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렐의 발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르헤스와 함께 아르헨티나의 대표적 작가로 알려진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가 겨우 스물네살 나이에 쓰기 시작하여 3년 후인 스물일곱에 출판된 작품 <모렐의 발명>은 출판되고 바로 이듬해 부에노스아이레스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하었고 이후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1914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상류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대학에 입학할때는 법학 전공이었지만 문학에 전념하고자 학교를 중단하고 나온다. 젊은 나이의 비오이 카사레스에게 큰 명성을 안겨다 주고 지금까지 아르헨티나 소설계의 대부로까지 불려지게 한 <모렐의 발명>은 어떤 작품일까?

'모렐'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고 중심인물이기도 하지만 소설의 화자는 아니다. 화자인 '나'는 부당하게 사형선고를 받은 후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알려진 빌링스 섬이라는 곳으로 도망쳐온 사람이다. 천신만고끝에 도착한 섬에는 과연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고 그런 곳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아무도 살지 않던 섬에 갑자기 한 떼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나는 이들 중 한 여자가 석양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단번에 반하게 되어 매일 그녀가 앉아있는 곳에 가서 그녀를 훔쳐보며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를 꿈꾸지만 그러다가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도망친 사형수라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까봐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러다가 알게 된다. 아무리 가까이 가도 그녀를 비롯하여 섬에 나타난 사람들이 나를 보지 못하고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람들이 나누는 말을 엿들음으로써 이들의 이름도 알게 되는데 내가 반한 여자의 이름은 '포스틴'이고 늘 포스틴의 가까이에는 테니스 선수 '모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질투심을 느낀 나는 모렐을 마치 살인자, 미친 사람 등으로 여기며 좋게 보지 않는다.

어느 날 모렐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뭔가를 설명하고 해명하는 것을 듣고 주인공 내가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지금 섬에 있는 사람들 (포스틴 포함)과 이들이 섬에서 머무는 이 상황 모두가 모렐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대로 일어나게 하기 위해 영상으로 만들어놓은 결과임을 알게 된 것이다. 여기서는 단순히 영사기로 돌려서 재생해내는 것 정도로 표현되지만 다른 점은 이들이 시각적으로만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갖고 실제로 움직이고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요즘의 가상현실 같은 것을 상상했는지 모른다. 원하는대로 완벽한 현실을 구성한 것이다.

모렐이 원하는대로의 현실이란 주인공 나도 반한 포스틴의 사랑을 얻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꼭 그렇게 국한시키고 싶지 않다. 그러다보면 이 작품이 단순 로맨스 소설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원하지만 얻지 못하는 대상이나 상황의 한 예로서 여인을 대표로 내세운 것이 아닐까, 오히려 그렇게 보고 싶다.

제목의 모렐의 발명이란 이렇게 모렐이 발명한 영상 매체 기계를 의미할 수 있다 (너무 협의적 해석). 모렐이 설명하기를 그가 발명한 기계는 스크린이나 종이 없이 장면이나 대상을 재현할수 있는 것이 애초 기대하던 목적이었는데 힘든 작업 결과 기계의 여러 다른 부분들을 동시에 작동시키면 재구성된 인물을 얻을 수 있었고 모든 감각이 동시에 작동하면 영혼이 나타나더라고 했다. 이전에 없던 기계이니 발명인 것 맞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모렐의 발명이란 모렐이 이 영상매체기계를 통해 존재와 사물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자는 이것을 주인공 내가 모렐이라는 인물을 발명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점점 복잡해짐). 확실한 것은 이 소설 자체가 비오이 카사레스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이건 너무 일반화). 그것은 아마도 모든 소설이 소설가의 발명품인 것과 같을 것이다. '소설은 허구이다' 이것은 소설을 정의내릴때 명제처럼 배우던 말 아닌가?

