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성서와 금서 사이에서





쟁의 전장에서 원치 않게 지적 보증을 서야하는 억울한 책들이 다. 보통 이 책들은 이념 진영의 성서(Bible)로 불리는 데, 그 유명세와는 달리 제대로 읽은 사람이 드물다. 대표적으로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공산당 선언』이 그렇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쓰고 밀턴 프리드먼이 나중에 출판 50주년 기념 서문을 덧붙인 이 책『노예의 길』또한 그에 못지않은 악명(惡名)을 가졌다. 단순히 한 권의 책을 넘어서 방대한 세계관과 심오한 의미로 좌우 사상적 영토를 담았다지만, 세간에 오르내리는 건 오직 그 이름뿐이다.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는 다투지 않지만, 좌파와 우파는 늘 다툰다. 좌뇌와 우뇌는 각자의 영역을 도맡아 하나의 육신을 협력하여 다스리지만, 보수와 진보는 하나의 국가에 화해할 수 없는 세계관을 주입하기 위해 사사건건 다툰다. 이데올로기란 흡사 종교와 비슷한 속성을 가졌다. 그래서 종종 철학의 양극단은 서로의 성경에 사기죄의 혐의를 덧씌우곤 한다. 서로가 서로의 확신범이다. 양분되는 이념의 지형에서 빈번히 전투가 벌어진다.



2. 저기, 읽고 싸웁니까?



민주사회에서는 총칼대신 말글로 싸운다. 언어의 격투장에서는 뼈대가 부실한 의견은 도태되고 굳건한 의견은 채택된다. 완력의 전쟁이 아닌 지성의 논쟁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보일 지적 성실성을 요구받는다. 제대로 된 독해와 경청하는 자세. 사실검증과 충분한 논증, 숙고와 소화과정을 통해 나만의 정제된 의견을 표출할 지적 노동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경쟁과정에서 의견들이 더욱 세련되고 단련될 뿐만 아니라 그 수준이 고양되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그 책을 믿는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정작 그 책을 읽지 않고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논쟁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분명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는 동등히 보장되지만, 그 표현의 수준과 질이 동등한 것은 아니다. 반드시 논쟁에는 승부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책의 명성, 저자의 권위로 상대방의 정당한 의견을 묵살하는 '논쟁의 불로소득'을 누리며 '성전'에 임한다. 책에는 잘못이 없다. 책의 그 이름값이 실추되는 것은 종이에 적힌 내용보다는 추종자들의 무지의 소산일 가능성이 크다. 명성에 호소하는 논증방식이 이념의 십자군을 낳는 게다.





3. 『노예의 길』의 노예가 된 사람들




하이에크는 이 책에서 무수한 철학적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자연력을 최대한 쉽게 끌어 내는 시장 메카니즘과 경쟁의 원리, 인간의 인지능력의 한계와 계획의 불가능성,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양립불가능성 계획경제의 전체주의로의 경로의존성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진보적 성향에 가까운 필자가 '불온도서'『노예의 길』 을 읽고난 단상은 하이에크의 위험하지만 탄탄한 논지가 아닌, 하이에크를 받아들이는 어떤 세태에 관한 의구심이었다.


사상의 독재를 경계했던 하이에크와 노예가 되지 말라고 쓴 『노예의 길』이 정작 수많은 이념의 노예를 낳았다는 것을 그는 알까? 그의 책 노예의 길이 정작 또 다른 차원의 노예를 자처하는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것을 그는 알까? 정작 이념의 십자군들은 책의 가르침과 반대로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책의 복음을 전파하겠다며 앞장서는 이들이 외려 책을 펼쳐보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니 정말 아이러니 한 일이다. 상대방의 책은 물론, 자신들의 책마저 제대로 읽지 않았다. 생산적인 논쟁이 이뤄질 수 있을까?


아무래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끼리 도무지 말이 될 리가 없다. 이것이 지적 노동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정말 그 책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지, 그런 말을 했다면 제 맥락에 맞게 말뜻을 전달한 건지 확인하고 변명할 기회를 누군가는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나는 이 말 한마디를 던지기 위해 오늘도 피곤한 독서를 자처한다. "이념적으로 가장 편협한 자들이야말로 실은 지적으로 가장 게으른 자들이다."


