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건국헌법에서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민주주의를 추진한 이래 80년대 결실을 맺은 민주화운동과 그 후 지속된 민주주의 심화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갈등과 반목, 그리고 무한히 전개되는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개인과 집단의 이기심 분출에 따른 혼란, 이념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충돌, 여전히 유효한 지역갈등, 차이를 넘어 단절의 국면에까지 이른 세대 간의 갈등, 심각한 빈부격차에 따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깊은 골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는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개인과 집단들의 힘이 충돌하는 '권력정치(politics)가 한국정치 현장에서 여전히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 억압받다 아무런 여과없이 한꺼번에 분출된 새로운 권익과 또 이 도전으로부터 기득권을 한사코 지키려는 기존의 권익 모두, 공동체와 공동선에 대한 고려 없이 권력투쟁에 진력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인이나 기업가, 노동운동가, 그리고 심지어 일반대중들에서조차 이런 현상은 얼마든지 목도할 수 있다. 서로 대권을 차지하려는 정치인들, 서로 자신의 권익만을 관철시키려는 이해집단을,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지식인들, 그리고 자신의 생계와 돈벌이만 걱정하는 대중들이 다수를 이루는 사회에서 갈등 대신 통합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이는 민주화가 정치발전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충분조건은 권력정치와는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정치(the political)를 실천할 때 비로소 충족된다. 이 때 소통정치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의견이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더라도 설득과 소통을 통해 공동이익이나 공동의견에 자발적으로 동의하거나, 혹은 설사 동의에까지 이르진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구성원들을 이해하고 상호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토론과 토의를 거쳐 결정에 도달하는 의사소통 과정과 구성원에 대한 상호인정 과정이 정치의 핵심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소통정치는 '민주'뿐만 아니라 '공화'를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 물론 '민주'와 '공화'는 서로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하며, 이 차이를 주목할 때 역사 속의 사회들이 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라는 두 개념을 길항적으로 사용해 왔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근대사회는 민주주의의 발달과정으로 특징지워지지만, 사실 민주주의는 개인들의 권리보장과 그 권리를 권력으로 강화시키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다. 즉 민주주의는 자의적일 수 있는 권력을 어느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독점되지 않도록 평등하게 배분하여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체제로서, 권력분립과 다사의 지배를 그 원칙으로 삼는다. 하지만 공화주의는 이런 분립속에서도 사회통합을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지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지배를 수립하는 것인데 비해, 공화주의의 목표는 공동체 전체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공화'의 덕목이다. 어느정도 '민주'가 진행된 상태에서 개인이나 개별적 집단의 권리와 자유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고 공동세계를 건설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참여, 소통, 헌정주의와 같은 '공화'의 요소들이다. 우리는 개인의 권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제기와 공동선 수립에 참여해야 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합의해야 하며, 이런 모든 과정들이 헌법 정신에 의거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대한민국 건국이념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방법이다. -서문 발췌-

민주주의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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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여배우 중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바로 케이트 베킨세일이다. 나이에 비해 액션연기를 많이 하여 연기력은 화려한 액션에 그냥 묻어가는 배우라 생각했는데 <낫씽 벗 더 트루스>를 통해 케이트 베킨세일의 깊은 연기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첫 포스트 크레딧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인물과 사건은 픽션이다로 시작된다.

미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순방차 방문한 날 대통령 저격 사건이 발생한다. 대통령 암살 계획은 미수에 그치지만 사건의 배후로 베네수엘라를 지목하며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공습하게 되는데 당시 베네수엘라에 미대사로 파견되었던 에리카는 베네수엘라가 미국대통령 암살사건과는 전혀 무관함을 밝히는 보고서를 제출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에리카(베라 파미가)의 보고서를 묵살한 채 베네수엘라에 보복성 폭격을 가한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는 이라크에 핵무기가 있다는 이유로 전쟁을 일으키고 결국에는 핵무기가 없었다는 한 기자의 폭로전처럼 보인다.

