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죽은 남자 목요일 살인 클럽
리처드 오스먼 지음, 공보경 옮김 / 살림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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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미스터리 북인데 그것도 1권에 이어 나온 2권을, 1권 건너뛰고 바로 읽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알라딘 서재 친구들 덕분이다.

저자 리차드 오스먼은 원래 코미디언이자 TV진행자로서 현재도 House of Games 라는 퀴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가 2020년 처음으로 소설을 출간했는데 그것이 그만 100만부 이상 팔리는 기록을 올려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열에 오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의 1권인 <목요일 살인 클럽>. 다음 해인 2021년 이어서 2권을 발표한 것이 <두번 죽은 남자>이다. 1권에 등장한 메인 구성원들이 그대로 2권에서 활약한다. 이들이 실버타운에 거주하고 있는 70대 노인들이라는 설정부터 나의 흥미를 끌었다. 전직도 다양하다. 엘리자베스는 전직 첩보요원, 조이스는 간호사, 이브라힘은 정신과의사, 론은 사회운동가. 새로운 일과 흥미거리에 목말라 있는 이 네 명의 노인들은 일종의 추리클럽을 만들어 아직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들의 뇌세포를 유감없이 활용한다.

자세히 보면 별개의 세 개의 사건이 일어난다. 이브라힘이 불량배로부터 묻지마 폭행을 당해 다치게 된 일, 그리고 마약상 코니 존슨이 연루된 마약 사건. 이 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관 도나와 크리스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 확보를 위해 분투하고, 이보다 규모가 큰 사건으로는 엘리자베스의 전남편 더글라스로부터 엘리자베스에게 뜬금없는 편지가 배달된 것이다. 편지 내용인 즉슨 더글러스가 마틴 로맥스라는 마피아로부터 다이아몬드 20,000파운드를 훔쳤다는 혐의로 쫓기고 있으니 자기를 좀 보호해달라는 요청이 적힌 편지였다. 사실 편지는 더글러스 이름으로 온 것이 아니라 이미 수년 전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마커스 카마이클이라는 이름으로 배달되었고 엘리자베스는 수년전 작전상 죽은 것으로 위장시킨 마커스 카마이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기 외에 전남편 더글러스라는 것을 알고 이 편지가 그로부터 왔음을 직감한 것이다. 표면상으론 죽은 남자로부터 온 편지가 되는 셈이다. 이 책의 제목으로 보아 더글러스의 운명이 예감되기도 하는데.

세가지 사건이 상관없는 사건들 같지만 끝으로 가면 또 그렇지도 않다.

사건 해결 과정도 과정이지만 그것에 접근해가는 각 인물들의 캐릭터에 따른 행동 방식, 추리 방식 묘사도 볼만 하다.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으며 무뚝뚝하고 효율성을 중시하는 엘리자베스 할머니, 호기심 왕국, 따뜻한 심성, 엘리자베스보다 좀더 F>T 성향일 것 같은 조이스 할머니,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조용하고 사려 깊은 이브라힘 할아버지, 활기차고 그중 다혈질 성향을 가진 론 할아버지. 이 밖에도 등장인물이 많긴 하다. 그리고 자잘한 사건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럴때마다 추리의 방향이 급선회를 할 때가 많아 좀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지 않게 하면서 영국식 유머까지 만끽할 수 있게 하는, 3권도 기대하게 만드는 추리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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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9-1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저도 왠지 기대되네요. 보통은 이런 장르엔 주인공이 3.40대쯤으로 설정하지 않나요? 노인도 노인나름의 영민한이 있지요. ㅋ 저도 나중에 읽어보겠습니다.^^

hnine 2023-09-16 01:14   좋아요 1 | URL
그렇죠? 70대 어른들이 얼마나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지. 오히려 젊은세대에서 보기 힘든 여유와 유머, 포용력, 인내심도 있어요. 나이가 주는 잇점이 돋보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의 뇌세포를 위하여 이 책의 노인들의 뇌세포 사용법을 읽어보는 것도 좋지않을까요?
 
Nate the Great and the Sticky Case (Paperback, New Yearling) Nate the Great (Book) 8
Marjorie Weinman Sharmat 지음, 마르크 시몽 그림 / Yearling Books / 198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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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Nate the great and the sticky case (여기서 sticky는 '어려운'이라는 뜻)

저자: Majorie Weinman Sharmat

출판사: Randomhouse, 2006







1970년대 처음 나와 챕터북의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책 Nate the Great

Nate 이라는 꼬마가 이 시리즈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으로, 스스로를 위대한 탐정이라고 부르면서

주로 친구들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거나 어려운 일을 해결해주는 일을 한다.

