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편력은 네루가 인도 독립을 위해 반영투쟁을 하다
옥중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어린 딸에게
세계사 편지를 쓴 책이다.

읽다가 문득 글이라는 것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말하는 것보다 글로 말하거나
표현하는 걸 더 좋아하는데
자음과 모음이 만나 의미있는 한 자가 되고
모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곤 하는 한글이
재밌고 신기할 때가 많다.
그래서 간혹 오타가 있는 글자를 유심히 보기도 하고
가끔은 오타를 가장한 이상한 글자를 써놓고
혼자 히히덕 거리기도 한다.

중세국어를 공부하면서 15세기의 사람들이
소통하였을, 그러나 통용되지 않았을 훈민정음을 보며
한글의 변천사처럼 세상의 모든 일이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고
덧붙여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감옥에서도 어린 딸이 인도의 처해진 상황을
잊지 말라고 세계사를 편지로 썼던 네루는
후에 자신의 편지가 세계사의 소중한 쓸모로 남겨질 것을 알았을까? 후에 딸 역시도 인도의 여성 총리가 되었으니
결국 그의 편지는 쓸모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거겠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이 시간들이
내 인생에 어떤 쓸모가 있길래
나는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는 걸까
찬란한 가을의 풍경에서
일렁이는 은빛 물결이 눈에 들어와 박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퍼의 그림으로 이야기라는 옷을 입혔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탓인지
이야기가 어려운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행간이 많다.
시간이 여유로울 때
다시 읽어보려고 우선은 책꽂이 꽂아두기로...ㅜ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윙헤드 2017-10-25 1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을까하는데 좋은참고가 되었습니다:)
 
신화에게 길을 묻다 - 알기 쉽게 풀어쓴 그리스로마신화의 인생 메시지
송정림 지음, 이병률 사진 / 달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에 실패해서,
사랑을 잃어서,
병에 걸려서,
희망을 잃어버릴 이유는 많다.

하지만

희망은 절대로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희망을 버릴 뿐이다.

리처드 브리크너의 [망가진 날들]은
사고를 당해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야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다리가 없이 평생을 살아야한다는
좌절감에 그는 간병인에게 묻는다.

˝내게 미래가 있을까요?˝
간병인은 이렇게 말한다.
˝장대높이뛰기 선수로는 희망이 없죠.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무한대의 희망이 남아있어요.˝

한 가지 희망이 사라질 때
우리는 종종 모든 희망을 함께 버린다.
그러나
˝신은 한쪽 창문을 닫으면
다른 쪽 창문도 반드시 열어두신다.˝

한쪽 창문이 닫힌다고 해서
인생의 모든 창문을 닫아버릴 필요는 없으며
조금 실패했다고 해서
전부를 포기해버릴 필요는 없다.

지금의 실패는 아주 작은 바람에
흔들리며 떨어지는 낙엽처럼
사소한 것이며
낙엽이 땅에 묻혀
시간이 흐르면 땅의 영양분인
부엽토가 되어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주듯이
시간의 지혜 앞에서는
쉽게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지금의 시련이
떨어진 낙엽과 같지만
시간이 흘러 영양분이 되어
땅속에 흘러 들어가듯이
언젠가 삶은 비옥한 모습으로
당신의 창문을 열어줄지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_ 동굴 속 여인의 일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미의 정의는 무엇이고, 미와 추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무엇을 진정한 미라 할 수 있는가?

아름다움에 대해 알고 싶어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아름다움의 의미를 알기 위해 세상 곳곳을 여행했으나 어디서도 만족스러운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철학자와 종교인들은 추상적인 답변만 들려줄 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지혜로운 현자들이 산다는 히말라야로 발길을 향하게 되었고, 그곳의 어느 동굴에 아름다움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동안 험한 산길과 바
바위를 오른 끝에 남자는 높은 산정에 위치한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동굴은 어두워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동굴 안을 향해 소리치자 뜻밖에도 늙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엇을 원하는가?”

아름다움의 의미를 알기 위해 찾아왔다고 말하자 여인은 그를 동굴 안으로 초대했다. 사람들이 말한 현자는 늙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남자의 질문에 열정적으로 답했고, 그곳에서 그는 며칠 동안 생활하며 그녀로부터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모든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미의 개념과 정의, 미를 식별하는 법, 역사 속 미에 관한 다양한 이론 등 여인은 자신이 가진 지식 전체를 그에게 전수했다.

그런데 동굴 속 어둠에 차츰 눈이 익숙해진 남자는 어느 날 지금까지 봐 온 어떤 여성보다 추한 몰골을 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희미한 불 앞에 웅크린 그녀의 얼굴은 습기 찬 동굴 탓인지 온통 사마귀투성이인 데다 제멋대로 자란 덧니가 입술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동굴 안의 퀴퀴한 냄새도 그녀의 불행한 체취가 밴 것이었다. 등은 굽고, 눈동자는 공허하고, 이마는 주름으로 가득했다. 오랫동안 감지 않아 머리카락도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어두운 동굴 안에는 그녀의 모습을 비춰 볼 거울이 전무했다. 모닥불 불빛으로 인해 동굴 벽에 비친 그녀의 그림자가 전부였다. 그 그림자는 그녀의 실제 모습과 달리 신비로웠고, 여인은 자신의 손짓과 동작이 연출하는 그 아름다운 그림자에 매료된 듯했다.

