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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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소설에 직접 체험한 것만 쓴다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으로는 첫 만남이었고, 첫 문장부터 강렬했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글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고 있는 내밀한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것에 집중한 글이었다. 그래서 부끄러움이 없고, 숨기는 것이 없고, 둘러 말하는 것 없이 직설적이고,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솔직하다.


아니 에르노의, 소설보다는 그녀의 글쓰기에 관한 방식을 들여다본 기분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솔직하게 쓰면서 그 글 안에서 다시금 자신과 대면하고 그런 자신을 보듬고 사랑하는 방법이 글쓰기로 정착이 된 듯 느껴졌다.


“그 사람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 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65-66쪽)


연하의 유부남을 사랑하는 일을 통해 그녀는 얼마만큼 자신을 솔직하게 내보일 수 있는지 어쩌면 그녀도 미처 몰랐던 자신의 글쓰기를 시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열정>을 출간하고 십 년 뒤에 유부남과의 사랑과 기다림을 생생하게 기록한 일기 형식의 <탐닉>을 출간했다고 하니 더욱 과감하게 세상의 시선과 관념에 맞선 듯하다. 자신의 욕망을 남몰래 기록하는 여자들을 위해,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더 과한 잣대를 대는 세상을 향해.


104쪽의 소설은 금방 읽혔다. 처음엔 충격이었고, 책을 덮을 즈음엔 왠지 모를 연민의 감정이었다. 글 쓰는 작업 없이 살 수 없는 인생이 있음을 아니 에르노를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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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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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읽을 만한 책 한 권 추천해 달라고 오랜 교회 제자에게 연락이 왔었다. 아이 상황과 성향을 고려해서 다섯 권을 추천해 줬는데 맘에 든다며 다 읽어보겠다고 하더라. 소방관이 되면서 기도로 더 자주 만나는 아이. 현장에서 자부심과 큰 보람을 느낀다는 아이의 진심에 나도, 더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오늘, 아이가 "죽는 순간까지 내 가족, 내 주변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싶다."로 끝나는 독후감을 보내왔다. 첫 번째로 추천한 책이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였다. 눈이 빠져라 서류를 보고 있던 중에 독후감을 읽으니 눈의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뭉클하고, 고맙고 많이 보고 싶었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추천해주신 선생님에게 독후감을 보내 드립니다.