나와있는 시리즈만 수십권.

우리 집에도 열권 넘게 가지고 있고 오디오 음원까지 있는데 어린아이 음성으로 녹음이 되어 있어 아이 어릴때 함께 들으며 그 억양 흉내내가며 재미있어 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스물 세살이 된 아들. 기억나는지 메신저로 물었더니 답글도 없다 ㅠㅠ







뒷표지




읽기 수준이 표시되어 있고,










첫페이지.

담요를 둘러쓰고 책을 읽고 있는 아이가 Nate 이고 그 옆에 강아지는 Nate의 단짝 친구 개 Sludge이다.






첫문장은 늘 내가 누구라고 밝히기.

담요를 덮고 비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다고 했는데, 이 문장도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사건을 해결하는데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친구Claude 가 찾아온다. 우표가 없어졌다고.

자기가 가장 아끼는 스테고사우러스가 그려져있는 우표가 없어졌단다.


무엇이 없어졌다는 사건이 들어오면 Nate가 의뢰인에게 제일 처음 물어보는 질문은 정해져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이지?" 



사건 접수후 엄마에게 간단한 쪽지를 남기고 출동하는 Nate.

삐뚤빼뚤 필기체 글씨.

'작으면서 큰 어떤 것을 찾으면 돌아올께요.'

우표는 작고, 그 안에 그려진 공룡은 크니까, 공룡 그려진 우표를 찾으면 돌아오겠다는 얘기 ^^









본문이 끝나면 이런 활동자료가 첨부되어 있다.

초판 당시에도 있었는지, 아니면 나중에 독자들의 요구에 의해 추가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두어 쪽 정도가 아니라 저만큼. 종이를 끼워놓은 곳 위쪽이 본문, 아래쪽이 활동 자료이다.



활동 자료들을 보니, 나도 모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공룡에 대한 것, 우표에 대한 것, 확대경에 대한 것, 세계에서 진귀한 우표 네가지, 우표 읽는 법, 



공룡알 만드는 방법까지.




이걸 하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재미있어 할지 눈에 보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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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23-09-12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잇 더 그레이트 색감 너무 좋아해요. 저도 너무 좋아하는 책.

hnine 2023-09-12 19:25   좋아요 0 | URL
이 책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을까 싶어요. 거기다가 하이드님이나 저 처럼 어른들도 좋아해주니 고전 중의 고전으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것이겠지요.
문장이 쉽긴 하지만 한편으론 첫 페이지의 저 문장 ‘I was drying off from the rain.‘ 같은 문장을 영작하려고 하면 저런 문장이 입에서 쉽게 나올까 싶어요. 배울게 많지요.
아이들에겐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방법, 논리적인 절차도 가르쳐주는 셈이어서 여러가지로 배울게 많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yamoo 2023-09-12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네이트 더 그레이트...이거 한 10여권 있는데...이걸 2017년인가 샀더랬습니다. 문장이 매우 쉬우서 암기용으로 샀는데, 몇 권 읽고 어디로 갔는지 안보여요...ㅎㅎ

와~~ 이책을 여기서 볼 줄이야!!

hnine 2023-09-12 19:36   좋아요 0 | URL
yamoo님, 이 책을 직접 구입하셨군요. 영어 공부하기 좋아요. 암기용으로 사셨다니 그냥 통째로 외워버리시면 영양가 많을텐데~ ^^
 

요즘 알라딘서재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나보다. 집에 있는 아이들용 책들을 시간날때 심심풀이 삼아 하루 한권씩 꺼내서 읽어보려고 한다.

처음으로 골라 읽은 책. The case of the missing pumpkins. 리뷰를 쓰려고 했더니 하필 알라딘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 책이다.  



제목: The case of the missing pumpkins (호박이 사라졌다!) 

지은이: Nancy Star

출판사: Scholastic

출판연도: 2006



여기서 호박은 물론 우리가 식탁에서 먹는 호박이 아니라 아래 그림에서처럼 할로윈 용 거대호박.

애들 책 내용은 거의 탐정물 아니면 이 세상 없는 동물, 이 세상 아닌 상상의 세계, 등등, 이런 요소가 들어가야 재밌어하는 것 같다.




겉표지



79 페이지, 요 정도 두께.




뒷표지





읽기 레벨이 표시되어 있다.




글자도 큼지막

어른이 읽기엔 사전 없이 읽을 수 있는 수준.







아이들 책에는 이런게 있기 마련이다.

퍼즐, 퀴즈, 게임.





내용 일부 소개:



한 동네 사는 세 명의 아이들 Dottie, Casey, Leon이 주인공이다.