이 작품에서 주인공 나는 현실 속 인물이며 주인공이 반한 여자 포스틴은 모렐에 의해 발명된 비현실적 인물이다. 주인공이 처한 배경은 현실이라면, 섬에 나타난 사람들, 이들의 임시적 거주, 박물관, 식물원 등의 건물 등은 모렐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이다. 비오이 카사레스의 이 작품이 높이 평가되는 요점이 여기 있다. 환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룬 문학세계를 구축하였다는 것이다.

짐작할수 있듯이 아무 기초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다면 이해하며 따라가기 쉽지 않은 내용의 책이다. 해설에 따르면 비오이 카사레스가 도입한 환상은 SF적 환상이 아니라 일상에 숨겨진 또다른 현실로서의 환상을 그렸다고 한다. 소설가다운 환상이고 좀더 친현실적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설까지 다 읽어보았지만 아직도 의문점인 것은, 화자인 '나'와 '모렐'중 작가가 더 내세우고 싶은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하나 더. 만약 내가 모렐이 된다면 어떤 환상을 구성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건 아마 오늘 하루치 생각꺼리가 될 것 같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9-25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절대적인 기준이나 가치는 아니지만, 이렇게 이른 나이에 고전이라 불릴 작품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확실히 천재라는 건 존재하는구나 싶어요. 카사레스가 이 작품을 썼던 나이의 두배가 되었지만 저는 뭔가 이렇다할 글을 써놓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아마 카사레스에게는 카사레스의 삶이 있고 제게는 제 삶이 있는 까닭이겠지요. 천재를 천재로 만드시고 평범한 사람을 천재 아니게 만드신 건 다 뜻이 있을 것이다...라고 스스로 위로 합니다.

저는 소설이 너무 좋은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온갖 감정들을 겪으며 사건들이 벌어지기 때문인데요, 오늘 나인님이 리뷰하신 책안에서도,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면서 자신이 반한 여자의 근처에 있는 남자에 대한 질투심을 갖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을 좋게 보지 않고요. 이런거, 너무 한심한 감정 같아 보이지만 실상 누구나 다 느끼는 감정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책에서 보면서 아, 사람이란 이토록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존재이구나, 완벽하지 못한 존재야, 생각하는 순간들도 소설을 읽는 기쁨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모렐의 발명 어쩐지 제게는 어려울 것 같지만, 그래도 읽어볼래요.

hnine 2020-09-25 12:17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말씀처럼 저도 어느 분야에든 천재성 가진 사람 있다고 봐요. 천재로 태어나기란 확률적으로 어려운 일이니까 부럽기야하지만 천재가 모든 분야에 다 천재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이 어느 한 분야에 집중되어 보통사람의 수준을 넘어설때 천재라고 하는게 아닌가, 저는 그렇게 보거든요. 그러니 한 분야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선 천재가 아니라 오히려 모자라보일수도 있을테고요. 그렇다면 천재로 태어나지 않길 잘했다 생각도 든답니다. 완전 제 맘대로 해석하고 제 맘대로 위로하고, 그러죠? ^^
내가 나 답게, 나의 의지에 의해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위대한 삶일것 같아요. 많은 업적을 남긴 삶이 위대한 삶이 아니라요.
이책 쉽진 않아요. 그렇다고 심하게 어렵지도 않답니다. 읽어볼만해요. 사고의 확장과 탄력은 너무 술술 넘어가는 책보다 오히려 이런 책 읽을때 일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천재들은 일하고, 우리들은 그들이 해놓은 일을 누리면 되지요. ^^

Falstaff 2020-09-2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 좋은 리뷰를 쓰시느라 시간이 필요하셨군요! ^^

hnine 2020-09-25 12:22   좋아요 2 | URL
책 뒤의 해설도 읽고, 다른 분들 리뷰도 읽어보고, 그러면서 갈피를 겨우 잡았는걸요. 그렇게해서 어쨌든 리뷰를 올려야 비로소 책을 다 읽었다고 보는, 나쁜 버릇이 있어서요. 읽은 책 리뷰 안쓰고 다음 책 읽고 있자면 웬지 마음이 불편해요. 그래서 좋은 리뷰 아니더라도 쓰긴 써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나저나 Falstaff님 리뷰 아니었더라면 언제 읽을지 기약없었던 책이랍니다. 감사드려요.

