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모네
#아도니스증후군
#인문

현대는 끊임없이 소비해야 돌아가는 사회이다. 한마디로 소비자사회. 한마디로 소비의,소비를 위한, 소비에 의한 사회이다. 지금 시대에 만들어지는 상품들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이다. 실제로 없어도 일상에 불편함은 없는 상품이다. 이런 소비를 목적으로 만든 상품은 강한 유혹으로 소비를 촉진해야 하기 때문에 외관이 아름다워야 하며, 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만 한다. 본질은 같음에도 말이다. 가만히 멈춰 있을 수 없고 오랫동안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없고 모든 것들은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들이 쫓으려고 안달하는 패션들과 우리의 주목을 받는 대상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 또한 우리가 꿈꾸는 것들과 무서워하는 것들,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과 몹시 싫어하는 것들, 심지어 희망을 품는 이유와 염려하는 이유조차도 계속해서 변화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래야만 하는 지금의 이 시대를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소비자사회는 이렇게 보여지는 것,모든 것이 전시의 목적을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의 판단기준은 미와 추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보여지는 것이 이제는 상품이 아닌 인간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아름다움의 대명사였던 여성의 영역에 꽃보다 아름다운 남성들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브랜드의 가치를 대변하던 아름다운 여성모델은 꽃보다 아름다운 남성들이 차지하고 여성만이 광고했던 화장품 광고도 이제는 남성이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여성보다 더 아름다운 남성. 훈남에 초식남, 선남, 짐승남, 만찢남(만화찢고 나온 남자), 뇌섹남(뇌가 섹쉬한 남자)등 아름답고 멋진 남성에 대한 찬미의 언어들이 넘쳐난다. 그래서인지 미美를 향한 남성의 욕망은 여성의 그것을 압도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온라인에서는 요정이 되기 위해 수억을 들여 성형하는 남성도 있고 아름다워지기 위해 성형을 서로 권하는 모습이나 남성의 화장법으로 활동하는 유투버도 흔한 일상이 되었다. 이런 외모지상주의가 극심하다보니 ‘아도니스증후군’을 앓고 있는 남자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남성들의 외모집착증을 말하는 아도니스 증후군은 자신보다 잘생기거나 멋진 남자를 보면 질투와 부러움에 심하면 두통까지 겪게 되며 고통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남성들은 여성들처럼 외모를 가꾸며 성형도 불사하고 점점 미에 집착하며 강박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제우스가 쌍벽을 이루는 바람둥이 아프로디테가 무척 사랑한 미소년인 아도니스는 보기만해도 므훗한 미소가 나오는 꽃미남이다. 아도니스를 너무나 사랑한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다쳐서 그 고운 얼굴과 몸에 흠이라도 날까싶어 늘 잔소리를 했다. 혼자 숲속에 들어가지 말아라, 사냥하지 마라, 짐승을 쫓지 마라, 혹여 만나더라도 도망가다 다치다가 몸에 상처라도 나면 안 되니 절대 위협을 가하지 마라, 하며 늘 노심초사 경계를 당부했
그런데 어느 날, 아프로디테가 키프로스 섬에 간 사이 아도니스는 사냥을 나가게 된다. 멧돼지를 발견하여 멋지게 창을 날리지만 창은 빗나간다. 화가 난 멧돼지는 무서운 기세로 아도니스를 위협하며 달려가 그 자리에서 찢어 죽인다. 늦게 도착해 엄청난 피를 흘리고 죽은 아도니스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아프로디테는


‘ 나의 아도니스, 그대가 흘린 피를 꽃으로 피어나게 하리라. 그래서 그대를 본 듯 그 꽃을 보고 위안을 얻으리라.’ 하며

아도니스가 흘린 피 위에 넥타를 뿌렸다. 그 자리에서 거품이 일더니 붉은 꽃이 피어났는데 바람이 스쳐지나가면 꽃잎이 열리고 또 바람이 불면 꽃잎이 흩날렸다.

그 꽃의 이름은 바람꽃, 아네모네....


