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의 딸 - 맛있고 심플한 삶, 코즈모폴리탄의 이야기
나카가와 히데코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에서 프랑스요리 셰프인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럽게 음식문화의 다양성을 습득하고 자란 저자는<셰프의 딸>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아버지의 직업에 자랑스러움이 책의 곳곳에 배어있다. 저자 또한 일본인이지만 한국에서 스페인음식을 가르치는 요리 선생님이니 말그대로 코즈모폴리탄이다.  아버지가 서독의 일본대사관 전속 요리장으로 파견되면서 일곱 살때 서독으로 이주하여 3년뒤에 일본으로 되돌아와 학창시절을 보내고 다시 동독으로 유학을 떠난 후 스페인으로 다시 떠나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사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 중심에는 요리가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중심이 되는 한가지씩은 있는 것 같다. 저자는 현재 한국에서 스페인 음식을 가르치는 요리선생님이다. 셰프의 딸로서 어렸을 때부터 프랑스 요리에 익숙하지만 아버지가 싸준 전문가 냄새가 나는 도시락을 부끄럽게도 생각한 적도 있었다는 이야기들과 아기때 가지고 다니던 자그마한 도시락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어머니의 이야기, 플로리스트인 어머니께 요리와 꽂꽂이를 배우며 어렸을 적  물건들을 아직도 깨끗이 간직하고 계시는 어머니가 일본인으로서의 주체성을 잊지 말라고 늘 당부했던 일들의  소소함의 이야기들을 삶에서 기억되는 가장 큰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닌 소박하고 소소한 행복에서 온다는 것을 말한다.  어렸을 적부터 외국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며 부모님의 일본인이라는 주체성의 교육은 요리 선생을 하며 삶에 대해 감사하게 되고  자신의 삶이 요리와 함께 함으로 인해서 퐁요로왔다는 자기고백이 있다. 과거 소중한 순간들을 연상하면 바로 요리가 떠오른다고 말하듯이 그녀의 삶은 요리 그 자체의 삶이다.  

 

가끔 코즈모폴리탄의 책들을 보면 그들이 수용하고 있는 다양성이라는 세계관이 참 부럽곤 했다. 넘치는 에너지 자체로 연상되는 박칼린의 <그냥:)>이라는 에세이에서 다양성이라는 것에 대한 깨달음에 관한 말이 있는데 박칼린 또한 코즈모폴리탄으로서 세계의 다양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보는 세계는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상과 이념들의 다양성 한가운데에서도 그 모든 것들을 동시에 지니려 애쓰며 편견과 비판의 노예가 되지 않고 균형 한 가운데에 서 있으려 하는 것으로 그리고 그것은 어마어마한 열정이라는 에너지로 발산된다고 했던 박칼린의 말처럼 저자도 엄청난 열정을 발산하는 것을 볼 수 있다.코즈모폴리탄의 장점은 바로 그런 것이다. 다양성이 주는 세계를 체험함으로 인해 세상과 평등해지고 그것이 바로 열정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동독에서 사랑에 빠졌던 남학생의 나라가 궁금하다는 이유로 무작정 스페인으로 떠나고  서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연희동에 하숙을 구하는 등의 행동들이 바로 이 다양성이라는 것이 준 열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런 열정으로 인해 그녀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구평가원과 육군사관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쳤고 황혜성 선생님의 딸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에서 공부한 최초의 일본인 수강생이 되어 한식공부를 하기도 한다.  

 

내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문화의 다양성을 깨우쳐주고 싶다는 생각을 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머리싸매고 한국의 대학입시에만 목매는 교육문화에서 더 나아가 공부가 아니더라도 문화의 다양성을 깨우치는 것이 더 큰 공부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세계를 다양성이라는 시각으로 보게 된다면 오히려 그 다양성이 삶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란 것을 나는 책을 통해 깨달았다. 그것은 무척 값진 깨달음이다.

 책 중간중간 정말 다양하고 처음 들어보니 온갖 서양요리들이 소개되어 있으며 레시피도 있지만 사진이 없어 조금 아쉬움이 든다. 그래도 코즈모폴리탄의 열정을 느낄 수 있어서 무척 좋았던 책이다.  

