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조카들과 함께 식사하고 공원에서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한낮의 햇볕을 피해 까페에 왔다. 마침 토요일에만 휴대폰을 볼 수 있는 조카들은 각자 조용하게 휴대폰 속으로, 동생과 나는 각자 들고 온 책 속으로 흩어졌다.


은유 인터뷰집, <출판하는 마음>을 어제 받아들고는 읽던 책을 뒤로하고 먼저 읽는다. 친애하는 이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역시... 그렇지... 존경하는 마음이 더 얹어지는 순간들. 


이병률, <끌림>의 편집자였다는 사실은 너무도 놀라웠다. 지금까지 내가 사서 선물한 <끌림>은 아마도 백 권은 넘을 듯. 너무 좋아서 다른 이들에게 선물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그 책을 그녀가 만들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놀랍고 기뻤다. 나는 그녀를 오래 전부터 좋아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구나. 왠지 더 가깝게 느껴지는 마음.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 애정의 다함에 대해 나는 나를 자꾸만 의심해야 한다. 한순간의 안도가 한 권의 책을 망칠 수 있다. 어려운 이름, 책. 그렇다고 당신에게 내 싸다구를 후려쳐달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내 귀싸대기는 내가 후려 치는 걸로. (25쪽)

제목에 대해서는 웬만해서는 지지 않는 편이예요. 제목을 정하기까지 제가 최소한 세 번 이상은 집중해서 읽거든요. 마치 내 책을 보듯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엄청 집중하는데 그럴 때마다 튀어오르는 제목들의 진심을 제가 아는 탓에 작가와의 싸움에서도 웬만해서는 굽히지 않아요. 그런 만큼 책임감이 강하게 들죠.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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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5-06 07: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론 작가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글을 더 빛나게 해주는 것이 편집자라고 생각해요. 저도 끌림은 갖고 있는 책인데 그렇군요. 끄덕끄덕.

안나 2018-05-06 12:02   좋아요 0 | URL
끄덕끄덕 ^^ 저도 언젠가부터 책을 읽으면 편집자의 이름을 확인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오래 전의 그때는 <끌림>이 왜그렇게 좋던지요. 제게 좀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

cyrus 2018-05-08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글이 잘못 썼는지 스스로 의심해요. 내가 후려치는 귀싸대기. 정말 적절한 표현이네요. 북플에는 내가 잘 되라고 귀싸대기(비판) 날리는 사람 만나기가 어려워요.

안나 2018-05-08 15:44   좋아요 0 | URL
비판의 시간을 가져서 발언의 기회를 준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북플이나 서재에서는 다른 이의 글에 비판을 가하는 것이 쉽지 않죠. 비판을 하기에 비판을 하는 본인의 글이 자신있는 것도 아닐 테구요. 그래서, 결론은 ˝내가 후려치는 귀싸대기˝의 실력을 잘 기르는 것으로. ^^
 

구글 크롬에는 작년, 재작년의 오늘 일자 사진을 모아서 보여주는 기능이 있다. 가끔씩 몇 해 전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추억에 젖기도 하는데, 어제는 어쩐지 울적하더라. 15년도 4월의 사진을 들여다 보는데 그때는 미세먼지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구나. 싶은 것이 지금은 왜 이렇게 되었나... 봄이라는데, 봄이 왔다는데 예전처럼 사진을 찍을 엄두를 못내고 있다. 미세먼지주의보 발령으로 외출을 삼가라는 메시지가 매일같이 오고 있으니 말이다. 언제쯤이면 파란하늘을 마음껏 올려다보며 공기를 한껏 마실 수 있을까.



  

회의가 많은 바쁜 날들을 보내다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 책들을 둘러봤다. 맘에 드는 책들은 언제나처럼 보관함에 쏘옥. 그렇게 채워가는 재미라도 잠시 느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이북을 보다가 할인 행사를 하고 있어서 그동안 눈여겨 봐뒀던 책 몇 권을 구입했다. 개인적으로는 종이책을 더 선호하고 좋아하지만 가끔식 출장 갈 때나, 외출해서 시간이 남을 때는 이북만한 게 없더라. 유용하게 쓸 쿠폰도 있고, 적립금도 있고 해서 저렴하게 잘 구입했다. 




























