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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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발굴단


         본 코너에서는 제가 읽은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을 기록합니다.

왜 선정했는지 뭐가 좋았는지에 관한 제 의견이나 코멘트를 따로 덧붙이지 않고,

단순하게 기록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추려낸 부분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그의 반응은 시끄러운 아이한테 들볶이는 성마른 노인의 그것 같다. "너 왜 자꾸 펄쩍펄쩍 뛰어다니냐? 왜 나처럼 가만히 앚아 있질 못하지?" 노인은 한편으로는 옳다. 하지만 문제는 노인이 잃어버린 감각을 아이는 팔다리로 느낀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있다는 걸 안다면 노인은 짜증만 늘게 될 것이며, 가능하면 아이를 노인처럼 만들어버리려고 할 것이다. pp.358-359




<정말, 정말 좋았지>


나는 침대를 적시는 게 (a) 나쁜 짓이면서 (b) 내 통제력을 벗어난 일임을 알았다. 두 번째 사실은 내가 개인적으로 자각하고 있었고, 첫 번째는 의문도 갖지 않던 바였다. 떄문에 저지르는지도 모르면서, 저지르고 싶지도 않으면서, 그리고 피할 수도 없으면서 죄를 저지르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죄는 누가 저지르는 무엇이기만 한 게 아니었다. 누구에게 그냥 일어날 수도 있는 무엇이었던 것이다. p.378


세인트 시프리언스의 경우에는 솔직히 모든 게 일종의 신용 사기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는 인상을 심사위원에게 심어줄 것들만 배우고, 뇌에 부담이 되는 것들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었다. p.384


당하는 건 가난하지만 '재주'는 있는 아이였다. p.387


자기 어린 시절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과장과 자기연민을 경계해야 한다. p.400


나는 사람이 자기 의지와 어긋나게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일찌감치 알게 되었으며, 머지않아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도 그게 왜 잘못됐는지도 모르면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p.406


그런데 최상층이 정말 부러운 것은 젊을 때 부유하다는 점이었다. 나처럼 야심 있는 중산층이나 시험 합격자 같은 사람들에겐 삭막하고 수고스러운 유형의 성공만 가능했다. p.414


생존 본능이란 것이었다. 약하고, 못 생기고, 겁 많고, 냄새나고, 그럴싸한 데라곤 없는 존재일지라도 살고 싶으며 나름대로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p.422




<작가와 리바이어던>


과학적인 것이든 유토피아적인 것이든, 모든 좌파 이데올로기는 당장 권력을 잡는다는 기대를 갖지 않았던 사람들이 발전시킨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였다. 달리 말해 왕이나 정부, 법, 감옥, 경찰력,군대, 깃발,국경,애국주의,종교, 기존의 도덕관을, 그리고 사실상 모든 질서를 철저히 경멸하는 이념이었던 것이다. pp. 440-441


그런 '특정' 압제, 즉 자본주의만 전복하면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 생각하기 쉬웠다. 더욱이, 좌파는 자유주의로부터 확연히 의심스러운 믿음을 이어받았다. 그것은 진실이 널리 알려지면 박해는 절로 패퇴하리라는, 혹은 인간은 본래 선량하며 외부 환경 때문에 부패하는 것일 뿐이라는 믿음이었다. p.441


그런데 좌파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지지자들을 실망시킨다. 왜냐하면 그들이 약속했던 번영이 달성 가능한 것이라 해도, 국민에게 진작에 말해준 적이 거의 없는 불편한 이행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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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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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정했는지 뭐가 좋았는지에 관한 제 의견이나 코멘트를 따로 덧붙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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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쏘다>


교수대까지는 40야드 정도가 남았다. 나는 바로 앞에 걸어가는 죄수의 갈색 등을 지켜보았다. (˙˙˙) 그리고 한 번, 어깨를 한쪽씩 붙든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는 도중에 있는 물웅덩이를 피하느라 살짝 옆으로 비켜갔다.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 내장은 음식물을 소화하고, 피부는 재생하고, 손톱은 자라고, 조직은 계속 생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리하여 사람 하나가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그만큼 누추해질 것이었다.

pp.25-26


그 때 나는 내가 결국엔 코끼리를 쏴야 한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사람들이 내가 그러리라 기대하고 있었으니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2000명의 의지가 나를 거역할 수 없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p.37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는 자신의 이해관계가 막히는 지점까지만 진정으로 자유주의적이다. 그들은 "능력에 따른 지위"란 말이 뜻하는 정도의 진보를 지지하는 것이다. p.55


심각한 비상사태가 벌어질 경우, 대중전선에 내재된 모순은 절로 모습을 내보이게 되어 있다. 노동자도 부르주아도 파시즘에 맞서 싸우긴 하되, 둘이 같은 것을 위해 싸우는 건 아닌 까닭이다. 다시 말해 부르주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즉 자본주의를 위해 싸우며, 노동자는 문제를 이해하는 한 사회주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p.55