외모도 능력이라하지만 내면을 가꾸지 못한 외관의 아름다움은 바람에 모든 것을 맡겨야하는 운명의 바람꽃이다. 스스로를 상품화시키기 보다는 내면에서 뿜어나는 깊은 지성의 향기가 배어나는 남자가 진짜 남성의 미가 아닐까.

아~네~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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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을_쓰려는자_그_무게를_즐겨라
#인문

이 지독한 삶의 무게는 누가 만들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의 증명은 오로지 소비이다. 그러나, 한가지 이 소비의 진짜얼굴은 ‘욕구불만‘에서 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불행한 사람일 수록 소비성향이 강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일 수록 불행을 치유하기 위한 과정처럼 돈을 쓴다고 한다.

우리 사회를 조밀하게 떠받치고 있는 ‘자본주의‘의 맨얼굴은 사실 우리가 삶에서 애써 외면하려던 진실에 가깝다. 쭈글쭈글한 주름살과 노쇠한 육체가 싫어 늙음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늙어가고 있는 것 따위가 아닌 사회에서 쓸모 없어지는 경험으로 인하여 슬픔을 느끼는 것이고,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나의 욕망이 타인의 욕망에 길들여지게 된 이후로부터 우리는 ‘맨얼굴‘을 읽어버린채 가면이 내얼굴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굉장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삶의 본래 모습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홀로 등산을 한지 햇수로 8년이 되어간다. 처음 등산을 하기 시작했을 때 산에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어 남들 30분이면 오르는 산을 세시간 반만에야 올랐다. 체중도 문제였지만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아 근력자체가 없이 물살로 산을 오르려 하니 보통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병도 앓고 있었다. 그럼에도 무언가에 이끌려 올랐다. 목표나 목적이 없었다. 그냥 무아상태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오르니..세시간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전에 운동을 할 때는 늘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갖고 올랐는데 한 번도 계획과 목표대로 이룬 적이 없었다. 8년이 지나고 나니 내가 그렇게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삶에 희망이나 목적을 가질 때는 늘 이루지 못하였던 것들이 삶은 원래 고통스럽고 힘든거라 생각하면 오히려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처럼 등산도 그와 같다. 힘들어도 그냥 오르는 것. 원래 등산은 힘든 거니까..라고 생각하니 오르기가 더 수월해졌다. 비가 오면 우산을 펼치면 되고 눈이 오면 모자를 쓰고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그저 오르는 것만 생각하니 홀로 산에 가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일까 항상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삶의 무게가 굉장히 가벼워졌다.

철학자 강신주는 그래서 이런 주문을 한다.
지금의 삶을 꿈이 없는 상태로 만들라고 일체의 꿈도 없이 있는 그대로 현실을 향유하는 수준에 이르면 아무 생각 없이 산 정상에 올라있는 것처럼 삶도 목적 없이 어느 순간 최고의 삶에 올라있을 거라고...

‘그냥 비 오면 우산을 펼치듯이 그렇게 가는 것이 삶이예요. 인생은 소유유처럼 목적이 없이 걸어다니고 목적이 없이 살아가는 거예요.
비록 불행도 찾아오겠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삶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삶이 펼쳐질 거예요
위대한 사람들이 삶을 여행에 비유할때 목적지를 정하고 체크인하고 체크아웃하는 여행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예요. 비도 만날 수 있고요, 멋진 남자도 만날 수 있다고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변할 예측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 설렘 그 위기 그 긴장을 사랑하는 거죠.

삶이란 원래 그런 드라마틱한 것으로 가득찬 것이니까요. -강신주 다상담 3권 중에서 ‘

중년의 터널을 지나면서 당혹스러워지는 것은 가끔 바보처럼 아무 생각없을 때가 많아져서이다. 마치 미노타우로스 미궁에 빠진 것처럼 아무리 헤어 나오려 해도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는 곳에 갇혀 버린 느낌이 들때가 많다. 테세우스에게는 아드리아네가 준 실이라도 있었지만, 내 삶에는 그 ‘아드리아네의 실‘이 없다. 오로지 구원자도 나요. 탈출구를 찾는 것도 나이다. 이 삶이라는 미궁의 열쇠는 오로지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 삶이라는 미궁을 빠져나오는 열쇠는 어쩌면 거창한 것이 아닐 것이다.