바람돌이 2020-09-25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정이 흥미진진하네요. 이렇게 또 좋은 책과 작가를 알게됩니다.

hnine 2020-09-25 22:07   좋아요 0 | URL
말씀 그대로예요. 설정이 기발합니다. 해석도 다양할수 있고요.
잘은 모르지만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이런 쪽 문학은 특이한 것 같아요. 환상적 요소가 있다고 할까요. 복잡한 구성도 그렇고요.
한번 읽어봐주세요~

바람돌이 2020-09-25 22:46   좋아요 0 | URL
넵!!!
 
7층
오사 게렌발 지음, 강희진 옮김 / 우리나비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도 인간이면서 과연 인간 본성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될 때가 있다. 폭력과 학대의 대상이 적이 아니라 바로 연인, 자기가 낳은 자식이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때이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어느 민족, 어느 계층에 국한된 일도 아니며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유가 뭘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성장과정에서 어떤 결정적 결핍 또는 회복안될 상처가 있었기에 이런 극단적 행동 이상을 보이게 되는 것일까.

스웨덴에서 잘 알려진 여성 만화 작가인 오사 게렌발의 <7층>도 이런 생각을 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1973년생, 올해로 48세인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한다.

첫 장면은 주인공 '나'가 집을 떠나 예술 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모 곁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혼자라는 새로운 자유를 만끽하는 생활을 시작한다. 어느 날 파티에 참석했다가 너무나 이상적으로 보이는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그는 나의 모든 우울과 불안과 실패를 잊게 해주고 과거야 어떠했든 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걸 도와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제목 <7층>은 나와 남자친구가 함께 살기 시작한 아파트의 층 수를 뜻한다.

그러던 남자 친구가 가끔 이상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사사로운 행동을 지적하며 이유를 따져묻는가 하면 이런 건 하지 말라며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의 비상식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더욱 잦아지고 신체적 폭력까지 가하는 일이 벌어지자 나는 점점 견디기 어려워지고 보이지 않는 족쇄에 채워져 그 끝을 남자 친구가 쥐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살게 된다. 비슷한 상황에서 많은 여성들이 이런 상태로 상당한 시간을 끌게 되는 것에 반해 주인공 나는 이대로 버티는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용기를 낸다.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 선언하고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부모님 집으로 옮겨온 것이다. 혼자 견디고 삭히는데서 벗어나기 위한 이러한 행동은 좀처럼 여성들이 결단못하고 있는 단계이다. 그런 결단을 어렵게 해봤자 그것이 시원한 해결점이 되리라는 기대 대신 남들이 믿어주지 않는채 자신의 결점 폭로에서 그치고 말거라는 불안감, 즉 나의 행동이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과 불확신때문이다. 이런 의심과 불확신에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 우리는 그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 책임을 나눠가지는 것이 맞다.

남자 친구의 비정상적인 행동과 물리적 폭력을 고발하고서 주인공 나는 또한번 시련을 경험한다. 반복되는 경찰 조사는 물론이고 스스로 재건의 고된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난 그야말로 난파선과도 같았다.

내 자존심은 산산이 부서졌다.

나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73쪽)

 

그동안 서서히 잃어온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쉽고 즉각적일리 없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그보다 더 노력의 가치가 있는 일이 있을까? 그녀는 서서히 스스로 재건되어 갈 것이다. 정작 문제는 그녀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노력 유무가 아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말해준다.

 

하지만 언젠가 또 어디에선가 계속해서 그를 마주치게 되리라. (79쪽)

 

이 사회에는 전 남자친구와 같은 남자가 어디든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여자가 지금도 주인공 '나'가 겪은 일을 겪고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겪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회에 아직 우리가 살고 있음을 일깨우는 저자의 경고의 말이다.

