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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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빛이 벌새의 깃털에서 극도로 미세한 분광기를 통과해 수천수만 조각으로 부서져 어떻게 황금빛 도는 붉은 목덜미의 윤기를 만들어내는지, 색채만큼이나 깜짝 놀랄 만한 언어로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46. “세상의 왕” 중에서)

많고 많은 문장 중에 이 문장으로 시작한 이유는 책을 읽는 내내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작가 델리아 오언스와 작품을 우리 글로 숨막히도록 멋지게 옮긴 김선형 번역가에게 반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카야가 그녀의 편집자를 만나고 싶었던 그 마음이 작가와 번역가를 향한 꼭 내 마음 같아서 이 문장을 읽을 때 마음에 품을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야생을 연구한 생태학자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습지 소녀 카야가 주인공이지만 숨은 주인공은 습지다. 습지의 생태에 대해 이토록 아름답고도 문학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작품이 또 있을까. 그녀의 문장에서 느껴지는 깊이와 단단함과 아름다움에 자주 숨이 막혔고, 자주 울컥했다. 외로움과 좋은 사람, 그리고 아름다운 인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의 문장이었다.

버림받은 삶, 외로움, 고독, 사랑, 공허, 잘못된 선택, 편견, 혐오 등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는 인생을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많은 비극과 슬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습지 소녀 카야를 지켜보면서 우리네 인생도 카야 처럼 습지 또는 늪에 홀로 갇혀, 타인의 시선과 편견에 얽매여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작가는 인생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삶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는 것은 스스로 삶을 개척해가는 의지와 함께, 결국 사람이고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올해는 소설을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오디오 북으로만 접하고 다른 분야의 책을 주로 읽었는데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정말 괜찮은 소설을 읽고 싶다며 신중하게 선택한 작품이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인생에서 내 마음에 꼭 드는 무언가를 만나면 느낄 수 있는 벅참과 감동을 며칠 동안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고, 작가도 물론이지만 김선형 번역가의 작품은 언제 만나도 반가울 것 같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책을 사랑한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로맨스, 미스터리, 살인사건, 소녀의 성장 이야기가 모두 버무려져 있다. 나는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리즈 위더스푼)

책을 읽고 검색을 해보니 셰릴 스트레이드의 자서전 <와일드>를 읽고 영화 제작을 했던 리즈 위더스푼이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고 영화 제작을 했다고 한다. 리즈 위더스푼, 그녀가 바라보는 곳에 내 마음도 있겠구나… 믿고 신뢰하며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참 반가운 일이다. 영화는 올 11월 초에 개봉했다고 하니 찾아봐야겠다. 영드 <노매드랜드>의 데이지 에드가 존스가 분한 카야, 정말 배역도 찰떡인 것이 책만큼이나 아직 보지 못했지만 영화도 마음 꽉 차게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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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묻다 - 과학이 놓치고 있는 생명에 대한 15가지 질문
정우현 지음 / 이른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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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그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컨디션과 마음가짐이 준비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펼칠 수 있는 책이 있다. 내게는 정우현의 <생명을 묻다>가 그랬다. “생명”이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함과 “묻다”가 주는 호기심이 내게 좋은 컨디션과 마음가짐을 빠른 시간 내 갖추도록 독려하는 듯했다. 그리고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부딪칠 수 있는 것까지도 염두하고 마음을 준비해야 하니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했음에도 몇 개월이 지나고서야 펼칠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결론부터 얘기해볼까. 정말 가독성이 좋았고, 과학에 깊이가 얕은 나조차도 저자의 치밀한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는 걸 발견하곤 했다. 과학에 신학과 철학, 문학과 신화, 예술을 아우르며 질문에 대한 답 또는 이야기를 펼쳐갈 때, 이것이야말로 융합 사고력이구나 감탄할 정도였다. 하나씩 질문을 던지며 그들이 제 역할을 하도록 있어야 할 자리에, 응답해야 할 자리에 적절하게 배치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엇보다, “과학은 생명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로 문을 열면서 “생명은 우연인가”라는 질문으로 첫 발을 뗀 저자가 마지막 질문에 이를 때까지 아주 세심하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생명의 기원에서부터 생명의 역사, 그리고 생명을 바라보는 이론이 과거와 현재, 어떻게 실패하고 발전을 거듭해왔는지 이야기하는 것에 결코 균형을 잃지 않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질문 또한 아주 전략적이어서 이미 답을 내리고 던지는 질문과 도전하는 질문, 그리고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며 고민케 하는 질문으로 지금까지 좁은 식견에 머무르고 있던 내 생각의 지경을 넓혀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와 함께 동행하는 독서이기도 하고, 그의 질문 하나 하나에 반응하며 함께 생각하는 독서이기도 하다.