삶의 본래의 모습과 마주하는 것과
일체의 꿈도 없이 현실을 향유하는 것,
여행하듯 주어진 삶을 즐기고,
목적을 갖지 않은 채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것.....이러한 것들이 이 미궁 탈출의 비밀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8년 전 그 고통들을 이겨내고 정상을 올랐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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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철학 - 일상을 바꾸는 새로운 시선
박남희 지음 / 현암사 / 201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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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철학서 가운제 제일 마음에 드는 책. 많지 않은 분량에 지혜의 알곡만 담아놓은 듯 매우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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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력을_잃은_예언자_카산드라
#카산드라의_예언
#인문

이솝우화에는 양치기 소년이 나온다. 심심해서 마을에 ‘늑대가 나타났다’를 외쳐보니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자 그 모습이 재미있어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러던 소년 앞에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에게 한 번 신뢰를 잃게 되면 다시 신뢰를 얻기까지 그 사람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반대로 같은 말을 해도 묘하게 설득력이 강한 사람이 있다. 온라인에 같은 글을 퍼와도 퍼온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공감의 폭도 달라진다. 같은 글인데도 어떤 사람의 글은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데 어떤 사람은 어떤 글을 올려도 반응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겉으로는 번듯해 보여도 현실적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는 빈말’을 가리켜 ‘카산드라의 예언’이라고 한다. 예언이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면 그 예언은 공허한 메아리라 하겠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딸이다. 트로이 전쟁 당시 아들 헥토르가 죽자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빌었던 바로 그 왕이다. 영화 <트로이전쟁>에서는 카산드라와 아킬레우스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보다 먼저 카산드라를 보고 사랑에 빠진 신이 있다. 태양의 신인 아폴론은 카산드라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태양의 신 아폴론은 .. 아폴론이 사랑에 빠진 여인들은 모두 불행으로 끝났으니 ... 월계수가 된 다프네이후 카산드라도 마찬가지다. 신을 사랑할 수 없었던 카산드라는 아폴론의 구애를 피하기 위해

‘날 사랑한다면 나에게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주세요. 그러면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일게요.’ 라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아폴론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언하는 능력을 바로 들어준다. 하지만 들어주지 못할 거라 확신하고 던진 말이었기에 신의 영역이었던 예언의 능력을 받게 된 카산드라는 덜컥 겁이 난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놓고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한다.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노라고.... 난 신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고... 이에 배신감을 느낀 아폴론은 마지막으로 이별의 입맞춤이라도 하게 해 달라 부탁한다. 하지만 신들은 언제나 댓가를 지불하는 법....
아폴론은 카산드라와 키스를 하며 혀 끝에 있던 설득력을 지워버린다. 자신의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벌이었다.

예언력은 가졌으나, 설득력은 없었던 예언자 카산드라의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예언하며 파리스를 스파르타에 보내지 말라고 간청하였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결국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왕비인 헬레나를 납치해 옴으로 긴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다. 전쟁 중에도 트로이 목마를 성안에 들여오면 트로이가 멸망한다고 예언하지만 이또한 아무도 듣지 않는다.

게다가 아가멤논이 전쟁에 승리한 후 전리품으로 가게 될 운명에 처한 카산드라는 자신과 아가멤논이 죽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물론 아가멤논은 듣지 않는다.