 

 

 

선 정치외교 기자 레이첼과 미대사 에리카의 아이들은 같은 학교에 다닌다. 일일교사로 학교에서 에리카의 딸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는 레이첼은 아이들 학교에 찾아가 에리카를 직접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CIA요원이냐고 묻지만, 에리카는 앞으로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충고성 멘트만을 날린다.그러나, 레이첼은 에리카에게 당신이 CIA 요원이라는 정보를 입수했고 당신의 보고서로 기사를 쓸 거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하고 헤어지는데 ....

 

 

그러나,  에리카가 CIA정보요원이라는 기사가 나가자 사건은  레이첼이 말하고자 하였던  미국 정부의 권력의 정당성과는 전혀 다른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국가에서는 사건의 정당성과는 달리 국가안보 기밀누설을 한 '정보제공자'가 누구인가 하는 예기치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면서 레이첼은 법원에 출두하게 된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기밀사항을 누설하는 것은 범죄이지만, 기사화 한 레이첼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는 상황.  그러나, 레이첼이 정보제공자를 발설하지 않을 경우 레이첼은 '법정모독죄' 가 적용되어 감옥에 가게 된다. 평소 기자로서의 신념과 의지가 강했던 레이첼은 '국민의 알 권리'와 '기자로서의 신념'으로 정보원과의 비밀을 지키며 법원의 요구를 거절한다. 결국 감옥에 간 레이첼의 행동은 국민들에게 열렬한 지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풀리처상 후보에 까지 오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레이첼을 버티게 했던 신념과 의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오랜 감옥생활로 인하여 남편은 바람나고 하나 뿐인 아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지며, 극우파에 의해 에리카마저 피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그녀가 지키고자 하였던 신념과 의지는 바람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린다.

 

영화는 미국의 칼럼리스트 로버트 노박(Robert Novak)이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방지와 제거를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 정부의 목적이 당초 알려졌던 것과 달리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계획된 것이었다는 칼럼을 게제함으로써 촉발된 이른바 '리크게이트(Leakgate)'사건에서 그 모티브를 얻어 왔다. 이 사건에서 뉴욕타임즈의 기자 주디스 밀러(Judith Miller)는 법원의 취재원 공개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법정모독죄가 적용되어 85일간 투옥되었다.

 

국가 권력 앞에서의 개인의 자유, 언론인으로서 지켜야 할 신념과 의지, 여러가지 의미들을 성찰할 수 있는 영화이다. 그러나 영화는 언론인과 국가 권력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국가 권력앞에서 무차별하게 희생당하는 한 국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국가의 잔인성을 부각시켰겠지만, '기사'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냉정을 보이는 레이첼의 모습은 일말의 동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령,  에리카가 레이첼에게 같은 엄마로서 눈물을 글썽이며 정보 제공자를 물어 볼때 냉정하게 거절하고,  퓰리처 상은 따논 당상이라며 가족과 함께 기뻐하는 레이첼과는 상반되게  CIA에서 의심을 받으며 궁지에 몰려 피눈물을 흘리는 에리카는 관객으로 하여금 레이첼에 대해 상당히 객관적인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인 시선은 영화가 국가권력에 대한 도덕성과 언론이 지니고 있는 이중성,  그 이면의 욕망들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장치이다. 

케이트 베킨세일과 베라 카미라의 연기도 일품이었고, 마지막 반전은 영화 내내 유지되고 있던 긴장감을 한 순간에 바람빠지는 풍선처럼 만들어놓게 하지만, 그런 허탈의 반전이 오히려 영화를  자꾸 곱씹어보게 한다. ㅋㅋ


영화를 보면서 몇 년 전에 읽은 줄리안 어산지가 연상되었는데, 대부분의 책들이 언론인으로서 줄리안 어산지를 미화시킨 반면에 북폴리오에서 나온 [위키리크스]는 줄리언 어산지에 대하여 보다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있는데,아무래도 이 영화역시도 언론인이나 국가 권력,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채 관객에게 진실의 답을 구하는 영화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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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1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은 이웃 여러 나라들과
지구별 수많은 나라에... 내분과 분쟁을 일으켜
전쟁무기 파는 장사와
그 나라 군부대 훈련시키는 장사에다가....
참... 못할 짓을 너무도 많이 하지요.