 

저자가 요리가 삶의 중심이듯 내게는 책이 삶의 중심이다. 과거 어떤 일을 떠올리면 그 일과 관련한 책이 떠오른다.며칠 전부터 작은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한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배가 아파 새벽에도 계속 배마사지를 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또 노는 것은 잘 논다. 열도 안나고 화장실도 잘가고 밤만되면 배가 아프다고 하니 괜시리 근심이 들었는데 책에 나온 음식을 보고 아 !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든 음식이 있었다. 

유럽사람들은 몸이 아프거나 가볍게  식사하고 싶을 때 밀히라이스를 찾는다고 한다.밀히라이스는 작은 냄비에 쌀을 조금 넣고 우유를 적당량 부은뒤 마지막에 설탕을 넣어 약불에 보글보글 끓이는 음식인데 

아이 어렸을 적 이유식으로  타락죽을 해준적이 있는데  만드는 방법이 거의 같아서 깜짝 놀랐다. 

타락죽을 만들어주면 아이가 배 아픈것이 낫지 않을까 해서 부랴부랴 타락죽을 만들어 먹였다. 밥은 안먹는 아이가 타락죽을 먹고 나니 기운이 나는지 아직까지는 배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이렇게 앞으로 타락죽이 떠오르면 이 책이 떠오르지 않을까 한다. ^^

                                                                 <타락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1
초(정솔) 글.그림 / 북폴리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쁜 고양이는 없다>를 읽고 동물에 대한 애틋함이 들었는데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는 읽는 내내 코끝이 매워진다. 사람을 사랑하기도 힘든 세상에 동물을 향한 사랑을 이렇게 예쁘게 그려내다니...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운 책이다. 내 가여운 강아지 숑이도 떠오르게 만들어 나를 더욱 가슴아프게 만드는 책이기도 한...

 

손바닥만한 털복숭이 숑이를 키우게 된 건  숑이가 다른 강아지보다 작고 비실대서 오래 못 살거라며
짚단 위에 버려둔 것을 남편이 불쌍하다며 주어와 키우게 되었다. 정말 손 안의 강아지였다. 그런데 이가 너무 많아 이 잡느라 바뻤다. 조그마한게 움직이면 생명같지 않고 털뭉치가 굴러다니는 모양새라 그 귀여움에 끔뻑 넘어가 집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결혼 한지 5년만에 처음으로 임신하게 되자 숑이에 대한 사랑은 뒷전이 되었다. 시어머니는 집에 숑이가 굴러다니는 것을 못마땅해 하시고 고모들은 강아지를 방안에 키우는 것을 몹시 불결하게 여겼다. 게다가 배는 점점 불러오며 집에는 아기를 맞을 준비에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 숑이를 한 블록 위인 아버님 댁으로 보내버렸다. 집에서만 자란 숑이를 집지키는 개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한블록 위인 아버님댁에서 숑이는 나를 향해 짖다가 결국은 성대파열이 되어 벙어리개가 되어버렸다. 아기가 크면 다시 데리고 올 거라는 다짐을 했지만 결국은 데려오지 못한 숑이, 숑이는 언제나 나를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러고 보니 숑이도 많이 늙었겠구나...아직도 너의 그리움엔 항상 내가 있니? ...그렇게 나쁜 주인인데도...

 

책의 주인공 어린 고양이 순대와 열다섯이 된 늙은 개 낭낙이의 이야기는 그렇게 지나간 내 강아지를 떠올려 자꾸 가슴이 찡해지면서 눈물을 훔치게 된다. 동물과의 관계에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넓은 시골길에서 고양이가 갑자기 뛰어들어 죽었는데  고양이 배에는 새끼 다섯마리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고양이를 치지 않았으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도로는 거의 60km~80km로 달릴 수 있는 도로이기때문에 고양이를 피하려다가 달려오는 차를 박게 되면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 먼저냐, 고양이먼저냐, 하면 선택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바로 그런 점들이었다. 낭낙이나, 순대나,모두 버려진 강아지,고양이다. 이 책은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끔 만화를 그려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울리게 하는 감동이 있다.  현대 사람들은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이 없다. 과거 사람들은 나무가 자라고 새싹이 자라고 꽃이 피는 자연과 어우러져  언제나 생명을 바라보고 살았으며 가축과 공생하는 관계속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지척에서 느끼고 살았다. 삶자체가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점점 생명과는 멀어지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생명을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존재자체가 없는 것이다.  지나치게 동물이 사람보다 더하거나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물을 학대하고 생명에 대한 존귀함이 없이 자라는  젊은 세대들의 삶 또한 큰 문제이다. 시골에는 쫓겨난 개들이 동네를 배회하고 다니고 주인이 귀찮다고 버린 유기견들이 배고파 죽기도 하고 고양이는 수도 없이 차에 치여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개들을 위해서도 고양이를 위해서도 그냥 오늘도 차를 타고 길을 오갈뿐이다. 가끔 보이는 지저분한 개를 경멸하며 도로에 뻗어있는 고양이시체를 지나 오늘도 하루를 보내고 있는 내 모습에 이 책을 읽고 난 그냥 울어버렸다. 그것밖에 할 수 없는 내 현실이 안타까워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 ..-카프카-

