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 길

하나 선택하느라 가지 못한 길

아쉬워하며 가지 못한 길

 

그런데

 

두 갈래 길이

한참 가다보면

하나로 다시 만나는 경우를 본다 

 

그러니

아쉬워하지 말고

그저

걷기를 계속할 일이다

 

 

 

 

걸어보기 전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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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의 공대생 만화
맹기완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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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특성을 단순하게 일반화 하거나 카테고리화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노력해야할만큼 우리는 참 쉽게 사람을 분류하기 좋아한다. 이과생과 문과생, 맏이와 막내, 음대생, 공대생, 시인, 공무원, 선생님 등등. 벌써 단어와 함께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 정도로 우리는 이미 이것에 익숙해있다. '공대생이 만화를?' 하는 호기심을, 만화를 전공으로 하지 않은, 전문 만화가가 아닌 학생이 그렸다는 정도로 제한하고 보려고 했다.

아이패드 산 기념으로 만화를 그려보았고 (이미 이쪽에 재능이 있었다는 얘기) 그것을 스누라이프 (SNULife) 라는 서울대 생활정보 사이트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 이 만화책의 탄생 경로이다. 내용은 과학, 공학 분야의 유명한 학자들과 그들의 업적을 간단히, 이해하기 쉽게 담은 것인데 케플러, 보어, 패러데이 같은 수백년 전 사람도 있고 빌 게이츠, 제임스 와트슨 같이 현존하는 인물도 있다. 다른데서 들어본 일화도 있지만 이 책에서 처음 보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라서 재미있게 읽었다. 인물들의 특이한 성격, 괴벽, 일화 중심인 것 같지만 잘 읽어보면 평소에 많이 들어봤어도 설명하라면 잘 못하겠는 개념들에 대한 설명들도 깨알처럼 책 여기 저기 박혀있었다. 특히, 슈레딩거 편에서 슈레딩거의 고양이로 예시되는 슈레딩거 방정식에 대한 설명은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반론과 더불어, 관측하기 이전에는 물리량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알쏭달쏭함으로, 이어서 그 분야에 대한 관심의 증폭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인물 그림도 나름 그들의 특징을 살려 그리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표지의 저자 사진에 보면 사진 옆에 그림으로 매달려 있는 두 인물이 있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쇼클리와 수학자 푸엥카레인데 쇼클리는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저자가 설명해놓았지만 푸엥카레는 특별히 저자가 존경하는 인물일까?

만화로 연재할때 댓글로 달렸던 것으로 보이는 독자의 의견들도 페이지 한쪽에 기재했는데 이것 읽으며 더 많이 웃은 듯 하다. 가장 기발하다고 생각한 것은 과학자 한 사람과 저자의 1:1 대화창이었다. 우문우답 처럼 보이지만 현문현답이라 할만큼 질문도 대답도 기발했고, 대답하는 방식도 설명한 과학자에 따라 다 달랐다.

재미있는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개인적으로 몇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첫째, 아무래도 일화 중심이 되기 쉬운 함정이라는 것인데, 예를 들어 패러데이 과학 자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과 더불어 패러데이의 <촛불의 과학>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둘째, 아무리 만화라지만 참고 문헌이 몇권이라도 명시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 책에 실린 인물들이 과학자이다보니 유난히 과학 분야에 천재가 많은 것 같지만 천재는 어느 분야에나 존재한다. 작곡, 연주, 그림, 조각, 건축 뿐 아니라 문학, 역사, 철학 등등.

이응노 미술관 입구 돌에 새겨져 있는 말이 생각났다.

"이 세상의 천재는 노력이 이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한 사람들도 대부분 천재 소리를 듣던 사람이라는 것이 더욱 범인을 슬프게 한다. 노력도 안 하면서.

 

 

(저자의 사진을 보니 얼굴이 어딘지 낯익어 알고보니 한때 TV에 종종 출연하던 맹기열 셰프가 저자의 형. 형제가 얼굴이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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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민혜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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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pek님 서재에서 보았지만 전혀 아는 분 아니고 pek님으로부터 읽기를 따로 권유받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웬지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수필가의 책이라면 강한 주장이나 의견보다는 친숙하고 정겨운 내용이지 않을까 기대를 했나보다. 꼭 그러리란 법도 없는데 이것도 선입견이나 편견이겠지만 말이다.

