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서 나를 버티게 해준 것은 긍정의 말 한마디가 아니었다. 그런 건 금세 휘발해 버리고 더 큰 건조함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잦았다. 오히려 불확실성에 대한 적절한 긴장과 두려움, 누군가 지켜주지 않는다는 계산에서 비롯되는 신중함, 급변사태에 대한 신속한 임기응변 따위가 사는데 훨씬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손쉽고 값싼 위로는 잘 안하는 편이다. '할 수 있다'고도 잘 말하지 않는 편이다. 삶에서 그런 말은 응원보다는 의식해야 할 부담으로 작용했다. 나는 차라리 '그러다 안되면 어떡할래'를 같이 고민해주는 쪽을 선택했다. 나는 항상 희망찬 성공을 그리는 법 보다는 절망에서 살아남는 생존비법에 눈이 간다. 입구를 열어줄 수 없다면 퇴로를 마련해주는 쪽에 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싶다.
 

긍정의 미학에는 찾아볼 수 없는 비관의 물리학이 좋다. 사람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보다는 제때 즉각 사과하는 법을, 잘 버는 법보다 잘 쓰는 법을, 아프니까 청춘이라면 조금 덜 아프게 맞는 법을 가르쳐주는게 옳지 않을까? 호황에서 날개펴기 따위가 아니라, 저성장 대불황 시대에 알맞게 움추리는 법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지는 않을까? 청춘의 패기가 사그라든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가 바뀐 것이다. 오늘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비관의 힘이다.

2018-11-22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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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량이 솔직해지는 때가 있어. 오기로 버티고 부풀려 지어낸 스무 살의 주량과 헤어지는 거지. 그날의 우리 알콜 따위한테 지기 싫었잖아. 외로워도 슬퍼도 끝끝내 굳세 보이고 싶었잖아. 문제없어.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자연스런 생애주기니까. 몸이 늙어 버린 게 아니야. 비로소 마음이 내 한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거지. 편하잖아. 돈도 아끼고 시간도 남고.



어릴 때는 세상을 계산할 수 있었어. 이를테면 성적 같은 거 있잖아. 안 해서 그렇지 조금만 노력하면 그런 건 엇비슷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거니까. 어린 날의 세계는 좁잖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충분하지. 그치만 늘 세상은 나보다 한 박자씩 빨리 자라더라고. 이제 좀 컸다고 내 통제범위를 훌쩍 넘는 것들이 나보다 더 어깨가 넓더라. 괜찮아.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적당한 체념은 당연한 정서야. 몇 개는 그냥 던져버리자고. 남들이 알아서 줍겠지.



애도 어른도 아닌 시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 나는 요즘 “할 수 있어”란 말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어. 할 수 있다 말해놓고 못 하면 진짜 조빱 되는 거잖아. 그건 응원이 아니야 무책임이지. 그보다는 ‘나 이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입니다. 나에게 꿈과 희망을 팔지 마세요. 그런 거 안 사요. <절망에서 존버하기>라면 고민해볼게요. 잔소리는 무음 처리 가능한가요?’라고 누가 대신 말해줬으면 좋겠어.



뭘 못해도 괜찮고 하고 싶은 게 없어도 괜찮아.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지만,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간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비참한 과거 따위에 항소 같은 거 하지 말자고. 더는 인생을 갈아 넣는 무모한 도전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랄게. 억지로 늘린 주량은 너를 평생 괴롭힐 거야. 야망이나 낭만 따위가 의미 있는 건 적당히 먹고 살 때야. 그러니까 지금 당장 치킨을 시켜. 배가 부르면 좀 나을 거야. 너를 구원하는 건 어렴풋한 희망이 아니라 한 모금의 시원한 콜라라구.



사람이 갈 때까지 가버리면 남의 가난까지 부러워하게 되더라구. 누가 뭘 자랑하건 신경을 껐으면 해. 안 그래도 부족한 집중력 그런데 낭비하면 아깝잖아. 그보다는 온전히 네 행복에  집중해. 그게 뭔지 모른다면 사소한 소비나 흔한 과식이나 충동적인 구매도 좋아. 일상의 의미들이 너를 반겨 줄 거야. 기왕이면 책이나 영화도 찾아 봐. 거긴 대놓고 세상이치가 적혀있는 곳이니까. 급할 때 먹는 비타민 영양제 같은 그런 거야. 내가 쓴 거면 더 좋고. 그래도 허무하다고? 어쩔 수 없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니까. 그렇다면 그건 너의 문제가 아니야. 자본주의를 택한 인류의 업보인 거지.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주제 파악이 될 때 주량은 솔직해져. 사람에게는 모두 미래 가치라는 게 있잖아. 저성장시대 모두가 공평하게 불행한 세상에서, 성실히 납세하면서 뭐라도 해서 먹고 살고 있다면 그자체로 성공 인거야. 서로 흠잡고 탓하지 말자고. 여기까지가 떠날 때를 놓친 사람의 슬픈 방백이었어. 잘 읽었다면 글풍선 보내줘. 3천 원 정도면 나쁘지 않지? 나도 치킨 좀 먹자. 배달비가 모자라거든. [신한 110-427-817704 나호선] 