자신의 딸을 트로이전쟁의 희생제물로 바친 아가멤논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내가 칼을 갈며 기다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아가멤논은 카산드라의 말을 역시나 듣지 않는다. 아가멤논의 귀향길이 자신의 죽을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카산드라는 눈물이 앞을 가리고, 결국 아가멤논과 카산드라는 고국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아내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자신의 운명도 바꾸지 못하는 카산드라의 비극. 그녀의 거짓말은 혀끝에서 설득력을 빼앗아버림으로 비극을 초래하였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이렇게 독을 불러 오기도 하고 복을 불러 오기도 한다. 남에게 신뢰와 믿음을 준다는 것은 혀끝을 잘 사용하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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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생몽사
#동사서독
(-전에 한 번 올렸던 건데, 조금 다듬었습니다.
이곳은 눈이 많이 내립니다..
긴 가뭄끝에 쌓인 눈으로 갈증이 좀 해소되는 것 같네요..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옛사랑을 들으며 걸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네요~^^ㅎ-)

혹시 취생몽사(醉生夢死)라는 술을 아시나요?
마시면 기억을 잊는 술입니다. 영화 <동사서독>에 나오는 술 이름인데 우리의 영원한 히로인 고 장국영이 주연으로 나옵니다.

구양봉(장국영)은 황량한 사막에서 살인청부업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사막에서 홀로 사는 이유, 궁금하시죠? 사랑하는 여인을 잊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인간에게 번뇌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며, 스스로 고독에 몸을 맡기고 사막에 은닉하여 자신의 번뇌를 다스리고 있는 것이죠.

그럼 그가 사랑하는 여인은 왜 잊으려 하는 걸까요? 사랑했던 여인이 어느 날 형의 아내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상황이 이해되시죠? 그런 그를 찾아오는 유일한 손님이 있습니다. 복사꽃 필 무렵에만 나타나는 떠돌이 무사 황약사라고, 이 황약사는 등장도 멋지게 합니다. 복사꽃은 휘날리고 ~~ 사운드음악은 웅장하고 ~ 중국영화 특유의 과장된 등장, 연상되시죠? ㅎ~형의 아내가 된 사랑하는 여인은 백타산에 살고 있는데 이 황약사가 여인의 소식을 전해주거나 선물을 전달해 주곤 한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잊으려고 사막에 사는데 그녀의 소식을 전해주는 황약사를 손꼽아 기다려요.
그런데 이번에 황약사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받아 온 선물은 취생몽사라는 술이었습니다. 이때 자막이 이렇게 뜹니다.

기억을 잊을 수 있는 ‘취생몽사‘라는 술을 마시는 것과
‘복사꽃을 좋아했다는 기억만 남기고 모두 잊는다는 것,

멋지죠? ㅎ~ 말은 멋지지만, 취생몽사를 마시고 사랑의 기억을 잊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술을 마셔도 각인된 기억이 사라지지 않듯이 기억을 지우려는 술을 마셔봤자 헛일이고 잊기로 애쓰는 것도 사랑 앞에서는 더욱 헛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자는 왜 취생몽사라는 술을 보낸 걸까요?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잊었냐는 황약사의 질문에 자신은 가질 수는 없어도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취생몽사를 보낸 건 남자가 그걸 마시고 자기를 잊으라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생각해 달라는 사랑의 반어법인 겁니다.

이성복 시인의 [편지]라는 시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전해줄 방법이 없게 되자
자신이 편지를 전해줄 때까지 ‘잘 있지 말아요’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죠.

구양봉 역시도 여자가 보낸 ‘취생몽사’를 마시지 않습니다. 자신은 그녀가 복사꽃을 좋아했다는 사실만 기억할 거라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사랑했던 기억은 그대로이고 변하지 않는 사실이 되어 ‘추억’이란 이름으로 두고두고 남습니다. 기억은 왜곡되기도 하고 퇴색과 윤색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만의 사랑으로 자리 잡아 갑니다. 상대에게 잊혀 질지라도 사랑했던 사실, 좋아했던 기억들은 잔상으로 남아있게 된다는 것을 황량한 사막에서 깨달았던 거죠 . 결국 구양봉의 이 말은 죽어도 못 잊겠다는 독한 역설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추억)은 고정된 풍경이 아닌, 그것을 담는 자의 마음의 모양에 따라 변화되는 액체성의 풍경이니까요.