폴은 미국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자랐다.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대단했던 어머니 덕분에 폴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의사 아버지를 보면서도 본인은 결코 의사가 되지 않으리라 확신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미국의 이름 있는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폴은 '생리적, 영적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의사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의과 대학원에 들어가게 된다. 의사의 길을 걷던 폴은 레지던트 최고참 시기에 본인의 몸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검사한 결과 본인이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치료를 시작하고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다시 의사로 복귀하게 되고 그 사이 사랑하는 아내 루시 사이에서 딸 케이디도 태어난다. 틈틈히 [숨결이 바람될 때] 책을 써가며 치료도 병행한다.그러나 폴의 병세가 악화되고 더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며 병 치료에 전념하게 된다. 가능한 치료 방법들을 다 동원하여 치료했지만 더이상 손쓰기 어려워지게 되고 폴은 공격적인 치료방법으로 삶을 힘들게 이어가는 방법을 거부하고 편하게 마지막을 맞이하기를 원하여 아내 루시와의 대화를 통해 더이상의 치료를 중단하고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을 기다리며 약한 호흡을 이어가다 얼마 뒤 숨을 거두게 된다. 폴은 본인이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날 소리내어 울고 힘들어하지만 곧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기 보다는 정면으로 바라보며 몸이 허락하는 한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 일을 이어간다. 자신의 꿈,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명 깊었다. 의사이자 환자였던 폴은 죽음과 대면하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폴은 사람들이 죽음을 이해하고 언젠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했다. 친한 친구에게 보낸 메일에서 "폐암에 대한 중요한 사실은 그게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거야" 라고 하며 본인의 책을 통해 본인의 뜻을 전하고 싶어했다. 죽음 앞둔 사람의 모습에서 우울함과 절망이 아니라 용감함과 당당함이 느껴졌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것일까? 그런 용감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생각하게 되고 내가 죽음을 마주하게 될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전하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다. 그 누구는 분명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고 그 누구도 아마 나를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사실 나는 그런 사람에게 우리가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지않다. 폴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동안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세상을 살아갈 루시와 딸 케이디를 위해 투병하는 내내 그들의 재정적인 면에서나 루시의 경력 면에서 곤란을 겪지 않고 그녀가 엄마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대비했다. 누구에게 가장 먼저 마음을 전해야 한다면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배우자일 것이다. 폴과 루시도 다가올 죽음에 대해 각자의 감정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얘기하며 뒤의 일들을 준비했을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먼저 사실을 알리고 하루라도 빨리 내가 없는 삶을 사는 데에 문제가 없도록 준비하는 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배우자를 짝 지어 줬을 때는 이 세상에 살며 깨달아야 하는 것들을 알기 위함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의 비밀(기독교에서 영원한 삶을 의미)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 더이상 볼 수 없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겠지만 그 또한 신이 배우자를 짝 지어 준 궁극적인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저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는 순간까지 내 가족, 내 주변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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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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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지만 내가 읽어보지 않은 작가는 그저 이름일 뿐이다. 내게는 중국의 작가 위화가 그랬다. 그의 대표작, <허삼관매혈기>가 한창 읽힐 때도 웬일인지 인연이 닿지 않았고,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된 이번 계기가 아니었다면 영영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번에 <원청>을 읽고 작가의 세계관이 아주 깊게 각인되었고 비로소 의미 있는 작가로 내 인생에 들어왔으니 책도 다 만남의 때가 있는 것 같다.

“난세의 전기傳奇적 이야기를 다룬 <원청>은 중국 청나라 말기에서 민국 초기까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린샹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몇몇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각 개인의 삶과 함께 역사적인 혼란 속에서 그들이 삶을 지켜내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로서의 순정과 지조, 남자들 간의 의리와 믿음을 보면서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이 깊이 머물기도 했는데 <원청>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보다 “인생”이었다. 인생이라는 것이 선택으로 점철된 삶의 합이라 할 때 린샹푸가 선택한 삶에서 펼쳐지는 그의 인생은 참 아프고 애달프고 존경스러웠다. 한편으로는 린샹푸가 존재하지도 않는 “원청”을 찾아 길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책이 끝나고도 린샹푸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삶을 자연스레 그려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당신이 또 말도 없이 떠나면 내가 찾으러 갈 거예요. 아이를 안고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당신을 찾을 거예요.”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젖먹이 갓난아기를 안고 존재하지 않는 곳 “원청”을 찾아 나선 그가 낯선 곳에서 연고도 없이 그곳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기까지의 삶의 태도를 보는 것 또한 내게는 인상적이었는데 평소에, 책에서든 어디에서든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일을 대하는 태도를 눈여겨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삶이 어떠하든지 자기 삶에 진중하고 진솔하고 진심을 다하는 태도는 반짝반짝 빛을 발할 수밖에 없고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데 린샹퓨는 그런 면에서 참 호감이 가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전체적으로는 한 인생의 허망함에 마음이 저밀 정도로 아프고 눈물도 나는 작품이었지만 살면서 느낀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은 자신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대에서 보지 못한 열매는 결국 자녀를 통해서든 어디에서든 흘러 흘러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 희망 때문에 위화의 <원청>을 마지막에 품에 꼬옥 안고 다독이며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후에 린샹푸의 삶을 통해 맺게 되는 열매가 어디에선가 풍성하게 열릴 것이 너무도 분명해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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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
사바하틴 알리 지음, 이난아 옮김 / 학고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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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는 사랑 이야기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튀르키예 청년이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기 위한 숙련 과정으로 독일 베를린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마음속에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운명의 여인, 마리아 푸데르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한 남자의 사랑의 파노라마이며 감정 서사시이다.