-2018.04.13 @PrismMaker

※ 본 페이퍼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논문의 힘 - 공부의 시작과 끝, 논문 쓰기의 모든 것
김기란 지음 / 현실문화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와 나의 동생은 같은 배에서 나와 한 배에서 자랐지만,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외향적이지만 동생은 집돌이이며, 나는 골수 문돌이 정치학도이지만 그는 수학적 역량이 출중한 공학도이다. 그런데 선동에 능한 나의 영향을 어떻게 받았는지, 그 전자공학도가 갑작스레 복수전공으로 정치외교학과를 신청했다고 했다. 나와 밥상머리에서 주고 받은 토론이나 문제의식이 꽤나 신기하고 재밌었다고 했다. 동생은 나보다 강성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물었다. 선톡을 하는 경우가 잘 없는 데, 뜬금없이 선거제도가 왜이리 복잡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정치학 석사과정을 밟으면서도 그 질문에 대해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어, 적지않아 당황을 했더랬다. "음 글쎄..세상이 발전해서 제도도 같이 자랐나?" 터무니없는 대답을 했다. 동생은 나를 정외과 알파고라고 불렀었는데, 알파고 resign....


좀 기다리니 자기가 알아서 답을 내렸다. "아 그거네, 하도 독재 해쳐먹으니까 그거 못하게 할라고 반칙 막을라고 제도가 복잡해지는 거네. 꼼수를 못부리게 더 촘촘히 정교하게." 직관이자 통찰이자 현답이었다. 짜식. 군생활 잘하고 있으려나...형보다 먼저간 내 아우여... 날 놀리지 말거라..


책을 읽다 불현듯 이 일화가 떠올랐다. 논문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표절을 막기위해, 연구의 엄격한 윤리성을 확보하기 위해 절차와 규칙이 엄격하고 복잡해진 것이다. 엄격한 형식논리를 지켜야만 한 마디를 보탤 수 있다. 선행연구들의 도움을 받아 분과학문 나름의 체계에 맞춰 그 논리 구조를 지켜야지만 믿을 수 있는 '지식생산'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발전과 더불어 학문의 공적의미를 비롯해 볼 때 번거롭지만 불가피한 일이다.


논문은 화려한 문장력이나 세상을 뒤흔들 천재적 발상을 담는 글이 아니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하고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신뢰성 있는 방식으로 하는 과정을 뜻한다. 적어도 논문에서는 형식이 내용에 앞선다. 이것저것 재보고 뜯어보고 앞뒤를 가리면서, 엄격한 형식이 담보하는 윤리성 위에서 논리와 체계와 트렌드를 모두 갖춰야만 하는 일종의 종합예술인 셈이다. 


대학원에 복학했다. 엊그제 지도교수를 배정받아 다음학기면 학위논문 프로포절을 준비해야한다. 학위과정은 여전히 장인에게 기술을 배우는 도제식 시스템이기 때문에, 설계론이나 방법론은 체계적인 학습과정이 있다기 보다는 따로 찾아 물어물어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샀다. 그래도 내가 논문 쓸 쯤 나와서 다행이다. 까마득 했는 데, 그래도 그 규칙에 대해 갈피를 잡은 것 같다. 


-2018.03.28 @PrismMaker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3-29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9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 국회의원 세비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관해서


1. 국회의원 세비는 금권정을 막는 안전비용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월급에 관해 이런저런 말이 많다. 청와대 청원엔 27만 명이 서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세비를 깎자는 쪽엔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국회의원의 안정적인 세비를 '금권정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막'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흙수저들도 정치할 수 있도록 만든, 노동계급의 피나는 노력이자 참정권 영역에서의 기회의 평등이기도 하다고 알고 있다.