오사 게렌발은 개인적인 불행과 시련의 경험을 침묵으로 억누르지 않고 그 침묵을 깨고 나와 이후의 삶을 자신만의 방법인 그림과 글로서 사회를 일깨우는데 일조 하며 살고 있다. 사회에 일조는 물론이고 오사 게렌발 개인적으로도 훨씬 가치있는 삶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조금씩 바른 방향으로 전환해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수린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은지 오래 되었지만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어보았다. 한국소설에 대한 내 관심이 예전에 비해 수그러들어서 인기있는 신간도 놓치고 지나가거나 뒤늦게 겨우 읽어오고 있는데, 우연히 백수린 작가의 인터뷰를 몇개 듣다보니 이 작가는 한국의 비슷한 연령대 (30~40대)의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뭔가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는 감을 잡게 되었다. 내가 어림짐작하는 한국 소설은 둘중 하나인데, 시종일관 진지하고 묵직하고 암울한 주제의 소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유머러스, 시니컬 코드를 작정하고 쓴 소설.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백수린의 이 소설은 진지 모드로 일관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풍자적, 희극적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의 어림짐작 한국 소설 분류는 이제 갖다 버려야겠다. 한마디로 백수린의 소설은 쓱쓱 잘 읽힌다. 읽어나가는데 막힘이 없이 페이지가 쓱쓱 넘어간다. 그런 책을 좀 읽고 싶어 고른 책인데 제대로 잘 선택했다 싶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았다.

첫째, 이야기가 대체적으로 시간순으로 진행된다. 현재 상황으로 시작했다가 어느 새 20년전 장면으로 이동하여 진행했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시제를 왔다 갔다 하며 진행되는 방식은 요즘 소설에서 많이 보는 구성인데 복잡하고 치밀해보여 작가들은 즐겨 쓰는지 몰라도 읽는 사람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읽게 되기 마련이다. 그에 반해 백수린의 여기 포함된 작품들은 그저 평이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과거 장면으로 넘어갈땐 모호하게 처리하지  않고 웬만해선 독자가 혼동하지 않을 정도의 언급을 하고 넘어간다.

둘째, 급반전이 거의 없다. 무리한 결말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평이하게 이야기를 맺는다. 긴장할 필요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읽는 동안 지루하거나 읽고난 후 시시하다고 느끼지 않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끝까지 독자의 흥미를 붙잡는데 반전이 꼭 필요한건 아님을 오랜만에 깨우쳐주었다.

셋째, 주인공들의 성격이 그야말로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유별난 성격의 소유자라기보다 오히려 평범에 가까운 인물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의 궤적>의 주인공은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알게된 선배 언니와 한때 같은 궤적의 시간대를 보내지만 그 궤적이 영원히 같을 수는 없다. <여름의 빌라> 역시 타국을 배경으로 한다. 주아와 남편은 주아가 오래전 배낭여행할때 알게 된 독일인 부부의 초대를 받아 이들 부부가 머물고 있다는 캄보디아에서 잠깐의 여름 휴가를 함께 하는데, 캄보디아 빈민을 보는 독일인 부부와 주아 부부 네 사람의 입장은 같지 않다. 비록 빈민이지만 평화로워보이는 모습 앞에서 누구는 아름답다 느끼고 누구는 불편하다. 불편한 사람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까지 불편하다. <고요한 사건> 이라는 제목처럼 백수린의 작품 속 사건들은 대체적으로 '고요하게' 벌어진다. 폭행당해 쓰러진 고양이 아저씨와 죽은 고양이를 보고 놀란 주인공은 자기의 아버지만은 그 상황을 해결해줄거라 믿고 달려와 도움을 청했지만 그것은 그저 고요한 사건으로 침묵 속에 지나가게 방치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아주 잠깐 동안에> 역시 <고요한 사건>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기대되는 행동과 실제 행동의 간격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하고, <폭설>에서는 폭설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모든 계획이 틀려져 버리고 속수무책이 되지만 성숙과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받는 것은 이런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다는 <흑설탕 캔디>는 독자 역시 오랫동안 인상에 남을 작품이 아닐까 한다. 화자가 주인공이 아니라 화자의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화자는 다만 할머니를 기억하고 재해석하는 주체일 뿐. 단순히 노년의 연애 감정을 말하려고 한게 아니라 노년에도 인생에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 고요하게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은 관습과 통념으로 자신을 중무장하고 있지 않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는 어느 외국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쓰게 되었다는 백수린 작가 설명이 있었는데 한나절 잠깐 동안의 변화, 그 변화를 경험한 엄마를 어린 아가의 눈을 빌어 마무리하였는데, 평상시와 다른 아름다움이 낯설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고 표현한 작가의 속마음을 독자가 읽어내고 감탄하고 있다는 것을 작가도 알까?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은 소소해보이는 일들, 극적이지 않은 사건들인데 그것을 가지고 소소하지 않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역량을 또한번 확인시켜준다.