Dottie는 무엇이든 첫째가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이고, Casey는 Dottie의 절친으로 Dottie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하러 갈 정도로 늘 바르고 좋은 생각을 제시해주는 친구이다. 또 한명의 절친 Leon은 남자 아이인데 암석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주 모양의 암석을 모으고 있는데 언젠가는 50개주 닮은 암석을 전부 모으는게 목표이다.

때는 바야흐로 추수감사절을 앞둔 10월.

Dottie네 집 앞 계단에 사다놓은 호박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누가 가져갔단 말인가? 바로 어제 사다 놓은 호박이 다음 날 아침 감쪽 같이 사라졌다. 알고 보니 호박을 도난맞은 것은 Dottie네 뿐 아니라 이웃의 다른 집에서도 줄줄이 일어나고 있는 사건임을 알게 된 세 아이들.

며칠 전 부터 Casey네 집 한 귀퉁이에 Calendar club이라는 공간을 확보해놓고 사건 해결소 비스끄름한 모임을 결서하자고 의기투하던 때 세 아이들, 호박 도난 사건을 첫번째 임무라고 여기며 누가 호박을 훔쳐가고 있는지 찾아내기로 한다. (이름이 Calendar club인 이유는 클럽하우스 공간을 제공하는 Casey의 last name 이 Calendar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세명의 아이들이 호박을 훔쳐간 범인을 찾아낼수 있을까? 어떤 방법으로 찾아낼까?


어른이 읽으면 좀 시시할 수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이 책은 아이들 대상으로 쓴 책이니 아이들 실제 반응이 궁금하다.

내용 중에 은근히 '기록'의 중요성이 여기 저기 강조되고 있는 것을 느끼겠다. 표지에서도 한 아이가 수첩을 들고 뭔가를 적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 처럼 말이다. 사건 해결에서 평소의 관찰, 그리고 관찰한 것은 반드시 기록이 되어져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그 기록이 없었다면 범인을 찾을 수 있었을지 아이들한테 얘기해주면 좋을 것 같다. 

















오늘 아침, 다음으로 읽은 책이 이책.

위대한 네이트 탐정께서 나오는 이 책은 시리즈로 있는데 아들 어릴때 생각이 많이 났다.

곧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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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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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느아르 그림 속의 풍만한 여성의 몸은 왜 현실이 되지 못하는가. 여성의 욕구와 몸은 왜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 보다 분석되고 해석되어야 하는가. 겉으로 나타나는 것 보다 훨씬 폭넓고 오래된 감정, 억압, 문화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캐럴라인 냅은 자신의 경험을 출발점으로 하여 여자들의 욕구 아래 가려진 비밀을 발굴해내기 위해 고고학자처럼 분투하였고 그 결과로 이 책을 내었다.

제목 '욕구들'이란 원제 ‘Appetites’를 번역한 것으로, 흔히 음식과 관련해서 쓰이는 단어이나 사전 상에서 찾아보면 그보다 넓은 의미를 가졌다. 저자는 우리에게 가득함과 만족, 완전함의 느낌을 주리라고 상상하는 실체와 행동Appetites라고 보았고, 번역자는 욕구들이라고 번역하여 제목으로 하였다.


우리의 욕구는 무엇일까. 우리가 갖고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여성 개개인이 체중에 골몰하는 일은 체중 외에 더 복잡다단한 불만의 원인들을 보이지 않게 가리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허리선의 상태를 고민하는 것이 영혼의 상태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더 쉬운 법이니까. (44)


진짜 욕구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사고성찰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렵고, 그래서 밖에서 주어진 틀에 쉽게 덮여지며, 갈수록 비대해져가는 소비시장의 확대와 편승하여 간단하게 해결되고 만다.


여성의 몸은 이 사회가 메시지를 쓰는 장소 (로잘린드 카워드 <여성의 욕망>)


태어나서부터 남자 아이는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주목받는 반면 여자 아이의 경우엔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에 관하여 뿌리 깊게 인식된다. 그 어떤 존재란 무엇인가. 타인을, 특히 남성을 편리하게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것과 관련된 존재이다. 제공자의 이미지.

단 하나의 경우. 사회에서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여성이 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쇼핑'이다. 여자들로 하여금 내가 주체라는 의식을 느끼게 하고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쇼핑, 특히 고급 소비재 쇼핑을 하는 순간이다.