<펭귄클래식 베스트 30>과 <명상록>은 다시 읽어도 좋을 책들이니 이북으로도 소장하고 싶었다. 사이토 다카시의 <독서력>은 종이책으로 구입하려다 한동안 절판이어서 구입을 못하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구입하게 되었고, <늙지 않는 비밀>과 <혼자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는 관심을 가지고 있던 책이다. 마음에 들어도 결국 못 만나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때에 소장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사람욕심이 많았던 내가, 사람은 욕심낼 대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후로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책만큼은 욕심을 내어 본다. 다만 분별이 요구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이 어디 책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싶지만 좋은 책을 많이 만나고 싶고 좋은 책을 알아보는 눈을 갖고 싶다. 그것 또한 책을 많이 읽어야 가능한 것이겠지. 


자주 행복하지만 가끔 푸석거리는 삶 속에서 존재만으로도 웃음짓게 하는 당신과, 책이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도 피곤한 하루였지만 이렇게 웃을 수 있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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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싶어서 틈틈이 알아봤는데 시간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 군데 눈에 띄는 곳이 있어서 가입할까 하다가 도서 목록을 살펴보니 모두 자기 계발서였다. 아쉬운 마음에 직장 사람들과 해볼까, 지인들과 해볼까 하고 둘러봐도 마땅한 사람들이 없었다. 그러다 생각난 사람이 있어 전화를 했더니 너무너무 좋아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교회에서 내가 맡고 있는 반의 고2 여학생. 나에게 늘 그 책 읽어보셨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 샘 생각은 어때요? 라고 물어오던 아이였다. 책을 읽고 나누는 것에 나이가 무슨 상관일까 싶은 마음에 조심스레 물었더니 반응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아서 기뻤다. 우선 우리 둘을 주축으로 큰 툴을 정하고, 몇 몇은 강제적(?)으로 참여시키기로 했다. 


책은 우선 문학을 읽는 것으로 정했고, 기간과 형식은 이번 주일에 만나서 이야기 하기로 했는데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거 같고, 나도 함께 읽고 아이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잘 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참여하고 싶은 어른이 있을 수도 있고, 우리 아이의 학교 친구가 관심을 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우리 둘이어도 좋고. 

우리 안의 깊은 생각까지 나눌 수 있는 모임이 되기를 바라지만, 우선은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가 보자. 이로써 독서모임 고민, 끄읕.




휴가를 내어 강원도에 간 B가 사진을 보내왔다. 속초에 62년 된 서점이 있다고 해서 들렀다고. 언젠가 속초에 가면 한번은 들러야지 했던 곳인데 사진으로 만나니 반가웠다. 말로만 듣던 동아서점을 이렇게 본다며 좋아했더니, 함께 못와서 아쉽단다. 

그렇게 말해주는 것 만으로도 함께 간 것 같은 기분인 것을 그는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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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07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 활동을 시작하면 주변 지인들에게 독서모임을 홍보하는 영업을 해야죠. 친한 사람과 독서모임 활동에 같이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전 아직 그런 경험이 없어요. ^^

안나 2018-04-07 17:55   좋아요 0 | URL
네, 우선 틀을 좀 잡고 나서 천천히 알리려구요. 자연스레 소문이 날 것도 같구요. ^^ 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멋진(?) 독서모임에 가입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네요. 다음에 기회가 있길 바라면서 우선은 가까운 사람과 당장의 목마름을 해갈해 보렵니다. ^^
 

목공예 공방을 하는 친구가 확장이전을 해서 들렀더니 오면 주려고 만들어 놨다며 책골무를 주더라. 작년에 구입하려고 아무리 알아봐도 없어서 친구에게 부탁을 했었는데, 그것마저도 어찌어찌해서 선물했다고 하니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오늘 세 개나 주는 것이다. 이제는 선물하지 말고 꼭 가지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친구에게 감동을 전하러 갔다가 내가 더 큰 감동을 받았다. 덕분에 하루종일 싱글벙글~*


오랜 동료였다가 친구가 된 사람. 제발 자주 좀 보자며 꽉 안아 주던 그녀는 내가 힘들 때 늘 옆에서 힘이 되어 주던 사람이었다. 천천히 깊어져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된 사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새삼 감사하다. 앞으로 더욱 번창하고 잘되길 내가 두손 모아 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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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04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책골무가 이렇게 생겼군요. 이번에 처음으로 봅니다. ^^

