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제 이십 대도 얼마 안남았네요. 그래도 다시 십 대나 이십 대 초반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만큼 살아냈으면 됐다 싶어서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주변에서 많이들 도와준 덕입니다. 이것을 어찌 다 갚을까요.


1월 10일에는 제 첫 책이 나옵니다. 내일 최종심만 어떻게 잘 넘긴다면 2월에는 아마도 정치학 석사라는 학위가 하나 생기겠지요. 그리고 3월 중에 육군 정훈병으로 미뤄둔 입대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 한다고 계획했던 것들을 얼추 끝내갑니다. 이제 남은 제 이십 대 2년은 미뤄둔 숙제를 하러 갈 차례입니다. 제 얼마 안남은 이십 대의 자유를 담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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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1-03 0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리즘메이커님 책 출간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프리즘메이커 2020-01-04 00:16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초딩 2020-01-03 0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축하드립니다!

프리즘메이커 2020-01-04 00:17   좋아요 0 | URL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비연 2020-01-03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프리즘메이커 2020-01-04 00:17   좋아요 0 | URL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blanca 2020-01-03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알차게 보낸 한 해로군요!

프리즘메이커 2020-01-04 00:18   좋아요 0 | URL
정신없이 지나갔지만 학위도 받고, 책도 내고 결실을 낸 한 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01-03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리즘메이커 2020-01-04 00:2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좋은 덕담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출간이 전환점에 서 있는 제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음 써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vita 2020-01-03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출간 축하드립니다! :)

프리즘메이커 2020-01-04 00:21   좋아요 0 | URL
수연님 감사합니다!! 올 한 해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쓰고 있는 책의 원고가 교정작업에 들어갔다. <여문책>에서 내 첫 책이 나올 예정이다. 20대 청년의 눈으로 세상과 고전을 읽는 일종의 인문 에세이다.
 
책을 내면서 많이 배운다. 책 한 권에 글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책 한 권 나오는데 여러사람의 상당한 노동이 들어간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고 있다. 책을 읽기만 할 때는 전혀 몰랐었다.
 

편집 과정에서 지적해주신 내용이 무척이나 도움이 된다. 나의 잘못된 글쓰기 습관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논문을 쓰다보니 번역투가 옮아 간 것들이나, 불분명한 표현들을 잘 잡아주셨다.
 

스무 살의 목표는 딱 두 가지였다. 서른이 되기 전에 내 이름으로 된 논문 한 편과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 대학원 휴학을 하면서 원고를 써 작년 여름에 출간계약을 했고, 이제 고지가 눈 앞에 있다.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 정말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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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된 세상의 비릿한 죽음을 애도하며


언젠가 평론가 신형철이 이렇게 말했다. 죽은 노무현은 희화화할 수 있어도, 노무현의 죽음은 희화화해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극단적인 폭력이자 시신의 훼손이라고 말이다. 이 한 구절을 두고 나는 한국 사회의 몇 가지 도착과 그 비극적 결말을 떠올린다.

먼저 사퇴한 조국을 비웃을 수는 있어도 조국의 사퇴는 비웃을 수 없다. 개인으로서 조국 일가가 몇몇 얄미운 짓으로 인한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면야 충분히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개혁을 하려다 개혁대상의 폭력적인 압력에 못 이겨 물러난 그의 사퇴를 조롱할 수는 없다. 사퇴한 조국은 흠결 있는 개인이지만, 조국의 사퇴는 기득권에 의한 개혁 의지의 축출이기 때문이다.


하나 더 있다. 설리의 죽음은 그 자체로 한 개인의, 나아가 한국 사회가 낳은 비극이다. 그러나 언론이 죽은 설리의 사진을 찍어 전시하는 행위는 그보다 더 큰 비극이다. 그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비윤리다. 아니 몰윤리다. 이는 한 인간의 죽음을 극단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이자, 개념으로서의 인간의 존엄 그 자체를 망가뜨리는 행위기 때문이다. 사체를 전시하여 돈벌이로 삼는 짓은 결코 언론의 자유가 될 수 없다.

또 하나의 비극이 더 발생했다. 구하라의 죽음이다. 노무현의 죽음과 조국의 사퇴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면, 이 두 죽음은 사선의 근처에 있던 모두가 염려하던 예견된 죽음이었다. 우리 사회 모두가 한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연이어 목격하였다. 끝끝내 82년생 김지영에게 부정했던 혐오는 94년생 설리와 91년생 구하라에겐 엄연히 실존했던 폭력이었다. 죽은 구하라는 법의 '복수'를 기대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와 자유로운 인신공격, 죽음으로 이끈 표현과 죽음이 다 표현하지 못한 이 세상의 부조리들. 도착된 세상에서 죽어가는 이들과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비릿함. 인터넷의 몇 바이트 남짓한 활자가 그녀들의 가슴에 남긴 것을 보아라. 우리 시대의 칼은 6인치의 액정과 108자의 키보드다. 연예인은 보호받지 못한 노동자였고, 악플은 산업재해였다.