 

이렇게 사랑의 이야기라고만 적어두고 그들의 사랑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게 된다면 내 안에서는 정작 하지 못한 말들이 나를 괴롭힐 것이기에 차분하게 내 생각을 따라가 보려 한다.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 나에겐 사랑 이야기보다 한 남자의 슬픈 인생사로 읽혔고, 그의 인생이 누구랄 것 없는 우리의 인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책을 덮고 한없이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상대방에게 진실하고, 어떤 장애와 역경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언제든 배신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며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내 모습이고, 누구나의 모습일 것이다. 나를 믿는 만큼 상대방을 믿을 수 있다면 오해 속에 멀어지는 관계가 없을 텐데 우리는 내가 만든 오해와 불신 속에서 그 사람의 진심을 알기도 전에 기회를 놓치고 만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에 대한 내 신뢰는 허상이고, 마음 저변에 깔린 스스로에 대한 자기 불신과 자신 없음이 그대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투영되는 것이 아닐까. 자기 안의 상처와 소심함에서 비롯되는 의심과 불안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 그래서 주인공 라이프처럼 "주변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들이 시간이 지나 이 외로움으로부터 도리어 자부심과 고통스런 희열을 느끼" (48쪽) 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늘 그녀를 찾고 기다렸다. 주의를 집중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사방에서 그녀가 남기는 작은 흔적이라도 찾으려 애썼다. 쓰디쓴 경험을 거쳐 비로소 통찰력을 갖게 됐는데 어떻게 틀릴 수 있단 말인가?" (150)

 

"영혼이 짝을 찾으면 구차한 설명 없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제야 우리는 진정으로, 영혼을 갖고 살기 시작한다. 모든 망설임과 부끄러움을 제치고 모든 규범도 뛰어넘어, 두 영혼은 서로 부등켜안는다. " (152)

 

라이프는 운명 같은 마리아를 만나 비로소 자신에게도 영혼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으며 세상에 오직 그 한 사람만 존재하는 듯이 살아간다. 모든 이성과 감성이 그녀를 향하고 그 사람이 없으면 자신의 인생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처럼 온 삶이 그녀에게 집중한다. 그런 영혼의 동반자를 만난 것은 너무도 다행이지만 라이프는 자신의 불신과 의심으로 인한 오해로 결국 허망한 세월을 보내고 만다.

 

"세속적인 행복이든 물질적인 재산이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하지만 놓쳐버린 기회들은 뇌리에서 절대 떠나지 않고 불쑥불쑥 떠올라 쓰라리게 마음을 헤집는다. 어쩌면 우리가 놓지 못하는 건 떠나간 기회가 아니라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는데!라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미련일 것이다. 미련만 벗어던진다면 우리는 모든 걸 운명이라고 돌리고 받아들일 테니까! " (273)

 

실패의 좋은 점은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알게 된다는 것에 있다. 이별도 사랑의 실패라고 한다면 사랑에 있어 내게 부족한 점과 내가 바라는 사랑, 내게 맞는 사람에 대한 안목이 힘든 이별 앓이를 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일 텐데 라이프는 그런 기회마저 놓친 비련의 주인공이다.

 

온전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일생을 두고 이루어가야 하는 과제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 중에 내 성격에 지대한 공헌을 한 내 안의 상처를 보듬고, 상처를 준 사람과 나를 분리하고, 용서하고 나를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오롯이 나로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내적 힘을 기른다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만큼, 나를 찾아온 사람과도 안정감 있는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도피처도 아니고, 내 쉴 곳도 아니며 내가 평생 의지할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내 삶에 사랑이 다가 아니며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도 안다. 관계에서 누리는 쉼과 안정감은 애써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관계에서 절로 따르는 것이라는 것도.

