사실 김병종 화백의 <오늘 밤, 당신 안에 머물다> 책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으면서 참 좋아했는데 그분의 부인이 정미경 작가인 것은 몰랐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는다면서도 정미경 작가는 돌아가시고서야 알게 된 분이다. 인간내면 깊이 탐구하는 소설을 쓰셨다 하니 차근 차근 읽어봐야겠다 생각하고 구입한 것이 벌써 세 권을 소장하게 되었다. <새벽까지 희미하게>, <프랑스식 세탁소>, <당신의 아주 먼 섬>. 누군가에게 먼저 관심을 가지고 천천히 다가갈 때의 기분은 언제나 설레고 새롭다. 그렇게 다가가서 정말 좋아하게라도 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관계는 상대적이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다른 이에게는 원수일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고.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정미경 작가가 내게도 가슴 깊이 자리하는 작가로 함께 하면 좋겠다.

 

이렇게나 마음문을 활짝 열고 당신을 읽을 준비를 합니다.

당신의 깊이와 생각을 제게도 열어주세요.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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