    

만약 국회의원 연봉이 연 2천이라면, 악덕 기업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국회의원을 매수하는데 드는 돈이 연 2천만 원 밖에 안 든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명절마다 떡값(이라쓰고 뒷돈이라 읽는다) 쥐여주면 우리는 X파일 시즌 2, 3, 4... 시리즈물로 볼 수 있을 거다. 국회의원 세비 제도는 엄한 데서 검은돈 받느니, 그럴 바에 국민이 합법적으로 국고에서 액수를 정하자는 거다. 김영란법처럼 말이다. 그대신 뒷돈 걸리는 순간 얄짤없이 의원직 날아가고 감옥 가는 거고. (감옥 갈 일 했으면 받은 돈 도로 몇 배로 토해내게 하는 건 적극 찬성한다)

 

민주공화국에서는 권력이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것은 현실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당위를 적어둔 것이다. 권력이 특정 지역, 특정 계층, 특정 계급을 위해 복무하지 않도록, 공익을 해치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해둔 것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세비는 그 안전비용 중 하나다.    

 

 

2. 세비를 아끼면 좋은 정치인일까?

 


              (@ 세계일보)


   

자기 세비를 기부한 정치인이 있었다. 이명박이다. 이명박이 착해서? 아니다 굳이 국민에게 빚져 가며 정치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다. 그래서 제 맘대로 정치했다. 눈치 안보고 어차피 자기 돈, 자기가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돈으로 자기 정치하면 되니까. 그걸 원해서 청와대에 27만 명이나 청원하는 것은 아니었을 테다.

  

 

  

반면에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돈이 부족해서 책 팔러 전국을 바삐 돌아다녀야 했다. 유시민 같은 글쟁이도 펀드 만들고 별 궁리를 다 해서 자금 만들고 했다. 여하튼 능력 있는 흙수저들은 생계와 정치, 두 탕을 뛰면서 하라는 소린데... 세비는 가난한 정치인에게는 기회를 주는 것이고, 부유한 정치인에게는 의도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빚을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세비를 깎자는 말을 나는 진보가 아니라 퇴행이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런 말이 대한민국을 지주공화국으로 만들자와 같은 소리로 들린다.

   


 (@연합뉴스)


3. 잘못은 세비가 아니라 나쁜 정치인을 자꾸 당선시키는 제도와 지역주의에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국민이 국회의원의 최대주주여야 한다. 외려 국회의원 숫자가 늘고 세비가 일정이상 국고에서 나와야 기업이 관리를 못 한다. 국회의원의 자금줄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게 대의제 원리에 합치된다. 또 이 말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 헌법 제 12항 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모든 권력과 자금은 기업에서 혹은 내가 잘 벌어서 나온다. 내가 잘났으니 시혜의 개념으로 봉사도 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이명박이 상징하는 특권층들의 귀족정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반된다. 부자건 빈자건 같은 보수 받고 같은 원리에 따라 의회에서 앉아 글과 말로 정치하는 거다. 그게 민주정치다.

  

부패한 정치인은 안 뽑으면 되는 것이고, 문제가 있다면 세비가 아니라 그들을 자꾸 당선시키는 지역주의, 선거구 제도에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세비는 적어도 기업의 뒷돈을 틀어막진 못해도 상쇄하는 효과는 있다. 세비도 받고 뒷돈도 챙긴다면 수사를 강화하고 몇 배로 징벌하는 제도를 신설하면 되는 것이다. 발전은 기본을 토대로 하는 것이지, 기본을 해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울컥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하겠으나,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짚은 논의가 아닐까?

 

[별첨1] 노르딕 국가의 국회의원이 무료 봉사직인 것은 그 나라가 복지제도로 기본적인 생계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인구가 고작 500~1천만 남짓한 소국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근거로 들려면, 국회의원의 세비가아니라 한국의 열악한 복지제도와 넘치는 인구규모를 책잡아야 한다.


[별첨2] 아테네 추첨제 이야기 하시는 분들은 아테네의 지리적 크기와 인구 규모를 우선 고려해야하며, 추첨제를 위해 솔론과 페리클래스가 어떠한 재정적,정치적 개혁을 이끌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시는 것을 권한다.