안나 2018-04-04 21:39   좋아요 0 | URL
국내에서는 따로 판매하는 곳이 없더라구요. 저도 처음에 받아들고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요. 다음에 서재 친구분들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래 봅니다. ^^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한정록>에서 독서하기 좋은 때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독서에는 독서하기 좋은 때가 있다. 그러므로 위나라 동우(童遇)의 ‘삼여(三餘)의 설’이 가장 일리가 있다. 그는 말하기를 “밤은 낮의 여분이요, 비 오는 날은 보통날의 여분이요, 겨울이란 한 해의 여분이다. 이 여분의 시간에는 사람의 일이 다소 뜸하여 한마음으로 집중하여 공부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맑은 날에 고요히 앉아 등불을 켜고 차를 달이면, 온 세상은 죽은 듯 고요하고 간간이 종소리가 들려온다. 이러한 아름다운 정경 속에서 책을 대하여 피로를 잊고, 이부자리를 걷어서 얹어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이것이 첫째 즐거움이다. 비바람이 길을 막으면 문을 잠그고 방을 깨끗이 청소한다. 사람의 출입이 끊어지고 서책은 앞에 가득히 쌓였다. 흥에 따라 아무 책이나 뽑아 든다.시냇물 소리는 졸졸졸 들려오고 처마 밑 고드름에 벼루를 씻는다. 이처럼 그윽한 고요가 둘째 즐거움이다. 또 낙엽이 진 나무숲에 세모(歲暮)는 저물고, 싸락눈이 내리거나 눈이 깊게 쌓인다. 마른 나뭇가지를 바람이 흔들며 지나가면 겨울새는 들녘에서 우짖는다. 방 안에서 난로를 끼고 앉으면 차 향기에 술이 익는다. 그때 시사(詩詞)를 모아 엮으면 좋은 친구를 대하는 것 같다. 이러한 정경이 셋째 즐거움이다. - 허균, <숨어사는 즐거움>에서

조경국, <필사의 기초>, 48-49쪽



주일 예배를 마치고 햇살이 좋아서 드라이브도 할겸 교외로 나왔다. 계곡물은 봄을 만나 신이 났고 앙상한 나무에게선 새순의 움틈이 느껴진다. 몸이 안좋아 계속 고집하던 코트를 벗고 봄자켓을 입고 있으니 내 심장에도 꿈틀꿈틀 싹이 나려는 것만 같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오글오글 감성이 봄을 맞으니 빼꼼 얼굴을 내민다. 반갑다.

데이비드 미킥스의 <느리게 읽기>를 읽으면서 작년에 중단했던 필사를 다시 시작했는데 마침 눈에 띈 조경국님의 <필사의 기초>가 있어 가볍게 책장을 펼쳤다. 유유 출판사의 책은 정성스레 쓴 내용들이 참 다정하다. 미소를 지으며 조곤조곤 얘기해주는 것만 같다. 친절한 정선씨에 이어 친절한 경국씨 되시겠다. 정성과 진심을 담은 것이 문장에서 그대로 전해져 오니 내 눈도 반달눈이 되고 만다.

필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B에게도 조심스레 권했더니 내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었는지 흔쾌히 좋다고 한다. 어쩌면 글쓰기에 고민하고 있던 틈을 내가 잘 파고든 것인지도. B는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과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기쁨도 큰데 필사라니 괜히 혼자 감동이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다가 사진을 보냈더니 그도 사진을 보내왔다. 같은 시간, 다른 장소, 같은 마음. 한참 우주를 파고들다가 공부한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소설을 쓰겠다는 포부를 밝힌 그는 오늘도 끙끙대며 열심히 뼈대를 세우고 있다.




어느새 뉘엿뉘엿 해는 기울고 까페도 조용하다. 혼자만의 시간이 참 소중하다. 나를 조용히 자신들의 세계로 받아들이는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참 소중하다. 멀리서 내 저녁의 안부를 때맞춰 물어주는 당신이 참 소중하다. 오늘 하루가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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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3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균 선생은 확실히 옛날 사람이군요. ‘여자’가 독서에 집중하는 데 방해하는 대상으로 생각하신 것 같아요. 허균이 살았던 시대의 유럽 남자들은 ‘책 읽는 여자’를 부담스러워 했고, 경계했어요. 유럽 남자들은 여자가 책을 가까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안나 2018-03-30 17:57   좋아요 0 | URL
과연 유럽 남자들만 그랬을까 싶지만, 허균 선생은 여자와 함께 있는 것보다, 오롯이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좋아한 것 같아요. 우리도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