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고민은 깊게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나를 재판하는 내면의 송사가 길어질 수록 내 마음만 다칠 뿐이다. 나를 기소하고 나를 변호하고 나를 판결하는 모든 마음 속 공방들이 특정한 현답을 도출하기 보다는 혼란스러운 우문만 내놓기 일쑤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머리에서 현답이 나왔다면 철학자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이비 인문학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말하면서, 자신을 직면하는 순간에 도망치지 말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때로는 비겁자가 되는 길이 가장 용감한 일이다. 외려 평균적인 인간의 나약함을 부정하는 엉터리 인문학이야 말로 함부로 용기를 팔면서, 진실을 외면하는 비겁의 에센스다. 인생에 '절대'와 '무조건'이란 없다.


적당한 거짓말과 부풀림은 삶의 비타민이다. 평균적으로 상처받고 평균적인 내구도를 가진 보통 사람에게 나약함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고민을 적당히 끊어내는 것은 비겁한 회피가 아니라 내면을 보호하고 적당한 휴식을 권하는 현명한 행동이며, 삼십육계 줄행랑은 정당한 병법의 일환이다.


가진게 영혼 밖에 없는 사람은 그마저도 쉽게 소모시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방심하는 사이 고민이 부풀어 자신을 갉아먹는 경우가 많다. 그럴바에 어쩌면 생각없이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할지도 모른다. 내가 나의 주인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괴롭힐 권리가 있는 게 아니다. 투견의 견주는 나쁜 주인일 뿐이다. 


핵심은 자신의 그릇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것은 키와 같다.  크게 태어날 수도 작게 태어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가급적 무리하지 않고 적당히 넘겨가며 제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나 자신과 싸우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다. 


-2018.11.27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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