<좌든 우든 나의 조국>


물론 유치하긴 하지만, 나는 너무 '계몽'되어서 가장 일상적인 정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좌파 지식인처럼 되느니 그런 식의 훈육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p.85


<영국, 당신의 영국>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대단히 문명화된 인간들이 내 머리 위로 날아다니며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 (˙˙˙) 그들은 흔히 말하듯 "자기 임무를 수행할 뿐"인 것이다. 나는 그들 대부분이 사생활에서는 살인을 저지른다는 건 꿈도 못 꿀 선량하고 준법정신 투철한 시민임을 의심치 않는다. 반면에 그들 중 하나가 폭탄을 잘 떨어뜨려 나를 산산조각 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가 그 때문에 특별히 잠을 못 이룰 리도 없을 것이다. p.87


애국주의, 즉 국민적 충심이 갖는 압도적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오늘의 세계를 제대로 볼 수는 없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들의 나라에서 권좌에 오른 가장 큰 비결은, 그들은 이 사실을 파악했고 그들의 적은 그러지 못했다는 데 있다. p.88




<민족주의 비망록>


아무리 공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 해도 갑자기 고약한 열성 당원으로 돌변할 수 있으며, 상대를 '제압'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자기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얼마나 많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지에 대해선 무심해질 수 있다. pp.203-204


평화주의자. 폭력을 '포기' 하는 사람은 남들이 그를 대신해 폭력을 저지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p.205


<나는 왜 쓰는가>


나는 나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나날이 겪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p.289-290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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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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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정했는지 뭐가 좋았는지에 관한 제 의견이나 코멘트를 따로 덧붙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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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세 가지 적과 맞서게 되지. 첫 번째는 그 시도와 정반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두 번째는 똑같이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지. 이들은 자네가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생각하고 자네를 때려눕힐 때를 엿보고 있다가 순식간에 자네 아이디어를 베껴 버린다네. 세 번째는 아무것도 하지는 않으면서 일체의 변화와 독창적인 시도에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다수의 사람들이지. 세 번째 부류가 수적으로 가장 우세하고, 또 가장 악착같이 달려들어 자네의 프로젝트를 방해할 걸세.

pp.50-51





나는 지금 두려움과 미신, 어리석음을 이용해서 획득한 당신들의 기득권 보호를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부모 세대에도 그랬다는 단 한 가지 핑계를 대며 비효율적이고 해로운데다 위험하기까지 한 행동양식을 반복하는 당신들의 전통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지금 인간이라는 종의 생존을 말하고 있습니다. 현명하다는 것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언제나 무기력한 합의 속에 갇혀 있는 다수의 뜻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p.116


이런 시련들을 기회라고 생각합시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착착 풀리리라고 생각했소?

p.122




보수 반동적인 자들이지. 순식간에 우리가 그들의 새로운 증오의 대상이 된 거요. 대중들한테는 항상 누군가 증오할 대상을 만들어 줘야 하는 법이지.

p.145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인간형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소. 성공하는 인간과 실패하는 인간.

p.145

질투심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추동력 중 하나가 아닙니까. p.161



불만에 찬 물고기들 말이오. 물속에서 사는 게 편치 않았던 물고기들. 편안함을 느낀다면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생길 이유가 전혀 없겠지. 고통만이 우리를 일깨우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모든 것을 대하게 만들지요. p.175


"나는 우리가 고통 없이도 진화할 수 있다고 믿어요."

자베트가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소.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진보는 항상 고통 속에서만 가능했소.……

일종의 습성인 셈이지."

"습성은 바꿀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겠소." pp.175-176



우주선 내에서의 일은 <누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발적 의사를 존중하여 분배되었다. 가장 고된 일들을 분배하는 데 있어서는 아드리앵이 약간 다른 방식을 도입하였다. <힘든 일일수록 노동 시간이 줄어든다>는 법칙이었다. 힘든 일을 택한 사람은 하루에 몇 시간만 일을 하면 되었다. p.214



다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을걸. 페스트, 콜레라, 세계 대전, 노예 제도가 있었던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은 최악의 시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모든 세대마다 예전보다는 나아졌고 다음 세대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 어쩌면 결국 상황은 언제나 똑같을지 몰라. 단지 우리 시대는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끔찍하게 생각되는 거지. 그러니까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어. p. 220


"그럼 도대체 당신이 생각하는 용기라는 건 뭐지?"

"남아서 투쟁하는 것."

"이길 가능성이 있을 때 투쟁하는 거야. 지구에 남아 있었더라면 우리는 시련을 겪으며 자멸하는 인류의 모습을 두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거야."