에구, 그런데에도 우리 정부는
아직도 미국 '첨단무기'라고 하는 것들을
엄청난 돈을 퍼부어서 사들이니...

드림모노로그 2014-01-20 11:18   좋아요 0 | URL
미국도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 시기가 아닐까요.
간만에 너무 좋은 , 숨은 진주를 만난 영화같았어요 ^^
기회되시면 한 번 보세요.
흡입력 짱~ 입니다 ㅎㅎ
 

발터 벤야민은 위대한 문학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위대한 문학은 억압과 착취 속에서 망각된 존재를 불러내어 장례를 치러준다고, 이를 통홰 치유와 위로를 주고, 인간 현실의 비극적 조건을 드러내, 그런 현실을 변혁하는 동력을 부여한다고.”

 

점점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에 경도되어 인간적인 가치들이 하찮게 되어가는 시대에 나쓰메 소세키는 도련님에서 가장 인간적이고도 정의로운 ‘도련님’을 탄생시켰다. 도련님은 가난하지만 현실과 타협하며 사는 인물이 아닌 의협심과 정의로 똘똘 뭉쳐있는 도련님을 통해 울고 웃으며 알게 모르게 치유와 위로를 받았다. 그것은 내 안에 잠들어있던 망각된 존재를 불러내어 장례를 치르는 벤야민이 말하는 위대한 문학의 조건이나 다름없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이 그 자체로 희망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태풍》의 주인공 문학사인 도야 선생에게도 같은 희망을 발견한다.  삶에서 불어 닥치는 태풍과 같은 강렬한 고독과 외로움을 문학이라 설파하는 도야선생이 “문학이야 말로 인생 그 자체이며 고통과 궁핍, 고독과 같은 인생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곧 문학이며 이런 것을 맛본 사람만을 문학자'라 하였듯이, 위대한 문학은 인생이 된다.

 

《도련님》,《태풍》이 문학에 한정되어 있다면《풀베개》는 예술에 관한 통찰이 빛나는 작품이다. 내가 읽은 순서이기도 하지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빼고 집필 순서순이다. (우연히) 기존의 작품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인 풀베개는  非人情비인정이라는 초탈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아마도 일본 선불교禪佛敎 의 영향으로 보여진다.  공간적 배경인 봄밤의 꽃 그림자와 달빛 아래 나지막한 노랫소리에 취한 으스름달밤, 우연히 묵어가게 된 외딴 마을의 온천마을이 주는 느낌은 마치 김유정의 <메밀꽃 필무렵>처럼 서정적이고도 시적인 느낌을 준다. 마찬가지로 풀베개 역시 한줄기 빛을 찾아 헤매는 하루살이와 같은 우리의 삶에서 희망의 집어등 역할을 해주는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들에는 현실의 긴 시련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교감들이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나에게 나쓰메 소세키의 글은 위대한 문학이 주는 희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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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2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한테 살아갈 빛이 되도록 하는 문학이 아닌가 하고
느끼곤 해요.

드림모노로그 2013-12-27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한줄기 희망의 빛이 곧 문학이 아닐까요 . ^^
 

 

모두들 잘 지내시죠 *^^*

정말이죠, 요즘 같아서는 미춰 ~~~~~버리겠습니다 ^^

새해에는 반드시 !! 모임도 좀 줄이고, 조신한 아낙네로 돌아가렵니다 ~

블로깅도 잘 하지 못하고, 이웃님들께 항상 미안함과 무안함과 죄송함으로 ㅠㅠ

이렇게 포스팅으로만 안부를 전하게 되네요 ^^

저도 이 나이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답니다 *^^*

글벗은 이래서 좋은 가 봅니다. ~^^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벗님이 계셔셔 참 행복합니다.*^^*

볼라뇨의 마지막 작품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2014년 1월, 새해가 밝아오면 구입을 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작품이었는데 ~

정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왔어요 !!