정치의 발전은 누군가를 축출해서, 의식의 발전은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쫓아야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왜 이 세상은 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을 세상에서 쫓아내고자 하는가. 왜 자꾸 세상은 누군가의 부재로 존재의 소중함을 깨우치려 하는가. 죽음이 윤리의 교본이 되기 전에, 윤리가 죽음을 막아주어야 하지 않는가. 또 한 번 보아라. 모든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시대 어느 한 귀퉁이가 썩어가는 대한민국에서 모두들 안녕들 하시길 바란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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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고문입니다. 

<반일 종족주의> 이전부터 한번 총체적으로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15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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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치하겠다는 청년들은 하나같이 양복 차림일까? 교복도 자율화가 이루어진 마당에 ‘양복의 교복화’ 현상이 눈에 자꾸 밟힌다. 두발 규제도 사라진 마당에 2대 8의 머리칼 분배는 국정 가르마라도 되는 것인가. 도덕 교과서적인 발성법은 어째서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연장자를 예우하고자 빼입었다는 궁색한 대답은 듣고 싶지가 않다. 청년 세대의 정치혐오를 생각할 때면, 나는 왜 정치 지망생들의 차림새부터 떠올리는 것일까?




정치가 영화와 닮았다면, 정치 지망생들도 ‘정치인’이라는 캐릭터를 해석한다. 문제는 그 해석이 양복에 갇혔다는 것이다. 빈약하고 획일적이며 낡은 내가 난다. 으레 정치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지레짐작들이 모여 굳어진 일종의 업계 상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눈여겨볼 점은 젊은 정치 지망생이 기존 문법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오히려 강박적으로 선호한다는 점이다. 다 큰 어른에 대한 복장 지적이 양복이 상징하는 비릿한 청년 정치의 한 단면으로 드러났으면 한다.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가장 기분 나쁜 순간은 “시장은 유능하고 정치는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다. 그러나 현실을 직접 목도하고 있노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최소 인재풀에서 만큼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공시생이 시험공부를 할 때, 취준생이 사회 경험을 쌓을 때, 정치 지망생은 자신의 시간을 어디에 투자했을까? 행사에 기웃거려 가방을 들고, 술잔을 따르며 불콰한 사진 찍는 허드렛일 외에 특기할 것이 없다. 이른바 ‘존재 노동’도 노동이라면 노동이지만, 이력서의 공란처럼 헛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 일회용 존재 노동의 필수품이 양복이라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실제로 청년 정치 지망생은 동년배 취업 준비생보다 확연히 스펙과 역량이 뒤떨어진다. 사실 청년이라는 기회를 이용했으나 사실 그게 전부기 때문이다. 어리다고 하대 받을 이유가 없다면, 사실 젊어서 우대받을 이유도 없다. 젊음은 사회가 특별히 배려하는 하나의 상태일 뿐이지, 정치의 이유나 자격이 될 수 없다. 생물학적 청년이 꼭 청년의 사회 문제를 잘 푼다는 보장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귀속된 정체성이기보다는 자질과 능력이다. 무엇이든 업(業)이 되려면, 시각이 독특하거나, 컨텐츠가 새롭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남들 하는 것을 더 잘해야 한다. 정치도 그렇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청춘이면 아파야 한다로 둔갑하더니, 청년 정치가 필요하다니까 정치 청년들만 몰려온다. 청년성을 양복에 포장하는데 급급한 정치풍토의 범람에서, 나는 공부하는 청년 정치인을 보고 싶다. 기성 정치인은 학창 시절 사회 운동에 전념하느라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손 쳐도, 우리가 이끌어갈 새로운 시대의 정치인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자기자본과 원천기술 없는 기업이 오래 버티지 못하듯이, 자기 분야가 없는 청년 정치인이 자라 정치 자영업자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청년을 위한 것과 청년에 의한 것은 다른 개념이다. 준비 부족이 기회 부족의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 세상이 청년 정치를 일회용으로 소비할지라도, 정치 지망생들은 배움을 멈춰선 안 된다. 그래서 한 정치학도가 다른 정치 지망생들에게 감히 고하고 싶다. 취준생들과 자신을 구별 짓기 전에, 최소한 취준생만큼은 공부하시라고. 적어도 알맹이 없는 정치의 시대는 우리 손으로 끝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나호선(정치외교학 석사 17)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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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본문은 필자가 <부대신문>에 보낸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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