[별첨3] 한국은 인구와 경제 규모에 비해 국회의원수가 적은 실정이다. 보좌관의 숫자는 더 적다. 국정 감사기간에 행정부 100만 공무원과 맞서는 보좌관의 수는 다 끌어모아야 2천명이 안된다. 이래서는 행정부의 비리를 적발할 수가 없다. 3권분립의 강화를 위해서, 행정국가화를 막기 위해서 국회의원의 정족수 증가 및 보좌관 증원 조치, 국회도서관 사서 및 연구원 추가 채용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2018.02.17 @PrismMaker

※본 칼럼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ransient-guest 2018-02-17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우 베리 그냥 옳소!! 문제제기를 하는건 좋은데 본질을 놓지는 득

프리즘메이커 2018-02-18 05:05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그만큼 우리정치가 실망감을 많이 주기도 했구요. 그러나 우리 시민들은 달라야겠죠!!

곰곰생각하는발 2018-02-17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명박 !

프리즘메이커 2018-02-18 05:05   좋아요 0 | URL
잔머리로 어디까지 정치할 수 있을지를 끝까지 보여준 그...

syo 2018-02-17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합니다 프메님♡

프리즘메이커 2018-02-18 05:05   좋아요 0 | URL
히힛...!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좀 된 책이다. 여기 사례로 나오는 07학번은 이미 30대가 되었고, 09학번은 김광석의 노래가 절절히 와닿을 스물아홉이 되었다. 그 사이 힐링 열풍과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 그러나 이 책이 지적하는 20대들의 차별의 위계질서는 여전히 강고하다. 해서 좀 된 책이 오히려 숙성된 묵은 맛을 깊게 드리운다. 책에게는 여전히 읽힐 가치가 있다는 데서 행운이지만, 사회 전체에는 여전히 같은 문제를 더 심하게 앓고 있다는 데서 불행일 것이다.




존재감과 인정욕, 남들과 달라지고 싶은 차별화가 낳는 차별. 그렇게 탄생한 투명한 골품제.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야 어찌됐든'이 윗세대의 차별이었다면, '과정이 공정했다면 결과야 어찌됐든 받아들여야'가 우리 시대의 차별이다. 한번의 노력이 평생 가길 원하는, 마치 그 기업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것 마냥 자기소개서에 소설을 꾸며 적는 것이 우리들의 마지막 문학 수업인, 생존과 자아실현을 동시에 이룩하고자 하나 어느 하나도 제대로 허락치 않는 시대에 고생하는, 바닥의 기준이 워낙 높아져 위대하기보다 평범해지기 조차 어려운 20대의 자화상을 담고 있다.



서술은 구어체에 가깝게 쉽게 쓰여져 있다. 눈의 흐름 그대로 읽어 나갈 수 있다. 뿐만아니라 저자의 경험과 저자가 표집한 사례들이 나는 20대의 대표성을 뚜렷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다니면서 한번쯤 보아왔을 그런 사례들 말이다. 이렇게 가끔은 구성원 밖에 있는 사람이 내부자보다 더욱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내가 대학에 20대로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편향이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비웃음과 조롱, '니 주제에?' 주제파악이라 적고 깔봄이라고 읽히는 냉소의 연쇄가 학력의 위계질서를 타고 20대의 말초신경과 무의식까지 잡아먹은 것이다. 각자가 뭘하든, 어디서 얼마를 벌든, 좀 존중해주면 어디 덧날까? 자기 인생. 손 안벌리고 스스로 책임지고 있다는 것, 그 발버둥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아 마땅한데 말이다. 치열하게 깔보는 소리 좀 이제 그만 들을 순 없을까?



-본 리뷰와 리뷰 속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희망은 ‘뜨거운 가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돈이 있어야지만 가슴도 뜨거워질 수 있단 얘기다. p.212

이처럼 아무도 ‘키‘라는 걸 경쟁의 잣대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키‘는 경쟁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p.216

그렇게 ‘힐링‘이라는 단어가 굳이 필요 없는 세상이 등장할 때, ‘아픈 청춘‘의 수는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p.2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