저자는 열여덟살에 우연한 계기로 거식증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하루 800kcal라는 제한된 식이를 지키는 지독한 결단력으로 지탱해간 고통의 세월이었다. ? 거식증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미래에 대한 불안, 정신적인 불안은 한 종류가 아니라 너무나 다양하고 광범위한 모든 허기들로 작용하였고, 감당하기 어려운 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하나의 불안 (체중)에 다 집중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굶기와 강박의 의의가 된 것이다. 굶는 것은 괴롭지만 굶어서 괴로운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굴복하는 이 풍성한 음식들을 거부하는 나 자신이 거의 초월적이라고 느끼는 을 택한 것이다.


그 허기가 나에게는 공기와도 같았으며 나는 허기가 선사해주는 의지의 확인이 필요했고 어떤 극단적인 실험 중 실제로 효과를 발견한 과학자가 느낄 법한 조용한 놀라움을 품은 채 허기가 내게 미치는 영향을 측정했다. (168)


이렇게 불안이 왜곡되고 은밀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발전 없이 여전히 여성들에게 무언가를 주입시키고 가르치는 사회이고 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조정 (rowing)을 시작하게 된 것은 모든 결정을 거식증이 내리는 명령에 따랐고 그리고 남아 있던 에너지를 겨우 일에 쏟아부을 수 있던 무렵의 캐럴라인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다.


나는 예전에 여자로서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화롭게 어우러진, 강하고 온전한 하나로서의 몸, 마음과 연결되어 있고 마음에 반응하는 몸, 살아가기에 훌륭한 장소인 몸이었다. (241)


나는 직장에서 여자 화장실로 슬그머니 들어가 거울 앞에서 몰래 이두근을 굽혔다 폈다 했고, 그 모습이 내게 준 작은 전율은 (근육이야!) 한때 야위어가는 내 모습을 보며 느꼈던 전율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것은 자기 돌봄과 자기 파괴의 차이, 내어주는 것과 쥐고 놓지 않는 것의 차이였다. 그 변화는 실로 극적이었다. 음식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게 된 후 처음으로 경험한, 말라가는 것이 아닌 육체적 변화였다. (269)


여성의 욕구는 그 말 그대로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싶은지를 의미해야 한다. 이렇게 사회와 문화에 의해 규정되어 지고, 한번도 우리의 욕구에 의해, 그것을 어떻게 성취하고 경험하고 느끼는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어떻게 포장되어야 하는지에 매달려 남에게 찬탄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갖추라고 학습되지 말고 말이다.

남이 원하는 대상이 되기 위해, 생의 소중한 부분을 갈아 넣으며 살고 있는 여성이 아닌 사람, 있을까?


우리가 선택되는 대신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257)

만약 우리가 만족과 성공의 내적인 척도들 에도 외적인 척도들만큼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에서 살기만 했더라면.

동시에 공 아홉 개를 공중에 띄운 채 던지고 받고 해야 한다는 강박을 덜 느꼈더라면, 그리고 그 공들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토록 쉽게 자신을 비난하는 성향이 덜했더라면.

만약 우리가 실제로는 상당히 크지만 개탄스러울 정도로 잘 사용하지 않는 우리 자신의 힘을 행사하기만 했더라면.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의 관점과 용어로 욕망을 정의하기만 했더라면.

만약 우리가 우리의 외양에 대해, 우리의 몸무게에 대해, 우리의 옷차림에 대해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만 않았더라면. (298)


선진 국가에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은, 현대 여성도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읽고 배우고 느낀다. 그리고 글로 말로 표현해야 함을 깨닫는다. 고립되지 않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자유롭기 위해서.


고통은 고립 속에서 창궐하고 은밀함 속에서 번성한다. 단어들은 고통의 숙적이며, 괴로움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그 괴로움을 진정시키는 첫걸음이고, 여자가 힘겹게 발을 옮기며 헤쳐 나가는 진흙 수렁-자기 혐오와 죄책감의 몸부림, 공허함과 욕구의 메아리-에 관해 말하는 것은 그 수렁을 빠져나가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304)


마지막 장의 제목은 희망을 향해 헤엄치기”.


어느 정도의 공허함과 불만족은 삶의 불가피한 부분일 뿐 아니라 유용한 부분이기도 하다는 것.

허기는 비록 불편하기는 해도 연료와 비슷하다. 우리가 계속 무언가를 추구하게 만들며, 그 작은 걸음마를 계속하게 힘을 주며,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 새로운 영토로 우리를 떠밀어 주는 것이다. (370)


저자는 그 고통의 세월을 이렇게 끌어안으며 새로이 본다.