생명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다윈,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 이론과 DNA와 유전자, 생명을 환원주의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의 한계, 생명을 기계적으로 바라보는 현대과학의 관점, 복제, 노화, 죽음까지 읽을수록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아주 깊이 있게 펼쳐지는데 정통 분자생물학자인 저자는 과학자 입장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생명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함을 인정하며 생명의 본질을 깊이 고민하는 겸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열 다섯 가지의 커다란 질문 안에서 “생명”이라는 큰 줄기를 관통하며 이렇게 폭넓고 다양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학자가 지금까지 있었을까 싶은 것이 과학에 깊이가 없는 나로서는 굉장히 즐겁고 신선한 독서 경험이었고, 어디를 펼쳐도 친숙한 과학자와 철학가, 그리고 문학에서 말하는 생명에 관한 저마다의 이야기가 친절하게 펼쳐지니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과학책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다음 책이 기다려지는 과학자를 만났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참 반갑고 기쁘다.

“생명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는 것은 단지 생물학이라는 과학의 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하나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189쪽)

“우리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밝혀낸 생명의 원리가 모든 생명에게 적용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생명이 가진 창발성이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녀석이라서, 2 곱하기 2는 항상 4가 아니라, 5나 6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번번이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법칙이라는 것에 얽매이기에는 생명은 너무나 경이롭다.”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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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한 국어학원
변진한 지음 / 깨소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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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트친(트위터 친구)이 글을 쓰고, 일인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내셨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원장이라는 이름으로 국어학원을 운영하셨던 진한 님의 이야기가 참 진솔한 목소리로 펼쳐지는데 오래 지켜본 덕분인지 그분의 성정과 유머, 그리고 가족과 학생들을 향한 사랑이 문장에 얼마나 깊이 녹아 있는지 알아 볼 수 있었다. 


진한 님의 호흡을 따라 읽어가는데 숨이 가쁘지도, 느리지도 않고 얼마나 편안한 호흡으로 읽히는지 역시 그분 답구나.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트위터에서는 알 수 없었던 속사정들도 조금 더 가까이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여름한"(열매가 많은)이라는 학원 이름처럼 지난 학원 생활 속에서 얼마나 많은 열매를 거두었을까, 왠지 그 열매가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학원을 폐업하게 되었다고 졸업생에서부터 학원을 거쳐간 많은 아이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긴 문자를 보내는 그 진실함에서 진한 님은 정말 아이들에게 든든한 나무였겠구나. 믿고 배울 수 있는 선생님이었겠구나. 아이들이 가졌을 그 감사한 마음이 내게도 전해져 오는 듯해서 뭉클했다.


진한 님은 사진,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서 사진 전시회도 하시고 "망고아빠" 라는 이름으로 음반 [숨어있는 것들]도 내셨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11월>을 좋아한다. 매달 들어오는 저작권료에 "저도 한 몫 하고 있어요~" 라고 여기에서 꼭 말씀드려야겠다.(하하) 피아노곡인데 참 좋다. 지금 생각해보니 진한 님의 글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


"몇 달 되지 않은 일인데 벌써 전생처럼 아득하다. 별것 아니라면 아닌 작은 동네 학원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사이의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만 있다면 오래 기억하고 싶어 적어 둔다. 그리고 그 기억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걸어보고 싶다.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길은 또 다른 시작에 닿아 있을 것이다." (117쪽)


아무쪼록 어깨와 허리에서부터 몸과 마음이 온전히 회복되시기를, 진한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힘껏 새로운 길을 꿈꾸시기를 바라고 나 또한 계속, 힘껏 응원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한 님께 정호승 시인의 <봄길>의 첫 부분을 읊어드리고 싶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있다 /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다음이 기대됩니다. 아주 많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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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참 괜찮은 태도 - 15년 동안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배운 삶의 의미
박지현 지음 / 메이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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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저는 ‘다큐멘터리 3일’ 덕분에 카메라를 들고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수많은 공간을 취재하게 되었습니다. 교도소와 고물상, 노량진 고시원, 소록도, 조선소, 해병대, 시골 분교의 입학식, 알래스카의 한인타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실, 청와대, 인천 공항 관제탑, 올림픽 개·폐막식 현장 등 접근이 어려운 곳에서부터 험지까지 취재했고, 덕분에 누군가의 인생에 큰 의미가 되는 순간들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바쁘고 힘겨웠던 8,9월을 보내고 사랑하는 시월이 왔을 때, 이제는 평안 가운데 일상을 유지할 수 있으려나 했는데 더 큰 일들이 연속으로 찾아와 매일같이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때 마침맞게 만난 책이 박지현의 <참 괜찮은 태도>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선물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음이 시끄럽고 고민이 많으니 책은 곁을 내어주지 않는 친구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참 괜찮은 태도>에서 비로소 마음이 쉴 수 있었다. 브레이크 타임이면 책 속으로 숨어 들어가 마음을 쉬이고, 그녀가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의 삶의 태도 속에서 다시금 힘을 얻고, 용기를 내어 보기도 했다. 그때 내 마음을 다잡아준 몇 문장을 소개한다면,

"나는 묵묵하게 버티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지, 더 나아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멋지다면 쉽지 않고, 쉽다면 멋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며 가끔은 길을 잃고 주저앉아 고통스러운 순간을 겪으면서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별것 아닌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방식의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죽음이 어떤 의미로 느껴져요?" "이 세상 일을 다한 거요. 자기가 할 일을 다한 거요."(아이들에게 배운 죽음의 의미)