 

책은 도끼다. 늘 나의 신경을 깨워주는 도끼. 첫 딸을 낳았을때, 아이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만 보아도 아이의 신경세포에 자극을 주며 그로인해 두뇌가 발달한다는 것을 책에서 읽고  어린 아가를 데리고 항상 동네 나무 앞을 서성거린 적이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아가와 내가 삶의 풍요를 누리기에는 충분했기에 그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기때 바람을 느끼며 자라서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는 둥근 보름달만 봐도 너무 이쁘다며 감탄을 하고 별만 봐도 다 자기를 축복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아이로 자랐다. 삶이 감동인 아이를 볼 때마다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광고일을 하는 저자가 2011년 2월 12일부터 6월 25일까지 강독회를 진행한 것을 책으로 출간한 것인데 이 책에는 왜 인문학을 읽어야하는지,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저자는 책읽기에 있어 '다독 컴플렉스'를 버리라고 한다.책 한권을 읽어도 책이 주는 강한 울림을 곱씹어 삼킬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다독가이다. 내가 다독가인 이유로 책의 울림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오산이다. 반대로 나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장르가 아닌 여러 장르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독가인 이유는 단순하게 세상에 좋은 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좋은 책은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시간을 줄여서라도 책을 읽어야 했다. 단지 그때문에 나는 다독가가 되었다. 그러나 물론 숫자를 채우기 위한 책읽기는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가슴을 울릴수 없으며 감동을 받을 수 없다면 도대체 왜 책을 읽는 걸까?

 

여기서 내가 느끼는 것은 인문학은 감동이란 것이다. 인문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나 역시도 인문학에 대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는데 책을 많이 접하다보니 자연히 인문학이란 것이 감동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삶, 즉 사람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 자신의 삶의 기능을 최대한 완벽하게 다듬어 자신의 삶에, 나아가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알랭 드 보통-

 

저자는 인문학을 삶의 풍요를 위한 훈련으로 표현한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하며 그 이야기가 씨앗이 되어 마음속에 싹이 틀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풍요로와진다는 것이다. 주변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고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다. 감동을 잘 받는다는 것은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김훈을 통해 들여다보는 자연과 일상의 표현, 알랭드 보통의 삶에 대한 대단한 통찰, 고은 시인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세상,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주는 의미와 사랑,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자유를 , 그 모든 것이 도끼와 같은 감동을 전해주는 울림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삶의 경이로움를 깨닫고 밤하늘의 별아래에서 삶의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는 삶. 그런 것이 우리를 가장 부유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는 감동,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시이불견 청이불문 (視而不見 聽而不聞)-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가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가 않고, 맛을 봐도 그 맛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음식문화박물지
황교익 지음 / 따비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서른이 되기까지 밥을 할 줄 몰랐다. 워낙 바빴던 탓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요리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싫어 사먹거나 사내식당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러던 내가 음식을 제대로 배워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은  프로그래머인 남편이 뜬금없이 식당을 운영하고 싶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도와주어야 했기에 밥 한 번 해 본적 없던 내가 요리를 배워야했다. 그러면서 한식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음식문화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봄여름가을겨울마다 자연에서 나는 것들에 관한 요리가 다 틀리고 한식은 마치 기다림의 미학을 인간에게 깨닫게 하려는 것처럼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완성되는 요리도 무척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양의 음식들은 즉석에서 바로 해먹을 수 있는 요리가 대부분이지만 한식은 봄에 담궈 가을에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가하면 여름내내 햇볕에 말려두었다가 겨울에야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계절마다 나는 산물이 풍부한 한국의 지리상특성은 어찌 보면 자연이 주는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음식은 자연에서 온다. <한국음식문화박물지> 이 책은 자연에서 나는 음식이 수천년을 흘러오면서 형성된 음식문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보고 한국음식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자 하는 의도로 집필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거창한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즐겨먹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먹고 있는 밥상 문화의 기본은 밥과 반찬이다. 이런 밥상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는데 밥과 반찬이라는 조합 앞에서는, 한국인의 모든 밥상을 평등하다라는 사상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 수천년을 이어온 계급사회에서 평민들이 밥 한 그릇이라도 편하게 먹기 위한 마음을 반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식민지 시대 일본이 한국의 많은 것을 변화시켰듯이 한국의 음식문화도 식민지시대를 전후하여 많은 변화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정식문화이다.