사랑했던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건, 가슴 깊이 아로새겨진 진한 노스탤지어인 동시에 그녀를 향한 밀어(은밀한 언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눈이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동사서독’의 취생몽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함박눈을 기다리며 ㅎ~
잠들어 있던 기억하나 흔들어봅니다..^^
https://youtu.be/T0M75qsPHeE
#취생몽사
#동사서독
(-전에 한 번 올렸던 건데, 조금 다듬었습니다.
이곳은 눈이 많이 내립니다..
긴 가뭄끝에 쌓인 눈으로 갈증이 좀 해소되는 것 같네요..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옛사랑을 들으며 걸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네요~^^ㅎ-)

혹시 취생몽사(醉生夢死)라는 술을 아시나요?
마시면 기억을 잊는 술입니다. 영화 <동사서독>에 나오는 술 이름인데 우리의 영원한 히로인 고 장국영이 주연으로 나옵니다.

구양봉(장국영)은 황량한 사막에서 살인청부업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사막에서 홀로 사는 이유, 궁금하시죠? 사랑하는 여인을 잊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인간에게 번뇌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며, 스스로 고독에 몸을 맡기고 사막에 은닉하여 자신의 번뇌를 다스리고 있는 것이죠.

그럼 그가 사랑하는 여인은 왜 잊으려 하는 걸까요? 사랑했던 여인이 어느 날 형의 아내가 나타났습니다. 상황이 이해되시죠? 그런 그를 찾아오는 유일한 손님이 있습니다. 복사꽃 필 무렵에만 나타나는 떠돌이 무사 황약사라고, 이 황약사는 등장도 멋지게 합니다. 복사꽃은 휘날리고 ~~ 사운드음악은 웅장하고 ~ 중국영화 특유의 과장된 등장, 연상되시죠? ㅎ~형의 아내가 된 사랑하는 여인은 백타산에 살고 있는데 이 황약사가 여인의 소식을 전해주거나 선물을 전달해 주곤 한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잊으려고 사막에 사는데 그녀의 소식을 전해주는 황약사를 손꼽아 기다려요.
그런데 이번에 황약사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받아 온 선물은 취생몽사라는 술이었습니다. 이때 자막이 이렇게 뜹니다.

기억을 잊을 수 있는 ‘취생몽사‘라는 술을 마시는 것과
‘복사꽃을 좋아했다는 기억만 남기고 모두 잊는다는 것,

멋지죠? ㅎ~ 말은 멋지지만, 취생몽사를 마시고 사랑의 기억을 잊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술을 마셔도 각인된 기억이 사라지지 않듯이 기억을 지우려는 술을 마셔봤자 헛일이고 잊기로 애쓰는 것도 사랑 앞에서는 더욱 헛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자는 왜 취생몽사라는 술을 보낸 걸까요?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잊었냐는 황약사의 질문에 자신은 가질 수는 없어도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취생몽사를 보낸 건 남자가 그걸 마시고 자기를 잊으라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생각해 달라는 사랑의 반어법인 겁니다.

이성복 시인의 [편지]라는 시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전해줄 방법이 없게 되자
자신이 편지를 전해줄 때까지 ‘잘 있지 말아요’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죠.

구양봉 역시도 여자가 보낸 ‘취생몽사’를 마시지 않습니다. 자신은 그녀가 복사꽃을 좋아했다는 사실만 기억할 거라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사랑했던 기억은 그대로이고 변하지 않는 사실이 되어 ‘추억’이란 이름으로 두고두고 남습니다. 기억은 왜곡되기도 하고 퇴색과 윤색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만의 사랑으로 자리 잡아 갑니다. 상대에게 잊혀 질지라도 사랑했던 사실, 좋아했던 기억들은 잔상으로 남아있게 된다는 것을 황량한 사막에서 깨달았던 거죠 . 결국 구양봉의 이 말은 죽어도 못 잊겠다는 독한 역설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추억)은 고정된 풍경이 아닌, 그것을 담는 자의 마음의 모양에 따라 변화되는 액체성의 풍경이니까요.

사랑했던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건, 가슴 깊이 아로새겨진 진한 노스탤지어인 동시에 그녀를 향한 밀어(은밀한 언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눈이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동사서독’의 취생몽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눈 내리는 날 잠들어 있던 기억하나 흔들어봅니다..^^
https://youtu.be/T0M75qsP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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