이브가 입 벽을 깨물었다.

" 끝까지 노력해 보지 않은 건지도 몰라." p.220





실수를 저질러 놓고도 굳건한 모습을 보이는 게 진실을 확보해 놓고도 흔들리는 것보다 낫지. 회의를 품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거든.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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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메이커 2018-01-13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의로 시작된 유토피아 프로젝트는 인간이라면 지니고 태어나는 동물적 본능에 의해 좌절되기 마련,
그러나 그 좌절의 극한은 다시 새로운 문명의 싹이 되나니...해체와 창조를 반복하는
인간의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 것인가.. 인간의 의지는 본능을 결코 꺾을 수 없는 것일까?

2018-01-14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4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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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p24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렇게 박혀버린 삶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p.28

 

시나리오를 썼지만, 이야기는 내 안에서부터 흐르지 않았고 그래서 작위적이었다. p.33

 

.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p.34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걸 사내답지 않다고 여기며 깔보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가끔씩 그런 통제에도 불구하고 비어져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이 있었다. p.47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껍데기만 보고 단죄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치솟을 무렵, 나는 그 사람들 편에 서서 엄마를 바라보지 않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p.48

 

할아버지는 늘 내게 먼저 돌아가신 아빠에 대해서 좋은 말들을 했다. 아주 번듯하게 잘생겨서 사위라고 데리고 다니면 면이 섰다는 이야기, 타고난 이야기꾼이어서 밥상머리에서 늘 웃었다는 이야기, 천성이 다정해서 엄마나 할아버지의 생일을 잊지 않고 작은 선물들을 줬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었다. pp.52-53

 

 


<씬짜오, 씬짜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투이의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보다도 훨씬 더 전에 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pp.85-86

 

그저, 가끔 말을 들어주는 친구라도 될 일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곁을 줄 일이었다. 그녀가 내 엄마여서가 아니라 오래 외로웠던 사람이었기에.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p.92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속에서 이는 감정을 자제하려고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는 이모의 얼굴에서 엄마는 이상한 쓸쓸함을 봤다. 막막하고 두렵지만 행복한, 무언가를 간절히 희망하면서도 주저하는 얼굴.

pp.100-101

가죽지갑 하나에도 어쩔 줄 몰라하던 그 어린 여자애를 보면서 엄마는 그에에게 왜 고작 이런 것 하나에 그토록 당황하고 행복해했는지 묻는다. 너는 더 좋은 것들을 누렸어야 했다고, 그럴 자격이 있었다고. pp.102-103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p.115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p.115

 

 


<한지와 영주>

 

그는 보복하고 질투하며 분노하는 신은 없다고 생각했고 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뿐이라고 믿었다. 전쟁에서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어떤 짓들을 저질렀는지 알았으면서도 그는 신의 사랑을 믿었다. p.126

 

이십대는 어느 때보다 치열해야 할 시기였고, 여기서 치열함이란 죽기 살기로 빠른 시간 내에 안전한 경력을 쌓는 것을 의미했다. p.128

 

 

 

<먼 곳에서 온 노래>

 

이거 놓으세요.” 미진 선배가 기자 선배의 손을 뿌리쳤다. “학번이 벼슬입니까? 해마다 나타나서 제일 어리고 만만한 여자애 붙잡고서 주정하는 인간도 제 선배입니까? 신경석씨, 민주주의 사랑한다고 하셨어요? 이 작은 집단에서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 위에 서야 후련한 사람이 무슨 민주주의 운운이에요. 당신 같은 사람은 차라리 독재가 편할 거야. 인간이 평등하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솔직히. 씨발, 이 더러운 꼴을 꼭 쟤한테까지 보여야 합니까? 전 이제 그러기 싫어요, 싫습니다.” pp.198-199

 

 

 

<미카엘라>

 

여자는 미카엘라가 왜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렵고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생각의 끝에는 나 때문인가라는 일말의 죄책감이 깃들어 있었다. 하긴, 자신은 미카엘라에 대면 너무 처지는 엄마였다. p.221

 

어쩌라는 건가. 아빠, 지금 이 집안을 빈곤 속으로 떨어뜨리는 주범은 세상도 자본도 아니고 아빠 자신이다. () 엄마가 엄마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아빠 같은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거라고. 이건 사랑도 뭣도 아니라 일방적인 착취라고 말이다. p.225

 

여자는 옆에서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 노인은 얼마나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렸을까. 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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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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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정했는지 뭐가 좋았는지에 관한 제 의견이나 코멘트를 따로 덧붙이지 않고,

단순하게 기록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추려낸 부분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당시 나라는 평화로웠다. 조정과 백성 모두가 편안하던 까닭에 노역에 동원된 백성들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와 동년배인 전 전적典籍 이로李魯도 내게 글을 보내왔다.