우리의 삶은 시간의 궤적을 남기며 진행해가고, 잠시 머무는 여름의 빌라 같은 것이며 고요한 사건의 연속이다. 인생 이제 기대할 것 없다는 회의주의 틈틈이 흑설탕 캔디를 기대하며 살아도 좋은 인생이다. 여기 실린 모든 작품들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인간이 만들어가는 세계, 작지만 전부인 세계를 얘기하고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0-09-22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못 읽어본 작가인데 hnìne님글 보니 또 관심이 가네요. 자꾸 보고싶은 책들이 늘어서 큰일이예요.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좋은 날 되세요

hnine 2020-09-22 22:52   좋아요 0 | URL
가독성 좋은 책이 필요한 시기에 읽으면 딱 좋을 책인 것 같아요. 무리없이 재미있더라고요.

난티나무 2020-09-2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록에 추가합니다.^^

hnine 2020-09-22 22:54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은 후 저도 이 작가의 다른 책 바로 한권 주문했답니다.
 

 

 

 

'전북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191 내소사'

 

네비게이션에 이렇게 입력하고 2시간 정도 달렸습니다.

來蘇寺. '이곳에 다녀가신 이들 모두 새롭게 소생하라' 는 뜻이라고 합니다.

신라시대 지어졌으나 임진왜란때 모두 불타고, 조선시대 인조때 다시 지어진 절.

본사인 고창 선운사의 말사랍니다.

 

 

 

 

 

 

'능가산내소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일주문을 지나면 매표소가 나오고,

매표소 지나면 바로 6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이 나옵니다.

 

 

 

 

 

 

 

20분정도 걸어요.

 

 

 

 

 

 

 

 

전나무 잎은 이렇게 생겼답니다.

태풍때문에 떨어져있는 나뭇가지가 많았습니다.

뾰족하게 위로 솟아있는 모습이 꼿꼿해보이지만 전나무는 뿌리를 깊게 못내려 보기보다 약해서 강풍에 잘 부러진다고 해요.

구불구불한 소나무가 보기보다 잘 버티는 것과 대조적이지요.

 

 

 

 

 

 

 

 

전나무길과 함께 내소사 들어가는 길은 이 상사화로 유명하지요.

잘 알려진 붉은색 상사화가 아니라 노란색 상사화랍니다.

정확한 이름은 '붉노랑상사화'라고 안내판에 써있더군요. 붉은 빛을 띤 노란색이래요. 꽃색깔은 연한 노란색이지만 직사광선이 강한 곳에서는 꽃이 붉은 빛을 띠게 된대요.

왜 상사화인지는 아시죠?  잎이 다 사라진 다음 꽃이 피어서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해 서로 사모하기 때문이라고요.

 

 

 

 

 

내소사의 두번째 문인 천왕문을 지나면 바로 이 느티나무를 만나게 됩니다.

자그마치 1,000년 된 나무랍니다. 100년도 아니고 1,000년이라니.

 

 

 

 

보통 사찰을 대표하는 세개의 문이 첫번째 일주문, 두번째 천왕문, 세번째 불이문인데 내소사에서 불이문에 해당하는 것이 이 봉래루라는 누각이라고 합니다. 불이문(不二門). 속세와 구별되는 부처의 세계에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봉래루 기둥입니다. 모양, 크기 제각각 돌. 그러면서도 균형 잡고 당당하게 주춧돌 역할을 해내고 있어요. 전 이런게 재미있어서 꼭 사진에 담아옵니다.