책 제목도 소박하고, 표지도 소박하게 만들어졌다.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라는 제목은 몇 년전 먼저 세상을 떠난 저자의 남편때문인 것 같다.

저자 소개를 읽은 다음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이 책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수필가로는 1992년에 등단했고 단행본 수필집도 오래 전에 낸 적이 있지만 후속은 주저하고 있는 가운데 출판사에서 기획수필집 원고 공모를 하는데 응모하여 당선되어 책이 나오게 되었단다.

<키스에 관한 고찰> 첫 글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사랑의 행위의 최고는 본격 성행위보다 키스라는 것이다. 다음 글 <마늘 까던 남자>를 읽으며 책 제목의 '떠난 그대'가 1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을 뜻함을 알게 된다.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는구나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멈추지 않고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지금의 나이를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이라고 표현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지?

'그들을 한 형제라 불러주겠다'라고 시작한 글은 대화와 수다를 비교한 글의 첫 문장이다 <대화와 수다 그리고 위트>. 말이라는 한 어미로부터 태어난 형제 같은 대화와 수다중에 형뻘인 대화가 진중한 데가 있는 반면 수다는 체면 분수 내던지고 촐랑대길 좋아하는 아우라고 한 비교가 재미있다.

카톨릭교도인 저자의 세례명을 따서 카페 안나를 차린 얘기 <카페 안나>, 육십대 중반을 넘긴 나이지만 '끼'없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얘기 <끼>, 책의 뒷부분에 실린 글들 중에 공감가는 내용들이 많다. <썸데이>라는 제목의 글은 가상의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남편에 대한 이야기라서 깜짝 놀랐고 (가까운 미래에 가능하다는 생각에), 고양이 눈빛은 고독하다고 시작한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부부가 나이 들어가면 화도 낼 수 없다는 얘기를 읽으면서 벌써 공감이 되면 어떡하니, 나 자신에게 묻기도 했다.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쓴다고 돈도 안 되는 글을 쓰며 그렇게 유세를 떠느냐는 남편 말에 발끈하여 어떻게 복수를 해줄까 째려보던 저자,

그때 언뜻 들어온 남편의 얼굴, 고개를 숙여 더욱 탄력 없이 보이는 볼과 눈두덩, 그 추레한 모습을 대하는 순간 시퍼렇게 날이 섰던 내 감정은 파김치가 되고 말았다. 남편의 얼굴엔 그가 겪고 있는 심경이 그래프처럼 드러나 있었다. 희망과 즐거움은 하향 곡선, 좌절과 허무감은 상향 곡선. 코브라 같은 마누라가 노려보는 줄도 모르는 그의 얼굴은 영락없이 무서운 엄마에게 꾸지람을 받은 어린이의 표정이었다. 순간 내 전의와 살의는 바닥으로 무참하게 주저앉고 말았다. (281쪽)

 

구십을 목전에 둔 친정어머니의 이야기는 책에 몇번을 등장하는데 모두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머니와 함께 장에 갔다가 채소 파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얘기하며 웃는 모습을 보고 쓴 대목,

인생의 마지막 고지를 가고 있는 등 굽은 저들은 삶의 백전노장들일 터, 그들이 살아냈을 평생의 파노라마가 상상으로 눈앞에 어른거렸다. 산다는 건 괴물의 잔등에다 꽃을 피우라는 임무를 부여받는게 아니겠는지. 저마다의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그들은 모두가 아홉 대가리 괴물 히드라를 쳐 죽여야 했던 영웅 헤라클레스의 작은 분신들일 것이다.

젖은 눈매 비비며 어머니를 바라본다. 따가운 6월 햇살이 어머니 머리칼 위에서 반짝반짝 은광을 반사하고 있다. 나는 그 은광을 모아 내 어머니의 머리 위에 은관 하나 얹어드린다. (290쪽)

산다는 건 괴물의 잔등에다 꽃을 피우라는 임무를 부여받는 것. 인생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니.

<훈장>이라는 제목의 글 중 한 부분이고 책에 실린 글 들 중 제일 맘에 든 글 중 하나이다.

 

사회성 없고 덕은 더구나 모자라 친구가 별로 없는 나. 그나마 가끔 만나는 친구마저 코로나 때문에 못보고 있어 대화가 그리웠던 차이다. 이 책을 손에서 못놓고 읽은 것은 그런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술술 넘어간다. 정말 재미있고 말 잘 하고 예리하고 아는 것 많은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듯이.