“나는 그때 깨달았다. 잡고 올라가던 사다리가 무너지면 다른 사다리를 찾으면 된다는 것을.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잊지 않고 묵묵히 다리의 힘을 기르면 사다리는 나의 의지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올라가던 사다리가 무너지면 다른 사다리를 찾으면 된다)

일련의 큰 일들, 지금까지 한 직장에 17년 가까이 있으면서 처음 겪어보는 일들을 통해서 내가 제대로 훈련을 받는구나 싶었고, 어떻게든 누구 하나 마음 다침 없이, 잘 매듭 짓고 싶어서 고군분투했었던 시간이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오랫동안 마음을 주고 신뢰했던 사람에게 마음을 다쳤지만 그건 전적으로 내 몫이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업무적으로 잘 이어갈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해어진 옷도 어떻게 바느질 하느냐에 따라 예술이 되고 더 소중한 옷이 된다는 것을 떠올리며 깊이 고민하고 민감하게 접근했다. 감사하게도, 내가 생각한 그 이상의 좋은 그림으로 마무리되어서 오늘도 그 동료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보다 기쁘고 내겐 큰 열매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잊지 않고 묵묵히 다리의 힘을 기르면 사다리는 나의 의지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참 멋진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몇 달 동안 이어진 힘든 시간들을 통해 "참 괜찮은 태도"를 갖추는 좋은 시간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내게 꼭 맞게 찾아와 힘이 되어주고 따뜻하게 곁을 내어준 <참 괜찮은 태도>에 고맙고, 무엇보다 박지현 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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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프랑켄슈타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현대지성 클래식 37
메리 셸리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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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아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펼쳤는데 정작 들여다보니 전혀 모르는 이야기일 때의 당황스러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그랬다. 지금까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 이름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만 봐도 내가 얼마나 <프랑켄슈타인>에 문외한인지 알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면서 알게 된 작가 메리 셸리는 작품의 주인공들과 함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이었는데, 19세 어린 나이에 여성의 신분으로 1818년에 이 책을 썼다는 것, 아나키스트 아버지와 페미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의 가정환경과 결혼생활 등이 책만큼이나 깊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을 옮긴이의 해설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을 정신분석학적인 관점,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페미니즘, 산업혁명의 여파로 발생한 노동자들의 잔인한 폭력성을 대입하여 바라보는 관점,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과학자를 비판하는 관점 등 사회 여러 문제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부분 또한 인상적이었는데 읽고 보니 정말 하나하나 그럴 듯해서 여러 해석을 끌어내는 작가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떠한 시선으로 보았는가,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인데.


과학자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의 학문적 자아도취로 인한 광기어린 실험을 통해 탄생한 인조인간. 눈을 뜨는 순간부터 창조자에게 버림받고, 뒤이어 세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부정당하고 배척당하는 존재로 전락할 때 인조인간은 사회의 악, 괴물이 되고 만다. 피조물을 책임지지 않는 창조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창조자 본인과 그가 사랑하는 자들에게까지 미치고 결국 파국으로 끝을 맺는다.


"나는 이 소설이 품고 있는 정서나 등장인물에 깃든 도덕적 경향이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다."


작가 메리 셸리가 서문에서 밝힌 문장에 한참 머물기도 했는데, 단지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다는 이유로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무조건 배척해도 되는 것인가. 그리고 부정당하고 배척당한다는 이유로 악을 끼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밖에는 정말, 다른 선택지는 없었나... 읽는내내 떠나지 않는 질문이었고 한 편으로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관점으로 생각이 깊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존재를 부정당하는 자들의 아픔을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을 통해 바라보게 되었는데 자신도 어찌할 수 없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겹겹이 쌓이는 원망과 고통과 울분은 견고한 진이 되어 결국 그가 바라보는 세상도 어둡지만 가장 어두운 곳은 자신의 마음이며 피해자는 본인이겠구나 생각하니 저릿하고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화자는 이 책의 시작을 여는 월튼 선장과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피조물 인조인간, 각자의 입장에서 전하는 이야기 속에 그들의 감정선이 무척이나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인간본성의 근본을 드러내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고민이 깊어진다. 그들 입장에서 과연 올바른 반응과 선택은 무엇인가.


“<프랑켄슈타인>은 인공생명체의 창조와 그에 따른 윤리적 문제를 최초로 다루었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SF라는 장르가 단순히 과학기술의 발전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에 수반되는 도덕적 딜레마를 다룰 만큼 깊이 있게 발전하도록 견인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1818년, 메리 셸리에 의해 탄생한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피조물 인조인간을 지금의 과학자와 AI로 대체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을 보면서 <프랑켄슈타인>은 앞으로도 꾸준하게 읽히며 새로운 기술에 의해 탄생되어질 "인공생명체에 대한 윤리와 책임이라는 철학적 담론"을 계속 끄집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고전 읽기의 필요성을 진하게 느끼는 시간이었고,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며 해석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해서 독서 토론이나 문학에 대한 해석을 공부하는 이들이 크게 반길 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추천 목록에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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