 

 

 

 

 

 

 

드디어 대웅보전을 만납니다.

크지 않고 소박해보여요 (정면 3칸, 측면 3칸). 단청이 없어 더 그렇게 보이는지.

쇠못 안쓰고 목재로만 지었답니다.

 

 

 

 

 

 

대웅보전 내부입니다. 가운데 석가모니, 왼쪽이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을 모셨습니다.

뒷편의 후불벽화가 '백의관음보살좌상' 이라고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상으로 유명하다는데 저는 아무리 봐도 백의(白衣)가 아닌 듯 하여 갸우뚱갸우뚱하다 왔답니다.

천장의 무늬와 조각도 아름답지요.

 

 

 

 

 

 

 

우리 나라 장식무늬의 최고봉이라는 대웅전 꽃문살입니다.

 

 

 

 

 

 

 

 

 

 

 

 

 

 

 

 

 

 

 

 

 

 

 

 

돌아나오는 길.

 

 

 

가을이지요?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수연 2020-09-19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에요 나인님 ^^ 전주 살 때 열댓번은 갔었는데 이렇게 또 마주하니까 또 달려가고싶네요

hnine 2020-09-20 00:20   좋아요 0 | URL
수연님도 좋아하는 곳이군요. 전주에선 얼마나 걸리는지. 전 전북이니 제가 사는 대전에서 2시간까지 안걸릴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걸리더라고요. 저는 종교와 상관없이 절에 가보는걸 좋아하는데 산을 끼고 있다는 것도 좋고, 무엇을 보고 올지 대충은 예상을 하고 갈수 있다는 것이 좋고, 정작 가보면 꼭 그렇지 않고 그 절만의 특색을 발견하는 것도 좋고요. 한국 건축으로서의 절을 관찰해보는 것도 좋아요.
아무리 그래도 수연님처럼 한 절을 그렇게 여러번 가본 곳은 없어요. 내소사가 그런 곳이구나, 다시 보게 되네요.

막시무스 2020-09-19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 봄에 한번 다녀왔었는데 다시 보니 느낌이 새롭내요! 특히 저 느티나무와 창문의 꽃살이 참 아름다웠다는 기억이 새록하니 떠 오릅니다! 즐건 주말되십시요!ㅎ

hnine 2020-09-20 00:37   좋아요 0 | URL
봄에 다녀오셨군요. 봄의 내소사는 어땠을까요. 느티나무와 꽃문살은 저도 내소사 하면 자동적으로 함께 떠오를것 같아요. 입구의 전나무길도 그렇고,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서 내소사의 반은 오래된 나무들이 대표한다는 느낌까지 들었답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전나무길의 피톤치드를 만끽하지 못한게 아쉬웠으니 적어도 한번은 더 갈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0-09-1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내소사를 보내요. 특히 저 전나무길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곳이예요. 특히 겨울의 저 길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제가 사는 곳에서는 내소사가 참 먼곳인데 다시 가보고싶네요. 가을의 내소사는 간적이 없었구나 싶어서요

hnine 2020-09-20 00:44   좋아요 0 | URL
겨울의 전나무길, 안가볼수 없겠어요. 초록의 전나무길이 겨울에 눈까지 쌓여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에너지가 좀 남았더라면 내소사 근처의 개암사와 곰소염전도 둘러봤을텐데, 이제 하루에 두탕을 못뛴답니다 ㅠㅠ
내소사 입구에 맛있어보이는 식당들도 많던데 코로나때문에 그냥 패스하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서 야외에서 먹어야했던 것도 아쉽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의 내소사, 소박하고 고즈넉했어요. 좋았습니다.