 

읽는 동안 저자의 촌철살인으로 날리는 말로 인하여 웃게 되는데 이천쌀이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한 쌀이라는 믿음에 많은 사람들이 이천 쌀을 먹고 있지만 이천 진상미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가장 일찍 수확할 수 있었던 벼의 품종때문이지만 그래도 한국인에게 중요한 것은 조선 왕이 받았을 수라를 연상하며 밥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삼겹살이 생겨난 배경을 따져보고 한국인에게는 삼겹살이라는 부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삼겹살이라는 그 이름이 중요한 것이고  닭갈비가 소갈비의 짝퉁이라는 것을 , 축산물 중에 달걀이 유독 브랜드 혼란이 심한 것은 달걀이 서민의 식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호떡이 한국인에게 원래부터 한국음식인 듯한 착각을 주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에 관하여 너무도  무지함을 말한다. 한 예로 2000년대 후반에 한국 정부가 떡볶이를 세계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우리가 먹는 떡볶이가 아닌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개조한 떡볶이를 내놓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벌건 고추장 떡볶이를 열심히 먹고 있지 개조한 떡볶이는 누군가 먹겠지 할 뿐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 떡볶이의 세계화를 외치면 환호할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무척 동감하며 읽었다.

 

우리나라가 잘 먹고 잘 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은 먹고 살기 힘든 시기를 지나왔고 일제 시대에는 농사를 지어도 쌀을 모두 상납하고 먹을 것이 없어 감자와 고구마를 먹고 살았던 시절도 있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시기를 지나오면서 이제는 그래도 잘사는 나라축에 속하지만 우리가 하나 잊고 있는 것이 있음을 저자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잘사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잘 살게 되었으며 우리의 음식의 진정한 가치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있는 것이다. 고추장,된장,김치라는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가 있음에도 일본에 한발 뒤쳐진 것도 모자라 진정 가치있는 것임에도 세계화에 맞추려 하다보니 그 진정한 맛을 살리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 하며  한국의 진정성을 찾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엿보인다. 우리의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자각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외국에 나갔다가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나라가 그렇게 좋은 나라일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우리의 것을 지키고 우리의 자연에서 나오는 좋은 식재료를 활용하여 세계속의 진정한 한국음식문화가 형성되기를 희망해보는 계기가 되어주는 아주 좋은 책이었다.  

 

 

한국인은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을 직시하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p172

한국전쟁 후 고난의 시대를 이겨 낸 당당함이 부대찌개 냄비에 끓고 있는 것이다.p190

도토리 향 하나 없는 물컹한 식감의 도토리묵을 앞에 놓고 고향의 뒷산을 추억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p200

한국인은 두부의 맛보다는 두부의 포장지에 찍힌 브랜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p202

한국인은 이제 전통의 콩 된장 맛을 더 어색해하고 있다.-p205

고추‘장’이 아니라 그냥 단맛이 나는 고추‘소스’인 것이다.-p211

매운 짬뽕이 번창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인의 미각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228

한국인이, 고종보다야 낫지만, 불쌍한 것이다.-p2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격동하는 시대 ,19세기 초 조선의 천주교박해를 다룬 소설이다. 서학은 서양학문으로 받아들여져 서양문물이 흘러들어오면서 주로 지식층들이 학문으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인데 정조때 이르러서 노론벽파가 자신의 정치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에 의해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집권자들의 정치에 의한 박해는 1만의 백성들의 피가 산천을 다 적시고 나서야 끝이 났다.
 