 

"자연의 섭리는 내 정신세계에서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다른 건 다 잊고, 우리의 우정도 자연의 섭리를 따르도록 놔둡시다. 억지로 방향을 정하거나 섣부른 결정을 내려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자고요." (177)

 

섭리를 따르는 것. 애써 부정할 수 없는 절묘한 타이밍과 서로가 주고받는 호기심과 내 맘을 움직이는 영적 매력을 따라 자연스레 흘러가며 하나가 되는 것.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급할 것이 없고, 어느 때든지 내 사람이 오리라는 확신 가운데 내게 주어진 오늘에 충실한 것이 사랑을 맞이하는 최선의 태도일 것이다. 라이프의 인생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나 또한 아픈 이별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를 우리는 아픈 이별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직접 겪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깨달음도 있으니 아픔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신이 숨겨 놓은 신비는 그런 아픔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는데도 우린 같은 결론에 도달했군요. 우리 둘 다 한 사람을 찾고 있네요. 우리와 같은 사람을요"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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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 독서 모임 - 오늘의 철학 탐구 민음사 탐구 시리즈 1
박동수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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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대두되고 있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중심을 잡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는데 마침 박동수의 <철학책 독서 모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뜻 구입하게 된 데에는 “독서 모임”이라는 친근한 단어가 한몫했다.


책으로 읽고, 오디오북으로 한 번 더 듣고 그렇게 읽고 듣다 보니 선명하게 인식되는 것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자인 “박동수”였다. 처음엔 단순히 철학책 편집자니까 이렇게 물 흘러가듯이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철학책 편집자로서의 어떤 사명감과 노고, 깊은 고뇌가 느껴졌다. 이 책에서도 “모든 시대에는 언제나 오늘의 철학책이 필요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것처럼 박동수는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 시대를 사유하게 하는 통로이자 세상의 실상과 마주”하게 하는 오늘의 철학책을 발굴하고 처음엔 자신도 이해되지 않던 내용을 끝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서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소개하는 그의 일을 심히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전 철학책이 아닌 오늘의 철학책을 발굴하고 출간하는 편집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선구자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철학책 독서 모임>에 소개된 철학책 열 권은 독서 모임의 동료 편집자들과 엄선한, 한국에서 출간된 지 10년이 지나지 않은 책들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각종 사회 문제와 기후 위기에 관한 문제까지 깊이 고민해 볼 수 있게 한다. 각 주제에 따른 책 소개와 논평, 그리고 독서 모임에서 나왔던 좋은 사례들을 가지고 저자 박동수는 논지를 힘있게 끌고 간다. 오늘의 우리가 누구인지를 자문하는 것이 철학의 주요 문제로 자리한 지금, 철학자 이졸데 카림이 말하는 다원화 시대에서 “우리”, “나와 타자들”, “우리 너머의 우리”까지 깊이 탐구해야 하는 주제임을 각성시키는데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생태학 등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하고 있어 독자로서도 끝까지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열 권 중에 읽은 책이 <모든 것은 빛난다>, 한 권이라도 있어서 반가웠고, 소개된 책들이 다 흥미있었지만 특히 아즈마 히로키의 <관광객의 철학>은 관광객의 특성을 통해 관광객처럼 살아가는 이들을 어떻게 사회 전반에 그리고 정치에 끌어 들일 수 있을지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꼭 읽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이 아마존 숲의 루나족의 삶을 통해 “알지 못한 채 알아가기”라는 방법으로 “우리 너머의 우리”에 대해 인식하게 하는 부분이 꽤 인상적이었고 기독교인이면서 사람과 동물을 잡아먹는 루나족은 내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저자 박동수의 시각에 도움을 받아 여러 전반에 걸쳐 우리, 나와 타자들, 우리 너머의 우리, 그리고 기후변화와 인류세에 이르기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덕분에 오늘의 철학에 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사월의 책>에서 출간된 철학책에서 편집자 박동수라는 이름을 찾는 재미도 있겠다. 앞으로 이 책을 필두로 문학 편집자, 과학책 편집자 등 각 분야의 편집자의 책이 나와도 좋겠다. 그들만큼 전반적으로 그 분야에 대해 해박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소개하는 책들을 넘나들며 신이 나서 쓸 것 같다. 철학책 편집자 박동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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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7 15: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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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7 15: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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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ju 2023-04-20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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