살아온 흔적은 이렇게 남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했고 이렇게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소감을 남길 수 있는 소박한 행복도 다시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이런 책 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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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7-24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 님, 책 사시겠다고 하시더니 벌써 사시고 리뷰까지 쓰시다니 멋지십니다.
저는 수필의 리뷰는 어떻게 쓰는 건지 몰라 머릿속에서 헤매고 있었답니다.(여기서 실력 차이가 나네요.ㅋ)
역쉬 리뷰를 많이 써 보신 분은 다르네요.

저자께서 이 글 보시면 기쁘시겠습니다. 저는 바쁜 일이 생겨 이 책의 리뷰를 지금은 쓸 수 없는 형편이에요.
저는 좀 천천히 쓰려 합니다.
잘 쓰신 리뷰, 아주 잘 읽었습니다.

hnine 2020-07-25 04:32   좋아요 0 | URL
글을 유려하게 잘 쓰셔서 금방 읽을 수 있었어요. 리뷰에도 썼듯이 페이지 넘기는 손이 멈춰지지가 않더라고요. 어려운 얘기도 아니고 일상의 이야기를 식상하지 않게, 저자의 성격이 드러나게, 솔직하게, 잘 쓰셨더라고요. 배울 점도 많았고요.
시기적절하게 읽을만한 책 pek님 덕분에 알게 되어서 제가 덕 봤습니다.

자희 2020-07-29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즘 트롯트가 대세이다. 한 때 뽕짝으로 홀대받던 음악 장르가 이토록 인기를 얻는 비결은? 트롯트나 국악은 우리의 무의식에 각인된 흥과 한을 흔들어 깨운다. 트롯트가 국민 음악으로 흥하는 이유이다. 수필도 이와 유사하다. 우리네 삶의 현 주소를 이토록 잘 반영할 수 있는 문학 장르는 없다. 쉽고 감동적이면서도 문학적이다. 수필은 탈권위주의 국민 문학이기도 하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 그러나 텍스트가 범람하는 시대에, 민혜의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해드림출판사, 이승훈 대표)라는 수필집은 살아남는 수필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글이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현재 제  휴대폰 사진 폴더에는 사람 사진은 없고 버섯만 잔뜩입니다.

 

매일 산책 중 버섯 찾느라고 줄곧 고개 숙이고 걷게 되네요.

 

 

 

 

 

 

 

 

 

 

 

 

 

 

 

 

 

 

 

 

 

 

 

책도 구입했어요.

 

 

 

 

 

 

↑  강냉이가 떨어져있는줄 알았죠. 

 

 

 

 

 

  이번엔 팝콘이 떨어져있는줄 알았어요.

 

 

 

 

 

 

 

 

 

 

  

 

 

 

 

 

지난 주 일요일엔 집에서 가까운 갑사에 가서 오랜만에 연꽃을 보고 왔습니다.

많이 피진 않았고 저렇게 몇 송이 피어있는 것도 보기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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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7-21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이웃 동네에 사세요? ㅋㅋ

hnine 2020-07-26 23:18   좋아요 0 | URL
Falstaff님도 사시는 곳도 저런가요?
저희 집은 아파트 밖으로 나가면 바로 조그만 산이 있어서 매일 산책하기 좋아요. 요즘 비가 자주 와서인지,습한 여름이 버섯에게는 최적기라서 그런지, 버섯이 아주 아주 많더라고요. 신기하게 생긴게 있어서 한번 사진을 찍어놓기 시작하니 그 다음부터 눈에 버섯만 보여요.

2020-07-21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0-07-22 03:57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직접 찍었어요 ^^

얄라알라북사랑 2020-07-21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팝콘같은 버섯은....상상도 못해봤어요...와.

hnine 2020-07-26 23:19   좋아요 0 | URL
진짜 팝콘처럼 생겼죠? ^^
더 신기하게 생긴 버섯도 많은데 사진을 일일이 올리지 못했어요.
사과 껍데기가 떨어진 줄 알았는데 빨간 버섯이었던 것도 있고요, 하얀 휴지 조각인줄 알았는데 버섯인건 아주 흔하고요.