아름다움에 관한 그녀의 지식은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웠다. 다만 그녀가 말할 수 없이 추한 모습이라는 사실이 슬프고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마침내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그녀의 아낌없는 가르침에 고마움을 느낀 남자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동안의 가르침에 무엇으로 보답하면 될까요?”

그녀가 말했다.

“나를 위해 그대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한 가지뿐이다. 세상으로 돌아가서 나에 대해 말할 때, 내가 매우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말해 달라.”

진실은 때로 그 뒤에 추한 거짓을 감추고 있다. 동굴 속 여인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지만 실체는 추한 몰골인 것처럼, 진리와 정의에 대해 완벽한 논리를 전개하지만 우리의 실제 모습은 그것과 거리가 멀 때가 많다.

작가인 나는 어떠한가? 내가 글에 담으려고 노력하는 아름다움과 나 자신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일치하는가? 인간적인 불완전함은 제외하더라도 내가 말하는 진리들이 나의 행동에서 스며 나오기를 나는 바란다. 글에 표현된 내가 본연의 나를 능가하지 않기를, 빛도 들어오지 않는 동굴 속이 아니라 푸른 하늘 아래서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나는 충분히 나 자신이기를 희망한다.

삶이 말을 걸어올 때 우리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의 정답이 아니라 자신의 정답을.

행복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행복에 이르는 길, 행복의 조건, 행복의 비밀에 관한 강의를 듣고 책들을 읽는다. 언제든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부족함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것과 삶이 베푸는 것에 자주 감탄하고 몰입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풀꽃 한 송이, 봄 햇살, 차 한 잔에서 감사와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가 외면하는 우선 순위에 드는 것들이다. 현실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논리만이 지배하는 세계에 갇혀 자기 목소리의 메아리에 도취한 동굴 속 여인은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알라딘 eBook (류시화-새는 날아갈때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는 5.18을 두고 북한군들이 개입된 남한의 폭동이라고도 한다. 지만원의 과학적?인 증거로 폭동이라 주장하는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박사가 되었을까 할 정도로 유아수준의 어휘사용과 억지, 추측이 난무하면서도 과학적이라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더 우스운 건 그것을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무리가 항상 있다는 것이다. 그런 무리로 5.18은 다시 폭동으로 둔갑하여 인터넷이라는 바다를 두둥실 떠다닌다. 지만원이 패소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유언비어가 떠도는 것은 어차피 사람들은 진실에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어야만 하는 잘못된 신념만이 그들을 지탱하고 있다. 


살면서 우리는 그런 경우를 자주 맞딱드린다.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앞장 서서 그 진실을 말하기가 힘든 경우를. 말하면 괜히 엮여서 피곤해 질 것 같고 , 먹고 살기도 힘든데 괜한 일에 목숨 걸게 되는 것 같은 선택의 상황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덜 피곤하고 목숨 걸지 않으면서 안전한 선택을 하려 한다. 


경기도에 사시는 부모님은 박정희의 열렬한 지지자들이었고,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 보편적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아주 철저한 보수적인 분들이셨다. 자식이 넷이나 되는 우리집의 명절 풍경은 철저히 보수적이신 부모님들과 이후 성인이 되어 머리가 깨일만큼  깨인 네 명의 자식들과 박정희 대통령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언제나 부모님은 자식을 이기지는 못하셨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늘 어두운 그림자와 공포 같은 것이 부모님께 느껴졌었다. 아마도 그 시대를 겪은 세대들에게 혁명이나 사회의 혼란은 견디기 힘든 시절들이었을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그저 그런 혼란스러운 두려움의 방패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을 목숨 걸어가며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 책으로 민주주의를 스폰지처럼 흡수하게 된 지식인들의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이후 5.18까지 번져가게 된 것이다. 


그 가운데 [영초언니]는 몸부림의 선봉에서 청춘을 저당잡힌 채 살아간 여성이다. 저자 서명숙은 영초언니와 함께 한 몇 안되는 조력자였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금생활을 하는 동안의 이야기들이 무엇보다 충격이고 감동적으로 읽혀진다. 고문과 협박,데모하는 이들에게 행해진 가혹한 행위들, 구치소에서의 인권 유린의 행위들을 픽션이 아닌 생생한 목격자를 통해 전해 듣자니 눈물이 책을 적시곤 했다. 


영초언니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떠오르게 했다. 영민하던 영초언니와 서울대 천재였던 문화형의 비극적인 삶은 그 시대를 외면하며 살아간 이들을 대신한 십자가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선택의 순간이 올 때 당장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비굴해지기도 하지만 누군가 십자가를 짊어짐으로 해서 다수는 면죄부를 받기도 한다. 영화 [택시운전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의 진실을 기억하듯이, 영초 언니로 인해 많은 이들이 그들의 삶을 이해해주길 바라며, 이들로 인해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진일보 해 왔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