너무너무 감사드리구요... 늘 받기만 해서 미안하기만 한, 드림이입니당 ㅠ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들과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2013년에는 제 곁에 나무늘보님이 있어 다행이었고, ㅎㅎ 행복했습니다 ~ !!

 

 

 

이웃님들도 모두 행복한 크리스마스 ~~!!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

나무늘보님 사,사,사사랑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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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24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으로도 선물을 나누고
마음으로도 선물을 나누면서
성탄절도 즐겁게 누리셔요~~

드림모노로그 2013-12-26 15: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즐거운 성탄절 보내셨지요?
저는 어서 12월이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몸도 마음도 너무 피곤하네요 ㅎㅎㅎ
마지막 남은 시간들도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이 질문은 예일대 교수 셀리 케이건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죽음의 본질을 논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질문이라고 합니다. 이 질문은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원초적인 질문이기도 하죠. 그 책에서  셀리 케이건 교수는 단순하게 인간을 물질적인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인간은 물질'이라는 진화론적 세계관은 과학자들에게서 많이 보여지는 세계관입니다. 이들은 인간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비물질적인 요소를 삶에서 철저히 배제합니다. 신무신론자들인 샘 해리스[종교의 종말],[신이 절대로 답할수 없는 몇가지],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도 대표적인 물질주의자이죠.  반대로 인간이  비물질적 존재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 또한 많습니다. 정신과 육체, 이러한 것이 서로 상충하며 인간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인간이 비물질적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과학적으로 증명해가고 있는 분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학자는 '의식'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의식을 영적으로 진화한 상태와 의식 연구 및 참나로서의 신의 현존에 대한 각성이라는 주제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하였습니다. [의식혁명]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요.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2000년 방한하였을 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

 

"물질주의자들은 이러한 사랑과 잠재력, 종교와 영성의 세계는 측정할 수 없는 세계라며 실재로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대상화할 수 있는 것만 다루는 것이 과학입니다. 그러나 모든 실재는 주체적이며, 대상이란 마음이 만들어내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사실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는 가상적인 것입니다. 세계는 움직이지 않으나 우리의 지각 때문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최근 이븐 알렉산더의  [나는 천국을 보았다]에서는 오랫동안  물질주의자이자, 과학자였던 저자가 임사체험을 본인이 경험하게 되면서 비물질주의자가 되었고, 자신이 오랫동안 물질주의였던 부분에 대해서 잘못 알았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보입니다. 이븐 알렉산더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나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유의지가 없다’를 믿었었지만, 죽음 상태에서 천국에 간 순간 너무도 확실하게 내면의 자아의식을  생생히 느꼈다는 고백을 합니다. 이븐 알렉산더는 우리가 ‘생각한다’ 라는 것은 무신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무의식의 자아로 ‘경험’하였던 행동 메커니즘이라는 결과로 보고 있지만, 실제 ‘생각한다’의 자아는, 우리안에 진정한 내면의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회복하게 될 진정한 영적 자아라는 것이죠. 내 안의 또 다른 나, 이것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일반 시민을 동굴에 갇힌 포로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보는 것이라고는 벽에 드리운 그림자의 움직임, 그러니까 이들로서는 결코 파악하지 못할 실체의 투영만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오직 철학자만이 빛이 비치는 바깥으로 나가 실체를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마이클 샌델은 일반시민들은 실체를 보기 위해 철학과 정의를 끊임없이 고민해야만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바로 이븐 알렉산더가 보게 된 '영적 자아' 가 되겠죠. 이러한 '영적자아'는 데이비드 호킨스의 '큰나'라든지 '참나' , '깨달음의 나' 와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의 삶은 형상을 넘어선 것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행위는 정직 사랑 영감 등 비과학적인 것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린 한 곡의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한 순간 천국에 있는 것과 같은 무한의 존재감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호모 스피리투스(Homo Spiritus)’는 호모 사피엔스 이후 진화하는 영적 신인류를 뜻하며 “내재와 초월을 넘어 신성의 빛으로 가득한 깨달음의 나, 무한한 나”에 이르는 것이 특징이다. 저자는 “깨달음의 가능성은 과거 천년의 인간 진화에 비해 천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 인류의 의식 수준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생명의 원시적 출현에서 시작해 인간 에고로서의 진화를 거쳐, 영적 깨달음의 실상과 에고의 초월에 이르기까지 진화를 거듭해 온 의식의 토대 및 본질을 되짚어 간다. 진실의 수준이 1에서 1,000까지로 측정되는 ‘의식 지도’상에서 최고 수준인 999.8로 측정된 이 책은 호모 스피리투스의 시대인 21세기의 고전이 될 만한 뛰어난 영적 분석과 통찰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제가 읽지 못하여 출판서 서평을 발췌한 것입니다.