바람돌이 2020-07-21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섯 종류가 저렇게 많은가요? ㅎㅎ
갑사라니 오랫만에 듣는 지명이네요. 저한테는 나름 추억이 많은 곳인데.... 좋은 곳에 사시네요. ^^

hnine 2020-07-26 23:19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정말 많지요? 한번 보기 시작하니 다음부턴 계속 버섯이 어디있나 찾게 되는데 나중엔 이제 버섯은 그만 보고 걷는데만 집중해야지 해도 자꾸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보이면 또 사진을 안찍을수 없고 ㅋㅋ 그렇게 모아놓은 버섯 사진이 이제 100개도 넘어요.
갑사엔 어떤 추억이 있으실까 궁금하네요. 동학사 갑사는 저희 집에서 아무때나 갈 수 있는 거리랍니다.
 
내 인생은 열린 책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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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벌린. 1936년생 그녀의 이력을 읽어보면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의 일생 동안 이렇게 국내외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사는 경우가 흔하지 않을 뿐 더러, 스물 한살에 첫 결혼을 했으나 남편에게 버림받고 이후 세번의 결혼, 싱글맘으로 네아들 부양을 위해 대학교수에서 청소부, 간호보조원을 넘나들며 일을 했다고 한다. 건강하기라도 했어야할텐데 그렇지도 못했다. 선천적 척추옆굽음증으로 평생 고생했으며 알콜중독을 달고 살다가 겨우 극복하지만 말년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했고, 암으로 투병하다가 2004년 세상을 떠났다. 네 아들 키우며 밤마다 틈틈이 썼다는 단편들 속에 그녀의 이런 일생이 녹아들어가있다.

평생 77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는데,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는  77편 중 43편이 『청소부 매뉴얼』에, 22편은 이 책 『내 인생은 열린 책』에 번역되어있다.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에 22편의 작품이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공통적 요소를 보이고 있다. 단편 마다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있고 인물이 있고 직업이 있고 환경이 있다는 것을 읽다보면 지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 작품에선 어떤 인물이 작가의 분신일까 찾아보기도 하면서.

글은 그렇게 어둡지고 무겁지도 않았다.

 

첫번째 작품 <벚꽃의 계절>은 벚꽃처럼 화사한 인생의 한 시기를 그린 것이 아니다. 흠 잡을데 없지만 매일 되풀이 되는 아내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아내의 말에 매번 똑같이 반응하고 대답하는 남편이 아내의 단조로운 일상에 기여하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남편의 지루한 일상이기도 하다. 내용은 좀 다르더라도 본인의 현재 지루한 일상과 오버랩된다고 느껴 읽으면서 공감하는 독자가 적지 않았을 작품이다.

<아내들>은 한 남자를 차례로 남편으로 두었던 자매가, 함께 앉아 그 남자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들이라는 게 포인트이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동네 부랑아들이 시키는 일을 하여 돈을 벌어오고, 귀한 돈을 벌어왔으니 칭찬을 받으리라는 아이들다운 예상과 달리 그것을 안 어른들로부터 돌아오는건 매질과 기도였다는 <오르골 화장품 정리함>까지 읽으면 이제 서서히 작가의 스타일에 대해 감을 잡는다. 짧은 이야기 속에 어떤 강렬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기보다는 이야기 자체를 쓰는게 중요했다는 것을. 뒤에 나오는 더 짧은 단편 <흙에서 흙으로>나 <이별 연습>에서는 더 두드러지는데,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결국 중요한 건 이야기 그 자체라는 저자의 말을 한번 더 되새기면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런가하면 <여름날 가끔> 처럼 글이 아니라 그림, 풍경 같은 작품도 있다.

<순찰: 고딕풍의 로맨스>의 마지막 부분은, 상황은 어딘지 안전해보이지 않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골목에서 순찰중인 야간방범대원은 "순찰이오, 안전합니다." 라고 외치는 것이 들려오는 것으로 맺는다. 야간방범대원의 외침을 '어둠을 청중 삼아 노래를 불렀다'는 문장으로 표현한 것도 자꾸 읽어보게된다.

<양철지붕 흙벽돌집>은 집을 내세워하는 인생 이야기이다. 아무 의미없고 쓸데 없는 것 같은 하루가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되고, 그 흔적은 살아 있지 않은 것들 가령 집, 도로, 벽, 흙 같은 것에 남는다.