바람돌이 2020-09-20 00:59   좋아요 0 | URL
개암사도 좋지요. 내소사에 비해 더 고즈넉한 분위기죠. 전나무 숲길을 뺀다면 전 개암사를 더 좋아해요. ^^

Falstaff 2020-09-20 10:41   좋아요 0 | URL
불경스런 말씀이지만, 개암사는 무겁더라고요. 절집 전체에서 둔중한 분위기가 속인을 압도해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이 기억 역시 30년 쯤 묵은 것이라 지금 하고는 많이 다를 겁니다만.
오랜만에 머리 속에서나마 부안 구경 잘 했습니다.
곰소항에 들러 ˝묵혀서 썩히면 썩힐수록 제 맛이 살아나는, 때론 몰래 맛보소 싶은 그대, 첫사랑처럼 코끝이 싸한 맛, 한때 그대가 살았던 수심 깊은 내 가슴의 바다에서 쏴아아 눈물 끌어올려 내 눈자위를 적시고 바삐 사라지는 가오리과의 홍어˝회 한 점도 자시고 오셨으면 더 좋았겠습니다. ㅎㅎㅎㅎ
따옴표 속의 글은 박백남의 시 <홍어>를 인용했습니다.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지나고 난 다음날 산책길.

나뭇가지가 부러져 길을 막고 있는 곳도 있고 (이런 곳은 할 수 없이 돌아서 걸어가야했다)

아직 파란 밤송이들이 길에 마구 떨어져 있었다.

 

 

 

 

 

 

 

 

 

 

 

 

 

아직 새파란 감.

 

 

 

어제 TV에서 보니, 태풍으로 나무에서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사과들을, 새가 먹고 짐승들이 먹고 상처가 나서 땅바닥에서 부패해가고 있었다

이렇게 부패가 진행되게 그냥 두면 안되고 모두 모아 땅 속에다 매립 처리를 해줘야 부패균이 더 이상 다른 사과들이나 작물들에 퍼지지 않는단다.

땅에 구덩이를 크게 파고 1년 동안 열심히 농사지은 사과들을 무더기로 매립하는 농부님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길 하나 뒤로 가니 이런 카페가 있다.

자작나무 잔뜩 있던 카페.

 

 

 

 

 

 

 

 

 

 

 

 

 

 

 

 

카페 들어가는 문 위의 캐노피에도 자작나무가 이용되었다.

들어가 앉아보고 싶었지만 구경만 하고 커피는 테이크아웃해왔다.

 

 

 

 

 

 

녹슨 문과 문을 덮고 있는 덩쿨.

 

 

 

 

 

 

 

사흘 전 저녁 산책 하며 알아차렸다.

'이제 여름 끝, 가을 시작이로구나'

 

이번 여름,

짧았다.

코로나 앞에 여름 마저 기 한번 못펴고 지나간 느낌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20-09-16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묘해요. 그렇게 5백년된 나무가 태풍에 부러졌다는데 감은 저렇게 붙어있기도 하니 말여요.
제 방 창문 열면 대나무가 보이는데 그것도 안 쓰러졌어요.

hnine 2020-09-16 19:45   좋아요 0 | URL
500년 되었다는 건 나이가 500살. 많이 늙었죠. 날이 갈수록 버틸 힘도 줄어들거고요.
그에 비하면 감은 아직 젊고 힘도 있겠죠? (슬퍼지려고하네요 ㅠㅠ)
대나무는 속이 비었으니까, 이런 바람에 더 잘 버틸지도 몰라요.
방 창문 열면 대나무가 보이다니, 특이한 배경이네요.

바람돌이 2020-09-16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떨어져있는 저 밤송이들이 안타깝네요.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요

hnine 2020-09-17 08:5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대로도 더 익을수 있을지.
세찬 바람에 가차없이 밤송이 떨어지는 장면도 상상해보게 되고, 그런거보며 자연이 푸근하게 감싸안아주는 이미지로써보다 무섭고 예외없다는 경고로도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페크(pek0501) 2020-09-1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로나 앞에 여름 마저 기 한번 못펴고 지나간 느낌이다˝ .- 정말 그런 듯합니다.



hnine 2020-09-18 21:41   좋아요 0 | URL
이번 여름이 예년에 비해 덜덥긴 했죠.