- 나호선 단편, <아모르파티>


2018-11-10 @PrismMaker

본 에세이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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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1-10 16: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풍선...... 언제 한번 치킨 사드릴게요. 아니지, 사드리는 게 아니라, 치킨으로 글값을 치를게요 ㅎㅎㅎ

프리즘메이커 2018-11-10 17:05   좋아요 2 | URL
얻어먹는 치킨도, 대가로 받는 치킨도 모두 환영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8-11-10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팍팍 박히네요^^

프리즘메이커 2018-11-10 20:10   좋아요 1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글로 밥은 못벌어먹어도 간식은 사먹을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ㅎㅎ
 


뫼르소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시큰둥하고 무덤덤하게 세상을 삽니다. 이미 가버린 과거의 추억보다 오늘의 기쁨이 중요합니다. 어제, 아니면 오늘 어머니가 죽었습니다만, 그것은 삶의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여인과 몸을 섞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 친구를 사귀는데, 그 친구의 치정문제에 엮입니다. 남의 싸움에 휘말린 뫼르소는 졸지에 아랍인을 죽여 재판을 받습니다. 칼날에 햇빛이 번뜩여 총을 쏘았답니다. 판결이 나옵니다. 사형.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뫼르소라는 한 이방인에 대해 카뮈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나는 다만, 이 책의 주인공은 유희에 참가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떻게 고작 몇 가지 전혀 관계없는 상황으로 한 인간의 내면과 인생 전반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원래 미친 사람이 결국 저질렀구나’를 원하는 사회의 시선은 뫼르소라는 사람의 인생을 제 입맛대로 짜 맞춥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솔직을 강요하는 세상의 위선, 이것이 바로 카뮈가 지적하는 ‘부조리’인 것이지요.


세상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믿는 의지의 인간형이 있습니다. 사는 거 마음대로 되는 게 몇 없으니, 큰 기대하지 말자 믿는 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할 수 있다’의 긍정형 인간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의 인간이 있다면, ‘꼭 뭐가 되어야 하오?’라고 반문하는 잘생긴 룸펜도 있습니다. 사소한 억울함을 풀지 못하면 도저히 잠 못 드는 사람, 귀찮음이 억울함에 앞서는 뫼르소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이방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오해의 간격이란 결코 좁힐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책은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합니다. 망막에 맺혀 마음을 거쳐 간 활자의 수만큼, 지면의 여백에 한 사람의 세계가 가득 채워지는 것. 그래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알 도리가 없는 타인의 내면을 부드럽게 훔쳐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가 고집스럽게 책을 읽는 이유입니다.


인간 내면의 복잡함, 세상만사의 우여곡절을 조금씩 알게 되면, 한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너무나 어려워집니다. 누군가는 예의 없이 함부로 넘기도, 벽에 숨기도 합니다.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읽고 싶습니다. 우리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가끔은 가깝게 하고 살자고 말입니다. 이방인들의 독서, 우리는 모두 경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저는 편견 덩어리에 앞으로도 성급한 실수를 반복하여 저지를 테지만, 적어도 한 권씩 거쳐 가는 책과의 만남 속에서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어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 어쩌면 조금도 가까워질 수 없는 당신과 나는 한 달에 한 걸음씩, 일 년이면 열 두 발자국이나 가까워질지 모른다는 묘한 설렘을 기대합니다. 당신의 서사를 탐냅니다. 한 이방인이 다른 이방인에게.

나호선 (정치외교학 석사 17)


본 서평은 필자가 <부대신문>에 기고한 것입니다.

http://weekly.pusan.ac.kr/news/articleView.html?idxno=7802&fbclid=IwAR0ETDqUgxjkuqMmIJT9hkWMglS-u-RltfdDdBrBFfhSZdMfCx6st1ZQO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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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는 사랑을 하고 싶다.
그 사랑에는 순서도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제 망설일 것도, 앞으로 달성할 것도 없다고.
그냥 만나서 함께 숨을 쉬자고. 그거면 됐다고.
또 한 번 기록한다.

2018.11.3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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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목록의 모든 음악이 물려버리는 때가 있지. 여태껏 좋다고 믿었던 취미와 취향이 모두 달아나버리는 거야. 그치만 불가항력이야. 달아나는 것을 애써 붙잡지 않는 성격을 갖춰두는 것도 중요해. 누가 내주는 지도 모르는 숙제만 열심히 하다가, 노력하며 살았는데 난 왜 이 모양이죠 하고 의심이 들쯤이면 늦어. 선택을 꼭 자기만 한다고 생각하지마. 내키지 않게 주어지는 선택이 더 많아. 인생이 원래 그런 것 같아. 낙심하라는 말이 아니야. 청유형과 명령문과 평서문은 큰 차이가 있어. 열심히 살되, 안돼도 그만. 뭐 크게 기대할 게 없다는 거지. 대체로 듣기 좋은 의지의 발산보다 보기 싫은 무기력이 사는데, 아니 버티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거야. 국어 시간에 이런 걸 역설이라 배웠는데, 아마 세상일이 마음만큼 안 풀릴 때마다 내 생각이 날 거야. 그건 시간이 가르칠 몫이니까. -2018.10.23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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