 소설은 정약전을 중심으로 그와 더불어 조카사위 황사영이 주가 된다. 소년등고를 한 황사영은 총명하고 맑고 순수하였는데 정약현의 사위로 처가집에서 삼형제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 중 정약종에 의해 천주교를 받아들인 뒤 조정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조선천주교회의 지도자가 된다. 배교의 조건으로 유배형으로 끝난 약전과 약용은 두번 다시 서학을 입에 담지 않는다. 또한 둘째 약종이 하늘을 바라보며 죽은 일도 마음엔 남아있어도 절대 기억하지 않으리라 한다.

 천한 신분이지만 아전노릇을 하며 횡령과 비리로 공명첩을 사서 포도청의 비장이 된 박차돌은 서학을 했다는 고발로 모진 고문을 받지만 떠돌이 새우젖장수를 하며 천주교 신자들을 밀고하는 이중첩자를 하는 조건으로 산다. 이중첩자를 하는 동안 어렸을 적 헤어진 동생 박한녀가 서학죄인으로 포도청에 잡혀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동생이 자신의 이름을 대면 자신에게도 죽음이 찾아올까 싶어 박한녀를 죽이기 위해 찾아간다. 어렸을 적 오빠를 부르던 목소리가 귀에서 맴돌지라도... 정약현의 노비였으나 면천된 김개동과 육손이, 기침이 들어 궁에서 쫓겨난 늙은 길갈녀, 마포나루에서 술과 음식을 팔았던 강사녀, 말을 끌고 길을 걸어간다고 해서 이름이 마노리, 상전인 교하현감과 아들에게 몸을 뺏긴 뒤 무작정 도망쳐 나온 아리, 모두가 서학죄인이다.


 흑산에 들어간 정약전은 새들이 높이 짖는 소리를 들으며 흑산에 살기로 한다. 섬에서 유일하게 글을 읽은 창대를 벗삼아 물고기를 관찰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스스럼없이 섬마을 사람들과 섞여 살아간다. 창대의 아버지가 고등어 다섯마리로 모진 매를 맞고 세금부담으로 섬을 몰래 떠나고 정약전은 섬과부 순매의 살에 몸을 실고, 그렇게 살수 없는 자리에서 눌러 앉아 살아가기로 한다.

 

 박웅현이 인문학 강의때 김훈을 미친 표현이라 말하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 했었는데 정말 김훈은 미친 작가이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속에 깊은 울음을 심어놓아 흐르게 할 수 있는 것인지... 글 한줄이 이해가지 않아 두번 읽어야 했고 의미를 알수 없어 세번 읽어야 했다. 사실 시간의 흐름과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표현하지 않음에도 어떻게 글 한줄에 이토록 많은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인지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정약전이 흑산에 유배가서 처음으로 게를 관찰하게 되었는데 게의 다리를 자르자 새다리가 돋아나는 것을 보고 혹독한 고문으로 다리뼈가 떨어져  나간  서학죄인들의 다리도 지금쯤이면 새다리가 돋아나기를 바라는 글귀에서 순간 멍해왔다. 삶의 고통과 아픔이란 것이 사람의 다리가 떨어져나가  다시 새다리가  돋아나는 것처럼  치유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아니면 서학이라는 권력과 정치 틈바구니속에서 죽어나간 서학인들이 게다리처럼 다시 살아나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삶이 온통 검을 흑黑에 둘러싸여 있어도 빛이 존재하는 자玆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울음이 흐르도록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물고기가 되어 삶이라는 바다에 닿으리라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자산어보 속에서 물고기들은 솟구쳐서 날아오르고 다른 이름밑으로 숨어들었다. 온통 검은 빛에 둘러싸여 있던 섬 흑산에서 물고기들의 사는 모습에서 빛이 된 자 玆의 이야기는 김훈의 아픔과 고통이 소설 속에 절절히 배여있다.

 

생선 내장에는, 땅의 꽃이나 잎이나 햇빛이나 노을과는 전혀 다른 수많은 색깔들이 포개져 있었다. 영롱한 원색도 있었고 뿌옇고 먼 색깔도 있었다. 순매는 그 내장들을 들여다보면서 물고기 세상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낯선 곳이겠거니 여겼다. 한 줌의 내장과 한 뼘의 지느러미를 작동시켜서 바다를 건너가고, 잡아먹고, 달아나고, 알을 낳고 정액을 뿌려서 번식하는 물고기들의 사는 짓거리가 순매는 눈물겨웠다.

 

흑은 무섭다. 흑산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걸 끊임없이 깨우친다. 자玆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