이 태평한 시대에 성을 쌓다니 무슨 당치 않은 일이오?’

그러곤 조정의 일에 불만을 늘어 놓았다.


삼가 지방만 보더라도 앞에 정진 나루터가 가로막고 있소. 어떻게 왜적이 그곳을 뛰어넘는단 말이오. 그런데도 무조건 성을 쌓는다고 백성을 괴롭히니 참으로 답답하오.’


아니 넓디넓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도 막지 못한 왜적을 이까짓 한 줄기 냇물로 막을 수 있다니 내가 더 답답했다. 당시 사람들의 의견이 한결같이 이러했고 홍문관弘文館 또한 그런 의견을 내놓았다. pp.37-38



"가까운 시일 내에 큰 변이 일어날 것 같소. 그렇게 되면 그대가 군사를 맡아야 할 터인데, 그래 적을 충분히 막아 낼 자신이 있소?"


신립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까짓 것 걱정할 것 없소이다."


내가 다시 말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과거에 왜군은 짧은 무기들만 가지고 있었소. 그러나 지금은 조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소."


그러나 신립은 끝까지 태연한 말투로 대꾸했다.


"아, 그 조총이란 것이 쏠 때마다 맞는답디까?"


pp.45-46


당시 요동에서는 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다는 말을 얼마 전에 들었다. 그런데 다시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서쪽으로 피란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이윽고 왜적이 평양까지 닿았다는 소식을 접하자 의심을 품기까지 했다. 아무리 왜적이 강하다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올라올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조선이 왜구의 앞잡이가 되어 이끌고 온다"라고도 했다. p.97



또 순찰사 정언신이 그에게 녹둔도의 둔전 방어를 맡겼을 때의 일이다. 안개가 자욱한 어느 날, 군사들은 모두 나가 곡식을 거두고 있었고, 진영에는 불과 수십 명만이 남아 있었다. 그때 갑자기 적 기병의 급습을 받았다. 이순신은 급히 진영의 문을 닫고 유엽전을 쏴 수십 명의 적을 말에서 떨어뜨렸다. 그러자 적들이 놀라 모두 달아나기 시작했다. (…) 이외에도 이순신이 세운 공은 참으로 많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추천하지 않았다. 과거에 급제한 지 10여 년 만에 겨우 정읍 현감에 올랐을 뿐이었다. p.40 (역자주 : 사건의 결과 이순신은 북병사 이일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 했다. 경비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이순신이 강력히 항의하자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파직하고 백의종군하도록 명령했다.)




결국 조정에서는 의금부도사를 보내 이순신을 잡아오도록 하고 대신 원균을 통제사에 임명했다. 

  그러나 임금께서 이 내용이 모두 진실인지 의문을 품으시고 성균관 사성 남이신을 한산도에 파견, 사실을 조사해 오라고 했다. 그가 전라도 땅에 닿자 병사와 백성 모두 나와 길을 막고 이순신이 무고하게 잡혀갔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남이신 또한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p.194





"그는 명장이오니 죽여서는 안 되옵니다. 군사상 문제는 다른 사람이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 또한 짐작하는 바가 있어 나가 싸우지 않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바라건대 너그러이 용서해서 후에 대비토록 하십시오."


조정에서는 한 차례 고문을 한 다음 사형을 감형하고 삭탈관직만 시켰다. 이순신의 노모는 아산에 살았는데 그가 옥에 갇혔다는 말을 듣고는 고통스러워하다 목숨을 잃고 말았다. p.195 


그러자 진린은 임금께 이런 글을 올렸다.

'통제사는 천하를 다스릴 만한 인재요, 하늘의 어려움을 능히 극복해 낼 공이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쓴 것은 그가 마음으로부터 감복했기 때문이다. p.213


화살이 빗발치는 속에서도 이순신은 직접 나서 싸우다가 날아오는 총알에 맞고 말았다. 총알은 가슴을 관통하고 등 뒤로 빠져나갔다. 주위 사람들이 그를 부축해 장막 안으로 옮겨 놓자 그는, "지금 싸움이 급한 상태다.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 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p.217


이순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군사와 명나라 군사들은 각 진영에서 통곡을 그치지 않았는데, 마치 자기 부모가 세상을 떠난 듯 슬퍼했다. 그의 영구 행렬이 지나는 곳에서는 모든 백성이 길가에 나와 제사를 지내면서 울부짖었다. p.218


그는 말과 웃음이 적었고, 용모는 단정했으며 항상 마음과 몸을 닦아 선비와 같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담력과 용기가 뛰어났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행동 또한 평소 그의 뜻이 드러난 것이었다.(…)그는 뛰어난 재주에도 불구하고 운이 부족해 100가지 경륜을 하나도 제대로 펴 보지 못한 채 죽고 말았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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