<낙원의 저녁>은 이 책의 원서가 책 제목으로 채택한 작품이기도 하다. 번역본이 <내 인생은 열린 책>을 책의 대표 제목으로 내세운 반면 원서는 <낙원의 저녁>을 책 제목으로 했다. 심각하지도 진지하지도 않고 여흥과 오락만 존재하는 듯한 멕시코의 그 호텔을 '낙원'이라고 부른다. 너무나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짧은 분량이라도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멕시코의 아카풀코가 배경인 <환상의 배>는 앞의 <낙원의 저녁>의 호텔 대신 마을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내 인생은 열린 책>에서 '열린 책 (open book)' 이란, '쉽게 알수 있는 사람이나 물건 (a person or thing that is easy to learn about and understand)' 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이 사실과 상관없이 다수의 다른 사람들의 예측과 바램대로 해석되고 결론지어 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루브르에서 길을 잃다>는 작가의 생각이 가장 많이 들어간 단편 중 하나가 아닌가 하여 개인적으로 여기 실린 스물 두편 중 특히 더 꼽고 싶은 작품 중 하나인데, 죽음에 대한 사유가 들어가 있다.

죽음을 알아차린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파리에서 죽음을 알아차리는 일이 생겼다. 나는 죽음이 어떻게 엄습하는지 보았다. (318쪽)

아버지와 애인, 어머니를 차례로 잃은 후라는 시간적 상황과 제목의 '길을 잃다'가 중의적이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담배를 피우면서 행인들을 구경하는 중에 내가 잠을 알아차렸듯이 죽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사람은 죽을 때 죽음을 의식할까? 죽음이 자기를 데리러 온 순간을 의식할까? 스티븐 크레인은 죽어가는 자리에서 그의 친구 로버트 바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쁘지 않아. 잠이 오지. 그리고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 돼. 내가 과연 어느 세상에 있지? 하는 비몽사몽간의 경미한 불안감이 있을 뿐이야." (326쪽)

정말 그럴까?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뒤이어 <그늘>과 <초승달>로 이어진다. <그늘>은 투우장에서 소의 운명과 한 인간의 마지막 순간을 대비하여 그리고 있다. 제목이 그늘이라는 것, 마지막 문장에서 사람들이 환호와 함께 던지는 장미, 카네이션, 모자에 의해 일시적으로 만들어지는 그늘 묘사가 여운이 남는다.

여기 실린 작품들의 특징 중 하나가 단편임에도 매번 적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인데 이들이 모두 이야기에 기여할 필요는 없어보이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진행시키는데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각 인물들에 대한 묘사, 대화, 상황, 장소 설명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직접 경험하고 쓰지 않으면 못썼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작가는 인물들의 심리를 직접 묘사하기 보다 여러 인물들의 등장을 통해, 그리고 이들이 빚어내는 부대 상황 묘사로써 심리 묘사를 대신하는 방법을 선호하지 않았는지.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최근 영화화하고 있다는 그녀의 다른 책 『청소부 매뉴얼』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네 아이 재우고 밤을 밝히며, 아마도 술을 홀짝거리며,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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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6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7 0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7-1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으면서
아이 넷을 키우며 살았군요. 저 같으면 못 살 것 같은데 작가로 글도 쓰고
인간 참 강하면서도 위대한 것 같습니다.
<청소부 매뉴얼>이 영화화 되는군요.
갠적으로 미국문학은 호불호가 심해서 선뜻 선택하기가 그렇긴 합니다.

hnine 2020-07-17 05:19   좋아요 1 | URL
아이들 교육에 꽤 신경을 많이 썼던 것으로 보여요. 이 책 뒤에 아들이 쓴 회고문도 있고 소설 속에도 드러나지만 잘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였고 학교 수업, 진학 등에도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엄마는 강하죠 ^^
이 책 저도 광고를 보고 선택하게 되었어요. 국내외 유명작가들이 추천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 미국문학 저도 좋거나 싫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고 그래서 장편보다 단편을 더 선호하기도 하는데 거기엔 번역의 영향도 큰 것 같아요.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이 작가의 일생을 영화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다양한 삶을 살았더라고요.

바람돌이 2020-07-16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멋지네요. 전 어쩐지 표지가 멋지면 읽고싶더라구요. ㅎㅎ

hnine 2020-07-17 05:22   좋아요 0 | URL
외국 화가 중에 비슷한 풍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어서 그 화가 그림인가 하고 봤더니 의외로 국내 화가의 그림이더라고요. 외롭고 쓸쓸해보이는 그림이지요. 그림자가 화면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도 그림의 분위기를 더하고요. 원본 표지는 저렇지 않아요. 책 제목도 다르고요. 우리나라가 마케팅을 잘 하는건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