 

 

 

 

 

데이비드 호킨스박사는 이 책에서 인간의 의식수준을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한 지표인 '의식 지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신체운동학kinesiology'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의식 지도의 탄생 과정과 그 의의를 담고 있는 [의식 혁명]은 '의식 연구의 과학화'라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출발점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책입니다. 

 

 

 

 

 

 

이 전의 책들에서는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나’ 의 진보된 자각 상태와 깨달음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놓아버림》에서는 우리의 삶을 가로막는 일상의 장애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봄과 동시에 실천전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기존의 책들이 이론편이라면 이 책은 실천편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매순간 마주하는 죽음이나 좌절, 스트레스,  위기,  고통과 같은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는 인생에 드리워진 어두운 장막을 거두어낼 수 있는 방법으로 저자는 ‘부정적 감정을 놓아버리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간단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놓아버림'을 권고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영적 자아'와  '참나'또는 '큰나','실존의 나'와 멀어지게 하는 가장 커다란 원인은 감정에 있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고통과 괴로움과 불행을 겪고 나서야 '큰나(실존의 나)'를 만나게 되지만, 데이비드 호킨스는 '놓아버림'이라는 기법으로 고통과 괴로움을 겪지 않고도 우리가 각자 떠안고 있는 괴로움이라는 짐을 초월하게 되는 비법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놓아버림'의 과정은 의식의 가장 높은 깨달음의 과정이며  결국 의식의 가장 높은 깨달음의 도달점은 우리의 내면의 자아, 즉 영적자아를 되 찾는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놓아버림'기법은 철학이나 형이상학적, 영적인 서적과  한치도 어긋나지 않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들입니다. 

 

우리가  물질주의자든  비물질주의자이든  사실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점점 곤궁해지고 비참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이 물질과 동일선상에 놓이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영적인 존재였습니다. 이외수님은 <마음에서 마음으로>에서 그 영적인 감각들을 '감(感)'이라고 하시더군요. 타고난 초감각적이고 초자연적인 '감'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곤 하였습니다. 내 안의 나, 만나보고 싶지 않으세요? ^^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를 통해 '내 안의 나'를 깨워보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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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22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안에 있는 나를 이야기는 '아나스타시아'나 '람타'도 함께 읽어 보시면서
양자물리학도 공부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드림모노로그 2013-11-26 11:44   좋아요 0 | URL
아나스타시아는 함께 살기님의 리뷰로 보았구요.(카트에 담아놓았습니다 . 6권 짜리더라구요. 전 한권씩은 못보고 세트는 1권부터 6권을 다 보아야 하는지라^^;; 6권까지 구매를 해야 할 듯 합니다 ㅎㅎ)
람타는 절판이더군요 ^^
아나스타시아 함께 살기님의 리뷰를 읽고는 꼭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자체가 양자이지요 ^^ ~ 람타도 어떻게든 구해서 읽어보겠습니다 ~
좋은 책 추천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