완전히 확신하는 답, 최종적인 휴식의 장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내 모든 욕구를 이해하고 충족하는 일,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는 일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흡족함의 순간들, 별안간 몸과 마음과 정신이 나란히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고, 마치 우주가 보낸 선물처럼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찾아오는, 내가 잘 먹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마침내 이 삶에서 얻는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를 순간들이 있다. 금세 지나가는 순간들이. (371) 


이 책의 마지막 문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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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9-02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리뷰글입니다. 오랫만에 만나는~~

hnine 2023-09-02 14: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올해 읽은 가장 좋은 책들 중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yamoo 2023-09-12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왜 원할까요? 어떨 때 원할까요? 저도 그것이 몹시 궁금합니다! ㅎㅎ

hnine 2023-09-13 11:59   좋아요 0 | URL
거기에 이렇게 복잡하고 오랜 역사가 작용하고 있는지 저도 몰랐습니다.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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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목을 쓰는데 망설여졌다. 이 소설의 결론을 제시해버린 것 같아서이다. 그래도 내용을 드러낸 것은 아니니 그대로 두기로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두말할 필요없이 일본뿐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다작의 작가이기도 한데 나와는 취향이 좀 다르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동안 내가 읽은 것은 <용의자 X의 헌신> 한 권 뿐이었다. 이 책 <방황하는 칼날>도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는데, 앞서 읽은 <용의자 X의 헌신>도 그랬듯이 일단 읽기 시작하니까 페이지 넘어가는 것은 순식간, 며칠 안걸려 다 읽게 만들었다. 

이 책의 경우 스토리는 범행이 일어난 후가 아니라 범행의 시작부터 다 보여주며 시작하기 때문에 이미 누가 어떻게 일을 저질렀는지 독자는 다 알고 있다. 그러니 범인이 궁금해서 페이지가 빨리 넘어가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작가의 필력이 놀랍다.

아무 특별한 동기도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노리개감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지나가던 어린 소녀를 납치해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하여 유기한 세 명의 범죄자는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 중학교 졸업후 고등학교 진학도 제대로 안하고 막 살고 있는 세 명의 청소년이다. 아내도 없이 혼자서 딸을 키우고 있던 평범한 회사원 남자 '나가미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딸 에마를 잃고 나자, 경찰에 수사를 맡긴 채 그냥 거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다. 범인 청소년들은 경찰에 의해 잡힌다 할지라도 분명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소년원에서 가볍게 처벌 받고 다시 사회로 복귀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남자는 딸에게 짐승같은 짓을 저지르고 살해한 이들을 벌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죄를 심판할 권리가 자신에게 없다는 것은 안다. 그것은 법원의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범죄자를 제대로 심판할 수 있나?

그런 일은 해주지 않을 것이다. 법원은 범죄자를 제대로 심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원은 범죄자를 구원해준다. 죄를 저지른 인간에게 갱생할 기회를 주고 그 인간을 증오하는 사람들의 눈에 닿지 않는 곳에 숨긴다.

그게 형벌일까? 게다가 그 기간이 놀랍도록 짧다. 한 사람의 일생을 빼앗았는데 범인의 인생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니. 

그런 바보 같은 얘기가 어디 있나 싶다. 그 쓰레기 같은 자식들이 빼앗은 것은 에마의 인생만이 아니다. 그녀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의 인생에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남긴 것이다. (134-135)

딸을 잃은 아버지 나가미네의 생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 명의 공범중 한 명은 죽었고, 다른 한 명은 도주중이며 나머지 한 명은 직접 가담은 안했다는 명분 아래 도주하는 대신 경찰의 수사에 협조하는 방향으로 행동하지만 이들은 이 사건 이전부터 비슷한 범행을 하며 같이 행동해오던 친구들이다. 

살해당한 소녀의 아버지 나가미네는 복수의 행로를 취하는 동안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도주중인 공범 소년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받으며 그를 쫓는다. 익명의 제보자는 과연 누구일까. 나가미네는 과연 목표대로 복수를 감행할수 있을까.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들 중에도 수사의 의미에 대해 회의을 품는 '오리베' 형사 같은 사람이 있다.

법을 어긴 자들을 잡는 게 우리 일이다. 그럼으로써 악을 없앤다는 게 표면적인 목표다.

하지만 이런다고 악이 없어질까? 체포해 격리하는 건 달리 보면 보호다. 일정 기간 '보호'된 죄인들은 세상의 기억이 흐릿해질 무렵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 대다수는 또 다시 법을 어긴다. 그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죄를 저질러도 어떤 보복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국가가 그들을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있나? 오리베는 의문을 품었다.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칼날은 진짜일까? 정말 '악'을 벨 힘을 가지고 있나? (534)

제목 '방황하는 칼날'의 의미가 담긴 부분이다.


설사 법이 제대로 정의의 칼날이라 할지라도 그 칼날을 쥐고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칼날이라 할지라도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잘 써진사회소설 한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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